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09화 (209/500)

209화

오늘의 점심.

호박죽과 호박 튀김, 그리고 밥과 고기가 있었다.

할로윈데이를 맞이하여 특별히 만든 음식이다.

아이들이 눈을 빛내며 달려들었다.

“자. 천천히 줄 서서 받으세요.”

각자 식판을 들고 음식을 받은 뒤에 자리에 앉았다.

다들 ‘잘 먹겠습니다!’ 하고 큰 소리로 인사한 후에 숟가락을 푹 떠서 호박죽을 먹었다.

식으면 맛없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시하가 우물거리며 눈을 크게 떴다.

“마시써!”

옆에 있던 승준이 뭔가 자랑스럽게 말했다.

“시하야. 이게 바로 펌프킨 맛이야.”

“호박 맛.”

“맞아. 호박은 맛있지. 아마 이 애는 사커 하다가 얼굴에 공을 맞아서 죽이 된 걸 거야.”

“아? 정말?”

“응. 아빠가 가르쳐줬는데 죽빵이라는 게 있대. 무슨 빵인지 모르겠는데 그걸 맞아서 호박‘죽’이라는 거 아닐까?”

선생님은 호박죽을 한 입 떠서 먹으며 웃음을 지었다.

저기 승준 아버님. 대체 아이에게 무슨 말을 하시는 건가요? 교수씩이나 되시면서 죽빵이라뇨.

아이들과 친해지기 위해 별말을 다 하는 것 같았다.

“죽빵 마시써?”

“글쎄? 그냥 먹으면 맛없지 않을까? 이렇게 호박에게 써야 할지도 몰라. 아니면 다른 음식에게. 혹시 빵 만들 때 쓰는 거 아닐까?”

선생님은 이 대화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망설였다.

실제로 반죽할 때 주먹으로 치기는 하니까 맞는 말이 아닐까?

알 수 없는 대화의 흐름에 정신이 이상해지고 있었다.

“이거 마시써.”

시하가 단호박 튀김을 입에 넣었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부드러운 식감이 목을 타고 넘어갔다.

아무래도 마음에 드는지 금세 먹어버린다.

승준이 또 뭔 이야기를 하려고 호박 튀김을 포크로 푹 찍고 들어 올렸다.

“그것도 맛있지! 펌프킨 튀김이야.”

“호박 티김.”

“기름에 수영하다가 이렇게 됐지.”

“아? 정말?”

선생님이 쓴웃음을 지었다.

시하야. 정말이겠니? 뜨거운 기름에 수영하는 펌프킨이 있으면 정신 상태를 의심해 봐야 한다.

그렇게 맛있는 점심 식사가 끝나고 다시 아이들이 신나게 놀기 시작했다.

선생님이 타이밍을 봐서 일어났다.

“여러분. 배도 부른데 산책하러 나가지 않을래요? 선생님이 특별히 과자랑 사탕 많이 받을 수 있는 방을 알아뒀어요.”

아이들이 그 말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실제로 선생님이 학교에 있는 몇몇 동아리에 부탁해서 과자를 나눠 달라고 했다.

물론 그 과자는 어린이집의 돈으로 샀다.

그렇게 아이들과 함께 출발해서 처음 간 곳이 바로 게임 개발 동아리.

선생님이 뒤에서 흐뭇하게 지켜보았다.

“자. 문을 두드려요.”

시하가 제일 앞에서 문을 똑똑 두드렸다.

안에서 우당탕 소리가 나며 문을 열었다.

안경호가 삐뚤어진 안경을 재빨리 쓰고 머리를 정리했다.

뺨에는 빨갛게 자국이 남아서 누가 봐도 잠이 든 사람으로 보였다.

“흠흠. 아니! 웬 괴물들이 여기 있지?!”

과장된 몸짓으로 혼신의 연기.

아이들이 트릭 오어 트릿을 말해야 하지만 다른 이야기가 튀어나왔다.

승준이 말했다.

“아하하! 얼굴에 분장했다. 분장! 안경도 삐딱하고 머리도 엉망이야.”

선생님이 뒤에서 이마를 짚었다.

저거 그냥 자다 일어난 거야. 얼굴 빨간 건 팔 배게 때문일 거고.

아이들이 승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설마 앞에 괴물 분장을 한 사람이 튀어나올 줄은 몰랐으니까.

그럼 이걸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되게 만들었다.

하지만 거기서 아랑곳하지 않는 한 사람이 있었으니.

시하가 펌프킨 바구니를 들고 말했다.

“경 투리오. 트릭 오어 트릿.”

“오! 시하야. 안녕. 과자 받으러 왔지?”

“아아.”

“근데 어쩌지? 난 줄 마음이 없는데? 그럼 나한테 장난칠 거야?”

안경호는 회장으로서 시하의 장난을 받아보고 싶었다.

잠이 덜 깨서 제정신인 상태가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말한 뒤의 반응이 궁금했다.

시하가 망설임 없이 말했다.

“아냐.”

“응? 장난 안 친다고?”

“이거 펌프킨이 경 투리오 머거. 입 벌려써.”

“오! 완전 잘 만들었는데? 여기 입구가 입이야?”

“아아.”

“이야. 그건 장난보다 더 큰일이네. 날 먹는다니.”

시하가 바구니 안을 가리켰다.

“안에 업써. 배고파.”

“그럼 배를 채워줄 수밖에 없겠네.”

안경호가 뒤를 돌아보자 신경환이 손으로 등을 짝짝 때렸다.

“아야!”

“으이구. 그냥 좀 좋게 주면 어디가 덧나냐! 덧나?!”

회장이 처치되고 물러나게 되었다.

아이들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잡몹이 없어지고 진짜 보스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사람이 나타났으니까.

아이들도 여기 실권자가 누군지 피부로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신경환은 아이들의 생각과 다르게 신사적으로 나왔다.

“여기 있는 과자가 전부야. 다들 안에 나눠줄 테니까 장난치면 안 돼. 우리는 지금 중요한 게임을 개발하거든. 축제 때 다들 와봤지?”

“네!”

신경환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흘리며 과자를 똑같이 나눠 주었다.

그렇게 아이들이 손을 흔들며 인사를 했다.

1단계 클리어.

선생님이 말했다.

“이번에는 좀 쉬웠지만 다음에는 더 어려울 거예요. 바로 화학과 실험실을 갈 거거든요.”

아이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화학과 실험실이 뭐 하는 데지? 라는 표정이다.

선생님이 알기 쉽게 설명해 줬다.

“전에 헤어스프레이로 구름을 만들게 한 형, 누나들 있죠? 거기로 갈 거예요.”

“네!”

화학실.

실험실은 여러 군데 있지만 그중에 사무실 앞에 아이들이 섰다.

“그럼 이번에 누가 문을 두드려볼까요?”

그렇게 말하는 순간.

흰 연기가 문틈 아래로 빠져나오고 있었다.

승준이 놀라서 말했다.

“앗! 구름이다!”

“하나도 놀랐어! 구름이 왜 아래로 기어 나오지?”

“아?! 기실이!”

저기 시하야? 왜 이렇게 작명을 잘 짓니?

아이들이 신기한지 구름을 잡아보았다.

사실 저건 드라이아이스 연기였지만.

“역시 뭔가 엄청난 사람들이 있나 봐요. 누가 두드릴래요?”

용기 있게 나선 한 사람.

은우가 손을 들었다.

“은우가 해 볼래?”

“저는 재휘를 추천합니다.”

여기서 추천을 한다고?

재휘가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나는 안 해도 될 거 같은데….’ 하며 무서워했다.

그때 종수가 코웃음을 치며.

“야. 이게 뭐라고. 재휘야. 내가 할게.”

“종수야. 고마워.”

“흥.”

똑똑.

문이 열리고 화학과 학생이 나왔다.

“콜록. 콜록. 하아. 누구세요.”

“과자 안 주면 장난칠 거예요.”

“안 돼. 여기서 장난치면 폭발하는데? 그래도 정말 장난칠 거야?”

“어…….”

“지금 이 연기 보이지? 장난치면 큰일 나.”

“어…….”

종수에게 뇌 정지가 왔다.

이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모를 얼굴이 되었다.

뒤에서 재휘가 ‘역시! 역시! 위험했어! 어서 어린이집으로 돌아가자.’라고 속삭인다.

그럴 수 없었다. 이미 저지른 거 물러설 수 없었으니까.

“으. 과자 안 주면 장난칠 거예요! 정말요!”

“그래. 그럼.”

뻔뻔한 모습.

시하가 앞으로 불쑥 나왔다.

왜냐면 저 학생은 저번에 형아랑 본 적 있어서 안다.

“형아. 다 말해.”

“으응? 뭘 말하라고?”

시하가 손을 들어 가슴을 두드렸다.

“이시하.”

“어. 그래. 반갑다.”

“형아. 이시혁.”

“어? 시혁이?? 아! 네가 동생이구나.”

“아아. 과자. 호박죽 바꺼.”

“오! 교환하자고?”

“아아. 형아가 줘. 죽빵. 호박죽 줘.”

대충 죽빵으로 만든 호박죽을 준다는 소리였지만 받아들이는 학생에게는 그렇게 들리지 않았다.

“헉. 시혁이 몸도 좋던데 죽빵 주면 나 죽는데?”

“아냐. 호박죽.”

“헐. 날 호박죽으로 만든다고?”

“아?”

“어쩔 수 없네. 과자를 주는 수밖에.”

그렇게 오해로 점철된 대화였지만 어쨌든 과자를 받게 되었다.

종수는 그런 시하를 보며 ‘또 시하가 해냈어?!’ 하며 분한 표정을 지었다.

어느새 바구니에는 반 정도가 채워졌다.

“이제 마지막으로 한군데만 더 얻으면 끝이에요! 과자를 가득 채울 수 있겠네요.”

찾아간 곳은 강인 취업센터.

문도환이 있는 곳이었다.

***

나는 시하가 오기 전에 문도환에게 들렸다.

후드 망토는 곱게 접어서 손에 들려 있었다.

나를 본 문도환이 묘한 표정을 짓는다.

“네가 핼러윈 챙기는 사람인 줄 처음 알았네?”

“아. 이거? 시하랑 맞춰서 입느라고.”

“근데 아직 덜 입은 거 같다? 시하의 옷이 그게 끝일 리가 없잖아. 그 손에 있는 것도 입어야지?”

“아, 형. 왜 그래. 이거 좀 그렇다고.”

“나도 한번 보자. 둘이 세트로 어떻게 생겼는지 비교는 해봐야 하잖아.”

“그걸 왜 형이 하냐고. 그냥 사진 있으니까 그걸로 봐.”

나는 폰을 꺼내서 시하랑 찍은 사진을 보여주었다.

문도환이 옆에서 배를 잡고 웃었다.

“푸흡. 진짜 잘 어울리네. 역시 시혁이 어린이네요.”

“아, 이래서 안 보여주려고 했는데.”

“근데 호박은 이해 가는데 펭귄은 왜 있어?”

“시하를 위한 맞춤이라서.”

“그렇다면 이해가 가네. 하아. 사실 이렇게 웃을 게 아니다. 나도 좀 있으면 분장해야 해.”

“뭐로 하는데?”

“문도라는 캐릭터.”

“푸흡. 아, 나보다 형이 더 대박이네.”

“시끄러워. 아니,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냐고.”

“나중에 그러고 클럽 가면 되겠다. 홍대 거리도 걸어 형. 혹시 알아? 인기가 있을지.”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왜? 인기 좋을 것 같은데.”

문도환의 얼굴이 진지해졌다.

“세상에는 인기 있는 두 사람이 있지.”

“오~”

“열심히 분위기를 띄우는 사람. 그리고 잘생긴데 아무 말도 안 하는데 분위기가 되는 사람.”

“뭔가 편파적인 팀인데?”

“결국, 여성들의 선택은 별로 말도 안 하는 시크하고 잘생긴 남자에게 간다고! 분위기 실컷 띄워놓았더니 말이야.”

“이거 형 경험담이지?”

“아, 아니야. 그렇지 않아.”

“분위기 띄웠다는 것도 형의 착각이 아닐까?”

문도환의 개그 실력을 알고 있는 나로서는 그 부분이 심히 의심스럽다.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는 표정을 보아하니 더더욱 확신이 든다.

이 형. 이미 건너지 말아야 할 아재 개그로 간 게 틀림없다.

어쩌다 이리되었는지 모르겠다.

“하아. 아무튼, 내기에서만 안 졌어도 분장 같은 건 안 했을 텐데.”

“예. 예. 내가 잘 도와줄게. 그렇다고 괜히 애들 무섭게 하는 건 좀 그러니까 살짝 웃기게 포인트를 줘볼까?”

“야. 얼굴에 장난기가 가득한데?”

“형의 역할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거지.”

나는 문도환을 안 하고 열심히 얼굴을 보라색으로 치덕치덕 발랐다.

연극 동아리 소품에서 구했는지 몸에는 커다란 갑옷을 입고 있다.

이로써 문도의 탄생.

아이들이 오면 역으로 과자를 달라고 하는 역할이다.

정확하게는 뺏는 역할이라고 봐야지.

어렵게 구한 과자를 어떻게 지켜낼지 궁금하다.

‘원래라면 이 풍습은 귀신에게 몸을 뺏기지 않기 위해서라고 하던데.’

몸 대신 과자를 뺏는 거지만 아이들이 과연 잘 할지 모르겠다.

나는 혹시 모르는 상황을 위해 히어로처럼 등장할 예정이다.

펌프킨. 그러니까 잭 오 랜턴으로 말이다.

“다 됐다. 이제 조금 있으면 온다니까 형은 준비해둬. 알았지?”

“그래.”

30분 뒤.

아이들이 등장했다.

문은 투명한 자동문이라 노크할 필요가 없었다.

불쑥 들어온 아이들의 향해 문도환이 달려왔다.

“너희들! 똑똑 안 하고 들어왔다. 가지고 있는 과자 다 내놔라. 안 그럼 문도 혼내준다.”

갑자기 들어온 문도로 인해 아이들이 바짝 얼어붙었다.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괴물이 나타났기에.

그 와중에 시하만 반갑다는 듯이.

“문도 머거!”

“으응?”

문도환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이거 이렇게 쉽게 주면 안 되는데…….

이대로 끝나면 계획을 망치기에 억지를 부렸다.

“더. 더. 필요하다.”

“아?”

“이걸로 부족하다.”

“문도. 죽빵. 호박죽 주까?”

그 대답에 문도환의 말문이 막혔다.

이건 또 뭔 소리야?!

계획이 제대로 시도되지 못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