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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8화 (258/500)

258화

해가 뜨는 걸 봤으니 부산스레 다들 갈 준비를 했다.

나도 기지개를 한 번 켰다.

“으으! 좋았다.”

“형님. 진짜 좋았습니다. 풍경이 눈에 콱 박혔습니다.”

“근육 때문에 튕겨 나간 거 아니야?”

“그럴 리가 있습니까!”

“아님 말고.”

백동환을 보면 근육 만능 설이 생각난다.

시하는 한참 사람들이 가는 걸 보더니 다른 것에 관심을 보였다.

도도도 달려가 포토그래퍼에게 달려갔다.

“아찌. 사진 찌거여?”

“응? 하하. 사진은 벌써 다 찍었지.”

“왜 찌거여? 예뻐서?”

“응. 예쁘기도 하고 아름다운 풍경이기도 하고. 어때? 내가 사진 찍어줄까?”

“시하여?”

“응. 시하 너. 이름 예쁘네!”

“고마어여~”

“푸하하.”

포토그래퍼는 시하가 귀여운지 미소를 지었다.

설마 저렇게 격 없이 말 걸 줄은 몰랐다.

살며시 시하에게 가까이 갔다.

“하하하. 제 동생이 실례한 거 아닌지 모르겠네요.”

“아니에요. 애가 궁금하면 그럴 수 있죠. 덕분에 좋은 모델이 되어줘서 감사한데요.”

“사진 모델이요?”

“네. 사실 전 인물 사진을 찍는 사람이거든요. 새해니까 이렇게 자리 잡아서 풍경을 찍었지만요.”

인물 사진이라.

뭔가 다른 걸 찍는 걸까?

확실히 전문가에게 찍히면 뭔가 또 다른 느낌이 들긴 한다.

“혹시 이거 제가 써도 됩니까?”

“어디다 쓰는 데요?”

“그냥 뭐 갤러리에 올리기도 하고 그러죠. 사실 모델 같은 걸 구하기 힘들기도 해서.”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힘들어요?”

“뭐, 쉽지는 않죠. 아! 유명한 포토그래퍼들은 쉽게 구합니다. 그렇다고 고충은 없는 것도 아니지만. 막 약속 파투내고 그래요.”

“아, 진짜요?”

“그렇죠. 그래서 전 아는 사람들을 찍는 걸 좋아합니다. 그런 의미로 저희 밥이나 같이 먹을까요?”

“갑자기요?”

“일단 친해지는 건 중요하다고 생각해서요.”

“그건 좀. 하하.”

모르는 사람이랑 밥 먹으면 어색할 것 같다.

“그럼 어쩔 수 없죠.”

“뭐, 작품으로 저희 사진 올려도 돼요.”

“오! 감사합니다!”

그가 눈을 반짝였다.

사실 얼마나 유명한지 모르겠지만 이런 사진을 남기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찾아보는 사람만 보지 않나.

“그럼 잠깐 컨셉으로 가도 됩니까?”

“어떤 컨셉이요?”

“서로 누워서 마주 보는 거죠. 거꾸로요.”

“거꾸로요?”

“네.”

이것도 시하에게 좋은 경험이지 않을까 싶다.

“시하야. 찍어볼래?”

“아아!”

우리는 서로 마주 보았다.

사진기를 안 봐도 된다는 점에서 긴장은 덜 되었다.

“서로 자연스럽게 이야기해 주세요.”

애초에 자연스럽지 않은 포즈인데?

“형아.”

“응?”

시하가 손을 올려 내 얼굴에 툭 하고 올렸다.

만지작만지작.

간지러워 눈을 살짝 찡긋거렸다.

“오! 좋네요. 됐습니다.”

“정말요?”

“네.”

의외로 사진은 빨리 끝났다.

원래 이런 걸까?

내 시선을 느꼈는지 그가 말했다.

“순간을 포착하는 게 중요하거든요. 그게 금방 나온 것뿐이죠. 보실래요?”

우리 두 사람의 얼굴이 보인다.

나는 눈을 찡긋거리고 시하는 초롱초롱한 눈으로 내 볼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확실히 찍는 게 달랐다.

“전 인물 사진을 참 좋아합니다. 웬만하면 그 사람이랑 친해지고 싶기도 하고요. 느낌이 다르거든요.”

“그래요?”

“그렇죠. 다른 작가들은 모르겠지만 전 사진이 ‘관계’를 찍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관계를 찍는다.

뭔가 멋진 말이었다.

“포토그래퍼와 인물의 관계. 형제인 두 사람의 관계. 이 풍경과 모델의 관계. 자연스러움 때문에 모델이 아닌 사람들에게 종종 부탁하곤 합니다.”

“멋지네요.”

“하하하. 거절도 많이 당해요. 제가 올린 사진들은 정말 설득이 되었거나 흔쾌히 받아준 사람밖에 없거든요. 열에 아홉은 거절당하는 거 같아요.”

“아! 근데 이거 가공하나요? 사진 작가시니까.”

“가공하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는데…. 만약 하면 보내드릴게요.”

“감사합니다.”

시하가 뭔가 궁금한지 그에게 물어봤다.

“아찌. 왜 이케 해써여?”

“뭘? 포즈?”

“아아. 포즈.”

“그건 말이야. 으음. 두 사람이 형제잖아. 서로를 보고 있지만 사실 어긋남을 표현하고 싶었어. 다 알지 못하는? 그런 느낌?”

“아?”

“어렵지? 시하가 손을 형아 얼굴에 올린 것처럼 친근함을 나타내지만 형아 맘을 다 아는 건 아니라는 거지. 서로 같은 사랑이지만 조금 다른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아냐. 가타. 형아 시하 조아해. 시하 아라.”

“푸하하. 그래.”

그런 컨셉이었구나.

듣고 보니 그럴듯하다.

“시하야. 다른 사진도 볼래?”

“아아!”

시하가 마음에 드는지 자기가 찍은 사진을 마구 보여주었다.

그중 의문이 드는 사진이 있는지 물어봤다.

“왜 얼굴 가려여?”

“글쎄. 왜 그런지 생각해 볼래?”

***

시하가 20살이 되었다.

새해를 보고 포토그래퍼도 만난 지 엊그제 같은데 시간은 정말 화살처럼 흘러갔다.

올해 대학생이 되어서 신기한 느낌이다.

“시하야. 밥 먹어야지.”

“아아!”

익숙한 식탁도 벌써 오래된 거 같다.

짧은 다리를 움직이며 다가온다.

포크를 쥐고 반찬을 콕 찍어서 오물오물 먹는다.

“형아. 마시써.”

“그래? 이제 대학교 가야지.”

“아아.”

밖으로 나간다.

빨간 레드 차가 아름다운 자태를 내뿜고 있다.

띡.

문이 열리고 시하가 운전석에 앉았다.

작은 손으로 핸들을 잡고 차를 움직인다.

부웅.

“조심해서 운전해야 해.”

“시하 아라. 잘해.”

어느새 도착한 강인대학교.

“형아랑 가치!”

“그래.”

강의도 같이 들었다.

김호섭 교수님은 여전히 재직 중이신지 앞에서 피피티를 띄운다.

늙지 않은 모습에 의문이 든다.

“형아. 필기해. 필기.”

“어, 응.”

시하가 열심히 연필을 움직인다.

공책을 보니 필기는 안 하고 페페를 잔뜩 그리고 있다.

저게 뭔 일인가 싶어서 칠판을 보니 김호섭 역시도 페페를 그린다.

피피티에 띄워진 건 이모티콘에 대한 이해라는 과목이었다.

아, 그렇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여버렸다.

“형아.”

“응?”

“끝나써.”

“정말?”

어느새 시간을 보니 점심시간이다.

시하랑 같이 학식을 먹었다. 오늘은 돈가스를 시켜서 먹는데 바삭바삭한 걸 잘도 먹는다.

여기 돈가스는 몇 년이나 지났는데 별반 달라진 게 없어 보였다.

“형아!”

돈가스를 내게 쭈욱 내민다.

나는 그걸 날름 받아먹었다. 다른 동기들이 시하랑 같이 밥 먹는데 귀여운지 머리를 쓰다듬는다.

마치 3살 아이를 보는 것 같은 눈빛이었다.

실제로 겉모습이 3살 때랑 별반 다를 바 없다.

어? 이상한데?

갑자기 위화감이 들었다.

아니, 이상하잖아. 아직도 3살 때 그 모습이라고?

“시하야. 몇 살이야?”

“서무 살.”

“이번에는 서무 살이라고 발음한다고?”

“아아. 서무 살.”

“민증은 있어?”

시하가 언제 생긴 지 모를 펭귄 동전 지갑을 쏙 하고 꺼냈다.

지퍼를 드르륵 열더니 민증을 내게 건네준다.

“어디 보자.”

이름과 주민번호가 적혀있고 그 밑에 나이도 한 번 더 적혀있다.

-20살(3살)

이건 또 뭐야? 원래 나이 안 적혀있잖아.

이상하게 머리가 돌아가지 않는다.

다시 시하를 보다가 어느새 아이들이 늘어있는 것이 보였다.

“형아. 시하 동기.”

“어린이집 친구들이네.”

다들 하나같이 강인대학교에 입학했나 보다.

물론 시하처럼 3살 때 모습 그대로다.

그래. 이제 알겠다. 이건 꿈이다. 생각이 천천히 되는 걸 보니 너무 늦게 자각해버렸다.

어쩐지 돈가스도 아무 맛이 느껴지지 않고 장면도 휙휙 바뀐다 했다.

“어? 도환이 형?”

저 멀리서 문도환이 심각한 표정으로 시하에게 다가왔다.

삿대질하며.

“이시하.”

“아?”

“너 지금까지 계속 3살이었지!”

“아아!”

그러니까 계산하면 몇 년이지. 20살이니까…….

이상하게 계산이 안 된다.

***

번쩍.

눈을 떴다. 옆에서 시하는 손을 꼬옥 주먹으로 말아쥔 체 새우잠을 자고 있다.

몸을 일으켜 얼굴을 감싸 쥐었다.

이제야 계산이 제대로 된다. 16년.

16년 동안 3살이라니. 너무한 거 아니냐. 아무리 꿈이라고 하지만.

꿈에서 내 손에 주름이 있었던 걸 볼 때 나만 늙었다.

아니, 16년이 지나도 그 정도 주름은 할아버지 아니야?

“형아?”

“으응? 일어났어?”

“갠차나?”

“어, 괜찮지 그럼. 그런데 시하야. 이제 시하는 몇 살이지?”

“서이 살!”

“!!!”

혹시 이것도 꿈인가?

“세 살 맞아? 한 해 지났는데?”

“아? 아아! 네 살이야! 형아. 시하 네 살이야.”

“그래. 네 살이지. 맞지?”

“왜?”

시하가 뭣도 모르는 순진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린다.

아무것도 아니야. 조금 위험한 꿈을 꿔서 그래.

사진이란 건 그 순간을 담는다.

나이, 관계, 위치.

만약 실제로 사진을 찍혀서 그게 고정되어 버린다면 얼마나 끔찍한 상황이 초래되겠나.

말 그대로 불로불사. 늙지도 않고 죽지도 않는.

아, 그래도 3살에서 안 늙는 건 선 넘었지.

아무래도 어제 사진을 찍어서 이런 꿈을 꿨나 보다.

그 사람과 너무 많이 이야기했다.

“형아. 사진 와써?”

“응? 아! 맞다. 메일 좀 확인해 볼게.”

나는 폰으로 메일함을 확인했다.

처음 보는 아이디로 첨부파일이 함께 도착해 있었다.

“왔네. 한번 볼까?”

“아아.”

하나는 그때 봤던 거랑 다를 바 없었다.

좀 달라진 점이 있다면 보정이 좀 된 느낌?

그리고 다른 하나는.

“와. 대박이네.”

“우와!”

사진에 우리의 모습이 지워져 있었다.

거기에 채워진 건 이번에 기암절벽과 바다를 비추는 태양. 일출의 풍경 사진이었다.

“시하랑 형아.”

“어? 그러네.”

희미하게 시하랑 내 얼굴이 남아 있었다.

확실히 전하고픈 메시지가 있는 모양이었다.

“형아. 시하도. 시하도.”

“으응?”

“시하 그림.”

“아! 그거 올릴까?”

“올려. 올려.”

아무래도 포토그래퍼에게 영감을 받은 그림을 올려야 될 것 같았다.

기다려주시는 분들에게 새해 인사도 해야지.

나는 일어나서 곧바로 작업에 들어갔다.

***

-시하의 그림. 픽시브 업로드.

[제목 : Dawn(여명)]

1. 펭귄이 그려져 있다.

얼굴 위치에서 포스터를 만 것처럼 종이가 말려 있고 그 아래에 펭귄의 몸이 보인다.

아래는 밝은 계통이고 말려진 종이 부분의 펭귄은 어두운 계통이다.

[Happy new y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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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ha.pepe.] [작품 목록]

#Happynewyear #Dawn

[댓글]

-와 시하페페 요즘 4컷 만화 아니네.

-여전히 펭귄 귀엽다.

-다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뭔가 그림을 보니까 어둠은 걷히고 아래에 해가 떠오르는 느낌?

-오! 나도 그 생각 했는데. 일출은 안 그렸는데 일출을 보는 것 같아.

-연출 미쳤다!

댓글이 떠들썩하게 달리더니 한 사람이 외쳤다.

-또 일차원이라고 생각하겠지!

-???

해석가는 당황해서 물음표를 날렸다.

-아니야. 요즘 너희들도 참 많이 올라왔어.

-그래? 우리 해석이 맞지?

-여명이라고 떡 하니 있는데 무슨 더 해석이 있겠어. 그런데 딱 하나 디테일 면에서 아쉬운 게 있네. 아무도 왜 그걸 말하지 않지?

-펭귄이라는 거?

-아니. 펭귄은 이미 캐릭터로서 인간을 비유하는 건 많이 알려졌지.

-그래서?

-문제는 종이가 말린 위치야. 펭귄 얼굴에 있어서 알아보지 못하잖아.

-아, 맞네.

해석가가 자신 있게 말했다.

-얼굴을 가렸다는 건 누군가의 얼굴도 된다는 뜻이지.

-!!!

-우리에게 보내는 따뜻한 메시지야. 새해에는 ‘모두가’ 음영이 걷히고 복 받으라는 말이지.

-그 누군가가 우리란 말이지?

-당연하지. 새해 인사를 여기서 누구에게 하겠어.

-캬아. 역시 시하페페. 따뜻한 그림이야.

시하는 그저 포토그래퍼의 얼굴 가리는 사진을 보고 어레인지한 것뿐이다.

-그건 그렇고 또 시하페페 굿즈 안 내놓나! 그때 놓친 게 너무 아까워!

-내가 문의해 봤는데 아직 더 만들 예정 없다던데? 얼마나 팔릴지는 모르겠다면서.

-아, 그럼 펀딩 좀 해라. 사줄게! 사준다고!

다들 새해 선물을 갖고 싶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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