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21화 (421/500)

421화

확실히 삼촌이 의심할 만했다.

프랑스에서 처음 봤을 때는 우연일지도 모르겠지만 미국인 여기에서 마주친다?

계획적인 접근이 아니면 뭔가.

아무리 세상이 좁다고 해도 한국처럼 땅이 작은 것도 아니고 이렇게 넓은 미국인데?

이걸 단순한 우연으로 봐야 하나?

하지만 뭐를 위해 우리를 만나지?

그 점이 이상했다. 우리에게 접근할 이유가 없었다. 기껏해야 시하가 안목이 좋은 것.

붓질 한번 보지도 않았는데 그 안목이라는 재능만으로 따라올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음. 어디서 봤어요? 주변이면 숙소 근처?”

나는 슬쩍 창을 통해서 밖을 보았다.

그 남자는 보이지 않는다.

그저 사람들이 걸으며 움직이고 있을 뿐이다.

삼촌이 말했다.

“아니. 여기 근처에 놀이터가 있거든. 애들 노는 곳. 거기서 자주 보이더라. 시하랑 가는데 말이야.”

“흠.”

“그렇다고 자주 눈에 띄는 장소에 있는 것도 아니야. 애들 납치할 거라면 진작에 했을 거고. 시하를 안 데리고 갔을 때도 그 자리에 한참 있다가 돌아가더라.”

“아. 어제 볼일 보러 간다는 게 그거였어요?”

“어. 애매하단 말이야. 끌고 가서 물어볼 수도 없고.”

“크흠.”

나는 턱을 쓸었다.

시하의 눈에 띄지 않는 장소에서 수상하게 한참 머문다.

삼촌에게 걸리는 건 어쩔 수 없다.

내가 눈치가 빠르다면 삼촌은 감각이 좋은 편이니까. 직업도 직업이다.

“어쩌면 시하를 기다리고 있는 게 아닐 수도.”

“응?”

“저를 기다리는 거 아닐까요?”

“…그럴 수 있겠네.”

“물론 이건 저희를 찾으러 왔다는 게 전제지만.”

“분명하다니까. 나랑 눈이 꽤 마주쳤어.”

“그건 삼촌이 자꾸 쳐다봐서 그런 거 아니에요?”

“아니야!”

“아무튼, 만나볼까요?”

“안 돼. 위험하면 어떡해.”

“위험할 거면 진작 위험했겠지요. 아!”

“왜?”

“DM이랑 메일을 요즘 안 보긴 했다.”

“어?”

“혹시 모르잖아요.”

요즘 유명해져서 이래저래 메시지와 메일이 넘쳐났다.

굳이 보지도 않고 답장도 하지 않았다.

안 그래도 지금 통역 일을 하고 있어서 프리랜서 활동은 잡혀있어서 다른 곳을 알아보라고 공지해둔 상태이다.

그런데도 메일이나 DM을 보냈다는 건 그 일로 부르는 건 아니라는 소리다.

그도 그렇잖아.

내가 봤을 때 반년은 감독님과 일할 것 같은데 이렇게 메일을 오는 걸 보면 이상함을 느껴야지.

“보면 봤다고 나올 텐데. 이상한 거 있는 거 아니겠지?”

“진짜 그 사람이 메일이나 DM을 남겼을 거라고 생각해?”

“그건 잘 모르지만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남겼을 거라고 생각해요.”

“이미 여기까지 쫓아온 걸 보면 정상적이지 않은데. 여기 숙소 정보는 어떻게 알고.”

“그거야 이제 알아봐야죠.”

“흐음. 잡아다 족치는 게 빠르긴 한데.”

“그러지 마요.”

“나도 그러기 싫어. 정보 요청할까 싶었는데도 안 했어. 나도 걸리는 게 몇 가지 있어서.”

“일단 메일이나 보죠.”

일과 관련된 문의 메일이 굉장히 쌓여 있었다.

평소라면 정리를 하는데 유명해진 이후로는 이상한 메일도 많이 와서 덮어뒀다.

“아. 귀찮은데.”

그래도 하나하나 확인해 보았다.

역시 스팸 메일이 많았고 이상한 사진을 보내는 사람이 많았다.

나는 남자인데 왜 이런 사진을 보내는 거지?

옆에서 삼촌이 위치 추적할까? 라고 말하는 걸 무시하며 메일을 쭉 둘러보았다.

그래도 정상적인 사람들이 많았다.

대단하다는 둥 봐서 좋다는 둥.

나와 같은 통역사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자문을 구하는 사람도 있었다.

물론 번역가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어보는 사람도 있었고.

열심히 살고 있는 학생들이다.

뭐라 답을 해줘야 할까? 갑자기 이런 자문 메일을 받으니 참으로 당황스럽다.

하긴 뭔 정보가 그렇게 넓게 퍼져 있는 것도 아닌데.

통역사는 그냥 통번역 대학원으로 가는 게 좋을 것이고 번역 일은 솔직히 걸러야 될 출판사들이 있어서 지인 소개를 받는 게 좋았다.

그런 생각을 정리하며 자문 메일은 따로 체크해서 보관해 뒀다.

나에게 물어볼 정도면 누구에게 물어볼 사람도 없고 간절해서 메일을 보내는 걸 테니까.

메일 하나 보내는 게 별거 아닌 것 같아도 이렇게 쓰는 것 자체가 용기 있는 일이었다.

그 마음을 알기에 마냥 무시할 수 없었다.

“있다.”

“어디?”

메일을 쭉 둘러보다가 찾는 것이 나왔다.

제목만 봐도 이 사람이다 싶은 메일이었다.

[제목 : 오르세 미술관에서 이야기를 나눴던 사람입니다.]

[내용 : 그 당시는 당신과 아이가 누군지 잘 몰랐습니다. 그저 그 인연이 끝인 줄만 알았던 거죠. 세상에 관심이 별로 없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일개미라는 영화가 유명해졌고 나도 한 번 들여다볼 때쯤이었습니다.

미국에 일이 있어서 우연히 영화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나오는 투데이쇼를 보았죠.

너튜브에 당신에 관해서 굉장히 많이 올라왔고 누구의 아들인지도 올라왔습니다.

굉장히 정보가 범람했죠.

그걸 알고 저는 망설였습니다. 당신에게 이렇게 연락을 하는 게 맞는 건지. 저는 미칠 것만 같았습니다.

당신의 인터뷰에서 아버지와 어머니가 안 계시다는 말을 듣고 또다시 저는 지옥에 들어가 있는 것 같았습니다.

대체 왜 그렇게 됐을까. 대체 왜. 대체…….

머릿속에 그 생각에 사로잡혀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당신과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정말... 정말...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저와 만나주세요...

제가 누구냐면 일단 당신의 새어머니의 지인이라고만 말해 두겠습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여기에 쓰지는 못하고 입으로 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부탁드립니다.]

나는 내용을 보고 뒤통수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그러니까 그 사람은 새어머니의 지인이었던 건가?

대체 무슨 사이이기에 이런 충격을 받은 건가?

“흐음.”

삼촌이 턱을 쓸었다.

뭔가 알고 있는 것이 있나?

“삼촌. 뭐 알아요?”

“아니. 그런데 으음. 대충은 연결되는 것 같아. 만날 거야?”

“아니요.”

“만약 내가 예상한 사람이라면 그럴 수 있겠다 싶네. 자세한 건 나도 알아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누군지 예상 가신다고요? 본 적도 없는데? 누군데요?”

삼촌이 망설이다가 입을 뗐다.

“너희 새어머니에 대해서는 나도 잘 아는 게 아니야. 굳이 임무도 아닌데 뒷조사할 필요 없으니까. 애초에 일로 만나서 오빠, 동생 사이였어. 장혁이랑 혜련 씨는.”

“그래서요?”

“한동안 연락 없다가 한국에서 우연히 마주쳤다고 했지. 혜련 씨가 해외에 있었거든.”

“그건 저도 들었어요.”

“아마도 저 사람은. 시하의 친아빠가 아닐까?”

“!!!”

나는 눈을 크게 뜰 수밖에 없었다.

전혀 생각지 못한 사람의 등장이었으니까.

***

남자에게 메일로 답장을 했다.

기다리고 있었는지 곧바로 연락이 왔고 결국 우리는 만나기로 했다.

정말 시하의 친아버지라면 한 번쯤은 만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상한 개소리를 지껄이면 주먹이 나갈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마음을 다잡고 그와 만났다.

커피를 들고 벤치에 나란히 앉아서 서로를 쳐다보지 않은 채 앞을 보았다.

마치 현재 우리 상태를 나타내는 것 같다.

마주 보고 싶지 않은 건지도 모른다.

서로가.

“시하의 친아버지세요?”

힐끗 옆을 보았다.

그는 여전히 덥수룩하고 우울한 눈동자를 가지고 있었다.

세상 슬픔은 다 떠안은 모습이었다.

눈가가 순간 움찔하는 걸 보니 내 말에 확신을 준다.

“맞습니다. 이름이 시하였는지 최근에 알았습니다.”

“몰랐습니까?”

“몰랐어요. 알아선 안 된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랬나요?”

“어디서부터 말을 꺼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왜 몰랐는지 전 알고 싶은데.”

잠시 침묵이 생겼다.

그가 뭔가 말하려고 입을 움찔거렸다. 망설이면서 슬픈 기색을 보였다.

“전부 제가 잘못한 겁니다. 전부.”

“뭘 잘못하셨는데요?”

“저는 유명한 화가가 되고 싶었어요. 되는 건 굉장히 고되지만 꿈이 있었죠. 그 꿈을 위해서라면 뭐든 괜찮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것만 이루면 우리는 행복해질 거야. 그럴 거야.”

그가 아래를 내려다본다.

신발은 검은 타르가 묻어서 검게 칠해져 있었다.

“미술을 하려면 돈이 많이 듭니다. 캔버스부터 안료까지. 실패하면 또 캔버스값이 들죠. 우리 둘은 부자가 아니라서 그런 꿈을 안고 프랑스에 와서 일도 하면서 그림을 그렸습니다.”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원래라면 새어머니의 입에서 들어야 했던, 혹은 아버지가 해줘야 했던 이야기.

이제는 들을 수 없었던 이야기다.

“그런데 덜컥 애가 생겼어요. 그녀가 저에게 애가 생겼다고 말하는데 저는 기뻐할 수 없었습니다. 우리 집 상황이 애를 키울 수 있을 여건이 아니었거든요. 그게 표정으로 드러났고. 해서는 안 될 말을 하게 되었죠.”

“설마?”

“네. 지우자고 했습니다.”

나는 순간 화가 나서 그를 보았지만 너무나 괴로워하는 그의 표정을 보면서 맥이 탁 풀렸다.

“혜련이는 충격을 받았고 어떻게 그럴 수 있냐면서 저와 싸웠죠. 하지만 그때 저는 성공만이 눈을 가렸어요. 성공만 하면 다 잘될 거야. 그럴 거야. 지금은 형편이 안 돼. 그런 식으로 생각했죠. 결국, 혜련이는 지우기로 했습니다. 다만 저랑 헤어지자는 말도 함께했죠.”

“저는 매달렸지만, 그녀는 울면서 집을 나갔습니다. 떠나가는 걸 보면서 잡을 수가 없었어요. 아무리 생각해 봐도 저는 그녀를 잡을 자격이 없는 것 같았거든요.”

“그녀가 떠나고 술과 함께 생활했습니다. 지금처럼 더러운 수염을 기르면서. 너무 힘들어서 붓을 잡을 때도 있었죠.”

그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그때가 생각이 났는지 허탈한 음성으로 말했다.

“나에게 남은 건 성공밖에 없었습니다. 그걸 깨닫고 그림을 그렸죠. 그런데 너무 아이러니하게도 한 부호에게 제 그림이 눈에 들어온 겁니다. 최근에 그려진 그림이요.”

“그 그림을 큰 금액으로 사 갔습니다. 물론 그게 문제 아니라 저에게 인맥이 생겼다는 거죠. 소문이 퍼질 인맥이요. 저는 그 뒤로 그림을 그렸고 부를 거머쥐었습니다. 드디어 유명해진 거죠.”

“불과 1년도 안 되어서 말이죠. 경제적으로 나아지고 성공한 화가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그런데. 전 하나도 행복하지가 않았어요. 오히려 잘 벌고 유명해질수록 너무나 지독하게 외로웠습니다.”

그는 손으로 얼굴을 묻었다.

“아이를 지우자고 말했던 죄책감이 너무 컸어요. 혜련이에게 너무 못된 말을 해서. 그때 나도 잘 안 되니까 제정신이 아니었어요. 힘드니까. 힘들어도 그런 말은 안 됐는데.”

밝은 성공이 있는 세계로 갔겠지. 돈은 커졌겠지. 그렇지만 그림자는 짙어졌을 것이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가만히 이야기를 들었다.

그가 지금까지 후회하는 삶을 살았다는 건 그냥 외모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너무 보고 싶어서 수소문을 통해 혜련이를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봤어요.”

“뭘요?”

“당신 아버지인 이장혁 씨와 혜련이가 아이를 안고 있는 모습이요.”

“아…….”

“물론 당신은 없었지만, 그 둘의 행복한 모습을 보며 등을 돌렸습니다. 근데 말이죠. 아이가 참 눈에 아른거렸습니다. 그 아이가. 예. 제 아이인 걸 한눈에 알았습니다. 지우겠다고 했으면서 그녀는 지우지 않았어요.”

대체 어떤 마음이었을까.

자신이 지우자고 한 아이가 사실은 살아있다는 걸 보았을 때.

그녀는 사실 포기하지 않고 한국에서 아이를 낳았다는 걸 알았을 때.

그는 대체 어떤 기분이었을까.

“하아. 나는 아이와 혜련이 앞에 설 자격이 없었어요. 같은 환경의 상황이었는데 그녀는 아이를 낳는 선택을 했고 나는 아니었으니까. 나는 쓰레기다. 진짜 쓰레기다. 그래도 다행이다. 아이가 살아있어서 다행이다.”

그는 이제 울면서 말하고 있었다.

발음이 뭉개지며 손으로 눈물을 닦고 있다.

어쩌면 시하가 살아있는 걸 보고 마음이 무너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혜련이에게 정말 고맙다고 말하고 싶었는데 도저히 얼굴을 볼 수 없었어요. 그냥 이대로 행복하게만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둘이 정말 행복해 보였으니까. 내가 눈앞에 나타나지 않는 게 혜련이를 위한 선택인 거 같았어요.”

하지만 그 둘은 이제 이 세상에 없는 사람이었다.

“근데 왜 이제 이 세상에 없는 겁니까. 흐윽. 왜. 혜련이는 행복해져야 하는데. 왜. 대체 왜. 없는 겁니까. 흐윽. 어쩌다 그렇게 된 겁니까.”

그는 날 만나고 싶은 이유를 꺼내었다.

대체 왜 새어머니가 죽었냐고. 대체 왜.

그걸 물어볼 사람이 나밖에 없던 것이다.

그래서 나를 찾아온 것이다.

하지만 시하에게 얼굴을 보일 수가 없었다.

자신은 죄인이니까.

이 사람은 대체 몇 년을 죄인으로 살아온 걸까.

시하의 나이만큼 죄인이었나 보다.

시하가 클 때까지 계속 괴로워하며 스스로에게 무기징역을 판결했다.

“어머니랑 아버지는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습니다.”

교통사고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지독히도 운이 안 좋은 사고였다.

나는 어렵사리 입을 열어 그에게 알려 주었다.

내가 아는 새어머니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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