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8화
할로윈하면 손쉽게 떠오르는 것.
바로 주황색 호박인 펌프킨이다.
알리사 역시도 그걸 뼈대로 삼아서 옷을 만들어왔다.
문제가 있다면 옷이 두 개였다는 점.
어른 옷도 함께 준비한 것이다.
당연히 시하는 그걸 보자마자 ‘형아 가치’를 외쳤고 나는 부끄럽지만 시하와 세트로 입을 수밖에 없었다.
등원까지만 입자고 몇 번이나 속으로 결심했다.
“둘이 완전 커플룩이네요.”
“하하. 네. 알리사가 시하를 위해 특별 제작을 했다고 하더라고요.”
“특별 제작이요? 뭔가 색다른 점은 안 보이는데요?”
전체적인 옷 설명을 하자면 우리는 검은색 긴팔티를 입고 있다.
앞에는 흰색 스카치라이트로 펌프킨의 눈과 입이 붙었다.
이것만 해도 꽤 괜찮으면서 평범한 디자인이다.
나 역시도 입고 다닐 수 있을 정도라는 거지.
하지면 여기서 끝이 아닌 게 펌프킨 후드 망토를 두른다.
주황색 펌프킨이 앙 하고 얼굴을 물고 있다는 거다.
우리는 두 개의 펌프킨이 몸에 있다.
특이한 점이 있다면.
“이 망토가 꽤 특이하죠. 안감이 검은색이거든요.”
“네? 안에 티랑 맞춘 거 아니에요?”
“그게 끝이었으면 특이하다고 안 하죠.”
그때 시하가 선생님의 다리를 잡았다.
“샘. 샘. 바바. 바바.”
“응. 그래.”
시하가 망토를 풀더니 휘리릭 뒤집었다.
검은색이 나오며 다시 어깨 위로 입었다. 똑딱이 단추를 꾹 누른 다음에 후드를 눌러쓰자.
“어? 펭귄이네?”
“아아! 페페! 블랙 페페!”
그렇다.
안에 티는 펌프킨이고 망토는 블랙 페페… 가 아니라 펭귄이다.
이 쓸데없는 기능은 역시 시하를 위한 거겠지.
말 그대로 특별 제작일 수밖에 없다.
“형아. 가치. 가치.”
“그래. 알겠어.”
나도 후드 망토를 뒤집어서 입었다.
그렇게 펌프킨 위에 군림하는 펭귄 스타일이 만들어졌다.
어째서 할로윈데이에까지 펭귄이 들어가는 거지?
그런 의문이 들었지만, 시하가 좋아하면 다 된 거 아니겠나. 암. 그렇고말고.
“선생님 너무 웃으시는 거 아니에요?”
“아니. 둘이 너무 귀엽잖아요. 하는 행동이. 이렇게 보호자랑 같이 꾸미고 오는 사람이 어딨냐고요.”
“으음.”
찰칵.
선생님이 허락도 안 받고 우리 두 사람의 모습을 찍었다.
시하는 찍어도 되는데 저는 아니에요.
물론 찍는 건 문제없는데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 사진을 갖고 있다고 하면 좀 그렇다.
지워줬으면 좋겠다.
“이거 초상권 침해예요.”
“이제 와서요?”
“이것만은 가족 외에 소장이 불가능합니다.”
“아이, 참. 그러면 톡으로 보내주기만 하고 지울게요.”
“정말이시죠?”
“그렇다니까요. 속고만 사셨어요?”
“네. 속고만 살았습니다. 클라우드까지 확인을….”
“아니이! 하핰핳핰. 뭘 그렇게까지 확인해요?!”
웃음소리가 무척 수상하다.
그렇게 무언의 압박을 하고 있을 때 어린이집 아이들이 튀어나왔다.
먼저 승준과 하나.
“악! 시하하고 시혀기 형아하고 펭프킨이다!”
“와! 옷 예뻐! 하나도 갖고 시퍼!”
생각보다 이 옷이 인기가 있구나?
그건 그렇고 쌍둥이의 옷도 장난 아닌 거 같다.
“하나야. 나중에 알리사 언니에게 물어볼게.”
“아니. 하나는 사진 갖고 시푼데?”
“으응?”
“시혀기 오빠 사진. 헤헤.”
안 돼. 그것만은 봐줘. 네가 가지고 있으면 승준 엄마랑 교수님도 다 보게 되는 거잖아?!
그런 일만은 피하고 싶다.
일부러 마지막에 등장할 시간을 맞춰서 왔는데 그렇게 되면 무의미하잖아.
“그건 우리 나중에 생각해 보자.”
“응.”
옆을 보자 시하가 승준과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아아. 승준! 드립 오어 드립!”
“엥? 하하하! 트릭 오어 트립이겠지!”
“아아. 트릭 오어 드립!”
“푸하하하!”
응. 시하야. 드립이 아니라 트립이야. 발음 조심하자.
어찌 되었건 다른 아이들이 보이자 시하가 다시 뒤집으면서 멋진 옷을 보여준다.
아이들이 앞뒤로 다른 후드 망토가 신기한지 웃음을 보였다.
각자가 자랑하고 싶어 하는 것을 보여주고 설명이 시작되었다.
재휘가 나를 보았다.
“우와.”
“응? 왜 그래? 재휘야?”
“멋있어요.”
“으응? 시하랑 같은 옷인데?”
“시하는 귀여운데 형은 멋있어요. 비율이 좋아요. 저도 크면 저렇게 되고 싶어요.”
“어…. 재휘는 더 멋있어질 거야. 그거 늑대구나?”
재휘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왠지 모르겠지만 엄청 감동한 눈빛이었다.
손에 있는 양 발톱을 콕콕 마주치게 한다.
“마자요. 와 역시. 이래서 시하가 형아, 형아 하는구나.”
뭔가 큰 깨달음을 얻었다는 표정.
나는 대체 무엇을 했는지 몰라 의문일 뿐이었다.
그때 선생님이 말했다.
“자. 그럼 다 같이 사진 찍을까요? 모여서 서보세요.”
“아아! 형아! 시하 엽. 시하 엽.”
“그래. 시하 옆에 앉으면 되지?”
내가 털썩 앉자 시하가 내 품으로 쏙 들어온다.
저기요. 시하 씨? 옆에 오라면서 자기는 왜 앞으로 가는 겁니까?
아무래도 시하의 마음은 갈대인가 보다.
움직임을 예측할 수가 없다.
“하하! 그럼 나는 시혀기 형아 오른쪽!”
“하나는 왼쪽!”
그때 재휘가 내 왼쪽 어깨 쪽으로 붙었다.
그러다 보니 다들 나를 가운데로 몰려올 수밖에 없었다.
승준이 크게 웃으며 ‘합체 로봇이다!’라고 했다.
나 역시도 그건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이게 뭐라고 이렇게 옹기종기 붙어 있는지 모르겠다.
“자, 그럼 찍습니다.”
찰칵.
할로윈데이의 시작을 셔터음이 알렸다.
***
원장은 잘 개어놓았던 옷을 쇼핑백에 반드시 접어서 넣었다.
그저께 세탁을 한 옷이다.
혹시나 할로윈데이에 맞춰서 복장을 갖추지 않았으면 입히려고 했다.
왜냐면 이런 행사 하나라도 소외감이 들 수 있기에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다.
나만 늘 같은 평범한 복장이면 소속감을 느끼기 힘드니까.
특히 자식을 둔 부모로서는 내 아이만 복장을 갖춰놓지 않으면 마음이 너무 불편해진다.
그걸 위해 준비했지만 오늘은 쓰이지 않았다.
‘다행이야.’
원장은 정말 안심했다.
부모들이 이렇게 아이들에게 세심하게 신경 써서 다행이었다.
아이들이 와서 ‘나는 옷을 안 입었는데?’ 하고 단 한 순간이라도 생각하지 않을 수 있어서 얼마나 마음이 놓이는지 모른다.
“다희쌤. 예쁜 과자 선물은 나중에 갈 때 줄게요.”
“네. 알겠습니당.”
미리 주면 다들 몰래몰래 하나씩 까먹을 게 분명하니까.
원장은 팔을 걷어붙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이들이 노는 곳에 도착해서 주위를 살펴보았다.
세심하게 총괄하는 건 언제나 원장의 몫이기에.
“원장님. 준비 다 됐어요.”
“네. 그럼 시작하죠.”
오늘은 할로윈데이를 맞이해 펌프킨 바구니를 만든다.
정확히는 호박 모양의 바구니가 준비되어 있다.
아이들이 만들어야 할 건 눈과 입이다.
마침 시하의 옷이 예시가 되어 주고 있으니.
유다희 선생님이 말했다.
“여러분. 사탕 주지 않으면 장난칠 거라는 말도 좋지만 거기에 담을 통도 필요하잖아요. 그런데 아무도 준비를 안 해왔더라고요.”
선생님이 호박 바구니를 꺼냈다.
“그래서 선생님이 호박을 준비했어요. 여기에 눈과 입을 만들어서 붙일 거예요. 짜잔! 바로 여기 검은 스티커 부분이에요.”
선생님이 A4지 크기의 검은색 스티커를 아이들이게 나눠주었다.
“여기 뒤에 흰 부분에다가 눈과 입을 그리면 선생님이 잘라줄 거예요. 그럼 우리 호박에 붙이면 된답니다.”
아이들이 눈을 반짝였다.
이미 서로 연필을 잡고 전투태세를 보였다.
그릴 생각이 한 가득이다.
승준이 손을 들었다.
“선생님. 꼭 눈코입 그려야 해요?”
“마음대로 꾸며도 돼요. 시하 옷에 그려져 있는 게 보통 펌프킨인 건 알죠? 저렇게 해도 되고요.”
아이들이 열심히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그냥 어떻게 꾸밀지 생각하는 중이다.
시하는 이미 다 생각해 뒀는지 연필을 쓰는 데 거침없다.
먼저 눈.
세모 눈이 보통이지만 시하는 동그랗게 그렸다.
거기에 눈동자와 빛을 받는 하이라이트 부분을 넣어서 반짝반짝한 느낌을 주었다.
“샘!”
선생님에게 보여 주자.
“시하야. 이렇게 선생님이 못 자르는데?”
“왜?”
“아마 자르면 그냥 검은 눈동자가 되지 않을까? 흑흑. 미안해. 선생님에게는 너무 어려운 과제야.”
“아냐. 할 수 이써!”
“때로는 할 수 없는 것도 있단다.”
“아냐. 이케이케 해.”
“으음. 시하가 어떻게 자르는지 가르쳐줄래?”
시하에게 생각을 떠넘기기.
아마 이렇게 말하면 알아들을 수 있을 것이다.
시하가 고민한다.
먼저 눈동자를 자르면…. 가운데도 파내고.
“아?”
색의 농도가 똑같아서 무척 표현하기 어렵다는 걸 깨달았다.
결국, 다시 그릴 수밖에.
“시하 다시 그려.”
“응. 역시 힘들지? 다시 그리는 게 좋겠다.”
“아아. 또 오께~”
“네. 또 방문해 주세요.”
시하가 손을 흔들며 자리로 가서 다시 눈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그냥 단순하게 원으로 된 눈. 송충이 눈썹. 갈매기 모양.
“다 해써. 샘. 시하 다 해써.”
“와. 귀여운 눈썹과 눈이랑 입이네. 선생님이 얼른 잘라줄게.”
“샘. 입 아냐.”
“응? 입 아냐? 더블유 모양으로 웃고 있는데?”
“아냐. 수염. 수염.”
“아! 이거 수염이었어?”
“아아.”
선생님은 시하가 입을 일부러 그리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수염만 있어도 많이 귀여울 것 같다.
“자! 다 잘랐다. 이게 여길 손톱으로 톡톡 때서 시하가 붙이면 돼. 저기 작은 호박 바구니 있지?”
“아아.”
시하가 스티커를 받아서 호박에 붙이려고 했다.
다른 애들도 다 그렸는지 너도나도 선생님에게 맡겼다.
그렇게 다 하고 나서야 호박 소개가 이어졌다.
먼저 승준.
“나는 펌프킨이 차는 호박사커공이야.”
마음대로 꾸미라고 했지만 사커공을 만들라고는 하지 않았다.
호박 바구니에 덕지덕지 오각형이 붙어 있다.
다음은 하나.
“하나는 리본 만들어써. 눈은 하트야!”
하나다운 귀여운 호박이었다.
종수.
“나는 안경을 썼어. 아주 똑똑한 호박이야.”
재휘.
이번에는 오해하지 않게 명확히 말했다.
시혁을 제외하고 다들 고양이냐고 물어봤었으니까.
“이렇게 브이 자로 잘라서 귀를 만들었어. 이거 늑대펌프킨이야. 다들 오해하지 마.”
윤동과 은우.
“그냥 평범한 펌프킨.”
“아하하. 나는 사탕 많이 받고 싶어서 눈 모양을 사탕으로 했어! 근데 윤동아. 넌 그냥 펌프킨이야?! 푸하하. 웃긴다. 엄청 좋아.”
“대체 뭐가?”
마지막으로 이시하.
펌프킨 바구니를 품에 안고 나왔다.
“짜잔.”
“???”
아이들의 얼굴이 의문으로 가득 찼다.
스티커가 요상하게 붙여져 있었으니까.
보통 바구니를 들 때 윗부분이 뚫려 있고 거기에 맞게 눈코입을 붙인다.
그런데 시하는 거꾸로 붙였다.
선생님이 그걸 보며.
“시하야. 바구니 엎어서 붙였나 보네. 다시 붙일까?”
“아냐. 이거 마자.”
“아. 일부러 그렇게 붙인 거야?”
“아아.”
시하가 바구니를 휘리릭 돌렸다.
약간 비스듬하게 보여주었다.
뚫린 부분을 손으로 가리키며.
“입.”
“!!!”
왜 거꾸로 붙여서 수염이 끝쪽에 있는가.
왜 시하는 입을 그리지 않았는가.
그에 대한 대답이 나왔다.
구멍이 뚫린 부분이 입이었기에 굳이 그릴 필요가 없었다.
선생님은 시하의 상상력에 감탄했다.
“와. 그건 선생님도 생각 못 했는데?”
아이들도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칭찬했다.
“오오! 역시 시하 짱이다!”
“시하 역시 시혀기 오빠 동생이야.”
갑자기 등장하는 이시혁.
“역시. 시혀기 형아는 멋지지.”
오늘따라 시혁의 칭찬을 많이 하는 재휘의 동참까지.
하나같이 자기들 할 말만 하고 있다.
선생님이 애들을 진정시켰다.
“자자. 다들 정말 잘 만들었어요. 그럼 점심을 먹고 과자 받으러 가볼까요?”
“네!”
“그럼 문제! 오늘 점심은 뭘까요?”
시하가 번쩍 손을 들었다.
“그래. 시하야. 한번 말해 볼래?”
“피치망고.”
“응? 뭐라고?”
“피치망고.”
선생님은 피치망고가 웬 말인가 싶었다.
시하와 시혁에게는 뜬금없는 맥락이 아니었지만, 어린이집 아이들에게는 너무 생각지도 못한 대답이었다.
“마시써.”
“응. 그래. 맛있지.”
“그린 변신해.”
“일단 앞뒤 다 잘라먹지 말고 처음부터 말해줄래?”
“물약 머거. 펭돌이.”
“으음. 그렇구나.”
왜 앞을 말했는데도 못 알아들을까?
그래서 그저 인자한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