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6화 (26/500)

26화

이모티콘.

한 번도 생각하지 못한 문제였다.

스마트폰이 발전하면서 이모티콘의 존재감이 가파르게 상승한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평소 생활의 익숙함 때문일까?

그쪽은 전혀 생각지 못했다.

“음. 이모티콘이라. 생각해 보지 못해서. 그게 그렇게 쉽게 되는 거야?”

백동환이 고개를 끄덕였다.

“형님도 이모티콘을 쓰셔서 알 겁니다. 이게 그림 24종이 필요하거든요”

“안 세어봐서 모르겠는데 한 그쯤 되는 거 같네.”

“그냥 정해진 규격으로 파일을 제출하면 심사를 보게 됩니다. 약 2주 정도 걸리는데 딱히 손해 보는 부분은 없을 겁니다. 안 되면 끝이니까요.”

“그래. 손해는 없겠네.”

그림만 잘 그렸다면 효율적인 자택 근무일 수도 있었다.

그렇다고 시하에게 노동을 시키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이미 그려져 있는 그림이라면 대충 심사를 넣을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버는 돈은 시하 통장에 넣어두는 거고?’

생각해 보면 나쁘지 않은 것 같았다.

“그런데 그쪽 바닥을 잘 아는 것 같다?”

“크흠. 영화 성우를 지망하긴 하지만 애니메이션 성우도 좋아하거든요. 그쪽에 관심이 있다 보니 여러 이야기를 들어요. 이모티콘이 꽤 괜찮은 사업이라 하더라고요.”

“그래?”

“네. 캐릭터 사업은 제가 알기로 단 한 번도 하락세였던 적이 없다고 들었어요. 물론 작가 스스로가 꾸준히 활동할 때의 이야기지만.”

“흐음.”

생각해 보면 캐릭터 사업의 장래가 어두웠던 적이 없던 것 같기도 했다.

다만 언제나 빛을 보는 건 소수였을 뿐이지.

그건 다른 직업도 마찬가지 아닐까?

하지만 이모티콘과 같은 캐릭터 사업이 확장되면서 빛을 보는 소수가 늘어난 것 같다.

“일단 생각해 볼게. 아직 시하의 그림이 24개가 되지 않으니까. 24개나 그릴지는 모르겠다.”

“원래 하나에 빠지면 그 캐릭터의 다양한 모습을 그릴걸요? 24개 넘게 그릴지 모르죠.”

“그런가?”

각티슈에 집착했던 시하를 떠올리니 정말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긴 지금 그린 팬아트랑 창작 그림도 죄다 펭귄이긴 하지.”

아기자기한 그림체도 딱 이모티콘 감이었다.

“형아.”

“응. 벌써 다 먹었어? 더 줄까?”

“아아.”

나는 시하에게 스파게티를 덜어주었다.

백동환이 말했다.

“아무튼, 한번 생각은 해보세요. 그냥 가계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 말한 거라서.”

“아, 고마워. 하하. 시하가 돈 버는 경험을 하는 것도 좋긴 하겠다.”

“시하가 방송 타면 진짜 시끄러워지겠네요.”

“그럴 일은 없을 테니까 괜찮아.”

“그럴 일이 발생하면 제가 때려드릴 테니 걱정 마세요.”

저 근육근육한 몸으로 때리면 몸이 남아나지 않을 것 같다.

우리는 그렇게 식사를 마치고 시하의 태블릿을 보았다.

저장된 파일을 천천히 넘겨 보며 나는 폴더 하나를 만들었다.

[페페 시리즈]

[들어 있는 파일 7개]

이 그림이 점점 늘어나게 되면 이모티콘으로 제출할 수 있겠지.

어쩌면 빛을 보지 못할 수도 있었다.

심사에 떨어질 수도 있었고.

하지만 돈도 들지 않는 도전이라는 의미에서 시하에게 좋은 교육이 될지도 모른다.

돈을 번다는 의미를 아직 이해하지 못할지도 모르겠지만.

‘여러 기회 같은 걸 만들어둬야지.’

나는 시하를 보았다.

“시하 그림을 사람들이 쓰면 엄청 좋겠네?”

“아아.”

“이 그림에는 이름을 붙이자. ‘페-하!’ 어때? 안녕하고 있는 모습이니까.”

“아아.”

옆에 있던 백동환이 말했다.

“형님. 페하는 폐하라고 하는 것 같아요. 왕을 말하는 것 같은? 그냥 안녕! 이게 좋지 않을까요?”

“그런가?”

나는 고민하다가 그냥 ‘페-하!’라고 저장했다.

바가지 머리를 한 이시혁.

나는 소신 있는 남자다.

다른 그림들도 컨셉이 확실해서 이름을 붙이기 쉬웠다.

[노나 자래~, 냠냠, 감사해요, 패대기]

이름을 붙여보고 나니 전부 시하가 경험했던 것이 그림에 담겨 있었다.

“시하야. 앞으로 많은 걸 경험하자.”

그림이 나에게 말해 준다.

많은 경험을 시켜 주라고.

시하는 자기가 아는 것만 그릴 수 있었다.

“아아. 형아.”

“그래. 그래.”

나는 시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

-월요일.

시하는 형아랑 집을 나섰다.

그런데 아침부터 누군가 싸우는 소리가 들렸다.

“집주인 아저씨네. 인사드리러 가지는 못하겠다…….”

형아가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시하가 그 소리를 들어보니.

“아니! 이 집은 개를 못 키우게 되어 있다니까요. 알아들어요? 개 짖는 소리 때문에 민폐예요. 민폐.”

“조용히 시킬게요.”

“개가 그렇게 사람 말을 잘 알아들으면 안 된다고 적어 놓지는 않았겠죠. 계약할 때 알았다고 하셨는데 이러면 곤란하지.”

“그럼 어떡해요.”

“어떡하긴 뭘 어떡해? 이번 주 안에 본가로 돌려보내세요. 여기저기 똥 싸고 그러면 주민에게도 민폐야.”

“네. 알겠습니다…….”

“거참. 아가씨 좋게 봤는데…. 이런 거로 얼굴 붉히지 맙시다.”

시하는 지금 무슨 대화가 오고갔는지 잘 이해를 못 했지만, 확실히 알아들은 건 ‘개’라는 부분이었다.

‘멍멍이.’

시하는 멍멍이를 책에서 본 적이 있었다.

펭귄만큼은 아니지만, 꽤 귀여운 동물이었던 걸로 기억하고 있었다.

아저씨가 머리 아프다는 듯이 내려오자 시하랑 눈이 마주쳤다.

시혁이 먼저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아, 안녕하세요. 애랑 같이 출근하시나 봐요?”

“아, 네. 어린이집 데려다주려고요.”

“하하. 아기를 보니까 스트레스 확 날아가네요. 안녕.”

“아녕.”

시혁이 말했다.

“시하야. 하세요도 해야지.”

“하세.”

아저씨가 웃었다.

“으하하. 아직 말을 잘못하는구만. 귀여워. 귀여워.”

“네. 지금 많이 늘어가고 있어요.”

“우리 아들도 저만한 시절이 있었는데. 요즘은 무뚝뚝하니 대화도 안 한다니까.”

보통 아빠와 아들 관계의 씁쓸함을 보였다.

아저씨가 말했다.

“그럼 어서 가요. 이거 아침부터 안 좋은 모습을 보였네.”

“네. 알겠습니다. 수고하세요. 시하야, 가자.”

“아아.”

시하는 걸으면서 ‘멍멍이’에 대해서 생각했다.

푹신푹신. 멍멍이.

몽글몽글. 멍멍이

슬쩍 본 멍멍이는 털이 많아서 귀여워 보였다.

계속 눈에 밟히는 강아지를 생각하며 하늘을 보았다.

멍-

시혁이 그런 시하를 보았다.

“시하야. 이제 가야지.”

“아아.”

시하는 이미 멍멍이와 노는 것에 빠져 있었기 때문에 정신이 없었다.

시혁이 그런 시하를 보며 안았다.

시혁으로서는 지금 빨리 볼일을 보고 등원 시켜야 했다.

“시하야. 미안하지만 빨리 갈게.”

“아아.”

시하는 시혁에게 안긴 채 바람을 맞았다.

풍경이 휙휙 지나가고 있었다.

‘강아지.’

시하는 강아지와 함께 달리면 이런 기분일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미 강아지에 마음이 빼앗긴 시하는 형아의 품에서 얼굴을 비볐다.

등에 매고 있던 펭귄 가방은 생각나지도 않았다.

“도착했다!”

어느새 시하와 시혁은 강인대학교 취업센터에 도착해 있었다.

여기 온 이유는 문도환에게 줄게 있어서였다.

“아아.”

“시하야. 이제 정신 차려. 아침이라 많이 피곤해서 그런 거야?”

“아아.”

“멍하네? 아니 평소에도 멍했나?”

“멍?”

시혁은 시하에게 멍멍이에 대한 상상력을 자극한 줄도 모르고 ‘멍’을 언급했다.

“아아!”

시하가 양팔을 번쩍 들었다.

“하하. 오늘따라 왜 이래. 가자 문도환 삼촌에게.”

“아아.”

취업센터 안으로 들어가자 문도환이 있었다.

아직 9시도 안 된 시간이었지만, 그는 일찍 출근해 있었다.

“도환이 형.”

“어? 이 시간에 웬일이야?”

“시하가 줄 게 있대요.”

“오. 그래? 시하야. 나에게 뭐 주려고?”

“아아. 따기.”

시하가 펭귄 가방을 바닥에 놓았다.

지퍼를 열더니 택수 할아버지의 딸기농장에서 사온 딸기를 꺼냈다.

플라스틱 포장이 조금 구겨진 것에 시하는 충격을 받았다.

“따기…. 아파.”

그 말에 시혁이 딸기를 보았다.

“응? 아니야. 딸기는 무사해. 시하야. 자, 봐봐.”

시혁의 손에서 딸기 포장이 무사히 제자리를 찾았다.

그 모습에 시하의 눈이 1mm 커졌다.

“형아!”

“응. 무사하지?”

“아아.”

문도환이 말했다.

“그래서 딸기는 언제 줄 건데?”

“기다려 보세요.”

시하가 문도환을 봤다.

“문도!”

문도환은 시하가 딸기를 주는 것보다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것에 감동했다.

“헐?! 시하가 내 이름을 불렀어?!”

시혁이 시하에게 말했다.

“시하야. 삼촌이라고 해야지. 아! 삼촌 발음이 애기한테는 어렵다고 했나?”

시하는 문도환을 불렀다.

“문도!”

문도환은 괜찮다는 듯이 말했다.

“외국이라고 생각하면 돼. 외국은 그냥 이름 부르잖아. 시혁아. 나 그 정도의 포용력은 가진 남자다.”

“문도.”

“그래. 시하야. 딸기 잘 먹을게.”

취업센터 사람들도 시하의 귀여움에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문도환이 말했다.

“시하야. 그거 알아? 문도라는 건 말이야. 롤에서 나온 캐릭터라고. 보여줄까?”

“아아?”

“잘 봐!”

“아, 형. 잠깐만…….”

문도 캐릭터가 기억난 시혁이 말리려고 했지만 이미 늦었다.

「문도오~ 가고 싶은 데로 간다!」

조금 무서울 수 있는 캐릭터가 시하의 눈앞에 나타났다.

시하는 깜짝 놀랐다.

목소리도 굵고 보라색 피부도 이상했다.

시하는 자신도 모르게 손을 휘둘렀다.

틱!

폰이 날아가며 그대로 땅에 떨어졌다.

문도환이 소리쳤다.

“악! 내 130만 원! 아직 약정이 20개월이나 남았는데!”

시혁이 쓴웃음을 지으며 시하를 안아 들었다.

시하는 시혁의 품에 파고들었다.

무섭게 생긴 캐릭터가 싫었다.

“문도 시러.”

문도환이 가슴 아픈 표정으로 폰을 들었다.

시하는 고개를 휙 하고 돌렸다.

“시하야. 실수했어도 도환이 형에게 죄송합니다라고 해야지.”

시하도 잘못했다는 것을 아는지 떠듬떠듬 말했다.

“문도. 제성. 하니다.”

“응. 괜찮아. 내가 너무 무서운 걸 보여준 게 죄지. 시하의 키가 작아서 기스는 안 났네.”

“아아. 문도.”

“그래. 문도! 괜찮다!”

시혁이 피식 웃으며 문도환에게 인사를 했다.

“형. 그럼 딸기 맛있게 드세요. 저희는 갈게요.”

“어. 그래. 수고해. 시하도 잘 가.”

시하는 손을 흔들었다.

“아녀~”

시하는 문도환과 헤어지고 어린이집으로 향했다.

어린이집에 도착하자 제일 먼저 반긴 것은 승준과 하나였다.

“시하야~”

“시하야~”

쌍둥이 둘이서 시하에게 찰싹 붙어서 볼을 비볐다.

시하는 시혁에게 인사도 하지 못하고 바로 방으로 끌려갔다.

시혁이 그런 시하를 보면서 외쳤다.

“시하야. 오늘도 재밌게 놀아.”

“아아.”

시하는 돌아보지도 못한 채 그렇게 대답했다.

***

-집으로 돌아가는 길.

시하가 오늘 하루 있었던 일을 나에게 종알종알 이야기하고 있었다.

물론 말보다는 몸으로 더 표현했지만.

“형아.”

“응.”

“슈슈슈. 부부부.”

“오! 그랬구나! 오늘도 재밌게 놀았나 보네?”

“아아.”

“오늘도 승준이하고 하나랑 놀았다고?”

“아아.”

“형아는 말이야. 번역을 엄청 열심히 했어. 시하에게 장난감 많이 사줘야지.”

“아아.”

“형아가 돈 많이 벌면 딸기도 많이 사줄게.”

“따기. 따기.”

“딸기 뚜왈기.”

시하와 함께 이야기하는 이 시간이 소중하다.

그 어떤 재미난 개그 프로그램보다 재밌었다.

시하는 알까?

내가 얼마나 이 시간이 즐거운지?

시하도 즐거워했으면 좋겠다.

그렇게 시하랑 이야기를 하며 근처 슈퍼를 지날 때쯤에 시하의 발걸음이 멈췄다.

“응? 시하야. 왜 그래?”

“형아.”

시하가 손가락으로 무언가를 가리켰다.

그곳에는 목걸이를 한 강아지가 슈퍼 주위를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어? 저 강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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