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화
토끼는 집으로 돌아와 구체적으로 목표를 세우기 시작했습니다.
하루에 수영 100번 하기.
밥도 6끼 먹기.
처음에는 수영을 10번만 해도 지쳤습니다.
하지만 차근차근 목표를 채워 나가도록 열심히 노력해서 50번 하기에 성공했습니다.
“아. 너무 힘들다. 조금 쉴까? 아니야. 딱 한 번만 더 하자.”
너무 힘든 날에는 그냥 쉬지 않고 한 번이라도 했습니다.
그리고 한 달 후.
토끼와 거북이의 대결이 시작됐습니다.
거북이는 자신만만하게 말했습니다.
“겨우 한 달 만에 날 이길 거라고? 하하. 그게 될 리가 없지.”
토끼는 거북이의 말을 듣지 않고 오로지 자신에게 집중했어요.
“절대지지 않아. 믿어라. 지금까지 해 온걸. 이 감각을 믿어라.”
거북이 그걸 보며 피식 웃었습니다.
자신의 승리를 확신했거든요.
그리고 시합이 시작됐습니다.
토끼와 거북이가 동시에 출발했어요. 먼저 빠르게 치고 나간 건 거북이.
토끼는 그걸 보며 묵묵히 팔을 저었습니다.
“이기기 위해서는 체력을 아껴야 한다. 따라붙어라.”
토끼는 거북이 뒤를 바짝 붙어서 수영을 했습니다.
앞에서 수영하고 있으면 뒤에 따라오는 사람이 편해지거든요.
토끼는 거북이를 이기기 위해 모든 방안을 고민하고 생각했던 겁니다.
이것이 바로 구체적인 목표예요!
거북이는 그것도 모르고 신나게 수영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목표지점인 바위가 눈앞에 보였을 때 승리를 확신했죠.
“자! 이렇게 내가 이겼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뒤에서 토끼가 지금까지 모아둔 모든 힘을 썼습니다. 빠르게 치고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걸 몰랐던 거북은 자신의 앞으로 나오는 토끼를 보고 당황했어요.
“어? 어?! 언제 여기까지 따라온 거야?! 뭐야, 그 체력은?!”
“체력이 아니야.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야.”
토끼는 이 순간만 지나면 쓰러져도 좋다는 생각으로 수영을 했습니다.
그리고 손이 바위에 닿았습니다.
토끼가 바위에 올라와서 하늘을 향해 소리를 질렀습니다.
“이겼다! 이겼어! 내가 해냈어!”
토끼는 거북이에게 이긴 것보다도 자기 자신을 이긴 것이 더더욱 기뻤습니다.
정말로 불가능할 것 같았던 승리를 거머쥐었거든요.
토끼가 한 일은 구체적인 목표를 세우고, 방법을 떠올리며, 자신을 믿는 것이었습니다.
승리가 값진 것은 남을 이겨서가 아니라 스스로를 이겨냈기 때문입니다.
토끼가 허탈해 보이는 거북이에게 말했습니다.
“넌 내게 진 게 아니야. 넌 너에게 진 거야.”
방심이 너의 패배를 불렀어. 그러니…….
“네가 가라. 하와이!”
“안 돼~!”
그렇게 거북이는 광안리 해수욕장을 떠나서 하와이로 가게 됩니다.
토끼는 지금 겪은 경험을 소중히 간직하며 매일매일 승리하는 하루를 살아갑니다. 끝.
선생님이 스케치북을 덮자 하나가 손을 들었다.
“선생님. 거부기는 하와이에서 모해?”
“거북이도 자신의 패배를 반성해서 하와이에서 잘나가는 수영선수가 돼요.”
“정말?”
“응. 정말이지.”
“와. 거북이도 잘됐네.”
“그럼. 그럼. 토끼가 했던 것처럼 하면 뭐든 다 할 수 있어.”
“와. 하나는 아이돌 할래.”
“응. 아이돌 하려면 노래 연습해야겠지?”
“하나 노래 교실 가. 헤헤.”
선생님이 그런 하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오늘 이 이야기를 들려준 이유는 아이들이 이루고 싶은 게 있으면 어떻게 하는지 방법을 알려준 거다.
목표를 세우면 방법을 떠올린다.
그걸 실행하고 조금이라도 포기하지 않는 습관을 기른다.
하루에 단 한 걸음이라도 걸어본다.
그것이 목표를 이루는 단 한 걸음의 습관으로 자리 잡는다.
오늘 늦었다고 운동을 한 개라도 안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자. 그럼 다들 뭔가 이건 해보고 싶다 하는 걸 말해 보세요. 구체적인 방법도 함께 떠올려 볼게요.”
아이들이 한 번 생각해 보게 하는 것.
지금은 떠올리지 못할지라도 해 보는 게 중요했다.
먼저 입을 연 건 승준이었다.
“나는 유에포 슛을 잘하고 싶어. 그래서 주말에 꼭 축구 할 거야.”
“몇 시간이요?”
“선생님. 사커는 당연히 90분이요.”
“어? 그렇구나. 미안해. 선생님이 90분인 걸 몰랐네.”
설마 저렇게 구체적인 수치가 나올 줄은 몰랐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썬더 쓰리 동호회 만들어 쓰니까. 사커 훈련은 시혀기 형아 말대로 하면 돼요. 그렇게 하면 유에포 슛할 수 있어.”
“상당히 구체적이구나?”
“응!”
동호회까지 만들어 체계적인 훈련을 한다는 이야기까지 흘러나올 줄 몰랐다.
어? 이게 아닌데? 내가 좀 더 ‘이렇게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가르쳐줘야 하는데?
하지만 뭔가 어그러졌다.
그다음에 나선 건 종수.
“난 집에서 공부해요. 좋은 학교 가려면 미리미리 잘해야 한대요. 하루에 한 권씩 꼭 책 읽어요. 엄마가 읽어주지만. 간단한 건 읽을 수 있어요. 그리고.”
종수 어머님! 조기교육 너무 많이 하시는 거 아닙니까.
선생님과 예상과 다르게 흘러가지 않자 대상을 바꿨다.
“시하야. 시하는 뭐 목표 같은 거 있어?”
“아아! 형아! 시하. 레드 형아 대.”
“아~ 멋진 형아가 되고 싶구나. 역시 시하라면 그렇게 말할 줄 알았어. 그럼 멋진 형아가 되려면 어떤 방법이 있을까?”
시하가 검지로 관자놀이를 짚으며 고민하기 시작했다.
고민. 고민.
시간이 많이 흐르길래 선생님이.
“시하야. 선생님이 좀 도와줄까?”
“아냐. 시하 할 수 이써. 미더라. 미더라. 토끼 그래써. 미더라.”
“어. 그래. 토끼가 그랬지. 믿어라. 그래도 도움받는 게 좋지 않을까?”
“아냐. 시하 할 수 이써.”
“어. 그래.”
세월아. 네월아.
다른 아이들이 자기가 세운 목표를 말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시하가 뭔가 떠올렸는지 자세를 풀었다.
“오! 시하야. 이제 생각났어?”
“아아. 시하. 해.”
“응? 뭘 하는데?”
“시하. 형아. 잘해써. 잘해써. 해. 쓰담쓰담 해.”
“응?”
“시하 형아 대.”
시혁 씨. 시하에게 맨날 너무 잘했다고만 해 주는 거 아닙니까?!
뭔가 오랜만에 교훈을 주는 동화를 만들었는데 생각대로 통하지 않는 아이들이었다.
하지만 선생님의 교육은 아이들의 가슴속에 남겨져 있다.
***
어린이집으로 시하를 데리러 갔는데 오늘따라 기분이 싱숭생숭하다.
뭔가 새로운 일을 하게 되어서일까?
안에서는 떠드는 소리가 활기차다.
마치 저 재잘거림이 평소와 다르게 들떠있는 기분인 건 착각일지도 모른다.
신발장 앞에 서서 시하를 불렀다.
“시하야. 형 왔어.”
“형아!!”
여느 때처럼 시하가 도도도 달려와 내 품에 안긴다.
이렇게 몽글한 느낌을 받을 때면 오늘 일과가 끝났다는 걸 알린다.
아버지들은 늘 이런 느낌을 받는 것일까?
자식들의 환한 얼굴을 보며 ‘퇴근을 했구나’라고 실감하며 품에 안기는 아들의 단단한 손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딸아이는 아들보다 여려서 다른 느낌일지도.
“시혀기 오빠.”
“응?”
“나도!”
어느새 하나가 와서 손을 벌린다.
하나를 안으니 또 시하랑 다른 느낌이 든다.
그래. 이 느낌. 양쪽 팔이 떨어질 것 같다.
적당히 두둥실 태우고 아래로 놓아주자.
“형아.”
“응?”
시하가 손을 뻗어서 내 앞머리를 매만지며 아래로 쓰다듬는다.
“잘해써. 잘해써.”
“하하. 뭐야, 그게. 갑자기?”
“시하. 형아 대. 형아 가타.”
“설마 형아처럼 하는 거야?”
“아아.”
갑자기 왜 이러는지 모르겠지만 기분이 좋다.
이런 기회는 쉽게 오는 게 아니지.
나는 시하의 말랑한 볼에 얼굴을 비볐다.
“시하야. 너무 귀여워.”
“형아. 기여버.”
“시하는 최고야.”
“형아. 체고야.”
이 정도면 거의 복붙 수준인데? 좀 더 해볼까?
나는 시하와 하나를 아래로 놓아주며.
“시하야. 오늘 수고했어.”
“형아. 수고해~”
“아니. 그렇게 말하면 다른 뜻인데?”
“아? 달라?”
“응…….”
그만 놀고 시하랑 집으로 가야겠다.
자리에서 일어나자 선생님이 달려오셨다.
“시혁 씨 오셨어요? 자. 시하야. 선생님이 가방 챙겼어.”
“고마어요~”
“큭큭. 그래. 이제 요 잘 붙이네?”
“시하. 잘해. 시하 형아 대.”
“그래.”
나는 아까부터 이게 무슨 말인지 싶어서 선생님에게 물어보았다.
“갑자기 시하가 왜 이러죠?”
“사실 오늘 구체적인 목표에 대한 재미난 이야기를 해줬거든요. 그래서 애들이 다들 하고 싶은 목표를 세워서 행동하는 중이에요.”
“아, 그래서.”
“시하는 형아가 되고 싶다던데요.”
“네. 알고 있어요. 시하가 자주 말하는 이야긴데요.”
“아, 그렇구나. 하긴 저도 시혁 씨 같은 오빠가 있으면 오빠처럼 될래! 했을지도 몰라요.”
시하가 선생님 말씀을 듣더니 화들짝 놀라며 내 다리를 찰싹 끌어안았다.
“아냐. 형아. 내 꼬. 시하 꺼야.”
“크으. 그래. 형아는 시하 꺼야. 선생님이 잠깐 상상만 했어.”
“아? 상상?”
“응. 상상만. 선생님이 이야기 만든 거랑 같은 거지.”
“아아.”
고개는 끄덕였지만 내 다리는 놓지 않고 있다.
아직 선생님을 향한 의심을 놓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그때 하나가 말했다.
“아! 나도 시혀기 오빠가 내 오빠여쓰면 조케써!”
“뭐?!”
뒤늦게 시하와 나를 보러오던 승준이 큰 충격을 받았다는 듯이 멈칫했다.
다리에 매미처럼 붙은 시하는 이제 다리까지 휘감은 상태.
“그럼 나는?”
“응? 오빠도 내 오빠고 시혀기 오빠도 하나 오빠.”
“아냐. 시하 형아야.”
하나가 헤헤 웃으며 나에게 말했다.
“시혀기 오빠. 하나 노래 배우고 이써. 들어볼래? 하나 아이돌 될 수 이쓸 만큼 열심히 해써.”
“아, 그래?”
“응!”
“그럼 시하랑 같이 들을게.”
“응!”
하나가 노래를 부른다.
꾀꼬리 같은 음색이 어린이집에 울려 퍼진다.
열심히 부르는 모습이 예뻤다.
노래 교실에 다니더니 조금 성장한 것 같기도 하고 그 목표에 성큼 다가가는 것 같기도 했다.
“시하야. 형아는 이럴 때 잘한다고 박수.”
“아?”
내가 노래 박자에 맞춰서 손뼉을 치자 시하도 따라 했다.
차라리 시하가 하나처럼 아이돌이나 배우 같은 걸 말했으면 열심히 도와줬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형아가 되고 싶다고 하니 가르쳐줘야겠지.
내가 바르게 행동해야 시하도 바르게 행동할 거다.
날 보고 배우는 시하 앞에서 나는 언제까지 착한 형아로 남아있을까?
나중에 보여주지 않는 일면을 보고 실망하게 될까?
괜한 그런 걱정이 되기도 한다.
나라고 표백제처럼 막 깨끗하고 그런 건 아니니까.
어쩌면 아이는 어른을 또 한 번 키우는 걸지도 모른다.
“시하야.”
“아?”
“만약에 형아가 잘못하고 있으면 혼내도 돼. 알았지?”
“아냐. 레드 형아야. 형아 잘해. 잘해써.”
“하하하.”
아무래도 내 심성보다는 뭔가 다 잘하는 멋진 모습을 따라 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도 나는 시하의 교재가 되어서 허리를 반듯하게 펴게 된다.
“아! 시혀기 오빠. 안 듣고 있지!”
“아니야. 다 들었어. 하나가 완전 달라졌는데? 선생님에게 이 부분은 배에 힘주고 불러야 한다고 하지 않았어? 다 티 났어.”
“와! 어떻게 알아써? 대다내!”
흠흠. 하나야. 배에 힘 줄 때 손을 얹는 버릇이 있더라. 높은음도 목에서 나오고.
“열심히 하면 정말 아이돌 금방 되겠다. 파이팅.”
나는 하나의 머리를 슥슥 쓰다듬었다.
시하도 그런 나를 따라서 하나의 머리를 쓰담쓰담했다.
“하나. 하팅!”
“응! 고마어. 시하야.”
승준도 질 수 없는지 같이 따라 했다.
우리 셋의 쓰다듬음.
이게 대체 무슨 광경인지 모르겠다.
“아 진짜! 하나 머리 망가져!”
“하하하. 망가져라!”
“개차나. 개차나.”
“으음…….”
다들 손을 뗐다.
시하가 하나의 헝클어진 머리를 조심스럽게 손가락으로 빗겨주었다.
“이케. 이케.”
그때 뒤에서 하나보다 배에 힘준 목소리가 들렸다.
“하나야! 썸은 안 된다!”
하나와 시하는 그게 무슨 소리인지 몰라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냥 아이들이 친하게 지내면 저럴 수 있지. 뭘 또 썸까지…….
그렇게 생각하며 뒤를 돌아보았다.
오상환이 그 어떤 때보다 간절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다른 아이들의 목표가 뭔지 몰라도 오늘 오상환 교수의 목표는 정해진 것 같다.
하나의 썸 반대!
뭐 그건 착각이지만 말이다.
“아버님. 진정하세요.”
오상환이 나를 보며.
“누가 아버님이야!”
아, 이게 아닌데?
시하가 쪼르르 앞에 와서.
“아버님! 진정!”
오상환이 멍한 표정이 되더니 이렇게 중얼거렸다.
“나, 나는 허락 못 한다. 손은 못 건네준다.”
거참. 너무 멀리 가시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