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6화
하나가 감탄사를 내뱉었다.
“와. 수혀니 언니 잘 부른다.”
“개굴 누나 잘해.”
서수현이 노래를 잘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들으니 뭔가 색다른 느낌이다.
내가 굳이 부를 필요가 있을까?
수고스럽게 내 키에 맞춰서 곡을 손봤는데 너무 아까운 것 같다.
뭔가 비교되는 건 아닐까 싶기도 하고.
“한 번 더 해볼게요.”
애들이랑 앉아서 녹음하는 걸 지켜보는데 왠지 너튜브에서 1시간 반복 재생을 듣는 느낌이다.
물론 그렇게 목으로 부를 수 없겠지만.
노래가 끝나자 서수현이 나오면서 눈을 찡긋거렸다.
“이제 오빠 차례예요.”
“눈에 뭐 들어갔어? 왜 찡긋거려?”
“…….”
“농담이야.”
“진짜 뭐 하나 건수 잡으면 놀린다니까.”
“푸흡.”
“각오해요. 저 오늘 굉장히 깐깐한 프로듀서거든요.”
“뭐래. 난 한 번만 녹음하고 끝낼 거야. 그거 알아?”
“뭐가요?”
“난 노래에서만큼은 완벽주의자가 아니거든. 굉장히 관대해지지.”
“올릴 건데 그러지 마세요.”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녹음실로 들어갔다.
마이크 앞에 서서 헤드셋을 착용했다.
시하가 ‘형아. 하팅!’ 하며 응원을 해준다. 이게 뭐라고 파이팅까지 하는지.
그저 가벼운 마음으로 부를 생각이다.
두세 번 정도면 녹음이 끝나지 않을까 싶다.
“카메라도 돌아가요.”
“영상도 꼭 찍어야 해?”
“물론 올리지는 않겠지만 그냥 기념으로 찍는 거죠.”
나는 목을 긁으며 마이크에 말을 해봤다.
“아아.”
소리도 잘 나오고 음향 크기도 괜찮은 거 같다.
“시작하자.”
서수현이 만든 서정적인 곡이 흘러나온다.
앞의 인트로 부분을 길게 만들어서 조금 기다려야 했다.
가요 같은 곡이면 인트로 부분을 길게 만드는 건 아웃이겠지만 이건 영상에 입힐 음악이기 때문에 일부러 만들어둔 것 같다.
처음 소개할 때는 자막이 들어가야 하니까.
갑자기 노래가 나오고 가사 자막이 달리면 굉장히 이상하잖아?
사람들도 당황할 것이고.
그리고 영상의 길이도 생각해 봤을 때 긴 것이 좋았다.
앞에서 서수현이 노래가 들어갈 타이밍을 잡아준다.
마치 노래방 기계처럼 말이다.
손가락을 쫙 펴서 입 모양으로 말한다.
5, 4, 3, 2, 1!
“세상이 기만에 속을 때~”
박자를 제대로 타고 들어갔다는 느낌이 왔다.
내가 적은 말들이 가사로 흘러나오니 뭔가 부끄러운 기분이 들었다.
뭐라고 할까? 내 속에 있던 걸 적었는데 남들 앞에서 일기장을 스스로 발표하는 모습이라고 할까?
“감정 잡아요!”
목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서수현의 입 모양은 그랬다.
티가 나나?
아무튼, 집중해서 다시 불렀다.
“다시 한번 갈게요. 다시! 다시!”
“좀 쉬자.”
나는 헤드셋을 벗고 나왔다.
시하가 반짝이는 눈으로 생수를 들고 도도도 달려왔다.
“형아! 물 머거!”
“오! 고마워.”
“노래 부르고 물 머거야 해. 노래방에서 그래써.”
전에 한 번 가봤다고 아주 잘 아는구나.
노래방에서는 음료 들고 들어가는 건 국룰이지!
“형아. 머시써. 잘 불러.”
“시혁이 형아. 진짜 다 잘해.”
“시혀기 오빠 목소리 엄청 조아.”
아이들에게 칭찬을 들으니 몸 둘 바를 모르겠다. 누가 보면 가수가 부른 줄.
그래. 이건 마치 노래방 기계에서 95점이 나와서 당신은 가수를 할 실력이에요! 하고 리액션을 하는 거 같다.
점수가 후하게 들어가는 거지.
“고마워. 얘들아. 금방 끝날 것 같으니까 너희들도 목 풀고 있어.”
“형아. 목 어떠케 푸러?”
“으응? 그건 개굴 누나가 잘 알려줄 거야.”
“정말?!”
“노래 부르니까 엄청 특별한 목 풀기를 보여주는 게 당연하지.”
아이들이 정말 그러냐는 듯이 서수현을 쳐다보았다.
애매한 표정.
“이 오빠가 진짜.”
등에 식은땀을 흘리는 거 같은데?
“수현아. 아이들의 기대를 배반할 거야? 너 개굴 누나야.”
“대체 개굴 누나가 뭔데! 그게 뭐길래!”
서수현이 아이들의 기대 섞인 눈망울을 보더니 ‘크흠’ 하고 헛기침을 했다.
나는 살며시 카메라를 들었다.
이것도 재밌을 것 같으니까. 야 서수현 내가 너튜브 각 잡아주는 거야. 고마운 줄 알아.
“아, 오빠. 뭐예요!”
“너튜브각. 너튜브각.”
“아, 진짜.”
뭔가 툴툴 대면서도 싫지는 않은지 말리지는 않는다.
“너 정말 자낳개구리 다됐구나? 앗! 마음속으로 생각한다는 게.”
“그짓말 흐지므라.”
“반말?”
“…요.”
서수현이 다시 아이들을 보았다.
먼저 시하와 눈을 맞췄다.
“그래! 시하 버전으로 목 풀기를 가르쳐줄게.”
“모야?”
“방금 시하가 말한 거. 자! 따라 해 보자. 모야모야모얌~”
아이들이 재밌는지 ‘모야모야모얌~’ 하며 목소리를 길게 뻗었다.
애들이 진짜 귀여웠다.
“자. 다시 한번 모야모야모얌~”
“모야모야모얌~”
그렇게 목을 풀고 있을 때 승준이 시하표 목 풀기 부러웠는지 자기 것은 없냐고 물었다.
“수현이 누나. 내 꺼는?”
“어엉?”
“승준 버전 목 풀기 없어?”
“하나도. 하나도!”
이러다가 다 만들어줘야 할 판이다.
서수현이 진지하게 생각하더니.
“승준이는 사커를 좋아하니까 딱 맞는 게 있어.”
나는 카메라 앞에서 조용히 읊조렸다.
“여러분은 지금 슈 채널의 사기행각을 보시고 계십니다. 아이들이 속는 게 귀엽기도 하면서 불쌍하네요.”
서수현이 말했다.
“메쉬메쉬메쉬! 메쉬메쉬메쉬!”
“푸하하. 수현니 누나 재밌다.”
“아아! 개굴 누나 재미써!”
“얘들아. 이거 중요한 거야. 입이 ‘에’ 자로 벌어지면서 근육 풀기도 좋거든.”
나름 그럴싸한 논리였다. 물론 실제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하나는? 하나는?”
“으음. 하나는 말이지. 니~야~옹~ 이렇게 주먹을 말아 쥐고. 니~야~옹~”
셋이서 주먹을 말아 쥐고 고양이 울음소리를 따라 했다.
서수현은 하나가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서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갑자기 자괴감이 오나 보다.
“형아. 야옹이 소리 시하 드러써.”
“응? 야옹. 야옹 하지?”
“아냐. 얌마. 얌마. 해.”
“???”
내가 아는 고양이 소리가 아닌데? 귀여운 게 아니라 너무 건방진 울음소리 아니야?
그런데 서수현이 주저앉은 타이밍에 얌마. 얌마. 하니까 뭐가 좀…….
아무튼, 시하에게 악의는 없었다.
***
내 노래 녹음이 끝났다.
서수현이 노래 작업은 아직 덜 끝났다고 했는데 나는 그런 거 잘 모르겠고 맡기면 되겠지.
“그럼 이제 시하가 마지막으로 들어가고 다 같이 한 곡 부르고 끝낼까?”
“아아!”
이미 앞에서 하나와 승준이 녹음을 끝내고 자기가 부른 걸 귀로 들어보았다.
남은 건 이제 시하뿐.
“시하야. 잘해.”
“형아. 시하 다 아라.”
알긴 맨날 뭘 안다고 그러는 건지.
하여간 귀엽다.
오늘 시하가 부를 노래는 서수현이 만든 곡이 아니다. 아무래도 가사 숙지를 다 못했으니까.
대신 시하가 좋아하는 노래를 불렀다.
“떡. 떡. 떡을 너어여~”
원래 씨앗인 노래인데 떡국 노래로 탈바꿈한 것.
재미로 만든 노래가 이렇게 녹음하게 되다니. 출세했다.
“싹이 나써여~”
자체적으로 대파가 생기는 떡국쏭. 정말 굉장한 것 같다.
옆에 있는 승준이 뿌듯한 표정으로 배를 내밀고 있다.
이 가사의 범인은 너였지…….
설도 지났는데 아직도 떡국 타령이라니. 나중에 시하에게 떡라면이라도 해줘야겠다.
“다 해따!”
“그럼 시하야. 네 목소리 한번 들어볼래?”
“볼래!”
헤드셋을 통해서 녹음된 시하의 목소리가 나왔다.
시하는 신기한지 눈을 휘둥그레졌다.
“형아. 시하 목소리 아냐.”
“아니야. 네 목소리 맞아.”
“아냐. 아냐. 달라.”
원래 자기가 낸 목소리랑 녹음된 목소리는 다른 법이다.
뭐라고 하더라? 속으로 울리는 목소리까지 들으니 다르다고 했나?
아무튼, 자기가 아닌 다른 사람이 듣는 시하 목소리가 맞다.
하지만 시하는 아무래도 자기가 아닌 목소리에 혼란스러워하는 것 같다.
뭔가 비슷한 거 같은데 낯설어!
알지. 알지. 그 느낌 뭔지 알지.
“시하 목소리야?”
“응. 네 목소리 맞다니까. 잘 들어봐.”
“아아! 마자! 다 해따! 하고 이써.”
“그거까지 녹음됐어?!”
아무래도 마지막에 ‘다 해따!’가 증거가 되어서 내 목소리구나 하는 것 같았다.
“형아. 신기해. 시하 목소리.”
“원래 자기가 듣는 목소리랑 다른 사람이 듣는 목소리랑 조금 달라서 그래.”
“왜?”
“목소리도 비밀이 있거든. 비밀이라서 시하만 들을 수 있어.”
“!!!”
시하가 손으로 자기 목을 잡았다.
“목소리야. 시하에게만 안 비밀이야? 그래써? 형아에게도 비밀이야?”
“푸흡.”
이제 목이랑 대화하기 시작하는 거니?
“형아. 시하가 비밀 알려주께. 귀! 귀!”
“귀에 말해도 똑같을 텐데?”
“아냐. 달라.”
나는 쪼그려 앉아서 시하에게 귀를 대어 주었다.
시하가 두 손을 모아서 말한다.
“모야모야모얌.”
그거 시하표 목 푸는 방법 아니야?
“형아. 들어써?”
“응. 듣긴 했는데.”
“목 풀어서 시하 목소리도 나와써.”
“???”
그게 그렇게 되는 건가?
목 푸는 게 그런 의미였던가?
하여간 아이들의 상상은 예상을 못 한다.
***
[슈] 채널에 영상이 올라왔다.
구독자들은 두 가지의 기대감이 있는데 오늘은 과연 괴작이 나올까? 아니면 명작이 나올까?
여러 가지 올리는 너튜버라서 궁금증이 생기는 건 당연하다.
직접 노래를 부르는 것.
아니면 그냥 재밌었던 영상.
또 아니면 공부하거나 잠자기 전에 편안히 들을 수 있는 배경음만 올리거나.
사실상 배경음이 은근히 조회수가 쏠쏠하게 올라간다.
이건 그냥 취향을 잘 안 타는 거니까.
[어린이집 아이들에게 목 풀기를 가르쳐보았습니다.]
제목만 봤을 때 그저 평범한 영상이었다.
아이들의 얼굴은 안 나오고 소리만 들린다.
-ㅋㅋㅋㅋ 모야모야모얌 저거 자기가 만든 듯이 하네ㅋㅋㅋ
-앜ㅋㅋ 저거 **엔터 목 푸는 법이잖아ㅋㅋ
-아이들 목소리 개귀여워ㅠㅠㅠ
-근데 왜 얼굴은 안 나오냐.
-아마도 수익 때문에 그런 듯? 너튜브에서 막을까 봐?
-역시 자낳개구리…….
다음으로 승준을 위한 목 풀기를 가르쳐줬다.
-메쉬메쉬메쉬 뭔뎈ㅋㅋㅋ개터졌넼ㅋㅋㅋ
-진짜 저세상 목 풀기 아니냐ㅋㅋㅋ
-그걸 또 애들이 진지하게 하고 있어…. 심지어 재밌어하네 ㅋㅋㅋ
-귀여웤ㅋㅋㅋ
영상의 반응은 상당히 좋았다.
그다음은 서수현이 고양이 소리내기.
-쪼그려 앉아서 자괴감ㅋㅋㅋ
-슈의 고양이 흉내. 이건 귀하군요.
-근데 카메라맨 찍고 있는 사람 누구냐. 사기행각 보고 있대ㅋㅋㅋ
-슈대장. 목 풀기 제대로 알려줘라ㅋㅋㅋ
-이상한 거 가리키고 있넼ㅋㅋ
마지막 킬 포인트는 시하가 형아에게 말하는 거였다.
[얌마. 얌마.]
-???
-내가 아는 고양이 소리가 아니다ㅋㅋㅋ
-슈대장 자괴감에 얌마얌마 한 거 아님?
-개웃기네ㅋㅋㅋ
-애들 얼굴도 나오지 않는데 케미 미쳤네ㅋㅋㅋ 뭔데 집중해서 듣고 있냐ㅋㅋㅋ
그리고 마지막 검은 배경이 나오며 조금 있다가 올릴 영상에 대한 자막을 소개했다.
[신곡 : 봄이 왔구려.]
[작곡 : 슈, 작사 : Sihapepe, 노래 : 슈.]
[BGM으로 Sihapepe에게 지원.]
[Coming soon.]
영상이 끝이 났다.
그리고 몇 시간 후에 서수현은 스트리밍 방송을 켰다.
제목은 [스포일러 영상]이었다.
“네. 안녕하세요. 슈 채널 여러분. 이번에 슈 씨가 신곡을 만들었어요. 거기에 시하페페 작가님의 도움이 있었습니다.”
서수현이 헛기침을 크흠 하고 했다.
“원래 이걸 밝히면 안 되는데 슈 씨의 편집자인 제가 조금만 알려주려고 해요. 아! 그러고 보니 제 이름을 안 밝혔네요.”
서수현이 작은 화이트보드에 보드마카로 이름을 썼다.
[편집자 슈크림.]
“네. 저는 편집자 슈크림이라고 합니다. 슈랑은 다른 사람이에요.”
-???
-아니. 슈대장 너무 뻔뻔한 거 아닙니까.
-연기 잘하네ㅋㅋㅋ
-슈크림…. 너무 대충 지은 거 아니냐…….
-무야? 다들 슈 씨야?
“제가 슈 씨랑 많이 닮았다는 소리를 듣긴 하는데 아무래도 편집자라서 그런가 봐요.”
-너튜버랑 편집자는 닮는다. 뭐 그건가?
“요즘 시하페페 작가님에게 노래 지원을 좀 해주는데 이번에는 영감을 받아서 또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그 노래를 한번 들어보겠습니다.”
이어폰을 낀다.
[노래 듣는 중]이라는 자막이 나온다.
“오! 이건 뭐라고 할까? 동양적인 느낌? 그리고 으음. 막 슬퍼요. 근데 마지막에 조금 해피엔딩인 느낌? 아니. 여운이 남는 느낌? 와! 근데 슈 씨 목소리 너무 좋다.”
-슈대장 많이 뻔뻔해졌네ㅋㅋㅋ
-자낳개구리ㅋㅋㅋ
-스스로 자기 목소리가 좋다고 한다고?!
“여러분 저는 슈크림이구요. 와! 근데 노래가 와! 여러분 기대해도 될 것 같아요. 이건 진짜 괴작이 아니라 명작이에요.”
-ㅋㅋㅋ기대해도 되는 부분?ㅋㅋㅋ
-아씨. 나 또 속나?
-이번에는 괴작 차례가 아니긴 함.
-퐁당퐁당이긴 한데 퐁퐁퐁당으로 속인 적도 있어서ㅋㅋㅋ
“그건 슈 씨가 속인 거고요. 저 슈크림은 편집하면서 봤잖아요. 절대 속이지 않습니다. 저는 언제나 진실합니다.”
그렇게 서수현이 분위기를 띄우며 이런 노래라며 스포일러를 했다.
그리고 다음 날.
시하페페 채널에서 영상이 올라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