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7화
연극이 순탄 대로를 달리면서 시하페페 채널도 득을 보았다.
구독자와 조회수가 상승했다.
그렇다고 막 드라마틱한 상승은 없었다.
그도 그럴 게 연극의 유명세는 많이 크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하나같이 평이 좋아서 표는 계속 매진이었다.
물론 대형 극장이 아니라서 매진이라는 점도 있긴 했다.
“으응?”
문제는 저런 작은 숫자들이 모이고 모여서 큰 강이 될 때다.
무슨 말인가 하면 반응이 픽시브와 다른 SNS 사이트에 터졌다는 말이다.
이미 처음부터 운영하고 있던 픽시브 계정은 상당히 많은 사람이 보게 되었는데 대부분 외국인이라는 점이 특이했다.
그런데 이번 사진을 찍고 구름에 그린 그림만이 뭔가 반응이 이상하게 흘러갔다.
“이거 하트가 왜 이렇게 많지? 시하야. 하트 엄청 많아!”
시하가 도도도 달려오더니 폰을 보았다.
하트뿐만 아니라 댓글도 굉장히 많았다.
어째서인지 모르겠지만 하트의 개수가 1만을 돌파하고 있었다.
시하페페의 그림 중에 이런 극적인 반응은 너무나 드물었다.
“하나, 둘, 서이, 넷, 다섯. 형아. 다섯이야.”
“응. 다섯 자리네.”
“하트 마나! 언래 네 자리해써.”
시하의 하트도 이제는 네 자리를 차지하는 경우가 많다.
1년 동안 운영한 이유도 있지만 채널까지 운영하면서 그럭저럭 많아지고 있었으니.
“이거 3일 전에 올린 건데 대체 왜…….”
“구르미 조아해.”
“그러게. 이걸 왜 좋아하는 거지?”
그냥 구름 사진들을 추가로 그려서 올린 것뿐인데 말이다.
나는 뭐가 뭔지 몰라서 댓글을 보았다.
-몇 개의 선만으로 우리의 구름은 구체화 되었다. 이 작가는 정말 획기적이다.
이게? 진짜?
-누구나 구름이 뭘 닮았다고 말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작가는 우리의 그런 상상력을 메꿔주었다.
어떻게 보면 그 말이 맞긴 한데…….
-상상만 하고 행동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하지만 이 작가는 상상을 현실로 그려냄으로써 크게 칭찬받아야 마땅하다.
솔직히 나는 잘 모르겠다. 이게 그렇게 칭찬받을 일인가?
보니까 이 그림의 공유가 2천 번이나 되어있었다.
그에 따라 하트도 실시간으로 올라가는 중이다.
-진짜 귀엽다. 선 몇 개로 이렇게 표현한다는 것 자체가 예술임.
-와 대박. 나도 따라 해볼까? 뭔가 좋아!
-난 이미 따라 해서 올림. 진짜 귀엽다 ㅎㅎ
-다른 게시글 보니까 임티 작가였네 ㅎㅎ 이런 귀여운 것만 그리시는 듯.
가파르게 상승한 원인을 알 수 있었다.
이 그림들이 인기가 생기니까 사람들이 따라 하기 시작한 거다.
그러면서 시하페페를 해시 태그에 써주었거나 언급을 했는데 그걸 통해서 사람들이 들어온 거다.
이를테면 유행을 선도했다고 할 수 있겠다.
흐름을 제대로 탔다.
[역시 시하페페 작가!
우리의 일상에 그냥 넘어갈 수 있는 부분을 선 몇 개로 표현해서 인상을 남겼다.
심지어 아래 배경은 벚꽃인데 봄이라는 점에서 그의 따뜻함마저 느껴진다.
어찌 보면 화려한 꽃들 사이에 가려질 수 있는 구름을 재조명한 것인데 대단히 시사하는 바가 크다.
화려한 것에 시야를 빼앗긴 조연들이 사실은 얼마나 풍경을 아름답게 꾸며주고 있다는 걸 말한다.
누구 하나 관심을 가지지 않는 힘든 이들에게 따뜻한 위로를 주는 것이다.
그의 의도가 나는 정말 따뜻하고 감탄스럽다.]
해석가는 여전했다.
시하에게 그런 의도가 있을 리가 없잖아?!
배경에 꽃들이 화려한 건 꽃놀이를 갔을 뿐인데……?
왜 이 사람은 아무 설명 없이 올린 사진 그림에 이렇게까지 엄청난 해석을 할 수 있는 걸까?
심지어 말이 그럴듯하다는 점에서 소름이 돋는다.
이미 해석자 찬양단들이 답글을 엄청 달며 동의하고 있었다.
뭐야. 이게. 무서워…….
“형아. 시하 아이돌이야. 아이돌. 하트 마나.”
시하가 배를 쭈욱 내밀며 말했다.
그래. 하트 많은 건 연예인이긴 하지.
뭐, 시하가 좋아하면 된 거 아니겠나. 어찌 되었든 상관없다.
“우리 시하는 엄청 대단하지. 암!”
“형아. 마스크 이써야 해. 마스크.”
“마스크는 왜?”
“시하 인기 이써서 다 아라 바. 가려야 해.”
저기. 시하야? 여기에 네 얼굴 하나도 나오지 않았는데 가려야겠니?
“선굴라수도 해야 해.”
“그건 그렇지.”
근데 오히려 그렇게 가리면 더 주목받지 않을까?
***
어린이집.
오늘 시하는 기어코 선글라스를 끼고 왔다.
심지어 형아 선글라스라서 얼굴에 맞지 않아 머리에 얹혀 있는 형태였다.
저러면 얼굴 가리는 것은 물 건너갔지만, 시하는 별 신경 쓰지 않았다.
“우와. 시하야. 선글라스 꼈네?!”
“형아 꺼야.”
시하는 머리에 있는 선글라스를 살짝살짝 치켜들며 자랑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승준은 시혁의 것이라고 하니까 뭔가 더 멋져 보였다.
“사실 나도 집에 선글라스 있어. 엄청 재밌어.”
“아?”
“해바라기 모양 선글라스인데 이렇게 펴진다? 그러면 그냥 안경이 돼.”
“!!!”
뭔가 변신 선글라스를 생각하게 되지만 그냥 우스꽝스러운 선글라스였다.
하나도 그걸 아는지 한마디를 보탰다.
“오빠가 그거 끼면 엄청 웃겨!”
“하나가 끼면 더 웃겨. 하하하!”
쌍둥이들은 서로의 모습을 상상했는지 신나게 웃었다.
시하는 그게 뭔지 몰라서 눈만 껌뻑거렸다.
그때 선생님이 다가왔다.
“여러분. 오늘은 무슨 날인지 아나요?”
“선굴라수 날?”
“아니에요.”
“나 알겠다! 사커의 날이야.”
“아니에요.”
선생님이 종수를 보았다.
저 자신만만한 표정. 다 알고 있다는 어깨의 으쓱거림. 어서 질문을 던지라는 눈망울.
거기에 맞춰주기로 했다.
“종수는 알고 있니?”
“과학의 날이에요!”
“맞아요. 과학의 날이죠?”
시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가학 모야?”
“과학이라는 건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친구의 일에요.”
“아?”
“어떤 거냐면 이런 구름 친구가 있어요. 근데 비를 내려야 해요. 비를 열심히 모으겠죠? 이게 과학이에요.”
“눈도 모아.”
“그래요. 눈은 추우면 비가 얼음 알갱이가 되어서 내리겠죠? 그게 과학이에요. 추우면 눈이 된다!”
아이들이 이해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한 정의를 말해 주면 모를 것이 분명하니 어렴풋하게 알면 된다.
“그래서 오늘은 각자 생각한 미래에 대해서 그려볼 생각이에요. 다들 얼마나 대단한 미래에 무엇이 있는지 그려보는 거예요. 로봇도 좋고, 우주선도 좋아요.”
“!!!”
“상상을 한번 해보세요. 미래는 지금과 어떻게 다른지.”
“시하 아라! 시하 매렁학가 나와!”
“응?”
선생님은 대체 매렁학과가 어딘지 몰라서 당황했다.
메롱 하는 걸 배우는 곳인가?
“흠흠. 아무튼, 가까운 미래부터 먼 미래까지 다양하게 생각해 보세요.”
“네에~!”
아이들이 스케치북을 받았다.
미래에 대해서 그리기 시작했다.
어쩌면 아직 본 게 별로 없어서 상상하기 힘들지도 모른다.
그래도 꼭 공상 과학처럼 그런 그림을 그릴 필요가 없다.
하루 앞도 미래이기는 하니까.
“선생님은 뭐 좀 준비할게요.”
“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발표의 시간이 왔다.
먼저 스케치북을 들고 나온 건 승준이었다. 그림을 펼쳤는데 축구공이 있다.
뭔가 배기가스가 나올 것 같은 둥근 부분이 있었는데 거기에 불이 뿜어져 나왔다.
“미래에는 사커공에 기계가 달려서 골대로 가는 거야. 그리고 여기 보면.”
승준이 골대에 있는 사람을 가리켰다.
주먹이 분리되어 있다. 축구공과 마찬가지로 불이 뿜어져 나온다.
“로켓펀치로 공을 막아.”
기계화된 인간의 축구가 되어 버렸다.
정말 먼 미래에 순수 인간이 없어져 버릴지도 모른다.
물론 승준이 그걸 생각하고 그린 건 아니겠지만.
“다음은 하나가 할래!”
“그래요.”
여성 세 명이 그려져 있는데 다리가 없다.
정확히는 만화에 나오는 유령처럼 둥글게 합쳐져 있다.
“귀신을 볼 수 이써서 귀신으로 아이돌을 만드러!”
귀신 아이돌이라니. 으슬으슬하지 않을까?
“귀신이라서 몸도 안 힘드러서 매일매일 스케줄을 할 수 이써. 살도 안 쪄!”
매일 스케줄을 돌리려는 악덕 기업이 여기 있다.
물론 하나는 그런 생각이 아니고 힘들 수 있는 부분을 해결해 나가려는 의도였다.
이건 과학인지 애매하기는 하지만 상상은 자유이니까 넘어가기로 했다.
다음은 연주.
“나는 바이올린 타고 과거로 가는 거 그렸어.”
저기 연주야? 그거 모 만화에 나오는 기술 아니니?
아무튼, 타임머신까지 나왔다.
다음은 종수.
아주 자신만만하게 나왔다.
“다들 내가 생각한 것보다는 대단하지는 않네. 이 정도는 돼야 미래지.”
집이 하나 그려져 있고 돔 형태에 갇혀 있다.
돔의 밖에는 푸른 배경으로 칠해져 있었고 물고기가 살고 있었다.
“물에 집을 지어서 사람들이 사는 거야.”
어떻게 보면 정석적인 과학의 날 그림이었다.
시하가 그걸 보며 벌떡 일어섰다.
저기, 시하야? 또 뭘 말하려고?
“시하 아라. 저거.”
“뭐? 너도 이거 상상했어?”
“아쿠아리움이야. 아쿠아리움! 형아가 알려져써. 고래도 키울 수 있다고 해써.”
“아니거든! 여기 바다거든.”
“바다에도 아쿠아리움 있다고 했눈데?”
“어어?”
바다 근처에 아쿠아리움을 짓는 곳이 있긴 하지.
틀린 말은 아니었다.
어떻게 보면 아쿠아리움 확장판이라고 할 수도 있었다.
종수는 부정하며 고개를 저었다.
“이거 아쿠아리움 아니야. 도시야. 도시! 바다에 도시를 지은 거라고!”
“물고기 맨날 보려고 만든 거야? 고래도 키울 수 이써!”
“그게 아니야!”
종수가 그린 건 아쿠아리움으로 평가 절하를 당해버렸다.
뭔가 심히 억울해하며 자리로 들어갔다.
앉으면서 눈에 힘을 빡 주었는데 이시하가 얼마나 잘 그릴지 눈에 불을 키고 찾을 생각이었다.
다음은 재휘.
“알몸으로 보이는데 사실 알몸이 아니야.”
“???”
그림에는 벌거벗은 임금님… 이 아니라 사람이 있었다.
온몸이 온통 살구색이다.
다만 손목에 시계를 차고 있었다.
“이 시계가 사람들에게 새로운 옷들을 보여주는 거야. 그래서 사람들은 쉽게 옷을 바꿀 수 있어.”
“그런데 실제로 옷을 안 입으니까 너무 춥지 않을까?”
“괜찮아. 이건 알몸이 아니라 쫄쫄이야.”
살구색 전신 쫄쫄이.
재휘야. 적어도 다른 색으로 해주지 않겠니?
역시 패션에 관해서 굉장히 창의적인 생각을 한 재휘였다.
근데 아무리 안 보인다고 해서 사람들이 저걸 쓸까?
선생님은 그건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은 은우.
“나는 하늘을 나는 래퍼야. 그래서 날개가 있어서 엄청나. 푸하하.”
사람이 하나 그려져 있고 뒤에 커다란 날개가 있다.
왜 래퍼가 나는지는 모르겠으나 아마 미래에 발전된 퍼포먼스의 일환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다음은 은우의 절친인 윤동.
“나도 은우랑 비슷한데. 신발에서 불 뿜어져서 공중에서 엄청난 춤을 추는 거야.”
저기 윤동아. 설명 들어서 알겠는데 사람의 팔다리가 있을 수 없는 쪽으로 꺾여있는데?!
신발의 불도 왜 이렇게 크게 그렸어? 그려진 사람만큼 크기가 되는데?!
저 정도 화력이면 타 죽는 건 아닐지 모르겠다.
옛날에 유행했던 힐리스를 능가하는 신발의 등장이었다.
그리고 대망의 마지막인 시하가 나왔다.
“이시하! 얼마나 대단한지 보자!”
종수가 부리부리하게 눈을 치켜떴다.
꼬투리를 잡으려는 누군가의 눈이 틀림없다.
시하가 말했다.
“종수 응언 고마어~”
“응원한 게 아니야!”
“시하 꺼 마니 보고 시퍼써? 기다려바.”
“많이 보고 싶은 게 아니야! 어? 아니, 보고 싶기는 한데.”
“보고 시퍼 해져서 고마어~!”
“그게 아닌데! 그게 아닌데!”
뭔가 아닌 거 같은 느낌에 종수는 억울함을 표했다.
우리 짠수는 오들도 시하의 페이스에 말려 들어버렸다.
“이제 보여주께~!”
시하가 스케치북을 휘리릭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