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장례가 끝나고.
집으로 들어온 우리를 반겨준 것은 차가운 바람이었다.
추운 겨울이 끝나지 않아서 생긴 추위인지.
아니면 두 사람이 비어서 생긴 먹먹함인지.
나는 잘 모르겠다.
그저 빈자리만 보여서 들어가기가 힘들었다.
시하는 그런 것이 없는지 신발장 앞에서 털썩 앉아서 나를 올려다보고 있다.
다리를 둥실둥실 흔드는 걸 보니 바라는 게 있어 보였다.
“신발 벗겨 달라고?”
“아아!”
“그래. 그래. 우리 시하 신발 벗고 들어가야지. 정말 똑똑한대?”
“아아. 형아.”
“응.”
내가 신발을 벗기자 시하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제 할 일을 하러 간다.
각 티슈를 하나 질질 끌고 오더니 거실 가운데 앉는다.
‘꼭 저렇게 거실 가운데 앉더라.’
슬슬 시동을 걸며 티슈를 뽑기 시작한다.
휙휙!
흩날리는 티슈들이 시하의 등 뒤에 쌓인다.
늘 평범한 일상을 시하가 보여준 덕분인지 나는 집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다녀왔습니다.”
이제 인사를 받아줄 사람도 없건만.
나는 습관대로 인사를 해 버렸다.
“형아!”
아니네. 시하가 받아주네.
나는 고마운 마음을 담아 시하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형아.”
“응?”
시하가 티슈를 가리킨다.
나는 그제야 시하의 의도를 알았다.
인사를 받아준 게 아니라 다 꺼낸 티슈를 안에 넣어 달라는 거다.
자주 이래서 새삼스럽지 않다.
뽑는 건 좋아하지만 넣는 건 싫다는 거지.
“그래. 형이 다시 채워 줄게.”
아주 자연스럽게 티슈를 채워 주었다.
시하는 그게 기쁜지 다시 자기 놀이에 빠졌다.
물론 얼굴은 여전히 무표정이다.
웃는 모습 한 번 보기 힘들다.
우는 모습은 장례식에서 처음 봤지만.
“우리 시하랑 이제 어떻게 살지?”
시하가 휙 하고 고개를 돌려 다시 나를 쳐다봤다.
“아니야. 우리 시하. 많이 놀아.”
“아아.”
나는 그런 시하의 머리를 쓰다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 티슈가 다시 떨어지기 전에 움직이자.
지금 생각할 거리가 참 많았다.
언제까지 슬퍼하고 있을 수 없는 노릇이었다.
A4와 볼펜을 가져와 시하 옆에 앉았다.
“다 떨어지면 형아 불러야 한다?”
“아아.”
알아들었는지 못 알아들었는지 모르겠다.
나는 일단 A4 용지에 우리의 현실을 적기 시작했다.
생명 보험금 약 1억 5천.
이 집의 가격은 4억.
부모님의 빚은 약 3억 5천 정도.
그렇다면 이 집을 팔고 빚을 갚는다고 하면 5천 조금 넘는 정도가 우리 손에 떨어진다.
대략 총 2억.
생명 보험금의 법적 상속인은 우리로 되어 있으므로 고유 재산으로 취급된다.
한마디로 생명보험금은 상속세에 포함되지 않는다.
그리고 일괄 공제 5억.
간단히 계산하면 실질적으로 떨어지는 돈은 2억 원 정도일 것이다.
서울에 살기에 많이 부족한 금액이었다.
시하에게 물려주는 돈을 남겨두고 키우는 비용, 생활비, 집세, 수도세까지 생각해 봤을 때 부족하다.
여유롭지만은 않은 상황.
아무래도 대학교를 관두고, 일도 구해야 하는 실정이었다.
‘후우.’
아찔한 현실에 눈이 감겼다.
‘이건 사고라서 자동차 보험도 안 될 텐데.’
특이한 케이스로 인한 불행한 사고였다.
판스프링을 떨어뜨린 가해자를 찾을 수 없어서 보험이 되지 않는다.
한국 도로공사에게도 책임을 묻기 어려웠다.
고속도로 순찰대가 지나간 이후에 생긴 판스프링이기 때문이다.
더는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지금은 시하의 육아에 신경을 쏟고 싶었다.
‘애를 키우는 데 약 8억 정도 든다고 했나?’
어디서 들은 소리였다.
식비와 생활비까지 해결하려면 빨리 선택을 해야 한다.
“형아!”
“응. 그래.”
나는 재빨리 채워 주고 나서 다시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장기적으로 돈을 조금이라도 아끼려면 전세에 살아야 할 듯싶다.
시하가 뛰어다닐 수 있는 1층이어야 한다.
점점 자라면서 활발해질 게 뻔하니까.
나중에 층간소음으로 한 소리 안 들으려면 이것저것 신경 써야 했다.
무뚝뚝하다고 해서 활발하지 않은 건 아니니까.
그래도 조용히 노는 편이기는 하다.
“이사를 하긴 해야 하는데…….”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 집에는 부모님의 흔적이 너무 많이 남아있었다.
버릴 것은 전부 정리하고 필요한 것은 새로 살 생각이다.
두 사람이 사는 데 많은 가구는 필요하지 않을 테니까.
‘모르겠다. 진짜.’
눈가를 꾸욱꾸욱 눌렀다.
참담한 현실에 눈 돌리고 다음 날에 생각하고 싶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부모님의 존재가 이렇게 컸구나.’
부모님의 울타리라는 게 생활 전반에 굉장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
얼마나 큰 울타리인지 잃고 나서야 알 수 있었다.
‘이렇게 넓었나?’
집안의 가장이라는 거.
이 집안을 받치며 한 아이를 키워야 한다는 거.
이제 시작이라는 생각과 함께 이 부담감을 어떻게 견뎠을까?
어른이라서?
직장 생활하고 결혼한 경험자라서?
그저 살다 보니?
“형아.”
팔랑팔랑.
티슈가 내 얼굴에 붙는다.
똘망똘망한 눈으로 나를 보는 시하가 보였다.
이런 눈으로 보니 전부 견디지.
그래. 너 때문에 다 버텼구나?
해 주고 싶다.
무엇이든 해 주고 싶다.
저 얼굴에 그늘이 지지 않았으면 했다.
그렇기에 부모님은 하루를 살아가신 거다.
지금 내가 이해할 수 있는 건 이 정도일까?
“시하야.”
“아아!”
“우리 하나씩, 하나씩 해 가자.”
그래. 지금은 이사부터.
하나씩, 하나씩 만들어 나가자.
***
다음 날.
나는 시하의 손을 꼬옥 잡고 상자 여러 개를 사러 갔다.
짐을 옮길 수 있는 바퀴 달린 상자를 사고 집으로 돌아온 뒤 정리를 시작했다.
필요한 옷가지들, 책들을 넣었다.
“형아!”
“응. 그래. 그래.”
시하가 상자를 가리키며 손으로 탁탁 쳤다.
그냥 보기에는 표정 변화 없는 얼굴로 보이지만 나는 알고 있다.
저 얼굴은 비장한 표정이다.
대충 느낌상으로 알 수 있다고 할까?
“여기 넣어 달라고?”
“아아.”
“좋아. 간다!”
시하를 위로 번쩍 들어 천장이 닿을 듯이 올렸다.
팔을 쭈욱 위로 올린 시하가 너무 귀여워 내려놓고 싶지 않았다.
정신 차리자.
지금은 짐을 정리하느라 바쁘니까.
“그럼 들어갑니다!!”
나는 비행기를 태우듯이 여러 번 움직인 다음 그대로 박스 안으로 넣었다.
시하의 몸이 쏘옥 들어갔다.
시하는 주변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온통 흰색의 공간에 입성한 것이다.
병원보다 더한 공간에서 시하는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일을 못 하겠네.”
이건 찍어야 해.
카메라 본능이 꿈틀거리면서 폰을 꺼낼 수밖에 없었다.
찰칵찰칵.
셔터를 누르는 손을 멈출 수 없다.
셔터 찬스는 손쉽게 오는 것이 아니다.
기회가 되면 무조건 찍어야 한다.
찰칵찰칵.
“형아!”
“그래.”
‘형아’밖에 못 해서 지금은 모든 의사소통이 ‘형아’다.
‘아아’는 긍정과 부정을 동시에 의미하는 신비한 언어다.
이건 비언어적 표현을 유심히 봐야 가능한 의사소통이다.
메라비언도 이 장면을 보면 무릎을 ‘탁’ 치지 않을까?
“형아!”
시하가 꼬물거리는 손가락으로 앞으로 가리켰다.
나는 그걸 찰떡같이 알아들었다.
“정리해야 하는데…….”
나는 상자를 앞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부웅! 지금부터 벤츠가 출발합니다. 어디로 갈까요!”
척!
시하가 가리키는 곳으로 상자를 밀었다.
바퀴가 달린 것으로 사서 다행이었다.
내 선견지명에 한 번 더 감탄을 보낸다.
척!
이번에는 드리프트를 요구한다.
지금 시하는 레이서에 빙의해 있다.
그게 아니면 나올 수 없는 아기의 바이브다.
“그래. 간다!!”
“아아!”
그렇게 한참을 밀었다.
드라이브가 만족스럽게 끝났는지 이제는 다른 것을 요구한다.
나는 시하가 박스 안에서 놀 수 있는 장난감을 주고 몸을 뉘었다.
‘왜 정리는 하나도 안 됐는데 지치지?’
주변을 보니 할 게 산더미다.
미룰 수 있다면 미루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 시하에게 어떠한 요구가 없는 이상 움직여야 했다.
또 다른 요구를 들어주기 위해 미리미리 일해야 했다.
‘나 혼자 잘할 수 있겠지?’
나는 시하를 힐끗 보고 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응?’
정리하던 중 아버지의 노트북이 보였다.
나는 그 위를 손으로 한 번 쓸었다.
며칠간 쓰지 않았다고 먼지가 있었다.
‘이것도 버려야겠지.’
나는 나중에 태우기 위해 코드를 뽑고 노트북을 종량제 봉투에 넣으려고 했다.
그 순간 시하가 갑자기 나를 불렀다.
“형아! 형아!”
“어. 그래.”
시하가 손을 위로 들고 자신을 꺼내 달라고 주장했다.
벌써 노는 게 끝났어? 조금만 더 놀면 안 될까?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나는 시하가 원하는 대로 꺼내 주었다.
바닥에 발이 닿은 시하는 도도도 달려가서 노트북에 찰싹 붙었다.
거의 깔고 엎드린 거라고 할 수 있겠다.
“아아!”
“시하야. 지지야. 지지. 그거 버릴 거야.”
시하가 고개를 저으며 고집을 부린다.
“그거 버려야 한다니까.”
“아아.”
“왜 이렇게 고집을 부리지?”
“아아.”
일단 일보 후퇴해서 나중에 버려야겠다.
“아, 아빠.”
“뭐?!”
나는 고개를 돌려 다시 시하를 보았다.
“시하야. 방금 뭐라고 했어?”
“아, 아바!”
“아빠라고? 아빠라고 했어?”
시하가 노트북을 가리켰다.
“아빠.”
나는 말문이 막혔다.
저 물건이 아빠 것인 걸 알고 있는 걸까?
그래서 못 버리게 막는 거고?
‘아버지가 들었으면 좋아하셨을 텐데.’
그걸 노트북이 들어 버렸다.
‘평생 못 할 줄 알았는데.’
아빠라는 말을 거의 못 할 줄 알았다.
그래. 이 노트북 덕분인가?
나는 시하가 깔고 있는 노트북을 바라보았다.
버릴지 말지 고민이 되는 순간이었다.
솔직한 마음으로 부모님이 계속 생각나서 다 버리고 싶은 심정이지만.
‘시하가 저렇게 좋아하는데 못 버리겠네.’
나는 노트북을 버리는 것을 포기하기로 했다.
“알았어. 안 버릴게.”
“아아!”
“그래. 그래.”
나는 다른 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뭔가 머리가 참 복잡하다.
“형아.”
“응?”
시하가 상자에 내가 정리한 옷을 넣었다.
“형아.”
“응? 형아 도와주는 거야?”
끄덕끄덕.
“이야. 우리 시하 정말 착하네.”
나는 시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비록 개어진 옷들이 풀어헤쳐져 일이 두 배로 많아지긴 했지만.
저 도와주려는 마음은 칭찬 안 하려야 안 할 수 없었다.
기특하잖아?
“그… 시하 장난감도 넣을까?”
끄덕끄덕.
시하가 노트북을 턱 하니 들려고 힘을 쓴다.
음. 그건 장난감이 아닌데?
“형아가 도와줄게.”
나는 시하의 손과 함께 노트북을 들었다.
“으차!”
“형아.”
“그래. 그래. 이렇게 넣자.”
나는 시하의 키를 생각해 엉거주춤하게 일어서서 상자에 넣었다.
이제 진짜 끝났겠지?
“그럼 우리 시하. 장난감 넣을까요?”
옷만은 안 된다. 옷은 사수하자.
“형아. 엄마.”
“뭐?!”
나는 잘못 들은 줄 알고 시하를 보았다.
엄마라니?
엄마가 어딨다고?
“엄마.”
“엄마 보고 싶어?”
시하가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아무것도 없는 허공이었다.
“엄마가 거기 있어?”
“아아. 엄마.”
시하가 어딘가 도도도 걸어가더니 뭔가를 가리키며 엄마를 외쳤다.
“이건…….”
새어머니가 쓰셨던 와콤 액정태블릿.
“형아.”
시하가 다시 상자를 가리켰다.
저 책상에 있는 태블릿도 넣고 싶다는 거겠지.
두 개 다 부모님이 자주 쓰고 소중히 했던 물건이었다.
나는 버릴 생각뿐이었는데 시하는 챙길 생각인 것 같았다.
같은 형제지만 이렇게 생각이 다르구나.
나는 시하의 의견을 존중하기로 했다.
“그래. 우리 시하가 하자는 대로 할게.”
“아아!”
나는 태블릿을 상자에 넣었다.
***
웅웅.
상자에 있던 노트북의 팬이 저절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전원이 켜졌다는 표시가 났다.
닫혀 있는 화면에 업데이트 중이라는 표시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옆에 있는 액정태블릿 역시도 전원이 켜지며 업데이트됐다.
공통점이 있다면 두 가지 모두 와이파이가 연결되어 있다는 표시가 꺼져 있다는 사실이다.
두 물건이 한동안 업데이트가 되더니 그대로 종료되었다.
그날.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하고.
시혁과 시하는 서로 옆에 누운 채 똑같은 포즈로 잠을 자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