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59화 (359/500)

359화

아이들이랑 옹기종기 같이 돌려본다.

몇몇은 스미스 교수님의 영상을 본다. 왜 연주만 이리 많이 나오냐는 아이들의 순수한 질문에 식은땀을 흘리는 것이 보인다.

사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여서.

“시하 엄청 많이 나온다.”

“앗! 하나 나왔다!”

나는 그나마 저기에 비해서 양반이겠지?

되도록 골고루 찍기는 했다. 이야기의 흐름을 망치지 않게 말이다.

“형아. 형아 안 나와.”

“아, 그건 어쩔 수 없지.”

찍고 있는 건 난데 폰을 돌려서 내 얼굴을 찍을 수 없지 않은가.

대신 종수가 혼나서 시무룩하는 표정이 찍혔다.

사실 혼나서 시무룩한 것보다 시하가 회장님 동생이라는 점에서 한 방 먹은 거다.

오늘은 시하랑 승부를 벌이지 않았는데도 한 방 먹었구나.

어린이집에서 있던 일은 자세히 알 수 없지만 종수가 짠해 보였다.

그러고 보니 선생님이 짠수라고 부르셨지?

선생님이 나를 보더니 싱긋 웃으셨다.

“걱정 마세요. 저도 골고루 잘 찍었어요!”

아니. 그걸 걱정한 건 아닌데요?

아무래도 시하가 많이 나온다는 말에 안심시키는 듯이 말하는 것 같다.

“아! 시혁 씨도 마지막에 멋지게 찍혔어요.”

“그건 지워 주실래요? 회장님은 좀 부끄러운데.”

“안 돼요! 저기 시하가 충격받은 표정 안 보이세요.”

“응?”

시하를 보자 진짜 어떻게 그럴 수 있어?! 하는 표정이었다.

“형아. 안 대. 시하 꺼야. 그거 지우면 안 대.”

“그렇구나.”

나 찍혀 있으면 시하 꺼가 되는구나.

형아가 그걸 몰랐네. 함부로 지우려고 했네.

나도 사실 그냥 말 한번 해본 거였다. 정말 지워 달라는 것도 아니고.

“지울 꺼야?”

“아니. 안 지울 거야. 같이 집에서 또 보자. 알았지?”

“아라써.”

그렇게 대충 정리가 끝나고 스태프의 안내에 따라 이동했다.

여기저기 보면서 뭔가를 말하는데 이제 설명이 들어오지 않는다.

그걸 눈치챘는지 밥이라도 먹으실래요? 라는 말이 나왔다.

아래에 식당이 있는데 배우랑 스태프들이 다들 거기서 먹는다고 한다.

아이들도 배가 고팠는지 가자고 해서 아래로 내려왔다.

식판을 들고 먹고 싶은 음식을 푼다.

아이들 것은 선생님들과 내가 퍼야 했다.

“시하야. 밥 이만큼?”

“아니! 좀 더.”

“오! 우리 시하 밥 많이 먹네. 고기는 이만큼?”

“아니! 좀 더.”

고기 욕심이 좀 있구나?

뭐, 그럴 수 있지! 아무튼, 시하에게 이것저것 물어서 음식을 담았다.

이렇게 음식까지 얻어먹어도 되나 싶었지만 감독하고 스태프에게 이미 이야기가 다 되어있으니까 여기로 온 거겠지?

식탁에 앉아서 밥을 먹었다.

시하도 맛있는지 오물오물 잘도 먹는다.

“맛있어?”

“마시써! 군데 형아가 해준 밥이 더 마시써.”

“크흑.”

시하는 꼭 한마디가 더 붙는데 그 말이 심금을 울린다.

선생님이 말했다.

“원장 선생님 밥은?”

“여기 밥 다음에 언장샘 밥이고 그다움에 형아 밥이야.”

뭐, 엄청난 거 해준 것도 아닌데 괜히 코를 스윽 문지르게 된다.

다른 아이들도 자기 엄마 밥이 제일 맛있다고 한다.

“하나도 엄마 밥 조아.”

“아, 나도. 나도.”

쌍둥이 어머니 요리 솜씨가 일품이시기는 하지.

요리에 관한 손재주가 좋으신 분이다.

그때 이야기할 때 자격증도 있었지 않나? 기억이 가물가물하기는 한데.

“나는 아빠 밥이 맛있는데.”

종수야. 엄마보다 아빠 밥이 더 맛있어?

뭐, 여러 집밥이 있는 법이다. 모든 어머니 손맛이 좋을 수는 없지.

그렇게 배우들도 하나둘씩 오면서 아이들에게 인사를 한다.

아이들이 귀여운지 괜히 머리를 쓰다듬고 가는 사람들도 있다.

갑자기 전화번호를 교환한 김석현 배우도 나를 향해 손을 흔든다.

“밥은 괜찮아요?”

“맛있어요.”

급하게 친해진 느낌이 들긴 하지만 뭐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다.

겪어봐야 알겠지만 느낌이 그랬다.

그렇게 밥을 다 먹고 나서 식판을 치울 때쯤 문자가 한 통 왔다.

홍진수 과장이 미국 출판사에서 전화 한 통 갈 거라고 한다.

오우. 해외통화 비싼데.

띠리링.

“저. 선생님. 잠시 통화 좀 하고 올게요.”

“네네. 천천히 하고 오세요. 시하는 제가 잘 돌볼게요.”

“네. 아마 금방 올 거예요.”

전화를 받으며 밖으로 나갔다.

「여보세요. 이시혁입니다.」

「여보세요! 오! 저는 크레센 출판사 직원인 톰입니다. 그냥 편하게 톰이라고 불러주시죠.」

「네. 반가워요. 톰. 이렇게 갑자기 연락할 줄 몰랐어요.」

「제가 담당이기도 하고 앞으로 메일을 주고받을 사이인데 통화 한 번은 해야 하지 않나 싶어서 연락드렸습니다. 와. 근데 글솜씨가 상당하시더라고요. 저도 이 게임을 즐겼는데 소설을 읽으니 또 다른 맛이 느껴집니다.」

「그렇게 읽어줬다니 감사하네요. 처음이라서 많이 걱정했는데.」

「처음처럼 안 느껴지던데요? 일단 기본적으로 관용어구 사용도 좋았고 어색한 점도 없었습니다. 이거 제가 할 일이 평범해져 버렸네요.」

「혹시 편집할 때 문장을 고치려고 했습니까?」

내가 그렇게 직설적으로 물어보자 통화하는 상대방에서 당황한 기색이 느껴졌다.

「아, 마음대로 바꾸는 건 아니었고 혹시 모르니까 바꾸려면 의견을 나누려고 했죠.」

「오. 톰. 겁주려고 한 건 아닙니다. 그냥 물어본 거예요. 저는 거기에 대해서 까다로운 사람이 아닙니다. 어쩌면 미국인의 시각에서 문장이 부족할 수도 있죠.」

「그건 그렇죠.」

「거기에 대해서 의견을 나누는 건 정말 좋습니다. 저는 이렇게 맞춰가는 도움이 필요해요. 거기에 대한 피드백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물론이죠!」

오히려 환영이라는 그 음성에 웃음이 나왔다.

오늘 영상이 잘 찍혔는지 모니터링을 했던 것처럼 이 전화는 내가 어떤 성향인지 파악하려고 연락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사실 나는 이런 부분에서 적극적인 수용을 할 의향이 있다.

어쩌면 고집부리는 부분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되도록 저쪽 의견을 들어주고 싶다.

왜냐고? 아까 통화로 감이 왔으니까.

이 담당자는 내가 한국인인 걸 염려해 출판사에서 일부러 배정해 붙여준 것이다.

그러니 이런 문장 부분에서는 확실히 좀 더 잘 볼 것이고, 독자층의 테이스트에 맞는 의견도 피력할 것이다.

톰이 나의 성향을 파악하려고 통화를 했지만 오히려 내가 더 파악하고 있는 건지도 몰랐다.

「아마 어색하지 않았다고 생각되는 건 제가 영문으로 된 글을 많이 읽어봤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실제로 아버지는 영어에서 한국어로 번역을 하셨다.

그 표현의 인풋은 솔직히 무시할 수 없다.

그냥 일상적인 표현을 자연스럽게 머릿속에 나와서 써지는 것이다.

눈에 익숙하니까.

우리 한글도 그러지 않는가.

익숙한 관용적 표현을 자연스럽게 쓰는 것.

톰이 말했다.

「1권을 읽으면서 느꼈는데 특히 그 부분이 좋았습니다. 어디냐면.」

톰과 그렇게 글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이러한 부각과 연출을 독자들이 좋아한다는 말을 할 때쯤.

생각보다 통화가 길어지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너무 많이 말했네요. 요금 엄청 나오는 거 아닙니까?」

「아, 이 정도는 출판사에서 잘해줄 겁니다. 하하.」

「혹시 해고당하면 한국의 KI로 오시죠. 제가 잘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그럼 그 부분은 시혁만 믿으면 되겠네요. 하하. 아, 너무 오랫동안 붙잡고 있었죠?」

「아니에요.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다음에 또 이야기를 나누죠. 통화는 비싸니까 메일이나 다른 수단으로요.」

「그러죠. 오늘 좋았습니다.」

「저도요. 살아남는 하루 보내세요.」

「푸흡. 감사합니다.」

그렇게 통화를 종료하고 가려는데 희미한 담배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인기척에 고개를 돌려보니 고동수 감독이 나를 쳐다보고 계셨다.

“아, 밥은 드셨어요?”

“네. 밥 먹고 한 대 피우고 있습니다. 담배 하세요?”

“아니요. 전혀요. 시하가 담배 냄새 싫어하기도 하고요.”

“아, 동생이. 그랬지. 참.”

“하하. 그럼 저는 들어가겠습니다.”

“그래요. 들어가요.”

“네.”

그렇게 인사를 하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이상하게 뒤통수에 시선이 느껴지는 것이 고동수 감독이 쳐다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착각일까?

차마 뒤는 돌아보지 못했다.

눈 마주치면 어색할 것 같아서.

***

고동수 감독은 떠나가는 이시혁을 바라보았다.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다가 담배를 봤는데 어느새 잿가루가 되어 사라졌는지 짧게 남아있다.

한 대 더 피울 생각은 안 하고 그대로 툭툭 털어서 쓰레기통에 넣는다.

‘이시혁이라…….’

친구인 샤이먼에게 이야기를 들었을 때 어쩌면 자신의 영화와 맞닿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영화에 들어가 있는 요소 중 하나가 아이니까.

어쩌면 이 영화를 보면 이시혁이라는 친구가 느끼는 감상이 부모들이 느끼는 감상이랑 다르지 않겠구나 싶었다.

‘영어도 잘했지.’

고동수 감독도 영어로 프리토킹까지 할 줄 안다.

일상적인 이야기가 아니면 좀 힘들긴 하지만.

그런데도 저 이시혁의 통화 내용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었던 건 사용하는 표현의 문제였다.

잘했다.

원어민처럼 완숙하게 했다.

딱딱한 번역 같은 느낌의 말이 아니었다.

예를 들면 이시혁이 한 말 중에 그 사건을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주인공이 어쩌구저쩌구 했던 말이 있다.

만약 나였다면 좀 딱딱하게 When you don’t know about the case(그 사건을 모르는 상태에서), 라고 썼을 텐데 이시혁은 달랐다.

when you go into it cold, 라고 썼다.

go cold, 라는 숙어 표현을 쓴 것이다.

거기까지만 봐도 얼마나 자연스럽게 쓰는지 알 수 있다.

솔직히 유심히 듣게 되어버렸다.

“오! 감독님! 여기 계셨어요? 킁킁. 담배 냄새나는데 피우고 계셨구나?”

배우 김석현이 친근하게 말을 걸어온다.

“근데 안 들어가고 여기서 뭐 하고 계세요? 또 피우시게요?”

“아니. 그냥 생각 좀 하고 있었어.”

“여자친구 생각요?”

“내가 여자친구가 어딨어! 그냥 오늘 온 이시혁이랑 친구 좀 생각하고 있었지.”

“아, 그 친구. 저도 이야기해 봤는데 느낌이 좋더라고요. 제가 번호도 물어봤다니까요. 가끔 연락하고 지내면 좋을 것 같아서.”

“요즘 젊은 사람들은 막 그렇게 쉽게 번호도 교환해?”

“그냥 친하게 지내자고 하면 주는 거 아닌가?”

“처음 만난 사람이라면 경계부터 하지 않을까? 너니까 주는 거지. 나같이 시커먼 아저씨가 달라고 하면 이상하게 볼 거야.”

“뭘 또 그렇게까지.”

김석현이 감독의 과장된 표현에 웃음을 보냈다.

고동수는 김석현이 믿지 않는 모습에 허탈한 웃음을 보냈다.

“거, 사람 말 참 안 믿네. 너는 처음 봐도 친근한 성격이라 빨리 친해진다니까. 애교도 있는 편이고.”

“왜 그래요. 나만큼 차도남이 어딨다고.”

“진짜 차도남은 자기 입으로 차도남이라고 말 안 해. 저봐저봐. 실수하면 카메라 앞에서 혀 내밀고 애교나 피우고.”

“제가 언제 그랬다고 그래요.”

“너 기억 안 나? 우리 술자리 가졌을 때 갑자기 옆에 와서 내 옆구리를 팔꿈치로 꼭 찌르면서 ‘잉!’ 하는 소리 낸 거? 난 이게 뭔가 싶었다니까.”

“친하게 지내자고 한 거죠.”

“근데 그게 또 기분이 안 나쁘더란 말이지.”

“저도 두루두루 잘 보면서 낄 데 안 낄 데 각 봅니다.”

“내가 만만했다는 거지?”

고동수 감독이 장난스럽게 말하자 김석현이 펄쩍 뛴다.

“뭘 또 그렇게 받으세요. 안 그러신 분이. 그릇이 크다는 말입니다. 그릇이.”

“그럼 지금까지 한 다른 감독은 그릇이 작다?”

“아니. 제가 그렇다고 하면 또 톡방에 동네방네 소문낼 거죠? 아, 진짜 저 놀리는데 일가견이 있으시다니까. 근데 시혁 씨는 왜 생각했는데요? 설마?”

“야! 너야말로 엄청 놀리고 있거든.”

그런 거 아니라는 듯이 고동수 감독이 손을 절레절레 저었다.

“제가 뭘 생각했는데요?”

“쩝. 영어로 통화하는 거 들었는데 잘하더라. 통역사라고 듣긴 했었는데.”

“아, 진짜요?”

“그래. 어. 음. 그래서 지금 보니까 괜히 부탁 한번 해보고 싶어지네.”

“뭘요?”

“나중에 좀 친해지면 나도 자리 좀 껴줘. 직접 만나서 부탁 좀 하게.”

“뭐, 그러죠.”

그렇게 이야기하는 도중에 스태프 한 명이 폰을 들고 헐레벌떡 뛰어왔다.

“감독님. 큰일 났는데요?”

“왜? 무슨 일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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