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6화 (196/500)

196화

시하의 형아 되기는 집에서도 계속되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구체적이다.

내가 신발을 벗고 집으로 들어가면 가지런히 놓는 습관이 있다.

어질러지는 것보다 보기 좋으니까.

시하도 꼬물꼬물 신발을 벗어서 나를 따라 가지런히 놓는다.

“형아.”

“응. 시하가 잘하네.”

“시하 형아야.”

“그래. 그렇네?”

의외로 선생님의 교육이 빛을 발하고 있다.

며칠 갈지는 모르겠지만 한동안은 이렇게 따라쟁이가 될 것 같다.

화장실로 가서 손을 씻고 주방으로 가서 오늘의 메뉴를 정한다.

“형아. 시하도. 시하도. 요리.”

“응? 시하는 아직 요리하면 위험한데? 여기 불이 엄청 뜨겁거든.”

“형아. 안 뜨거?”

“응. 형아는 어른이라서 안 뜨거워요. 근데 오늘 달걀말이 할 건데 시하가 좀 도와줄래?”

“아아! 시하 해!”

“이건 불 쓰는 건 형아가 할게. 알았지?”

“아아.”

나는 냉장고에서 달걀 5개를 꺼내서 시하 앞에 그릇을 주었다.

“자. 잘 봐. 이렇게 깨서 여기에 넣는 거야. 남은 껍질은 달걀 있는 바가지에 넣고.”

“아아.”

“할 수 있지?”

“할 수 이떠!”

“그래. 부탁할게.”

괜히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시하를 바라보았다.

달걀을 잡는 손이 아담하다.

바가지를 끌어안다시피 하며 달걀을 모서리에 톡톡 두드린다.

“아?”

금도 안 가서 ‘이게 왜 이러지?’ 하는 얼굴.

다시 한번 살짝 힘을 줘서 톡톡 두드리자 이번에는 살짝 실금이 생겼다.

정말 조금씩 흘러나오는 내용물.

또옥. 또옥.

시하가 ‘이게 아닌데?’ 하는 표정을 지으며 금 간 부분에 손가락을 집어넣었다.

조금씩 깨어지며 노른자가 아내로 흘러나왔다.

“아아! 형아!”

“응. 잘했어. 남은 세 개도 열심히 깨봐.”

“아아.”

다시 달걀을 하나, 둘, 서이.

똑같이 반복하며 기쁜 얼굴로 바가지를 들고 왔다.

해냈다는 얼굴이 너무나 귀여웠다.

그런데 시하야. 네 손에 달걀이 다 묻어있는데 어떻게 된 거니?

“형아! 다 해써! 시하 해써!”

“이야. 시하 대단하네. 어디 보자.”

바가지 안을 보니까 달걀 껍질이 한가득하다.

이거, 이거. 달걀 껍질 빼려면 고생이겠네.

나무젓가락으로 쏙쏙 파편들을 골라내며 시하에게 다시 주었다.

“아?”

“자. 이걸로 휙휙 젓는 거야. 전부 엄청 노랗게 되도록. 달걀말이가 엄청 노란 건 알고 있지?”

“시하 아라.”

“그럼 한번 저어봐.”

“아아.”

시하가 다시 바가지를 품에 안고 열심히 나무주걱으로 저었다.

원래라면 그냥 젓가락으로 대충 저었겠지만, 시하는 아직 그런 스킬을 연마하지 못했다.

열심히 휘휘 저으면서 노른자가 흰자를 물들여가는 모습을 본다.

“다 하면 말해. 알았지?”

“아아.”

그렇게 기름을 두른 프라이팬을 살짝 약불에 올려놓고 있는데 시하가 바가지를 들고 온다.

“형아. 다 해써.”

“오! 그래? 그럼 달걀말이가 만들어지는 걸 어디 한번 볼까?”

“아아.”

나는 달걀 물을 부었다.

슥슥 말고, 다시 빈 부분에 붓고, 또다시 둥글게 말아버린다.

“짜잔. 시하가 만든 달걀말이 완성.”

“아아!”

“이 위에 케첩을 뿌리는 것도 시하가 할래?”

“시하 할래!”

“그래. 그럼.”

나는 접시에 담은 달걀말이를 상에 놓고 시하의 손에 케첩을 쥐여 주었다.

시하가 지그재그로 뿌릴 줄 알았는데 하나의 초성을 그린다.

[ㅇㅅㅎ]

시하가 해맑은 목소리로.

“형아. 시하.”

“형아랑 시하가 만들었다고?”

“아아.”

나는 그런 시하가 귀여워서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런데 시하야. 계속할 거야? 형아 되기.”

“아아.”

“아, 그렇구나.”

우리는 그렇게 식사를 마치고 설거지도 같이했다.

문제가 있다면 시하의 상의가 물에 다 젖었다는 점.

이게 설거지를 한 건지 빨래를 한 건지 모르겠다.

시하의 형아 되기는 오늘 하루 험난했다.

***

-다음 날. 화학과 정용수 연구실.

구체적인 계획과 방법.

이건 어린이들만 필요한 게 아니다.

어른들이야말로 정말로 생각하고 떠올려야 한다.

그저 안일한 마음으로 시작하려고 하면 절대 성공할 수 없다.

특히 베트남이나 해외로 수출하는 물품.

많은 스타트업을 하는 청년들이 하는 실수는 현지의 반응을 너무 모른다는 거다.

“베트남은 한국처럼 인터넷 시장 인프라가 잘 구축된 곳이 아닙니다.”

“???”

“물론 없는 건 아니고 온라인 시장으로 점점 넘어가겠지만 현지 시장을 공략하는 게 큰 포인트죠.”

내 말에 정용수 교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그건 몰랐어.”

“보통 1년 이상 철저한 조사를 통해 들어가야 합니다. 막연한 생각으로 갔다가는 큰코다치죠.”

“그럼 지금부터 현지 시장 조사를 해야 하는 건가? 직접 가서?”

나는 씨익 웃었다.

물론 그렇게 하는 게 베스트였지만 우리는 이 시간을 단축할 필요가 있다.

“괜찮습니다. 우리는 그 기간을 획기적으로 줄일 거거든요.”

나는 가방에서 서류를 꺼냈다.

정용수 교수님과 대화를 나누고 밤새 조사한 것이었다.

오늘 아침 7시에도 베트남 현지에 있는 사람을 통해 연락을 해봤다.

그 과정에서 미국에 있는 스티브 백의 인맥을 조금 이용했다.

“베트남은 덥습니다. 그래서 아침을 일찍 시작하는 사람이 많죠. 새벽 5시 정도.”

“그렇겠지.”

“이미 베트남 쪽에 연이 닿은 사람을 조금 이용했습니다. 자료는 이걸 보시면 될 겁니다. 우리는 제품도 이미 만들어졌고 마침 먹힐 만한 헤어 제품도 가지고 있죠.”

“흠. 확실히 시간이 확연히 줄겠어.”

“네. 맞습니다. 유통업자와는 접촉을 해봐야 알겠지만 잘만하면 계약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교수님은 각종 인증된 서류를 준비하셔야 합니다.”

“서류?”

“품질 증명서.”

“그건 되어 있네.”

“CFF 수출 증명서와 각종 인증 서류는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신뢰성 확보가 제일 먼저 이루어져야겠죠.”

“아…. 음. 일이 많구만.”

“그렇죠. 그래도 CFF(국제 통화 기금의 보상 융자 제도)만 있어도 업체를 선정할 때 유리하다고 합니다.”

“아무튼, 일정 인증 서류는 교수님이 어느 정도 준비되어 있으니 수출과 관련된 것만 받으면 되겠네요.”

“음. 고맙네.”

여기까지 이야기한 나는 다음을 논의해야 했다.

단기간에 해내려면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사람 모두가 알아야 하니까.

시간을 줄이기 위해서는 많은 논의를 거쳐야 했다.

“현지에서 잘 팔린다면 온라인 판매도 준비해야 합니다. 미리미리 하는 거죠.”

“음. 거기까지?”

“네. 결국은 인프라가 구축될 수밖에 없으니까요. 우리 한국을 보면 아시잖아요.”

“그건 그렇지.”

“물론 이건 현지 시장에서 잘 팔린다는 가정하에 이야기하는 겁니다.”

그때 대학원생 한 명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건 그때 논의하면 되는 거 아닌가?”

나는 그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왜 그러냐는 듯한 얼굴.

“우리가 잘 팔릴 거라고 확신도 못 하면서 누구에게 판매하면 좋을까요. 그런 식이면 누구도 설득할 수 없습니다. 적어도 우리가 최고라는 마음을 가지면 좋겠습니다. 여기 있는 여러분이 만든 거잖아요.”

“어? 난 우리가 최고가 아니라고 말한 게 아닌데?”

“질문의 기저에 깔려 있었습니다. 이게 과연 잘 팔릴까? 라고. 혹여나 거래처 앞에서 그런 말실수는 안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한 겁니다.”

“아…. 그렇네.”

내 말에 뭔가 깨달았다는 듯이 대학원생의 눈이 커졌다.

교수도 내 말에 공감하는지 대학원생을 타박했다.

“이놈이! 당연히 우리 제품이 최고지! 잘 팔기 위해서 하는 건데 안 팔릴 생각을 하냐!”

“흠흠. 전 현실주의자라.”

“비관주의가 아니라?”

나는 그 모습에 살며시 미소가 흘러나왔다.

“목표라는 건 약간 낙관적으로 생각하면 좋지 않을까요? 물론 그로 가는 과정은 구체적이고 치열하게 고민해야 하지만요.”

우리는 화기애애하게 회의를 진행했다.

앞으로 어떤 목표를 이룰지 모르지만, 그로 가는 과정은 즐거울 것이고 좋은 경험이 될 거다.

시하가 배웠던 교육.

나 역시도 모범을 보여야 하지 않겠나.

그 모든 과정을 볼 수 없더라도 몸에 배어 나오게 되어 있다.

대학생원이 속으로 생각했던 게 자신도 모르게 질문으로 나온 것처럼.

***

시간이 흘렀다.

우리는 기본적인 비즈니스 에티켓을 배우면서 서류 준비를 착착 진행했다.

교수의 짬밥도 무시할 수 없는지 살롱 전문 유통업체를 물고 왔다.

그 업자는 프랑스 물품을 수입해서 팔고 있었는데 한국에 지대한 관심을 가졌다.

베트남 현지에서 미팅을 잡아야 하나 싶었지만 그쪽에서 직접 날아왔다.

한국 제품 중에 수입할 것을 직접 고르기 위해.

살롱에 필요한 것은 스프레이뿐만이 아니니까.

나는 교수님을 보았다.

“어떻게 잡은 거예요?”

“음. 사실 프랑스 쪽에 친구가 있네. 우연히 그쪽이랑 연결돼서 알게 되었지. 아, 이거다 싶어서 원래 제품을 넣어보려던 대기업 쪽이랑 같이 소개해 주면 되겠다 싶었던 거야.”

“대기업은 왜요?”

“내 학생들 취업시키려면 관계가 긴밀해야 하거든. 이걸로 빚 한 번 진 거지.”

“아하. 그렇다고 막 취업시켜 주는 건 아니지 않아요?”

“그렇긴 하지만 그쪽에서 함께 연구하자는 제안이 오기도 하니까. 그게 내 밑에서 생활하는데 꽤 큰 경력이 되거든. 괜히 석사 따면 그걸 경력으로 쳐주는 게 아니네.”

“그렇구나.”

오상환 교수도 그렇고 정용수 교수도 그렇고 교수라는 직업도 은근 영업을 해야 하나 보다.

대학원을 갈 거면 그 교수가 어떤 연구를 하는지 꼭 알아야 한다던데…….

‘인기 있는 교수는 뭘 해도 다르긴 하구나.’

이런 교수님이 전국에 많지 않을 것 같다.

능력 있는 사람.

“그런데 연구과제가 오면 그 결과를 속이는 경우도 있어요?”

“있지. 재밌는 거 알려줄까?”

“뭔데요?”

“모 대학교에 방사능 연구하는 교수가 있는데 외국연구소에서 한 물질을 보냈어. 이게 실험을 하면 그 물질이 빛이 나야 하는 거야.”

“네.”

“근데 말이야. 막상 실험하니까 빛이 안 나는 거야. 그래서 어떻게 한 줄 아나?”

“어떻게 했는데요?”

“핸드폰 플래시로 물질을 비춰서 빛이 나게 영상을 찍은 거지. 실험 잘됐다면서 말이야.”

“네?!”

“아주 사기꾼이지.”

“그래도 돼요?”

“당연히 안 되는데 이게 안 걸리네?”

이런 현실은 알고 싶지 않았다.

논문에 거짓도 많다는 말 아닌가?

아, 하긴 과학이라는 게 안 맞는 것도 많긴 하다.

천동설과 지동설 같은 경우지.

근데 저건 사기 아니야? 아니, 빛이 나야 하는 건 맞긴 하는데…….

“언젠가 걸리면 큰코다칠 거다. 분명.”

“하하. 과연 걸릴까요?”

“글쎄. 그건 모르지.”

“교수님이 신고하면?”

“딱히 그러고 싶지는 않아. 아니, 애초에 엮이고 싶지 않다고 하는 게 정확하겠네. 그게 맞든 안 맞든. 피곤해지거든.”

“그렇겠네요.”

“도착했다.”

어느새 우리는 조용한 카페에 왔다.

안으로 들어가자 이국적인 외모의 여성이 앉아 있었다.

한눈에 알아보았다.

이 여성이 이번에 거래하는 바이어라는 걸.

“교수님. 여성이 먼저 손을 내밀면 악수해야 해요. 먼저 목례를 하면 목례로 답해야 하고.”

“흠흠. 나도 아네. 여기 와서 몇 번이나 들었잖나.”

“그럼요. 그럼요.”

우리는 그녀에게 다가가서 인사를 나누었다.

「반갑습니다. 이쪽은 정용수 교수님입니다. 저는 이시혁이라고 하고요. 통역사로 왔습니다.」

「네. 저는 응우옌 티 하잉입니다. 하잉이라고 불러주세요.」

「네. 하잉 씨. 살롱 제품을 전문적으로 수입하셔서 그런지 머리 스타일이 되게 세련되시네요.」

「후후. 고마워요.」

거래할 때 딱딱한 업무 이야기를 먼저 꺼내기보다는 이렇게 친밀하게 관계를 구축하는 게 더 좋다.

내가 교수님에게 눈짓하자.

“흠흠. 정말 아름다우십니다.”

아, 교수님. 그건 좀…….

아무리 생각이 안 나도 그렇지. 갑자기 돌직구 뭐냐고.

어쩔 수 없이 나는 다른 이야기로 통역해야 했다.

짧게 말했으니.

「식사는 하셨습니까?」

그렇게 계약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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