외전 54화 방학 (8)
오늘은 조금 특이한 날이었다.
배상현 씨가 시하랑 같이 놀지 않겠냐고 한 날이니까.
뭔가 심경의 변화라도 있던 걸까?
같이 워터파크를 간 뒤로 아주 적극적이다.
나로서는 그 제안들이 기꺼웠다.
시하는 모르겠지만 나만은 그 마음이 어떤지 이해하니까.
지금까지 봐온 배상현으로서는 굉장히 큰 용기였고 노력이었다.
뭐라도 함께해 보려는 그 마음이 괜히 안타깝기도 하고 예뻐 보이기도 한다.
나는 차에서 옆에 있는 시하를 보았다.
“오늘 뭐 하고 놀지 기대된다. 그치?”
“응. 미술쌤 재밌어.”
“재밌다고 하니 다행이네.”
미술쌤. 언제가 그 호칭이 바뀔 날이 올까?
솔직히 조금 무섭기도 하다. 시하가 혼란스러워할까 봐. 그리고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 할까 봐.
호칭이 바뀔 뿐인데 그 관계는 쉽사리 변해버릴 것 같았다.
보이지도 않을 미래가 걱정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뭐 시하라면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일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걱정하는 것보다 아이들은 더 강한 면모를 보일 때가 많으니까.
“다 왔다. 내리자.”
“응!”
차에서 내리자 배상현 씨가 우리를 반겼다.
여름이라서 땀을 흘리는 건지 잠깐 나온 거로 땀을 흘리는 건지 모르겠지만 앞머리가 땀에 붙어 있었다.
무슨 작업을 급하게 했나?
“안녕하세요.”
“미술쌤. 안녕하세요.”
“그래. 안녕.”
우리는 서로 인사를 했다.
배상현의 땀이 뺨을 지나서 턱으로 내려왔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입을 열었다.
“많이 덥죠?”
배상현이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네. 그러네요. 제가 먼저 물어봐야 할 말이었는데.”
“누가 물어보면 어때요.”
“잠깐 작업 좀 하느라. 아! 들어오세요. 제가 다 준비해 뒀어요.”
“집 안에 뭔가 재밌는 걸 설치했나 봐요?”
“비밀입니다.”
“그러니까 더 궁금한데요?”
시하도 정말 궁금한지 눈을 반짝였다.
“미술쌤. 엄청난 거 있어요?”
“엄청난지는 모르겠는데 일단 열심히 만들었다고는 말할 수 있겠다.”
대체 뭘 열심히 만들었다는 거지?
괜히 상상력을 자극한다.
설마 설치미술처럼 집 안을 엄청 미술 작품으로 막 꾸미고 그런 건가?
너무 엄청난 스케일의 상상에 고개를 저었다.
그런 작업이 하루, 이틀 만에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가벽 같은 것도 설치해야 하고 작품도 만들어야 하는데 방학 중 그럴 시간이 어딨겠는가.
그래도 뭔가 만들기는 했다는 걸 봤을 때 괜한 설렘이 들기도 했다.
시하와 나는 집 안으로 들어갔다.
“똑같은데요?”
“하하. 여기는 똑같죠. 일단 2층을 꾸몄거든요.”
“아. 2층이요?”
“네.”
시하가 재빨리 계단을 타고 2층을 올라갔다.
아무래도 제일 기대되는 모양이었다.
“미술쌤. 어느 방이에요.”
“바로 앞의 방이야.”
“여기요?”
“응.”
시하가 문을 벌컥 열었다.
나도 그 뒤를 따라 걸었는데 방을 보고 할 말을 잃어버렸다.
대한민국에 있다면 특별한 풍경이 비친 건 아니었다.
물론 가정집에 이런 풍경이 있다는 건 굉장히 특별했지만.
무슨 말이냐고 하면 눈앞에서 컴퓨터 여러 대가 쫙 늘여져 있다는 것이었다.
그렇다.
눈앞에 PC방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키오스크까지 뭐냐고.’
쓸데없이 디테일했다.
보니까 데스크톱이 형형색색으로 빛나며 부팅이 되고 있었고 스피커가 있을 뿐만 아니라 헤드셋도 붉은색과 검은 색감으로 끼워져 있었다.
심지어 불빛도 들어와서 휘황찬란했다.
‘컴퓨터 8대.’
대체 돈을 얼마나 쏟으면 이런 풍경이 나오는 걸까?
아니. 대체 피씨방은 왜?
여기 뭐 그거야? 그 뭐시냐. 프로게이머 육성하는 곳은 아니겠지?
“피씨방을 만들었네요?”
내 말에 시하가 반응했다.
“형아. 여기 피씨방이야?”
“응. 여기가 피씨방 같은 느낌?”
뒤에 있던 배상현이 살며시 뿌듯한 느낌의 얼굴을 했다.
“제가 조사해 봤거든요. 요즘 초딩들이 뭘 좋아하는지. 일단 기본적으로 게임을 좋아하는데 피씨방도 잘 간다고 하더라고요.”
뭐 한국에 살면 그렇긴 한데요.
“그런데 초딩들이 피씨방에서 시끄럽게 하면 싫고 그런 경우도 있나 보더라고요.”
조사를 많이 하셨는데요?
“그래서 떠들썩하게 놀 수 있는 피씨방을 집에서 만들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여기서 같이 게임을 하면 재밌잖아요.”
아니. 아니. 보통 사람들은 거기서 피씨방을 만들 생각을 못 하거든요?
“아! 그래서 느낌 더 살게 메뉴판도 준비했어요. 라면이라던가 인스턴트 식품도 다 사뒀고. 금방 요리해서 줄 수 있어요. 제가 직접 피씨방 가서 이것저것 물어보고 조사도 해보고 그랬거든요.”
사전조사까지 하셨습니까?
대체 왜 그렇게까지 하시는 건데요! 이유가 있을 거 아니에요!
노력의 방향이 이게 맞습니까?
물론 초등학생들이 보면 눈이 돌아갈 만한 곳이기는 한데.
집안에 나만의 피씨방.
친구들이랑 떠들썩하게 게임도 할 수 있고 음식도 주문하면 공짜로 나온다.
이것만큼 천국이 있을까?
뭐가 됐든 나는 배상현 씨의 노력에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워터파크 때 느꼈지만 프로그램 하나 찍는 것도 아닌데 사전조사를 그렇게 열심히 한다.
물론 뭐를 몰라서 그런 거지만 말이다.
누가 보면 제작사가 세트장을 만들어서 촬영하는 줄 알겠다.
배상현이 어색하게 말했다.
“최대한 비슷하게 만들려고 노력했습니다.”
그…. 시하랑 친해지려고 노력을 더 하셔야 하지 않습니까?
하다 보니 진심이 되셨나요?
일단 나는 어렵사리 입을 뗐다.
“근데 시하는 피씨 게임을 해본 적이 없는데.”
“아! 그런가요?”
“아. 뭐. 지금부터 해보면 되죠.”
아니. 지금 이게 맞나? 이게 맞아?
나조차도 혼란스럽다.
“형아! 빨리 와서 앉아.”
시하는 이미 의자에 앉아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게 맞나 보다.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저도 실례하겠습니다.”
“아니. 선생님. 선생님 집이잖아요.”
“하하하. 뭔가 이 공간은 제 집이 아니라 따로 떨어져 있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하긴 내가 보기에도 이곳은 이질적이긴 하다.
“일단 키오스크 이용해 보는 건 어떨까요?”
“이걸 이용할 수 있습니까?!”
“네. 제가 임의로 등록해 두었습니다. 아이디랑 이름을요. 물론 충전도 해뒀고요.”
“아. 진짜요?”
“네. 영어 이름으로 해뒀습니다.”
뭐 이런 디테일까지 해두는?
그럼 실제로 결제가 되는 건가?
내 생각을 눈치채기라도 한 듯 배상현이 말했다.
“실제로 카드 결제는 안 됩니다. 그냥 누르면 채워집니다.”
“네?”
“아는 친구 도움받아서 프로그램을 좀 바꿨어요.”
“???”
뭐 이런 스케일이.
대체 돈을 얼마나 쓴 거야?
이거 한 번 놀아주기 위한 것치곤 과한 금액이 아닌가?
뭐 여기서 친구들이랑 오래 놀 생각으로 만든 거면 괜찮을지도 모르겠지만.
근데 이건 좀.
뭐 배상현 씨가 돈이 많다면 다행이지만 말이다.
사실 얼마나 잘 나가는지 모르지만 돈이 많긴 할 것이다.
이렇게 집도 그냥 구한 걸 보면 말이다.
“엄청나네요.”
솔직히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형아. 나 키오스크 해볼래.”
“그래. 일단 아이디 넣고.”
시하가 손쉽게 아이디를 클릭했다.
[siha]
영어 이름 적는 거는 손쉽게 할 수 있다.
괜히 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50분 1000원]
시하는 이 버튼을 클릭했다.
남은 시간이 표시되어 있는데 눈을 의심했다.
[남은 시간 : 9999시간 59분 59초.]
이거 충전할 필요가 있을까?
미리 충전해 뒀다니 대체 얼마나 게임을 하라고 이렇게 충전을 해둔 걸까?
1만 시간의 법칙 뭐 그런 건 아니겠지?
“형아. 나 시간 엄청 많은데?”
“그러게.”
이거 다 쓸 수는 있으려나?
거의 무제한 이용권 같은 거 아니야?
“충전 안 해도 되겠다.”
“그러게.”
나는 멍하니 취소 버튼을 누르는 시하를 보다가 배상현 씨를 보았다.
슬며시 시선을 피한다.
시하 사랑이 어마어마하시군요.
1만 시간 동안 여기서 게임 하면 배상현 씨랑 친해지는 게 아니라 그냥 게임이랑 친해지는 건 아닐까?
“일단 앉아서 해 봅시다.”
굳이 또 사용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자리에 앉아서 아이디를 쳤다.
“비밀번호는 아이디랑 똑같습니다.”
“그렇네요.”
비밀번호가 이렇게 쉬워도 되는지는 둘째로 남겨두자.
어차피 진짜 피씨방도 아니다.
이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제가 있다면.
“무슨 게임을 할까요?”
시하랑 나는 피씨 게임을 하는 게 전혀 없다는 것이다.
게임을 하려면 가입도 거쳐야 하는 귀찮음이 필수였다.
여기서 중요한 건 어떤 게임을 선택하느냐이다.
“제가 조사를 위해 게임을 해봤습니다.”
배상현 씨가 비장한 얼굴을 했다.
게임을 해보셨군요. 네. 그럴 줄 알았습니다.
“좋아할 만한 걸 엄선해서 미리미리 다 깔아놨습니다.”
“그렇네요?”
정말 화면에 몇몇 개의 게임이 다 깔려 있었다.
“초딩이 좋아하는 탑10 게임! 그중 제가 추천하는 건 건게일즈입니다.”
“총 게임이요?”
“네. 물론 진짜 사람이 총 쏘는 FPS 게임은 아닙니다. 굳이 말하자면 귀여운 캐릭터가 에너지파 같은 걸 총으로 쏘아서 아이템도 먹고 공격도 하는 게임이죠.”
“아하.”
“요즘 초등학생들도 많이 한다고 합니다.”
“그렇군요.”
“물론 이게 탑1은 아닙니다. 대략 탑5에 드는 게임이죠. 같이 만날 수도 있습니다.”
“아하.”
일단 처음이니까 한 5위 정도 하는 게임을 하겠다는 것이다.
우리는 게임에 접속해 아이디도 만들고 게임도 플레이해 봤다.
같이 헤드셋을 끼고 이야기를 하니까 이게 필요한가 싶은 기분도 들었다.
그도 그럴 게 바로 옆에 있으니까.
헤드셋 마이크 그렇게 필요 없을지도?
“형아. 재밌어!”
시하가 재밌어하면 되었다.
열심히 총을 발사하는데 게임 캐릭터의 HP 바가 줄어드는 게 보였다.
옆에서 배상현이 헤드셋 마이크로 열심히 칭찬했다.
“시하 정말 잘하네! 나중에 군대 가도 만발 사수가 되겠어.”
저게 제대로 된 칭찬이 맞는 걸까?
인터넷에는 초딩 칭찬하는 법이 안 나오는 걸까?
시하가 말했다.
“미술쌤. 저 죽었어요! 빨리 복수해 주세요!”
“나한테 맡겨! 나 이 게임 열심히 해봤으니까.”
결국, 우리 셋 다 패배했다.
물론 이길 때도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게임을 하는 게 익숙지 않아서 생기는 패배였다.
“형아도 못하는 게 있어?”
시하가 충격받은 표정을 했다.
크흑. 아직 이 게임에 익숙하지 않아서 그래.
오랜만에 게임이라는 걸 하니까 손이 굳어진 것도 있고.
“형아가 몇 번 하면 금방 잘할 수 있어.”
“진짜?”
“응. 진짜지.”
나도 어쩔 수 없는 한국인이다.
게임을 못한다는 말을 듣고 싶지 않았다.
그때 배상현이 말했다.
“우리 그럼 좀 더 해볼까?”
그 말에 우리는 게임 속으로 빠져들었다.
이 순간 나이가 얼마나 먹었던 동심으로 돌아가 게임에 빠져들었다.
게임 앞에서는 모두가 어린애였다.
***
시하가 헤드셋을 벗었다.
“귀 더워.”
귀에 땀이 맺혔는지 만지작거렸다.
나는 이미 헤드셋을 벗은 지 오래다.
선도 뽑아서 스피커를 틀어두었다.
오히려 이게 더 편했으니까.
배상현이 말했다.
“시하야. 이제 슬슬 출출해지지 않아? 흠흠. 선생님이 피씨방처럼 음식도 준비했는데.”
“정말요?”
“그럼. 아까 말했는데 까먹었지?”
“우와. 뭐 있어요?”
“한번 볼래?”
2층에는 바처럼 술이나 컵을 넣는 공간도 있었는데 거기에 술은 없고 컵라면과 과자로 채워져 있었다.
“자. 먹고 싶은 거 골라도 돼. 핫도그도 있고 볶음밥도 있고 짜장면도 있어.”
나는 조금 감탄했다가 걱정이 들었다.
이거 나중에 유통기한 지나면 다 버리는 거 아니야?
시하가 물었다.
“형아는? 형아는 뭐 먹을 거야?”
“나는 어릴 때 꼭 피씨방에서 먹는 게 있는데.”
“뭔데?”
“튀김우동.”
피씨방에 오면 컵라면 중 튀김우동을 시켰다.
아니면 사리곰탕면이라던가.
이상하게 집에서는 그런 종류의 컵라면을 잘 안 먹었는데 꼭 피씨방에 가면 먹게 됐다.
배상현이 말했다.
“튀김우동 있어요. 하지만. 내 추천은 짜계치죠.”
“짜계치요?”
“짜파게티, 계란, 치즈.”
“아…. 짤 것 같은데.”
“아닙니다. 인기 메뉴입니다. 그리고 바로 소떡소떡. 이것 역시.”
배상현 씨. 많이 조사했군요.
“그럼 저는 짜계치 하나요.”
“형아. 나도.”
시하도 같은 걸 먹고 싶어 했다.
배상현이 싱긋 웃었다.
“많이 먹을 수 있게 다 같이 나눠 먹죠. 튀김우동, 짜계치, 소떡소떡. 주문받았습니다. 자자. 들어가서 게임 하시죠. 제가 준비하겠습니다.”
“저도 도와드릴까요?”
“아닙니다. 제가 준비해서 가져다드리겠습니다.”
“네. 그럼 부탁드릴게요.”
저기요. 혹시 진짜 피씨방 차리실 것 아니시죠?
정말 엄청 조사해서 이렇게 노는 게 맞아?
어느 아빠가 아들과 이렇게 놀까?
그때 시하가 내 손을 잡아당겼다.
“형아. 밥 기대된다. 그치?”
“응. 그러네.”
뭐 시하가 좋아하면 된 거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