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8화
스태프가 여러 곳을 소개해 줬다.
건물이 넓어서 그런지 촬영하는 곳과 꽤 떨어진 것 같았다.
세트장이란 곳을 사실 처음 봐서 신기하기만 했다.
스태프가 말했다.
“여기도 사무실예요. 사실 회사 배경이라서 사무실이. 하하.”
“근데 회사 내용을 영화에 다 담기에는 시간이 모자라지 않나요? 드라마면 또 모를까.”
“으음. 회사의 자세한 내용이 주가 아닌 느낌? 사실 드라마가 길게 풀어내기 더 좋긴 해요.”
“아하.”
아이들은 이런 내용에는 관심이 없고 그저 사무실 의자에 앉아 보고 있다.
“여기는 1팀이 쓰는 곳인데 저기가 부장님. 저기는 사원, 대리, 과장이 있네요.”
아이들이 눈을 빛내며 서로를 바라보며 속닥였다.
전에 어린이집에서 회사 역할을 했던 걸 이야기한다.
“우리도 연기할까?”
“오빠. 하나는 대리 할 거야.”
“시하는 사언이야. 사언.”
다들 뭔가 마음대로 뽁작뽁작 정하고 있다.
안내하던 스태프도 그 모습이 재밌는지 웃음을 보였다.
스미스 교수님은 어디서 꺼냈는지 캠코더를 들고 계셨다.
“오늘 내가 감독을 하지. 자, 연주야. 연주는 회장이 어울려요.”
“응? 나는 회장 말고 부장 하고 싶은데.”
“부장이 뭔지 아니?”
“아니.”
그거야 그렇겠지.
아무리 놀이를 해봤다고 해도 뭐가 뭔지 잘 모를 것이다.
직급이 있고 누가 높은지는 알겠지.
전부 아는 것도 아니고 회장이 높다는 건 알 것이다.
“시하야. 괜찮아? 사원 해도?”
“사언 조아. 회장에게 말해.”
“대체 어느 사원이 회장에게 직접 말해?”
어마어마하게 열린 조직이구나? 엄청나다.
아무튼, 다들 각자 한 자리씩 차지했다. 스미스 교수님은 연주만 찍고 있다.
저기요? 감독이 너무 편파적으로 찍고 있는데요?
“그럼 회장은 여기 없으니까 회장 빼고 하는 거다.”
하긴 이런 사무실에 회장이 일하는 게 이상하지.
어찌 되었든 다들 뭔가 하나씩 역할을 맡았다.
먼저 부장 연주, 차장 종수, 과장 은우, 대리 하나, 주임 승준, 사원 윤동, 인턴 재휘와 시하.
어떻게 정하다 보니 시하가 인턴으로 하락해 버렸다.
아니! 힘든 인턴이라니!
하지만 아이들은 잘 모르는 게 분명할 거야!
그렇게 생각했지만, 신기하게도 인턴이 제일 막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제길.
“자자. 연주야. 이제 오늘 팀 프로젝트로 보내는 부장 역할을 하면 돼.”
“응.”
스미스 교수님의 말에 알고 응, 하는 건지 모르겠다.
아무튼, 연주가 다들 불렀다.
“자. 자. 회의실로 다들 와봐.”
오늘 들었던 대사 중에 하나였다.
연주가 그걸 기억했다. 똑똑하구나.
“오늘은 팀을 만들어서 새로운 프로젝트를 하기로 했어. 그러니까 누구로 할까?”
연주가 톡톡 얼굴을 두드린다.
쭈욱 둘러보다가 하나를 본다.
“하나가 가고. 또. 윤동이 가. 그리고 인턴 둘 데리고 가고.”
새 프로젝트에 인턴을 데리고 가던가?
“다들 나가! 아! 재휘는 남고.”
다들 쪼르르 나간다.
연주가 재휘를 보더니 이렇게 말한다.
“이거 잘하면 여기 취직된대. 인턴은 아직 취직 아니래. 그러니까 이거 열심히 해.”
“응. 고마워. 연주야.”
“여기서는 부장님이라고 해야지.”
“부장님. 고마워.”
뭐지? 고마워는 반말인데?
갑자기 여기 회사물이 아니라 로맨스였다는 거야?
인턴과 부장의 사랑 뭐 이런 거?
밥 잘 사주는 예쁜 오피스 누나! 이런 제목의 드라마였던 거야?
“크흑. 나쁜 녀석.”
스미스 교수님? 캠코더가 부들부들 떨리고 있습니다만? 감독이 너무 감정적인 거 아닙니까? 사심이 팍팍 들어있는데요?!
“흠흠. 그럼 재휘도 가봐.”
“응.”
뭐, 회의실에 모이라고 했지만 장소는 결국 부장님 책상 앞이라서 자기 자리로 돌아간 꼴이었다.
시하는 뭘 그리 열심히 하는지 볼펜을 들고 열심히 슥삭슥삭 쓰는 척을 한다.
“응. 응. 이거야. 이거. 그래. 잘하고 이써.”
책상 위에는 뭔가 서류 파일이 있어서 열심히 쓰고 있는 게 보인다.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다.
하긴 볼펜심을 꺼내지 않았으니까.
“이제 다 해따. 시어야지.”
일 다 했다고 자유롭게 쉬는 회사!
아주 시스템이 참 훌륭하구나.
“재휘야. 모해?”
“응? 시하야. 이제 팀 프로젝트 하잖아. 그래서 자료 준비 중이야.”
“시하도 보께.”
“응. 여기.”
뭔지도 모를 책을 열심히 읽고 시하가 고개를 끄덕인다.
시하야. 그거 책 거꾸로 들었어.
내가 그 부분을 지적하자.
“아코! 실수. 실수.”
인턴이 실수를 많이 하긴 하지.
열심히 노트북을 치고 있던 하나가 애들을 불렀다.
팀 프로젝트 4명. 하나, 윤동, 재휘, 시하.
넷이 모였다.
근데 어떤 프로젝트지?
“다들 들었지만 회사에 중요한 프로젝트야. 알지?”
“마자. 시하도 아라.”
“인턴도 아네? 뭐지?”
“형아 프로젝트.”
그게 무슨 프로젝트인데?!
형아 되기 프로젝트라고 되나?!
“맞아! 시하가 잘 아네.”
그게 맞다고?! 아니, 잠깐만. 재휘의 눈동자에 물음표가 가득한데?!
그리고 윤동은 그저 담담하게만 있다.
근데 하나랑 시하는 아주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다.
뭔데? 이게 그렇게 심각한 프로젝트라도 되는 거야?
하나가 말했다.
“회사에서 형아를 만들기로 했어. 그래서 이렇게 똑똑한 사람들이 팀을 꾸린 거야. 알지?”
“시하 아라. 시하 형아 동생이라 똑똑해.”
“인턴! 기대하고 있어!”
이런 프로젝트에 인턴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인 거야?!
재휘도 손을 들었다.
“열심히 할게.”
음. 그래. 이 스토리라면 재휘가 열심히 해서 회사에 취직되는 거지.
그리고 연주랑 무슨 관계인 건지 모르겠지만 서로 잘돼서 보는 거지 않을까?
이런 어마어마한 프로젝트를 하는데 스미스 교수는 연주가 멋있게 일하고 있는 것만 찍고 있다.
어쩔 수 없이 나도 카메라를 꺼내서 찍을 수밖에 없었다.
오늘 나는 카메라 감독이다.
하나가 말한다.
“윤동아. 자료.”
“응.”
여기는 아예 반말 체제로 가기로 했나 보다.
완전 자유롭고 파격적인 체제네.
“보자. 지금 형아가 얼굴만 만들어졌어. 근데 못생겼네. 형아는 잘생겨야 해.”
“마자! 우리 형아 잘생겨써!”
시하야. 네가 그렇게 말하니까 이 프로젝트가 시혁이 형아 만들기 프로젝트 같잖아.
근데 이 회사는 뭐 하는 곳이야?
진짜 로봇이라도 만드는 회사야?! 미래적인 회사인가 보다.
그냥 이해를 포기하자.
“응. 시혀기 오빠 잘생겼지.”
“응.”
“시혀기 형아. 잘생겨써. 옷도 잘 입고.”
“마자! 형아 잘생겨써.”
시하가 허리에 손을 올리고 배를 쭈욱 내밀었다.
아주 자랑스러운 표정이 가득하다.
보고 있던 스태프도 이게 대체 무슨 내용이지? 하는 표정으로 보고 있다.
“좋아! 이제 자리에 가서 노트북으로 만들자. 알았지?”
다들 각자 자리에 돌아가서 노트북을 열심히 두드린다.
물론 노트북은 전원도 들어오지 않고 꺼져 있다.
근데 무슨 형아를 노트북으로 만들어.
“다 해따!”
3분 카레보다 빠르게 완성이다.
이렇게 얼렁뚱땅 완성된다고?
“형아. 형아.”
“응. 시하야.”
“이제 시하 형아 마나져. 레드 형아 마나져. 여기 미래야. 미래.”
“아…….”
그 여기가 ‘레드형아페페’를 엄청 많이 만들었던 그곳입니까?
내 입장에서 도플갱어는 끔찍하니 없어져야 할 회사가 아닌가 싶다.
아무튼, 프로젝트는 완성되었고 재휘가 나서서 연주에게 보고하러 간다.
“프로젝트 성공이야. 다 완성됐어.”
“정말?! 이제 회사에 취직되겠다. 축하해!”
“응. 나 이제 매일 연주 볼 수 있겠다.”
“그러게. 히히.”
뭐지? 회사에서 본격적인 로맨스가 시작되는 건가.
미래가 배경인데 사실은 회사 로맨스물이라니.
이 영화의 방향성을 모르겠다.
그때 종수가 연주가 가진 서류를 휙 하고 빼앗았다.
“하하하. 이제 이거 내 꺼다!”
“앗!”
“아앗!”
연주와 재휘가 허망한 표정으로 종수를 바라본다.
승준도 종수랑 합이 맞았는지 뒤에서 신나 하고 있다.
하긴 둘의 분량이 없었으니까.
구도만 보면 프로젝트의 결과물을 뺏는 차장 종수였다.
“나도 이제 이걸로 부장이 되겠어! 하하하!”
“아싸! 나도! 나도! 하나보다 높아질래.”
둘은 서로가 같은 목적을 지니고 있다.
이대로면 재휘는 취직도 못 하고 프로젝트에 실패하고 만다.
“안 돼! 종수야. 돌려줘.”
“그럴 수 없어. 이건 이제 내 꺼야. 대신 재휘가 이쪽으로 오면 회사에 취직시켜 줄게.”
“!!!”
회사의 필수적인 요소! 라인 타기!
물론 종수가 그걸 알고 노린 건 아니겠지만 정말 회사물 같이 양상이 이렇게 그려졌다.
드디어 장르가 돌아온 것인가!
재휘는 이러지도 못하고 갈팡질팡하고 있다.
하나와 시하, 윤동은 하나로 모여 바라보기만 했다.
하나가 말했다.
“오빠. 빨리 그거 돌려줘. 종수랑 왜 팀이야.”
“선생님이 주임이 대리보다 아래래. 나는 하나 오빠니까 위에 있어야지.”
“그런 게 어딨어!”
뭐 라인 타는 것에는 여러 이유가 있는 법이다.
승준은 오빠로서 권위를 되찾고 싶은가 보다.
윤동이 묻는다.
“은우야. 너는 왜 거기 있어?”
“여기가 더 재밌어 보여서. 푸하하.”
“???”
재밌어 보인다면서 다른 쪽에 붙는 은우였다.
실제로 저런 캐릭터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이거 이제 어떻게 되려나.
하나가 말한다.
“얘들아. 저거 가져가자!”
왜 나는 저 대사가 얘들아 쳐라! 하는 거로 들리지?
순식간에 애들이 서류를 잡으러 방방 뛴다.
윤동은 힘센 승준이 맡았고 재휘는 은우가 상대했다.
하나가 종수를 따라가고 시하는 내 옆에 있다. 응?
“시하야. 너는 안 가?”
“시하는 형아 여페 이쓸래.”
마치 높은 곳에서 지켜보는 양 아이들이 뛰어다니며 도망치는 걸 바라본다.
갑자기 추격물로 장르가 변경됐는걸?
하지만 하나의 달리기로 종수를 따라잡을 수 없었다.
“시하야. 도와줘!”
“아라써!”
시하가 종수에게 달려갔다.
드디어 주인공이 나가신다! 아무튼, 이 영화의 주인공은 시하다.
생각보다 종수가 이리저리 잘 피한다.
연주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상황을 보고 있다.
근데 이거 영화 스토리가 수습이 되려나?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다들 지치는지 헥헥거리고 있다.
“아, 힘들어!”
그래도 다행인 게 여기 촬영장에 에어컨이 틀어져 있다는 거였다.
아니었으면 이렇게 뛰어다니며 더워 죽을 뻔했을 것이다.
시하가 말한다.
“종수야. 빨리 져.”
“싫은데.”
“혼나.”
“푸하하. 인턴이 무슨. 하나도 안 무섭거든.”
“시하가 혼내는 거 아냐. 형아가 혼내.”
“???”
“우리 형아 해장님이야. 해장님.”
“!!!”
“형아. 해장님이지? 그치?”
나는 머리에 물음표를 띄울 수밖에 없었다.
그때 연주가 이 난장판에서 퍼뜩 정신을 차리더니 나를 보고.
“회장님 오셨어요!”
응? 아니, 나도 여기 포함되는 사람이었어?
그러니까 레드형아페페 프로젝트는 회장님을 찬양하기 위한 거였나?
그런데 상황이 어이없다.
종수랑 시하의 구도가 그랬다.
이 순간 입장이 완전히 뒤바뀌었으니까.
내가 괴롭히던 인턴이 알고 보니 회장 동생이 된 순간이었다.
종수가 망했다는 얼굴을 했다.
그래. 이때가 아니면 영화 스토리를 수습할 수가 없겠구나.
막 그런 생각이 들었다.
“크흠. 내가 다 봤네. 종수야. 남의 성과를 뺏으면 안 되지.”
“으윽.”
“다들 이건 나쁜 짓이야. 알았어?”
“네.”
뭐야. 진짜 시하 말대로 혼나고 있네.
“재휘랑 시하는 여기 취직됐어. 다들 싸우지 말고 친하게 일하자. 알았지?”
“네!”
이렇게 마무리가 된 듯한 분위기가 되었다.
아이들이 말한다.
“아, 재밌었다. 그치. 시하야?”
“진짜 재미써써.”
“하나도 오늘 영화 촬영 재밌게 했어. 어떻게 찍혔는지 궁금해.”
“나도 오늘 막 애드리브로 진짜 잘한 거 같은데?”
“아니야. 연주는 늘 잘해. 내가 봤어.”
“야, 재휘야. 연주만 칭찬하지 말고 나도 좀 칭찬해봐.”
“푸하하. 종수는 혼났잖아. 근데 칭찬이라니. 푸하하. 아, 웃겨.”
“뭐가 웃기지?”
승준, 시하, 하나, 연주, 재휘, 종수, 은우, 윤동.
다들 참 재밌었나 보다.
근데 회장님 엔딩이라니. 이 영화 이래도 될까?
“형아. 보여져.”
“어? 어, 그래. 엄청 오래 찍었네.”
영화를 찍었으면 잘 나왔는지 모니터링해 봐야지. 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