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화
집에서 시하와 저녁을 먹은 뒤.
나는 카페에서 사 온 초코 마들렌을 시하에게 보여 주었다.
“시하야. 짜잔!”
“아?”
시하가 상자 안을 보더니 얼굴을 바짝 들이댔다.
킁. 킁.
아무래도 냄새를 맡는 모양이다.
강아지 같은 행동에 웃음이 나온다.
그런데 얼굴을 너무 들이미는 거 아니야? 아무래도 말리지 않으면 그 안으로 들어갈 것 같다.
“시하야. 이제 얼굴 떼도 되는데?”
“형아. 이거 모야?”
“이건 말이야. 초코 마들렌이라는 거야.”
“초코?”
마들렌은 뭔지 모르겠고 초코라는 말에 귀가 쫑긋 세워진다.
손으로 덥석 잡더니 입가에 가져가 크게 베어 문다.
초코의 달콤함과 마들렌의 촉촉함이 느껴지겠지.
시하가 오물오물 씹더니 눈을 크게 뜬다.
나의 시하 스카우트로 측정해본 결과 정확히 0.23mm만큼 커졌다.
뭐 믿거나 말거나지만.
“아아! 형아! 마시써!”
“엄청 달콤하지?”
“아아.”
“근데 엄청난 건 바로 우유랑 같이 먹으면 더 맛있다는 거야.”
“아?”
나는 냉장고에서 우유를 따라주었다.
이걸 먹고 열심히 쑥쑥 키가 크거라.
시하가 우유를 받고 꿀꺽꿀꺽 마셨다.
물도 아니고 그렇게 급하게 마실 필요가 있니?
“형아. 마시써!”
“그래. 입가에 우유부터 떼고 말하자.”
나는 티슈로 입을 닦아주었다.
시하가 다시 열심히 먹기 시작했다.
마들렌 한 번 들고 냠. 내려놓고 우유 한 잔 마시고 또 한 번 냠.
번갈아 가면서 열심히 올렸다 내렸다 한다.
두 손에 다 잡으면 될 텐데 마치 순서를 지키는 모습이 흐뭇하다.
“형아. 안 머거?”
“응? 형아는 시하가 먹는 것만 봐도 배부르네.”
“그럼 이거 시하 머거?”
“응. 시하 먹어.”
한 개 남은 마들렌을 그대로 입에 넣는다.
근데 시하야. 한 번 더 권유해야 하는 거 아니니?
괜히 시하가 맛있게 먹고 있으니까 뺏어 먹고 싶다.
그런 내 시선을 눈치챘을까?
시하가 마들렌을 쥐고 내민다.
“형아. 아~”
“형아. 한 입 주는 거야?”
“아아.”
“그래. 아~”
살며시 한 입 먹었다.
시하가 우유를 내민다. 나는 웃으며 한 모금 마셨다.
그러더니 나머지를 맛있게 먹기 시작한다.
한 번 더 권유를 안 하려나?
내가 옆에서 간절한 시선을 다시 보냈다.
“아?”
“아?”
“형아. 모야?”
“으응? 아니야. 아무것도.”
아까 시선을 알아차린 게 아닌가 보다.
별일 아니라니까 다시 열심히 먹기 시작한다.
그때 전화가 울렸다.
[정용수 교수님]
“네. 교수님.”
「도대체 무슨 일을 한 건가?」
“네?”
「갑자기 하잉에게 연락 오더니 계약서에 도장 찍자고 하던데. 가서 다시 설득했나?」
“제가요? 전 그냥 같이 담소 좀 나누다가 일한 거밖에 없는데요? 아! 초코 마들렌을 마지막에 주긴 했네요.”
「아닌 거 같은데. 거기서 많은 도움이 됐다고 하던데.」
“하하. 초코 마들렌이 도움이 많이 됐나 보네요.”
뭐 굳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야기 안 하는 게 예의겠지.
아는 사람의 입이 많아질수록 소문은 퍼져나가니까.
잘못하다가는 불이익이 갈 수 있었다.
하잉 씨가 굳이 스캠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은 것은 그러한 이유에서였다.
그쪽에서 언급 안 한 이야기를 내가 굳이 말할 필요가 없다.
신뢰란 이런 사소한 것에서 생성되는 거니까.
또 영업비밀을 유지하는 것도 있고.
「초코 마들렌이라…. 뭔가 추억의 음식? 그런 게 포인트가 되었다는 거겠지? 내 말이 맞지?」
“뭐, 저야 모르죠.”
「앞으로 이런 카페에서 만날 때 무조건 초코 마들렌이다.」
“아니, 그건 좀….”
이 착각을 정정해 줘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모르겠다.
농담이시겠지? 에이, 설마. 대충 뭔가 일이 있었구나 하시겠지.
「고맙네. 덕분에 계약을 따낼 수 있었어. 이제 열심히 생산하는 일만 남았네.」
“네. 그 부분은 파이팅입니다. 제가 굳이 관여 안 해도 되죠?”
「당연하지. 다만 혹시 괜찮으면 상품에 관한 설명과 그런 부분을 번역해줄 수 있겠나?」
“물론이죠. 통번역으로 프로젝트에 참여했는데요.”
「이번 일은 나중에 섭섭하지 않게 챙겨 주겠네.」
“그건 좀 많이 기대하겠습니다.”
내 말에 정용수 교수님이 껄껄 웃었다.
기분이 좋다는 느낌이 전화기 너머로까지 들려올 정도다.
아마 속이 뻥 뚫린 느낌이 들지 않을까?
커다란 숙제 하나를 완수한 거다.
이렇게 하나를 뚫어놓으면 그다음을 넓혀갈 수 있는 초석이 될 테니까.
「늦은 시간에 연락해서 미안하네. 좋은 밤 되시게.」
“네. 교수님도요.”
통화를 종료하자 시하가 손을 불쑥 내밀었다.
“형아.”
“응?”
“시하 손. 손 씨서.”
“아. 손 씻어야겠네. 화장실 갈까?”
“아아.”
시하가 화장실로 들어가 물을 틀었다.
솨아아아.
샤워기를 돌리는 걸 깜빡했는지 시하 머리 위로 물이 떨어졌다.
“아아! 차가!”
“으악! 시하야.”
손 씻으려다가 옷까지 다 젖었다.
재빨리 꺼서 그렇게 쫄딱 젖지는 않았지만.
“이걸 돌렸어야지.”
“시하 아라.”
“아는데 왜 그랬니?”
시하가 살며시 눈 돌리며 말하길.
“시하 샤어해. 형아. 샤어.”
“아무리 그래도 형아는 옷 입고 샤워 안 하는데?”
“아냐. 빨래. 시하 빨래.”
“아, 그래?”
샤워와 빨래. 그리고 손 씻기.
한 번에 하려는 계획이었구나. 나름 논리적으로 그럴싸한 변명인데?
달칵.
샤워기가 아니라 아래로 물 나오는 방향으로 돌린 뒤에 물을 틀었다.
“그런데 시하야. 아직도 형아 흉내 내기 안 끝났어?”
“아아. 시하 형아 대.”
“그렇구나.”
이렇게 어설프게 흉내를 냈다면 모든 사람이 스캠 같은 걸 당하지 않았을 거다.
시하는 아직 흉내 내기가 부족하다.
그래도 나는 좋았다.
시하가 굳이 흉내 내는 게 아니라 시하로서 성장했으면 하기에.
물론 내 영향을 많이 받겠지만 언젠가 자신의 개성을 꽃 피울 날이 분명히 올 거다.
누군가를 흉내만 낸다는 거.
그게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
“시하는 나중에 사기 같은 거 치면 안 된다?”
“아? 사기?”
“음. 사기가 뭐냐면.”
“형아. 시하 아라. 사기 아라.”
“오! 사기 알아? 요즘 그런 것도 배워?”
“아아. 레드 사기야. 사기.”
“아…….”
레드가 사기 캐릭터인 건 인정이지.
그런데 시하야. 내가 말하고 싶은 사기는 그 사기가 아니야…….
***
일하기 전에는 메일을 별로 사용하지 않았다.
하지만 통번역 일을 하기 시작하면서 메일을 정말 많이 쓰게 되었다.
중요한 업무적인 내용은 정말 메일로 가끔 이야기를 나누고 알려준다.
예를 들면 어디 기업이 쉬는 날이라 업무적인 연락을 못 받는다든지.
실제로 이런 일이 발생하기에 그날을 노려서 무역대금 사기가 일어나기도 한다.
‘음.’
나는 메일함을 노려보았다.
일과 중에 꼭 메일을 확인하는 버릇이 있다.
스팸도 가끔 있지만 사적인 메일도 많았으니까.
‘혹시 스캠은 아니겠지?’
눈앞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서 그럴까?
이상하게 이메일 주소를 확인하게 된다.
나 역시 이럴진대 하잉 씨는 확인하는 것에 거의 강박증이 걸릴지 모를 일이다.
‘중요한 메일 수신은 따로 분류하는 수밖에.’
이래서 메일 주소를 따로 분류하는 기능이 있는 것 같다.
그러면 그 사람에게 왔는지 안 왔는지 헷갈리지 않을 테니까.
전화번호도 꼼꼼히 확인하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새로 온 메일을 열어보았다.
스팸인가 싶었지만 달랐다.
[제목 : 서양학과 장하진 교수입니다.]
[내용 : 드디어 문서가 날아와서 이렇게 연락드립니다. 기억하고 계실지 모르겠지만 전에 미술 광고 캠페인이 있다고 한 적 있죠?
맞습니다. 그겁니다.
참가하는 데 나이 제한은 없지만, 상 부분은 나뉘어 있습니다.
미래부, 청소년부, 일반부.
미래부 부분도 초등학교 고학년과 저학년이 따로 수상합니다.
7세 이하도 저학년으로 포함됩니다.
창의성을 보고 결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몇 살이 받을지 알 수 없습니다.
물론 그저 재밌게 즐겨주십사 해서 보내는 겁니다.
전에 말했던 대로 이번 주제는 ‘물 부족’입니다.
그래도 입상해서 전시되었으면 좋겠네요.
아마 갤러리에 전시될 것 같습니다. 하하.
그럼 이만.]
[첨부파일]
나는 첨부파일을 다운받은 후에 자세한 내용을 읽었다.
시하가 하려고 할지 모르겠다.
일단은 한번 관심을 들게 해 볼까?
참가하려고 한다면 성심성의껏 도와줘야지.
그리고 꼭 참가하지 않더라도 이런 세상이 있다는 것을 알려줘도 괜찮을 듯했다.
물 부족.
싱가포르 역시 물 한 방울 안 나는 나라였다.
베트남은 물이 적절하게 있지만 정화 시설이 별로 좋지 않아서 사 먹는 경우가 많다.
“시하야.”
“코오.”
방에서 시하가 뒤척였다.
아직도 꿈나라에 가 있는지 팔들이 위아래로 향해 있다.
이불은 발로 걷어찼는지 엉덩이에 깔렸다.
뭐지? 어떻게 뒤척이면 저렇게 할 수 있지?
그런 의문을 가지며 시하의 몸을 흔들었다.
“시하야. 이제 일어나야지. 어린이집 안 갈 거야?”
“아?”
시하가 살며시 눈을 뜨며 팔을 벌렸다.
안아 달라는 소리.
이렇게 어리광 부릴 때가 좋다.
나는 괜히 튕겨봤다.
“싫은데?”
“아냐. 형아 조아. 안아 조아.”
“큭큭. 형아는 안지는 않고 쭈쭈 해줄 건데. 쭈쭈.”
“아아.”
나는 시하의 팔다리를 주물렀다.
마사지로 몸이 굉장히 노곤해지는지 그대로 눈을 감는다.
“아악. 자면 안 돼. 일어나야지.”
“시하 이러나써.”
“일어났다면서 왜 눈은 안 떴는데.”
“시하 눈 자가. 눈 떠서.”
“이게 눈 뜬 거라고? 작아서 모르는 거라고?”
“아아.”
“내가 아는 시하 눈이 아닌데? 이렇게 안 작은데?”
“아냐. 자가. 자가 떠써.”
“작게 떴다고?”
“아아.”
“그럼 이게 몇 개개?”
나는 손가락 세 개를 흔들었다.
시하가 슬쩍 눈을 좀 더 뜨더니.
“서이.”
“방금 뜬 거 다 봤어. 어서 일어나자. 형아가 엄청 재미난 거 들고 왔어.”
“모야?”
“몽실이와 비실이에 관한 이야기야.”
“몽실. 비… 실…?”
그 말에 시하가 벌떡 일어섰다.
눈도 번쩍 뜨고 내 옷깃을 잡았다.
“몽실. 비실!”
“안 잊어먹었구나?”
“아아. 하늘로 가써.”
“응. 맞아. 그럼 우리 일단 씻고 이야기할까?”
“아?”
내 말에 시하가 꼬물꼬물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시하. 자.”
“아하하. 알았어. 일단 이야기해줄 테니까 일어나자.”
“아아.”
“그 전에 기지개 한 번 펴고. 자, 위로 쭈욱.”
“아아! 쭈쭈!”
시하의 팔이 하늘로 향했다.
몸을 부르르 떠는데 너무 귀여웠다.
“그럼 이야기해 줄게. 몽실이와 비실이가 친구들을 만나서 뭘 하는지 말이야.”
“노라.”
“응. 놀긴 노는데 어떻게 노는지 궁금하지 않아?”
“궁굼해!”
“그럼 가르쳐줄게. 짜잔. 몽실이와 비실이는 구름 친구들을 열심히 모아서 이렇게 돼.”
폰으로 아주 큰 흰 구름을 보여주었다.
시하가 물끄러미 나를 보았다.
가만히 재촉하는 눈이다.
“하지만 구름이 해랑 가까이 있지?”
“아아.”
“그래서 검게 타버렸어. 이렇게 검은색이 섞인 구름이 되었지. 이걸 바로 태닝이라고 하는 거야.”
“아? 태닝?”
“응.”
뭐 실제로 그런 건 아니지만 일단 그렇다고 하자.
“자., 이렇게 태닝한 비실이와 몽실이가 재밌는 놀이를 하기 시작해. 물을 만드는 거야.”
비가 내리는 영상을 틀었다.
시하도 그걸 아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비! 형아. 비!”
“응. 몽실이와 비실이가 열심히 물을 만들어서 비가 내리게 해.”
“우와!”
시하가 엄청 큰 깨달음을 얻었다는 듯이 감탄을 했다.
저렇게 반응해 주니까 쑥스럽네.
“이렇게 비가 강이랑 땅과 하나가 되어서 물이 많아지는 거야. 그럼 이 물은 어디로 갈까요?”
“시하 아라!”
“오! 시하 알아? 어디게?”
“요기!”
시하가 자신의 배를 통통 두드렸다.
어? 그래. 결국, 거기로 가는 것도 맞긴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