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형아, 나 귀엽지 외전-37화 (462/500)

외전 37화 태권도 심사 (2)

요즘 같은 시대에 태권도 심사가 있다고 해도 못 가는 사람들이 많다.

맞벌이 부부도 많을뿐더러 굳이 가서 봐야 하냐? 하는 경우도 있으니까.

태권도 심사가 워낙 많아야지.

하지만 그래도 첫 심사는 보러 가는 사람들도 많았다.

우리 아이가 의젓하게 잘 있나 태권도장에서 잘하고 있나 궁금하니까.

나도 시하에게 매일 집에서 태권도를 배우고 있지만(?) 태권도장에서는 어떤 모습일지 궁금했다.

물론 부모님이 있는 것과 친구들이랑만 있는 것은 다른 모습이겠지만.

“형아. 오늘 꼭 오는 거지?”

“응. 당연하지.”

학교 가는 길에 꼭 이렇게 확인을 한다.

내가 안 올 거라고 생각했나?

“누구누구 데리고 올 거야?”

안 올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고 누구 데리고 오는지 궁금했던 건가?

어? 나랑 삼촌만 갈 생각이었는데?

“혀니 누나 와?”

“수현이?”

“응.”

시하가 해맑은 모습으로 묻는다.

이제 수현이는 우리 가족인 거니? 그래서 묻는 건가? 하지만 여기 오라고는 말은 안 했는데.

하지만 시하의 생각은 다른가 보다.

“백동 형아랑 문도 삼촌이랑 또. 또.”

“시하야. 그렇게 못 와.”

“왜?”

무슨 대가족이 총출동이다. 아니, 그렇게 많이 와서 뭐 하게? 태권도 심사가 대체 얼마나 중요한 거야?!

“미리 관장님에게 말해야 하거든. 그래서 삼촌이랑 형아만 간다고 했어.”

“지금 말해도 미리잖아?”

“당일은 미리가 아니지. 적어도 3일 전에 이야기해 줘야지.”

“3일 전에. 그럼 어쩔 수 없지.”

3이 들어가서 이해한 건지 미리가 아니라 생각해서 이해한 건지 모르겠다.

어디 부분에서 고개를 끄덕인 거지?

전혀 짐작이 가지 않았다.

예전에는 척하면 척 알아들었는데 시하가 성장하고 다른 사람들이랑 어울리면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 때가 있었다.

그래도 이건 확실히 안다. 시하는 형아를 좋아한다는 것.

“그럼 오늘도 잘 갔다 와.”

“응!”

어느새 교문이다. 시하는 내게 손을 흔들며 떠나간다.

뒤로 힐끗 돌아보며 또 손을 흔든다.

몇 걸음 가다가 또 손을 흔든다.

아니. 언제 학교에 들어가나?

그렇게 시야에서 없어질 때쯤 인사가 끝났다.

교문 앞이라고 금방 헤어지는 게 아니었다.

뭐 지금은 이런 풍경이 익숙하니까.

‘나도 집 가서 일해야겠다.’

오늘 태권도 심사가 있으니 카페에서 작업하기보다는 집에서 삼촌이랑 같이 점심을 먹고 출발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삼촌.”

“응?”

“운동하세요?”

삼촌이 문에 설치된 철봉을 열심히 후욱후욱 소리를 내며 하고 있었다.

꼭 시하 없을 때만 저렇게 운동한다니까.

있을 때는 배 긁으면서 소파에 누워 있으면서.

아니. 이렇게 운동하니까 지쳐서 드러누워 있는 건가?

삼촌이 철봉에서 내려오며 물었다.

“어. 근데 여기서 일하게?”

“네. 일해야죠. 나중에 점심이나 같이 먹고 보러 가죠.”

“뭐 또 태권도 심사를 본다고 이렇게 난리인지 모르겠다. 이거 내가 알기로 띠가 엄청 많은데 매번 보러 가야 하냐?”

“보통 노란띠 따는 것만 본대요. 그다음부터는 부모님들도 귀찮아서 안 간다더라고요.”

“그렇지? 그럴 줄 알았다. 띠가 한 개도 아니고 심지어 검은 띠 따는 것도 아닌데 굳이?”

그건 그렇긴 하다.

그래도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다. 보고 싶은 사람도 있으니까.

나는 한 번쯤 보고 싶다.

“이런 거 있으면 준비할 게 너무 많아.”

삼촌이 툴툴거렸다.

“삼촌이 뭐 준비하는데요?”

“뭘 준비하긴. 카메라도 준비해야 하고 빛 조명도 확인해야 하고 어?!”

이거 왜 보러 가냐고 하더니 사실 이런 거 좋아하는 거 아닌가?

어찌 된 게 준비가 나보다 더한데?

“그냥 폰으로 찍으면 되지. 뭘 또 카메라를.”

“이게 달라. 화질이 다르다고.”

“요즘 폰도 좋아요.”

“쯧쯧. 갬성을 모르네. 갬성을. 이런 게 다 추억이 된다는 말이야.”

“네. 네. 알겠습니다. 그럼 저는 도시락도 싸갈까요?”

“그걸 왜 싸? 밖에서 사 먹는 게 맛있는데.”

“삼촌. 내일 아침은 햇반에 김. 대기업 맛이나 보세요.”

어찌 된 게 꼭 한마디가 더 많다.

“아! 왜! 시혁아! 난 네 밥이 우리 어머니의 구수한 손맛보다 더 낫다고 생각해! 내가 말을 잘못했다!”

“옛날에 어머니가 밥 더럽게 못 한다고 하지 않았어요?”

“아~ 나도 체육관 갈 시간이네~”

“이화상 씨?”

삼촌이 나 몰라라 도망쳤다.

나는 피식 웃었다.

그래도 내가 밥하면 제일 잘 먹어주는 게 삼촌이었다.

***

태권도장.

오늘은 심사 날이라서 그런지 좀 더 분위기가 엄숙했다.

아이들이 줄지어서 앉아있는데 무릎에 손을 올리고 있으니 반듯해 보였다.

부모님들도 평소와는 다른 아이들의 모습이 신기한지 눈을 껌뻑거렸다.

집에서는 늘 장난만 치는 아이들이었는데 어느새 의젓하게 있는 모습이 신기한 것이다.

도장에 잘 적응한 모습이라 태권도를 보내기 잘했다는 생각도 들 것이다.

“시하야. 시혁이 형 왔네.”

승준이 시하에게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시하가 고개를 뒤로 돌리자 시혁이 손을 흔들어준다.

시하도 살짝 손을 흔들다가 자세를 똑바로 한다.

관장님이 쳐다보고 있었으니까.

주먹을 무릎 위에 올리고 눈에 힘을 준다.

오늘은 형아에게 멋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으니까.

관장님이 입을 열었다.

“자. 지금부터 심사에 들어가겠습니다. 너무 긴장하지 말고 지금까지 배운 것들을 열심히 해봅시다.”

“네!”

처음 시작한 건 의외로 간단한 유연성 테스트.

몸이 얼마나 유연한지 스트레칭으로 보여주는데 이것 역시 심사에 포함됐다.

막 까부는 아이들은 이미 집에서 보여줬지만 그렇지 않은 아이들도 유연함을 자랑했다.

아직 어려서 할 수 있었다.

시하도 열심히 다리를 찢었다.

“에잇!”

다리를 모으고 앞으로 숙였다.

손이 발에 닿았다.

삼촌이 카메라로 그 모습을 열심히 찍고 있었다.

“오오오. 시하 잘한다.”

“삼촌. 조용히 좀 해요. 오디오 카메라에 다 들어가겠네.”

“그 부분은 음성을 빼내면 되니까 괜찮아. 그리고 이런 게 들어가는 것도 나쁘지 않지. 다 추억이야. 추억.”

“추억이고 뭐고 조용히 좀 해요.”

시혁이 호들갑 떠는 삼촌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자신은 저렇게 오두방정을 떨지 않는다.

물론 시하가 여기 중에서 제일 유연하고 제일 의젓하고 제일 잘한다고 생각하지만.

그저 시혁은 시하에게 엄지를 치켜들 뿐.

“다음은 태극 1장을 하겠습니다. 모두 준비!”

“준비!”

“태극 1장 시작!”

품세는 한 명씩 심사 보는 게 아니라 여러 명이 펼친다.

그냥 여러 명이 봐도 누가 잘하는지 딱 보이니 하는 심사였다.

그리고 말이 심사지 이미 연습하고 교정하는 걸 봤던 관장은 어떤 실력인지 다 알고 있었다.

사실상 아이들이 시험 보는 경험과 부모님이 볼 수 있게 만든 구성이었다.

그렇다고 대충 보는 건 아니었다.

시하는 짧은 팔다리를 열심히 놀리다가 마지막에 기합을 넣었다.

“어이!”

마지막은 힘 있게!

시하는 자신이 다 한 것에 뿌듯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짝짝짝.

박수가 이어지고 아이들이 자세를 바로잡았다.

관장님은 종이에 점수를 매기듯이 볼펜으로 무언가 썼다.

“그럼 마지막으로 격파가 있겠습니다. 승준이 앞으로.”

“네!”

“뭐로 격파하겠니?”

“앞차기요!”

“그래.”

관장님이 송판을 들었다.

승준이는 역시 발차기를 선택했다.

사커 선수는 손을 사용하면 안 된다. 공을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건 골키퍼뿐.

“어이!”

승준이 멋지게 발차기로 송판을 격파했다.

“골인!”

“???”

마지막에 골인은 왜 외치는 걸까?

승준 엄마는 그 모습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었다. 조금 부끄러움이 올라왔다.

“다음은 하나!”

“네!”

“뭐로 할 거니?”

“주먹이요.”

“알겠다.”

하나는 승준과 다르게 정상적으로 마무리했다.

승준 엄마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다음은 연주!”

그렇게 연주, 종수, 재휘, 은우, 윤동의 순서로 격파를 했다.

마지막으로 나온 건 시하였다.

“마지막으로 시하!”

“네!”

“뭐로 격파할 거니?”

“총으로 돼요?”

푸하하.

엉뚱한 시하의 말에 부모님들 모두 웃으셨다.

관장님이 곤란하다는 듯이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총이면 나도 격파되지 않을까?”

“그럼 안 할래요. 관장님이 위험해요.”

“그럼. 그럼. 몸을 쓰는 것으로 부탁한다.”

“그럼 저도 발차기로 할래요.”

“그래. 발차기가 좋지? 배웠던 앞차기로 해보자.”

“네!”

관장님이 송판을 들었다.

“더 높이 들까?”

“네!”

“이거 닿을 수 있나?”

“할 수 있어요.”

“그래. 그렇단 말이지?”

관장님이 아무리 봐도 시하의 발이 닿지 않을 것 같은 높이였다.

아슬아슬하게 닿을 것 같긴 한데 격파는 되지 않을 것 같다고 할까?

시하는 형아에게 멋진 모습을 보이고 싶어서 더 높인 거였다.

“어이!”

휘익.

발이 높이 올라갔다가 내려왔다.

결국, 닿지 않았다.

시혁은 그 모습을 보며 중얼거렸다.

“아, 아깝네요. 닿았는데 안 부러졌어. 키가 좀 더 컸으면 부러졌을 건데.”

삼촌이 황당하다는 듯이 시혁을 보았다.

“뭐가 닿아? 하나도 안 닿았는데. 우리 같은 거 보고 있는 거 맞지?”

“삼촌은 옆에서 진짜 아까웠다고 소리나 쳐요.”

“아까 나 보고 조용히 하라며.”

“원래 잘 안 될 때는 응원해 줘야 하는 거예요. 시하야. 파이팅!”

“나 참. 근데 시혁아. 안 닿았어.”

“닿았습니다.”

시혁이 뻔뻔하게 그리 말했다.

삼촌은 또 시작이라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형아. 나 봐봐.”

시하가 다시 심기일전했다.

관장님은 역시 송판을 조금 낮출 걸 그랬다며 살짝 후회하고 있었다.

“관장님 왜 낮춰요?”

“아니. 안 닿았잖아?”

“아니에요. 저 할 수 있어요.”

“음. 알았다.”

관장님이 송판을 아까와 같은 위치로 만들었다.

“어이!”

시하가 기합을 넣고 뛰어서 발차기를 했다.

빠각.

송판이 부서졌다.

관장님은 눈을 멀뚱멀뚱 떴다.

저렇게 점프해서 격파하는 건 안 가르쳤는데?

“어이!”

그런 관장님을 뒤로하고 시하는 형아를 보며 다시 자세를 잡았다.

시혁이 손뼉을 치며 말했다.

“송판 두 개로 했어도 격파했을 거야.”

관장님은 생각했다.

그건 아니다!

***

모든 심사가 끝나고 관장님이 합격자를 불렀다.

노란 띠를 한 명, 한 명에게 나눠주었다.

시하도 받았는데 다른 아이들처럼 흰 띠를 풀고 바로 노란 띠를 맸다.

시하가 저렇게 띠를 혼자서 매는 것을 보니 굉장히 성장했다는 것을 느낀다.

겨우 저런 거로 성장을 느끼냐고 할 수 있었지만 그런 건 사람마다 감상이 다르니까.

아무튼, 우리 시하는 노란 띠만큼 강해졌다.

“형아. 어때?”

“엄청 멋있어. 격파할 때도 엄청 멋있었고.”

“정말?”

“응. 정말이지.”

나는 살며시 시하에게 귓속말을 해주었다.

“여기 애들 중 시하가 제일 잘하던데?”

“!!!”

다른 아이들이 들었다면 뭐야?! 하면서 반발할 말이었다.

다른 어머니들도 말이다.

그래서 몰래 이야기해 줬다.

근데 시하는 그게 마음에 들었나 보다.

“형아. 여기 온 사람 중 제일 멋있어.”

“푸흡.”

귓속말로 말해 주는데 간지러워 죽는 줄 알았다.

아, 내가 할 때는 안 간지러울 것 같은데 왜 받을 때는 이렇게 간지러울까?

“둘이 또 뭔 이야기해?”

삼촌이 툴툴거리며 다가온다.

“나도 좀 알자.”

그런 삼촌을 보며 시하가 흰 띠를 내민다.

“이거 삼촌 줄게.”

“흰 띠? 에이. 이거 필요 없어. 나 흰 띠 받을 정도 실력 아니야.”

시하가 놀랐다는 듯이 삼촌을 바라보았다.

“삼촌 그럼 흰 띠보다 아래야? 투명 띠야?”

“아래라는 말이 아니라 훨씬 높다는 거잖아. 대체 왜 흰 띠보다 아래라고 생각하는 거야?!”

“그럼 노란 띠야? 내가 맨 거 줄까?”

“왜 올려도 한 칸만 올려? 당연히 삼촌은 검은 띠지.”

“삼촌 태권도 단증 있어?”

“아니. 없는데.”

“에이. 없는데 왜 검은 띠야.”

시하게 펙트로 삼촌을 두들겼다.

하지만 삼촌은 여기에 굴복하지 않는다.

“검은 띠보다 강하다는 거지.”

“그럼 삼촌도 발차기로 나무 쓰러뜨려?”

“하하. 삼촌은 발로 폭탄도 차 봤어.”

“거짓말!”

내가 봤을 때는 수류탄을 누군가 떨어뜨렸을 때 찬 거 같은데. 진짜지 않을까??

어찌 되었든 시하는 무사히 노란 띠를 땄다.

심사 본 건 시하인데 이상하게 내가 피곤하네. 왜지?

“형아. 삼촌이 찍은 영상 같이 보자.”

“응?”

“삼촌도!”

“어?”

영상 찍은 거 되돌려보기.

아직 심사 보는 건 끝나지 않았다.

한 번 보고 끝이겠지? 그렇겠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