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38화 독서 모임
1학년 학부모들의 독서 모임이 있는 날.
사실상 엄마들의 모임인데 여기서 반장인 종수의 어머니가 주도하고 있었다.
보통 이런 건 반장보다는 어머니가 주도하는 경우가 많다.
어찌 되었든 나는 엄마가 아니었지만 이런 모임을 열 때면 참여하려고 한다.
물론 자주는 아니더라도 말이다.
사실 조금 불편하기는 했다. 아는 사람이 없는 건 아니었는데 아버님이 오는 경우는 거의 없으니까.
그나마 시하랑 같이 가는 게 위로가 된다고 할까?
암튼 그런 느낌이다.
“형아. 오늘은 뭐 읽을까?”
“오늘은 1학년 권장 도서 중 마음에 드는 거 선택해 볼까?”
“응!”
7살과 8살은 다르다. 정확히는 초등학교와 유치원의 차이라고 해야겠다.
지금까지 그림이 많은 동화책을 읽어왔다면 이제는 그림이 조금 줄어들고 글자가 많은 책을 읽어야 할 때이니까.
이 중요한 시기를 어떻게 적응하고 보내느냐에 따라서 독서의 재미나 습관이 만들어진다고 한다.
뭐 엄마들에게 들은 거긴 하지만.
근데 시하는 별 불만 없이 내가 하자고 하면 하는 편이었다.
좋아하는 게 분명히 있을 텐데도 이렇게 잘 따라주는 걸 보니 고맙기도 하고 조금 걱정되기도 하고 그렇다.
“일단은 형아가 이 5권을 골라봤는데.”
“나는 이거 할래.”
“오. 이게 더 재밌을 것 같아?”
“이게 더 그림이 귀여워.”
시하가 고른 책은 ‘옹달샘이 말하네?’였다.
실제로 옹달샘이 말할 수는 없겠지만 뭔가 나도 호기심이 이는 제목이기는 했다.
물론 시하는 표지의 그림을 보고 선택하긴 했지만 말이다.
이제는 글자 많은 책도 곧잘 읽어서 괜찮을 것 같다.
나중에는 글자만 있는 책도 읽을까 싶지만 말이다.
그때 승준이 시하에게 다가왔다.
“시하야. 다 골랐어?”
“응.”
“그럼 저기 가서 같이 보자. 내가 가방으로 자리 잡아놨어.”
“알겠어.”
“그리고 이거 다 읽고 사커하러 가자.”
“응.”
저기요? 누구 마음대로 사커하러 갑니까?
아무렇지 않게 약속을 잡는 두 사람이었다.
어쩔 수 없이 나도 승준 엄마도 따라가야 한다.
승준 엄마와 눈이 마주치자 이해한다는 듯이 쓴웃음을 지었다.
우리가 무슨 힘이 있나요. 그냥 가요.
이런 얼굴이셨다.
하긴 독서 열심히 하는 것만으로 감사한 일이다.
둘은 진짜 자리 잡은 곳에 앉더니 책을 읽기 시작했다.
‘도움이 되는 것 같기도 하고.’
집에서 책 읽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보다 아이들이 다 같이 책 읽는 시간이 있는 것이 감화되기 쉬운 거 같다.
분명 가만히 책 읽는 걸 싫어하는 아이들도 있을 테지만 이렇게 친구들이 행동한다면 따라 하게 되는 것이다.
“형아. 빨리 와.”
“시혁이 형아. 빨리.”
시하가 자신의 옆자리를 가리킨다.
거기에 승준의 가방이 놓여 있다.
자리 잡았다고 하더니 내 자리까지 잡은 거였나?
애들이 도서관에서 더 큰 소리를 말하기 전에 얼른 앉아야겠다.
“형아는 뭐 골랐어?”
“응? 아. 형아는 아까 1학년 권장 도서 중 하나 골랐어.”
아이가 어떤 글을 읽고 공부하게 되는지 나도 읽어봐야 한다.
그래야 아이의 시선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테니까.
나름 이것도 공부가 되는 것 같다.
다른 어머니들도 책 하나씩 들고 와서 아이 옆에 앉는다.
이거 독서 습관은 아이뿐만 아니라 어머니들도 기르게 될 것 같은데.
그리고 동화책보다 글자가 많다고 해서 부담스러운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글만 읽는 어른들로서는 이게 동화책이랑 별 차이 없어 보일지도 모르겠다.
좀 더 편하게 읽는다고 할까?
그런 느낌이었다.
“다 읽었다.”
“응. 다 읽었어?”
“응.”
“그럼 이거 빌려가자.”
“왜?”
“또 봐도 되고 소개도 해줄 수 있고.”
“소개?”
“응.”
독서 모임은 책만 읽는 게 아니라 소개도 하고 그런다.
이 책의 이런 점이 좋아서 읽어봤으면 좋겠다고 하는 것이다.
이런 부분도 종수 어머니가 도맡아서 하셨다.
도서관에 스터디룸이 있는데 거기를 시간 예약해서 잡으신 것이다.
뭔가 처음에는 우왕좌왕했는데 이제는 체제를 잡아서 하는 느낌이었다.
“응. 이거 소개해 줘야지.”
물론 다른 아이들도 읽은 거일 수도 있다.
그건 그거대로 재밌다.
각 아이들마다 뭐에 집중해서 읽었는지 좋아하는 부분이 어디였는지 전부 다르다.
물론 같은 감상을 가진 아이들이 있을 수도 있었다.
“스터디룸으로 이동하자.”
우리는 그렇게 스터디룸으로 이동했다.
오늘 모인 사람들은 상당히 많았는데 아이들만 16명 정도 된 것 같다.
엄마들까지 합치면 2배.
“2팀으로 나눌게요.”
그렇게 팀을 나눴다.
오랜만에 시하팀과 종수팀으로 나눠서 스터디룸에 들어갔다.
이렇게 나눈 이유는 간단했는데 종수팀은 종수 어머니가 주도로 이야기하고 시하팀은 내가 주도로 이야기를 시작했으면 해서였다.
참 부담스러운 자리긴 하다.
“자. 그럼 오늘 읽은 책을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제가 할까요?”
“네!”
이건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머니들도 함께 참여해 이야기한다.
부모라고 해서 팔짱만 끼고 보는 모임이 아니다.
“오늘 제가 읽은 책은 감기 바이러스 싸움이에요.”
바이러스와 싸우는 주인공 세포의 이야기가 메인이다.
“주인공이 난 바이러스와 싸워서 이길 거야! 하면 몸에 있는 바이러스와 싸우는 세포들이 엄청난 힘을 가지게 됩니다. 그래서 칼도 막 휘두르고 창도 막 찌르고 해서 바이러스들을 물리쳐요.”
간단한 스토리를 말했지만 이 책의 이야기는 바이러스에 관한 이야기였다.
숙주로 삼는 모습과 생물학적인 이야기가 섞여 있다.
인간이 이겨내려는 의지도 건강에 매우 중요하다는 포인트도 보였다.
하지만 이런 건 아이들의 흥미를 유발하기에는 조금 모자랐다.
그러니 싸움이라는 포인트를 콕 집어서 말하는 것이다.
싸워서 이긴다.
이 얼마나 멋진 울림인가.
남자아이들이라면 흥미가 생길 부분이었다.
“나도 저 책 꼭 읽어야지. 메모해야겠다.”
시하는 공책에 내가 말한 책 이름을 썼다.
너는 내가 고른 책을 무조건 메모하는구나.
그럼 내가 어려운 책을 읽으면 시하도 읽을까? 궁금하지만 그런 힘든 책을 권하고 싶지 않다.
흥미를 잃어버리면 나중에 되돌리기는 몇 배나 힘드니까.
“여기까지입니다. 다음에 할 사람.”
“형아. 나!”
내가 먼저 하니까 시하도 자기가 먼저 해보고 싶나 보다.
시하가 앉아서 책을 보여줬다.
“이거 봐봐. 옹달샘 귀엽지? 그림이 귀여워서 선택했어.”
선택한 이유부터 말하는군.
아이들의 공감을 살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여기 산속에 옹달샘이 있는데 새들도 오고 할아버지도 오고 그래.”
옹달샘이 그렇지. 뭐.
“옹달샘이 심심한지 말을 걸어. 보소, 보소. 여기 좀 보소. 여기 피부미용에 좋으니까 목욕하기 딱 좋아. 깃털 많이 상했네. 여기 한 담가보면 깃털이 윤이 난다니까? 막 이래.”
거. 옹달샘이 좀. 뭔가 장사꾼 같은데?
“할아버지한테는 나 너무 깨끗하고 영양분도 엄청 많으니까 이걸로 술 담그면 진짜 좋다고 해.”
거. 옹달샘 씨? 새들이 목욕하고 마시고 하지 않았나요? 깨끗하다고요?
“근데 할아버지가 의심해.”
“의심하겠지.”
“그래서 옹달샘이 표면은 좀 그럴지도 모르지만 깊은 곳은 확실히 깨끗하다고 했어.”
옹달샘이 완전 장사꾼 맞는 거 같은데? 거짓말이 너무하네.
“할아버지가 옹달샘을 퍼가는데 드디어 옹달샘이 할어버지를 따라 밖을 볼 수 있게 돼!”
뭐야? 장사한 게 아니라 몸 일부를 보내서 밖을 볼 수 있게 하는 계획이었어?
“그리고 어떻게 되냐면. 그건 읽어봐!”
설마 그런 엄청난 계획을 가진 옹달샘이 밖에 나가서 술이 된 다음 무슨 짓을 할지 궁금했다.
뭐 결국 먹히는 엔딩 아닌가?
근데 확실히 저 부분에서 끊으니 궁금하기는 하다.
생각보다 우리 시하가 책 소개를 잘하는데?
“오. 시하야. 나 그거 읽고 싶어. 근데 그거 작가가 누구야?”
“응? 강인함이라고 적혀있어.”
어라? 강인함이라면…. 이 책의 내용이 이해가 되는군. 엉뚱하다면 엉뚱했다.
어찌 되었든 다들 시하의 감상이나 소개가 괜찮았는지 시하 책 제목을 적는다.
암. 누구 동생인데.
“다음은 내가 할게.”
이번에는 승준이 차례였다.
“이거는 어릴 때 사커공을 받아서 고등학생 때까지 써. 엄청 아껴 쓰는 거야.”
그게 아껴 쓰는 건가?
바람 다 빠질 것 같은데?
“나중에 이 공이 바람 빠져서 엄청 슬펐어.”
역시 바람이 빠졌나?
뭐 소중한 추억이 담긴 물건이 망가지는 건 슬프지.
근데 승준이 사커공으로 말하니까 좀. 뭔가 좀. 슬픈가?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다음은 나야.”
하나가 손을 번쩍 들었다.
“나는 개구쟁이 오빠라는 책인데. 너무 말을 안 듣는 오빠가 엄마한테 혼도 나고 반성도 하는 이야기야.”
뭔가 그거 승준이랑 비슷한 느낌적인 느낌인데?
승준이 하나의 말에 웃음을 보였다.
“하하. 엄마 말 안 들으면 당연히 혼나지. 바보네.”
음. 그걸 네가 말하니까 뭔가 좀. 음. 그렇지. 옆에 승준 엄마가 쓴웃음을 짓고 있는데?
아무튼, 독서 모임은 꽤 재밌게 돌아가고 있었다.
***
5월은 어린이날부터 어버이날. 그리고 스승의 날까지.
행사가 많은 달이다.
어린이날에 시하는 형아랑 24시간 놀아주는 티켓을 선물 받았다.
“24시 형아 티켓?!”
“어때? 엄청 좋지?”
“진짜 좋아. 이걸로 하루 동안 계속 놀 수 있는 거지?”
“응. 그렇지.”
“아싸! 그러면 형아. 놀이터 가자. 놀이터.”
“어? 놀이터?”
“응. 같이 그네 타자!”
동네 아이들이 있는 놀이터에 하하호호 웃으며 시하랑 둘이서 놀고 있기.
음. 뭔가. 음. 그렇군.
“그, 그래. 그러자.”
“미끄럼틀도 같이 타고!”
“응. 그러자.”
놀이터 누가 만든 것이냐. 용서할 수 없다.
뭐 이렇게 놀이터 가는 것도 다 한때 아니겠는가. 이제 좀 크면 피씨방에서 논다고 하겠지.
그럴 때면 나도 같이 게임도 하고 그러면 되는 것이다.
“삼촌. 삼촌도 와야지.”
“나? 난 왜. 난 24시간 삼촌 티켓 아니다.”
“그럼 뭐 선물 있어?”
“선물은 생일 때 받으면 되지 꼭 어린이날에 또 받아야 해?”
“응. 난 어린이니까.”
시하가 당당하게 선물을 요구했다.
삼촌이 그런 시하에게 코웃음을 쳤다.
“뭐 예쁘다고 선물을 주냐.”
“근데 난 선물 산 거 다 봤는데.”
“그건 또 언제 봤어?”
“난 다 알아.”
이 집에서 뭔가 숨기는 게 쉽지 않지.
삼촌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 방에 들어가 본 거야?”
“아니. 문 앞에 박스 있던데? 근데 나는 바빠서 놀러 갔지.”
“봤으면 안으로 들여야지!”
아무래도 시하가 못 본 줄 알았는데 다 봤나 보다.
시하 글도 읽을 수 있어서 내용물도 읽었을 것 같았다.
“근데 안에 뭔지 몰라.”
못 읽었나 보다.
“뭐라 이상한 거 적혀 있었는데. 이거 내 선물인 거 같은데 이상한 거 적혀 있었어.”
읽었는데 뭔지 몰랐나 보다.
이상한 게 대체 뭐지? 삼촌은 대체 뭘 산 것일까?
“마시는 모자라고 적혀 있었는데.”
“마시는 모자?”
뭔 또 쓸데없는 걸 산 거지?
삼촌이 방에 들어가더니 아주 자랑스럽게 선물을 열어주었다.
“짜잔. 이거 봐봐. 여기 캔 음료 양쪽에 두 개 넣고 모자에 달린 빨대로 쭉 빨면?!”
입으로 음료가 들어간다.
굉장히 쓸데없어 보인다.
“삼촌. 그 음료수 사실 옹달샘이야.”
“그게 뭔 소리냐?”
나야말로 그게 뭔 선물이냐고 삼촌에게 묻고 싶다.
아니. 쓸모있는 선물을 줘야지. 저게 뭐야.
“이야. 이거 진짜 재밌지 않아?”
“하나도 안 재밌는데요.”
“왜. 이거 차고 놀이터에서 놀다가 목마를 때 이거 딱 마시면 되는데.”
굳이?
그리고 놀다 보면 따 놓은 음료가 머리 위에서 쏟아지지 않을까 싶은데.
“삼촌 웃기다. 하하하.”
뭐 시하가 좋아하면 됐다.
“그럼 시하야. 이거 써봐.”
“아니야. 삼촌이 쓰고 있어야 재밌어.”
그냥 삼촌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좋은가 보다.
“아. 맞다. 형아.”
“응?”
“이거 형아랑 노는 거 시간 빼면 안 돼.”
“어?”
“자는 시간도 빼면 안 돼. 알았지?”
갑자기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었다.
아. 24시간 형아 티켓을 시간 끊어서 쓴다고? 천잰데?
근데 어쩌냐. 그런 거 안 된다.
“아, 그건 안 되는데.”
“왜?”
“한 번 쓰면 시간이 계속 가거든. 지금도 시간이 계속 가고 있어.”
“안 돼! 형아 빨리 나가자. 아. 삼촌 때문에 시간 없어졌어.”
삼촌이 서운하다는 얼굴로 말했다.
“야. 나도 24시간 놀아줄 수 있거든!”
“괜찮아. 삼촌은 언제든지 놀아줄 수 있으니까. 삼촌 백수잖아.”
“허.”
뭐, 그리 틀린 말은 아니긴 한데.
어찌 되었든 나는 삼촌을 뒤로한 채 시하랑 놀아주러 놀이터로 갔다.
다음에는 일 한번 나가보시죠. 삼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