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10화 어린이집 졸업
살다 보면 끝맺음을 할 때가 많다.
그중 하나가 졸업이다. 수많은 졸업을 하다보면 계속 갈 것 같았던 친구들과의 연락이 뜸해지지만 그 빈자리를 새 친구들로 채운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하지만 졸업의 순간은 아쉬움과 헤어짐의 슬픔이 남는 만큼 무척이나 중요하다.
시하에게도 누군가와 이제 함께 있을 시간이 줄어드는 경험일 것이다.
물론 어린이집 아이들 모두 강인초로 가기로 되어 있지만 같은 반이 되지 못할 수도 있으니까.
“시하야. 도착했다. 이제 졸업이네.”
“응.”
“안 아쉬워?”
“아쉬워.”
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
이제 여기는 이만 졸업해야지.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다.
어린이집에 들어가자 입구에서부터 축 졸업! 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다.
선생님이 나와서 시하를 반겨 주신다.
“시하야. 졸업 축하해!”
“고마워요!”
“자. 이거 졸업 옷이야.”
“이거 형아가 입던 거다!”
졸업복은 강인대 학위복이랑 같은 디자인이다. 물론 가슴팍에 강인대 마크는 없었다. 뭐 강인대 마크가 있어도 될 것 같았다.
어차피 같은 부지에 있었으니까.
시하는 나랑 같은 졸업복을 입어서 기분 좋아 보인다.
잘 어울리네.
“승준아! 하나야!”
시하가 승준과 하나를 발견했는지 도도도 달려간다.
서로 얼싸안으며 반가움을 표시한다.
어릴 때부터 저런 인사법을 해서인가 나이를 먹어도 변하지 않는다.
“준비 다 됐어?”
“응. 당연하지. 내가 사커도 안 하고 열심히 준비했잖아.”
“나도. 나도. 노래 연습 안 하고 열심히 준비했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린이집 친구들이 졸업하니까 선생님들을 위해 선물을 챙겨주기로 했다.
자기들은 같은 초등학교 가서 언제든지 만날 수 있는데 선생님은 만나러 오기 힘들다는 이유였다.
아마 헤어지는 건 친구들이 아니라 선생님이라는 점이 다른 어린이집과의 차이일 것이다.
물론 그 아이들도 선생님과 헤어지겠지만.
여기 아이들은 좀 더 선생님과 애틋한 관계다. 대학 과정처럼 무려 4년이다.
소수정예인 강인 어린이집을 맡아온 선생님이니만큼 그 아쉬움은 더더욱 크게 느껴질 게 분명했다.
“저기 시혁 씨. 근데 뭘 준비한 거예요?”
“아. 그건 비밀이에요.”
물론 애들의 작당모의는 선생님에게 다 들켰다.
자기들 딴에는 서프라이즈로 준비했으나 8명의 입은 생각보다 많았다.
그리고 애들은 작당모의를 해도 어린이집에서 한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다 같이 모이는 곳이 어린이집밖에 없으니까.
어찌되었든 선물이 뭔지 비밀이 지켜진 것만으로 충분히 잘해낸 거라 할 수 있었다.
“자. 자. 여러분. 이제 졸업장을 받으러 가야죠!”
졸업식이 진행됨에 따라 나는 밖을 힐끗 보았다.
아직 시하의 아빠가 도착하지 않았으니까.
“응?”
나는 미소를 지었다.
저 멀리서 헉헉 거리며 달려오는 사람이 누군지 알았으니까.
이렇게 와주신 것에 대해서 감사를 표한다.
시하 졸업식에는 적어도 아버지가 있게 된 것이니까.
“삼촌. 배상현 씨랑 같이 들어가요.”
“아니. 난 먼저 들어갈게. 시하 사진 찍어야 하거든. 이때를 위해 산 거잖아.”
삼촌이 사진기를 소중히 들고 있었다.
커다란 카메라 렌즈도 끼워져 있었고.
“그때 못 물어봤는데 그거 얼마예요?”
“6백 얼마였던 거 같은데.”
“예?!”
졸업 사진을 찍으려고 이런 비싼 카메라를 샀다고?
물론 삼촌 돈이니까 상관없긴 한데 어린이집 졸업식 찍을 카메라로는 과하지 않나?
내 시선을 잔소리로 오해했는지 삼촌이 살며시 눈을 피하며 말했다.
“그래도 15만 원 할인받았어.”
나는 그 말에 풋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
원장선생님이 졸업장을 건넨다.
뭔가 진짜 인쇄된 종이에 고급진 판 같은 걸 구해와 주고 있다.
졸업 가운 역시 입을 때 귀여웠다.
삼촌은 열심히 셔터를 누르고 있다.
참고로 졸업복과 졸업장 그리고 사진과 앨범은 전부 무료다.
강인 재단에서 전액 지원하고 있다.
애초에 강인대 교직원을 위한 복지 시설이다. 그러니 돈을 낸 적이 거의 없다. 소수정예인 것도 있고 강인 재단이 뒤에 있으니까 돈도 많다.
학교에 영향력이 있고 졸업생 가운데 잘나가는 분들은 자신의 학과에 기부도 하고 있다.
그만큼 혜택을 봤으니 감사하는 마음으로 적은 돈이라도 보내는 것이다.
나 역시도 적게나마 국문과에 장학금 혜택을 받았으니 감사하고 있다.
“축하해. 시하야.”
시하가 졸업장을 받는다.
삼촌은 오오오! 하는 감탄을 뱉으며 사진을 마구 찍고 있다.
“시하야. 여기 봐. 여기. 웃고. 웃고.”
어찌된 게 사진 작업해줄 사진기사보다 더 요구가 많다.
손에 꽃과 졸업장을 쥔 채 두 손가락으로 브이 사인을 한다.
여전히 브이를 포기하지 못하는 시하였다.
그 와중에도 꿋꿋이 브이를 만들다니 어찌 보면 대단하다 싶다.
“오오오! 시하야. 좀 더 확대해서 찍을게.”
완전 로우 앵글이나 하이 앵글 두 부분으로 찍는데 저게 맞나 싶다.
아니. 저러면 엄청 못생기게 나오지 않나?
“푸하하. 콧구멍 크게 나왔어. 엄청 못생겼다.”
“이잇! 삼촌! 또 장난치고!”
역시 예상대로 다 이유가 있는 앵글이었다.
저 좋은 카메라를 가지고 저런 장난이라니.
“시하야. 이거 봐. 너 얼굴 완전 크게 나왔어. 몸은 작고. 로켓발사 되겠는데?”
사진을 로우 앵글과 하이 앵글로 찍은 이유가 있었다.
뭐가 됐든 못생기게 나왔다.
“이잇. 다시 찍어라고!”
“아! 왜! 잘 찍은 사진은 저기 아저씨가 찍고 있잖아. 잘 봐. 이런 이상한 사진이 기억에 남고 추억에 남는다니까? 다 삼촌이 너 생각해서 찍어주는 거야.”
“그런 추억 필요 없는데! 삼촌 바보야? 아름다운 추억만 남기고 싶다고.”
“아. 그건 화제가 안 돼. 요즘 인터넷 짤 있지? 그게 오래가는 이유가 뭐야. 웃기니까.”
“나 화제 안 되도 된다고!”
“아니야. 이런 모습을 네 자식에 손자까지 봐야 해.”
“이잇!”
시하가 카메라에 손을 뻗지만 삼촌이 위로 올렸다.
폴짝폴짝 점프해도 닿지 않는다.
시하가 매미처럼 삼촌의 몸에 매달린다. 하지만 나무 타듯이 올라가지 못한다.
“푸하하하.”
“삼촌 나중에 두고 봐!”
“두고 보자고 하는 사람 중 무서운 사람 못 봤지.”
“형아! 어제 삼촌이 카펫에 김칫국물 흘렸는데 식탁 발 조금 옮겨서 가렸어!”
“야! 그건 말하지 않기로 약속했잖아!”
어쩐지 식탁이 조금 앞당겨져 있다고 생각했어!
두고 보자고 말한 시하는 바로 복수를 시행하는구나.
나는 삼촌에게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어? 시혁아? 잠시만. 나는 무죄야!”
“피고인들은 다들 그렇게 말하죠.”
“잠시만! 변호사 어딨어? 내 변호사랑 이야기해!”
김칫국물에 변호사까지 등장해야겠는가?
나는 삼촌의 등짝을 때렸다.
짝.
“지울 생각을 해야지, 숨겨? 아니. 뭐 지울 생각은 못 했다고 쳐요. 근데 왜 말 안 했는데요. 언제야. 언제냐고!”
“일주일은 됐나?”
“아니. 이 화상 씨.”
그렇게 삼촌을 혼내고 있을 때 시하는 씨익 웃으며 친구들에게 돌아갔다.
배상현 씨는 그런 우리들을 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뭐 이게 우리의 평소 일상이다.
“아. 너무 웃었죠?”
“네. 근데 보기 좋네요. 웃는 거 처음 보는 거 같아요.”
“아…….”
“제가 말했죠? 좋은 기운이 다 덮어줄 거라고.”
“그렇네요. 정말.”
“그러니까 나중에 시하랑도 사진 찍으러 가요. 졸업 사진은 평생 남는 거니까요.”
“감사합니다.”
아이들이 이제 선물을 받고 있다.
선생님이 준비한 필기구 세트, 공책, 색연필 등등. 초등학교 때 필요한 물품을 다양하게 선물로 주셨다.
시하가 아이들과 눈빛을 교환하더니.
“원장쌤! 다희쌤! 우리도 선물 있어요!”
드디어 아이들이 준비한 선물을 전해줄 시간이 왔다.
원장쌤과 다희쌤은 그런 선물이 있는 줄 몰랐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뜬다.
하긴. 졸업식 때 아이들에게 선물을 주기만 했지 받은 적은 없었을 테니까.
유다희 선생님이 말했다.
“정, 정말? 어떤 선물인데?”
시하가 가지고 온 쇼핑백에서 상자 두 개를 꺼냈다.
상자 위에는 선생님의 얼굴이 프린팅되어 있어서 누구의 선물 상자인지 알 수 있었다.
시하가 직접 그린 선생님들의 캐리커처.
“쌤! 이거!”
“와! 고마워. 시하가 직접 그린 거야?”
“네!”
원장선생님도 시하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그리고 상자를 열어보는데 안이 비어 있다.
시하가 준비한 선물은 저 상자 자체였다.
“비어있네?”
“그렇게요. 비어있네요.”
두 사람은 의문이 들었을 때 아이들이 웃으며 자신들이 준비한 선물을 꺼냈다.
먼저 승준.
“쌤. 이거 상자에 넣어요! 사커할 때 발이 소중하니까 이거 써야 해요.”
승준이 준비한 건 직접 산 풋 크림이다.
선생님이 축구를 할지는 둘째치고 선물로 꽤 괜찮은 물건이었다.
다음은 하나.
“저는 이거요!”
하나는 자신의 싸인지였다.
“제가 아이돌 되면 이거 돈 주고도 못 구해요.”
선생님은 하나의 말에 빵 터졌다.
지켜보던 어머니들도 마찬가지였다. 승준 엄마만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유다희 선생님은 하나의 선물을 기쁘게 받았다. 싸인이 달라질지도 모르겠지만 어린 시절에 받을 수 있는 유일한 물건인 건 맞았다.
“어? 뒤에 편지도 있네?”
“아앗! 그건 나중에 혼자 있을 때 읽어보세요!”
그래도 하나는 센스 있게 편지도 적었다.
다음은 연주.
“저는 핸드크림이에요. 선생님 손 거칠거칠하니까 이거 발라야 해요.”
재휘.
“선, 선생님. 제가 만든 손수건이에요. 좀 더 크면 옷도 만들어드릴게요.”
종수.
“이건 제가 만든 소책자예요. 똑똑해지는 비법이 들어있어요.”
윤동.
“이거 파스예요. 춤추고 아플 때 붙이세요.”
마지막으로 은우.
“그대의 사랑. 그대의 정성. 받은 것밖에 없는 나는. 갚을 길이 없네. 줄 수 있는 건. 이 랩밖에 없네.”
“우리는 give! and! take! 아냐! Love! and! thanks! 마자!”
“우리는 give! and! take! 아냐! Love! and! thanks! 마자!”
흥겹게 훅을 부르며 은우가 주머니에서 2개의 USB를 꺼냈다.
“이 랩의 풀버전은 여기에서 들으실 수 있습니다.”
어디 프로그램에서 많이 본 문구를 말하며 선생님들께 선물을 주었다.
그렇게 시하의 그림 상자에 아이들의 선물이 차곡차곡 채워졌다.
선생님들은 감동한 모양이다.
선물한 아이들도 선생님의 반응에 웃음꽃이 폈다.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행복한 졸업식이다.
“그럼 이제 끝났으면 다들 사진 찍을까!”
삼촌이 그렇게 소리쳤다.
나는 솔직히 삼촌이 저러는 게 어이가 없었다.
아니, 저기 계신 사진기사는 가만히 있는데 삼촌이 대체 왜?! 이 좋은 분위기에 대체 왜?!
어찌되었든 아이들도 단체 사진을 찍게 되었다.
누가 보면 삼촌이 사진기사인 줄 알겠다.
셔터가 잠시도 쉬지 않아!
“삼촌. 포즈 딱 취하면 찍어야죠.”
“어허. 언제 좋은 장면이 나올지 모르는 법이야. 그 순간을 빨리 포착해서 찍는 법이라고.”
그것도 적당히 찍어야지. 에잉.
중복 사진 엄청 많아서 나중에 인화할 때 다 삭제를 눌러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럼 찍습니다! 하나! 둘! 셋!”
그렇게 우리는 졸업 사진을 실컷 찍었다. 가족과 함께. 혹은 혼자만. 그렇게 찍을 수 있는 사진들을 모두 찍었다.
헤어짐이 마냥 슬플 줄만 알았는데 선물도 주고받고 웃음도 주고받는 졸업식이었다.
이젠 정말 끝이구나.
오히려 애들보다는 내가 뭔가 시원섭섭했다. 아쉬움도 남았고.
뭐 여기서 등원하게 한 것밖에 없는 것 같은데 시하에게 이것저것 추억을 공유 당해서인지 왠지 내가 추억이 많이 남은 것 같다.
하긴 아이들이 나를 좋아하기도 했으니까.
“형아.”
“응?”
“애들이 뒤풀이하재!”
“???”
아니. 얘들아? 뒤풀이는 또 어디서 듣고…….
생각해 보니 충분히 대학생들에게 뒤풀이라는 말을 듣고도 남을 것 같다.
“우리 집에서 할 거야!”
저기요? 시하 씨? 누구 마음대로 정하는 겁니까?
아무래도 아이들의 졸업식이 끝나려면 먼 것 같다. 아주 뽕을 뽑는구나.
근데 너희들…. 전부 같은 학교 갈 거잖아. 뒤풀이를 꼭 해야겠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