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4화 (74/500)

74화

한 아이가 길가 의자에서 곰 인형을 발견했습니다.

누군가 잃어버린 곰 인형이었던 거죠.

아이가 인형을 들고 휙 전봇대 밑에 버렸습니다.

“에이. 더러워!”

아이는 손을 탁탁 털더니 촐랑대며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남아 있던 곰 인형의 눈이 붉은색으로 반짝 빛났습니다.

“왜 날 주인에게 찾아주지 않는 거야! 너도 당해 봐라!”

그날 밤, 아이는 잠이 들었습니다.

나중에 깨어나 보니 곰 인형이 되어 있었습니다.

“으아아앙! 왜 내가 곰 인형이 되었어?!”

곰 인형이 된 아이가 슬퍼서 엉엉 울었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원래 몸으로 돌아갈까?

그런 생각만 가득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머릿속에서 어떤 목소리가 들린 것이.

“네가 잃어버린 장난감을 되돌려주면 넌 원래 몸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야.”

“누구야! 누가 이런 거야! 어서 빨리 몸을 돌려줘!”

“미안하지만 그건 안 돼.”

목소리는 더는 들리지 않았습니다.

곰 인형이 된 아이가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봐도 소용없었습니다.

소리가 시끄러웠는지 근처에 있던 로봇이 말을 걸었습니다.

“조용히 좀 해!”

“넌 누구야!”

“난 로봇이야. 곰 인형아.”

“뭐? 로봇이라고?”

“그래. 지금 여기를 빠져나갈 방법을 궁리 중이니까 조용히 하라고.”

“여기가 어딘데?”

“여긴 감옥이야. 잃어버린 인형들이 오는 곳이지!”

곰 인형이 주변을 둘러보니 장난감이 꽤 있었습니다.

로봇, 말 타는 레고 인간, 공룡, 스네이크 척척이.

“헐? 여기 철장이 있네?”

“맞아. 우리는 여기서 탈출해서 원래 주인에게 돌아갈 거야.”

“그래? 그러면 빠져나가는 방법이 있고?”

“아니. 잘 모르겠어. 대체 어떻게 나가야 할까? 고민 중이야.”

다른 장난감들도 난감해했어요.

왜냐면 똑똑한 장난감들이 없기 때문이었어요.

이 장난감들이 늘 생각하는 건 주인과 함께 재밌게, 신나게 놀고 싶다는 마음뿐이었으니까요.

오로지 곰 인형이 된 아이만이 이들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곰 인형이 말했어요.

“좋아. 그럼 내가 작전을 세워줄게. 너희들은 거기에 따르기만 해!”

먼저 주변을 돌아봤습니다.

이 철장에 문이 없었어요.

“여긴 문이 없으니 다른 장치가 있을 거야. 혹시 뭐 본 거 없어?”

그때 말 타는 레고 사람이 말했습니다.

“본 적 있어! 바로 저 버튼을 클릭하니 철장이 내려왔어!”

아이가 소리쳤습니다.

“그래! 그거야! 저 버튼을 누르면 분명 다시 철장이 올라올 거야!”

“하지만 어떻게 열 건데?”

“그건 간단해! 여기 이 철장을 빠져나가서 버튼을 누를 수 있는 유일한 장난감이 있잖아!”

아이는 스네이크 척척이를 가리켰어요.

지금은 공 모양이 되어 있지만, 사실은 뱀처럼 자유롭게 변할 수 있는 장난감이었어요.

“스네이크가 뱀 모양으로 변해서 여기를 나가면 돼! 너의 키로 버튼이 닿게 될 거야!”

그 말에 스네이크 척척이가 몸을 일자로 길게 변신시켰어요.

철장을 쏙 빠져나가며 그대로 통과했습니다.

버튼도 쉽게 눌렀고요.

쿠궁.

철장이 위로 올라가서 인형들이 감옥에서 탈출할 수 있었어요.

“자, 다들 나가자!”

그때였어요.

감옥에서 사이렌이 울렸습니다.

탈출이 들킨 거예요.

에에에에에엥. 에에에에에엥.

아이는 소리쳤어요.

“빨리 저기로 도망가!”

다들 황급히 도망가기 시작했습니다.

제일 먼저 앞서나간 것은 말을 탄 레고 인간.

다그닥. 다그닥.

그 뒤를 따라가는 건 공룡이었어요.

아이도 빨리 아장아장 발걸음을 놀렸습니다.

하지만 스네이크 척척이는 몸에 각이 져 있어서 움직임이 느렸어요.

아이는 할 수 없이 스네이크 척척이의 몸을 들고 뛰었습니다.

레고 인간이 말했어요.

“큰일이야. 다리가 끊겨 있어!”

아이는 방법이 없나 주변을 두리번거렸어요.

그리고 또다시 버튼을 발견할 수 있었어요.

하지만 저 버튼을 누르려면 다리를 건너야 했습니다.

“좋은 생각이 났어. 로봇! 너의 주먹을 발사하면 저 버튼을 맞출 수 있을 거야.”

로봇이 고개를 끄덕이며 주먹을 발사했어요.

투웅!

주먹이 나가며 버튼을 누르자 바닥에서 다리의 나머지 부분이 올라왔습니다.

“다시 뛰어!”

감옥을 거의 다 나왔지만, 또 한 번의 장애가 나타났습니다.

거대한 벽과 함께 감옥 지킴이가 여러 명 나타난 거죠.

“이놈들! 여기는 못 지나간다.”

아이는 다시 한번 생각하다가 공룡을 바라보았습니다.

“공룡! 너 티라노사우루스지?”

“맞아!”

“그럼 힘이 엄청 세겠네! 저 녀석들과 싸워!”

“알겠어!”

공룡이 엄청난 힘으로 감옥 지킴이들을 처치했어요.

꼬리로 휘둘러 때리기도 하고, 손으로 들어서 날려버리기도 했어요.

옆에서 레고 인형이 물었어요.

“그런데 저 벽을 어떻게 넘을 거야?”

“나에게 방법이 있어.”

아이는 자신의 몸에서 실을 뽁 하고 뽑았어요.

“이 실을 이용하면 돼. 하지만 저 벽까지 어떻게 실을 던지지?”

그때 레고 인간이 크게 웃으며 말했어요.

“걱정 마. 친구. 나는 카우보이라고! 줄 던지기는 자신 있어.”

레고 인형이 클로브 히치 매듭법을 사용했어요.

이건 TMI라고? 아이들이 못 알아듣는다고?

그럼 다시 하지 뭐.

레고 인형이 둥글게 줄을 만들었어요.

휙휙 돌려서 벽에 튀어나온 부분에 고리를 걸었습니다.

절대 풀리지 않는 것을 확인한 뒤에 다 같이 위로 올라갔습니다.

뒤늦게 공룡이 그 뒤를 따라와서 탈출해 성공했어요.

“이제 너희들이 원하는 주인집으로 가자! 혹시 주소 알고 있어?”

아이가 말하자 다들 주소를 말했어요.

신기하게도 다들 주소가 똑같았습니다.

“너희들 전부 같은 주인이었던 거야?”

“응. 우리 주인이 맨날 자주 잃어버리거든.”

“정말 자주 잃어버리는 주인이네. 그래도 그 주인에게 가고 싶어?”

“응. 우리는 주인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

“좋아. 같이 가자.”

장난감들은 아이의 집이 있는 곳으로 갔어요.

문 앞에 선 장난감들이 두근두근했습니다.

“그럼 이제 벨을 누른다?”

“그래.”

로봇의 주먹이 발사되어 벨을 꾸욱 눌렀습니다.

띵동.

아이가 로봇의 주먹을 다시 끼워주고 몸을 숨겼습니다.

집에서 나온 사람은 어른이었어요.

“아니, 이 장난감은! 내가 어릴 때 잃어버린 장난감이랑 똑같네! 와! 반갑다!”

그랬습니다.

장난감을 잃어버린 주인은 이미 어린 시절을 지나 어른이 되어 버렸어요.

아이는 그 모습을 보고 슬퍼졌습니다.

이제 어른은 장난감을 가지고 놀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어떡하지? 이대로면 다시 장난감이 감옥으로 가는 거 아니야?”

그때였어요.

문에서 한 명의 여자아이가 쏙 나와서 어른의 다리에 매달렸습니다.

“아빠. 이 장난감 뭐예요?”

“아빠가 어릴 때 갖고 놀았던 추억의 장난감이야.”

“와! 이거 저 갖고 놀아도 돼요!”

“그러렴. 아무래도 누가 여기에 버린 건가 봐.”

“신난다!”

여자아이가 장난감들을 끌어안으며 행복해했습니다.

주인을 본 장난감들도 기뻐했습니다.

이제는 주인을 기뻐하게 할 수 없지만, 그의 자식을 기뻐하게 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아이는 잘됐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다행이야.”

그렇게 장난감들은 행복을 찾은 뒤, 아이 역시도 원래 몸으로 돌아왔어요.

아이는 벌떡 일어나 자신을 몸을 봤어요.

이제 곰 인형이 아니게 된 거였어요.

“돌아왔다!”

아이는 벌떡 일어나 집을 나섰어요.

전봇대 아래에 있던 곰 인형을 집어 들었습니다.

“내가 주인을 찾아줄게.”

아이는 곰 인형을 들고 옆 공원으로 주인을 찾았습니다.

거기에 한 여자아이가 곰 인형을 부르고 있었어요.

“이거 네 거야?”

“맞아! 이거 내 거야!”

아이는 여자아이를 보며 조금 놀랐습니다.

꿈에서 봤던 여자아이였어요!

“나랑 같이 놀래?”

“좋아!”

두 아이는 그렇게 신나게 놀게 되었습니다.

주인을 찾은 곰 인형과 함께.

[Behind]

“그런데 주인이 어른이 되었는데 어떻게 그 주소가 똑같을 수 있지?”

아이가 하나의 의문을 가졌습니다.

그 이유는 간단한 거였습니다.

그 주인의 아버지가 건물주였으니까!

건물을 물려받은 거였습니다!

“이건 빼는 게 낫지 않아?! 아무리 봐도 이상하잖아!”

나는 어이없어하며 서수현과 백동환을 바라보았다.

“오빠. 여기 숨겨진 설정이 중요해요. 사실 이 꿈에 나온 주소가 여자아이 집이니까요. 이 아이는 여자아이가 그 집에 들어가는 걸 본 적이 있고요.”

“그 설정도 이상하잖아?!”

“결국, 이 ‘장난감이 된 썰 품ㅋㅋㅋ’는 여자아이와 함께 사귀게 됐다는 게 포인트라고요. 마지막에 결혼도 하는 거로 결말이 나잖아요.”

“아니, 아니. 이상하잖아. 이거…. 나만 이상한 거야? 동환아 그래?”

백동환이 킥킥 웃으며 말했다.

“재밌잖아요.”

“재밌으면 되는 게 아니잖아…….”

저렇게 되면 ‘갓물주 외동딸 꼬신 썰 품ㅋㅋㅋ’가 되지 않나?

이게 무슨 동화야!

나의 반대로 이 부분은 비하인드 영상으로 남기기로 했다.

공연에서는 안 하고.

***

-공연이 끝난 후.

나는 시하에게 곰돌이를 안겨 주었다.

“시하야. 이제 곰돌이 팔이 다 나았어.”

“고옴!”

“응. 좋아?”

“아아.”

“시하가 좋으니까 형아도 좋아.”

“형아. 조아.”

나는 시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시하가 곰돌이의 팔을 들어보는 모습이 귀엽다.

이 곰돌이도 시하가 좋아하는 걸 기뻐할까?

그럴 리는 없겠지만 만약 곰에도 영혼이란 게 담겨 있다면 많이 기뻐할 것이다.

“또 다치면 치료해 주자. 알았지?”

“아아.”

시하는 곰의 손을 잡고 빙글빙글 돌았다.

곰의 다리가 부웅 떴다.

같이 춤도 추네.

어쩐지 곰돌이의 한쪽 팔이 찢어진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이제는 새 천으로 기웠으니 문제는 없겠지만.

“시하야.”

“아?”

“장난감은 다쳐도 넌 다치면 안 된다? 알겠지?”

“아아.”

정말 알아들었는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자주 다치고 아픈 게 어린이겠지만.

시하는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백동환과 서수현을 보았다.

“오늘 고마웠어. 성우 역도 해주고 OST도 깔아주고. 수현이는 노래 정말 잘 부르던데?”

“형님. 오랜만에 봉사 활동한 거 같아 재밌었습니다.”

“오빠가 칭찬을?”

둘의 다른 반응에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흠흠. 그럼 이만 갈까?”

하지만 가려면 좀 더 기다려야 할지 모르겠다.

다들 고쳐진 장난감들을 보느라 정신없었으니까.

엄마들이 곤란하다는 듯이 애들과 장난감을 떨어뜨려 놓았다.

장난감들도 아쉽겠지만 앞으로 함께 놀 날이 많겠지.

“시하야. 우리도 가자.”

“아아.”

시하가 얌전히 곰돌이를 장난감 상자 안에 넣었다.

“오늘도 그림 그릴 거야?”

“아아.”

“또 오늘 있었던 일 그리겠네?”

시하가 내 손을 꼬옥 잡고 말했다.

“곰! 내 꼬야!”

빨리 배우는 말에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아무래도 오늘 그림은 ‘곰! 내 꼬야!’가 주제가 될 것 같았다.

***

장난감 수리점 아저씨는 영상을 받았다.

어떤 영상이 찍혔는지 기대가 되었다.

이시혁의 말로는 꽤 재밌게 찍었다고 했다.

‘음음. 그 얼굴이 나왔으면 이번에 조회수 좀 나오려나?’

그런 생각을 하며 흐뭇하게 영상을 돌려보았다.

“오?!”

생각했던 것과 다른 재밌는 이야기의 구성.

설마 이런 영상을 찍을 줄은 몰랐다.

“이거 꽤 재미나구만.”

영상에서는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연극을 보고 있었다.

다들 재밌는지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이거, 이거. 영상 길이도 적당하고 좋은데?”

아무래도 수리비 이상을 얻은 뿌듯함이 느껴졌다.

애들에게 좋은 교훈을 주는 것 같아서 너무 좋았다.

“재밌네! 응?”

하지만 영상은 끝이 아니었다.

연극 때 찍기 전에 연습하던 영상이 하나 더 있었다.

“같은 걸 두 번 찍었나?”

그는 이번 영상도 궁금해서 지켜봤다.

중간중간에 실수하는 부분도 있고, TMI를 말하는 부분도 있었지만 이건 이것대로 또 재미가 있었다.

그런데…….

“응? 아니. 이게 무슨?”

마지막에 충격적인 설정인 비하인드 영상이 나오면서 멍하니 그 장면을 바라보았다.

과히 동심 브레이크라고 할 만했다.

“대체 이 시나리오를 누가 쓴 거야?”

이쯤 되면 시나리오를 쓴 사람이 궁금해지기 마련이었다.

그래서 그는 영화처럼 엔딩 크레딧을 넣는다는 핑계로 시혁에게 명단을 받았다.

[제목 : 장난감이 된 썰 품ㅋㅋㅋ]

[감독 : 캐논 카메라]

[편집 : 수리점 할아버지.]

[성우]

[아이, 곰 인형, 레고 인간 역 이시혁]

[로봇, 스네이크 척척이, 공룡, 주인 역 백동환]

[OST 가수, 내레이션, 여자아이 역 서수현]

[작가]

[어린이집 선생님 유다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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