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그 아이를 본, 첫 감상은 순하다는 것이었다.
얼마나 순한지 기저귀에 똥을 싸도 울지 않았다.
배가 고파도 울지 않았고.
심지어 웃지도 않았다.
이걸 순하다고 할 수 있을까?
무슨 반응을 보여야 뭐라도 해줄 텐데 뭐가 그렇게 무심한지.
그것 때문에 고생했다는 말을 들었다.
엉덩이에 똥이 덕지덕지 묻어 빨갛게 된 걸 보고 흰 파우더를 톡톡 발라 하얗게 만들었다.
그게 조금 귀여웠다.
아이의 이름은 이시하.
나와 20살 차이 나는 남동생이었다.
시간이 흘러 시하와 조금 친해졌다.
이걸 친해졌다고 해야 할까?
시하는 그저 나를 졸졸 쫓아다녔다.
해준 것도 없건만 그저 쫓아다니는 모습이 병아리 같아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아아’거리며 뭔가 말하려고 하는데 좋아하는 반응이 틀림없다.
그런데 대체 이 아이는 뭐가 좋아서 나를 따라다니는 걸까?
새어머니께서는 어떻게 된 게 엄마보다 형을 더 좋아한다고 하신다.
언제는 이렇게 물은 적도 있었다.
“형이 좋아?”
“아아!”
‘응!’이라는 대답인지, ‘아니!’라는 대답인지 모르겠다.
아마 나를 졸졸 따라다녔을 때부터 시하가 내 동생이라는 걸 받아들였던 것 같다.
몸에 분유 냄새가 나고 오줌도 얼굴에 맞고.
어린 동생보다는 조카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시하가 3살이 되는 어느 날.
설날이 끝나고 아버지가 고모에게 잠깐 들른다고 하셨다.
“시하하고 집 잘 보고 있어!”
어머니는 해맑게 우리에게 손을 흔드셨다.
나는 점심을 먹기 위해 시하를 앉히고 프라이팬을 꺼냈다.
그런 날이 있다.
이상하게 일이 술술 잘 풀리는 날이.
달걀을 깨는데 쌍란이 나오거나.
학과에서 전화가 와서 올해 장학금을 준다거나.
친구에게 오랜만에 연락 와서 기프티콘을 받는다거나.
하루하루가 너무나 잘 풀려서 이래도 되나 싶었다.
“오늘 왜 이렇게 운이 좋지? 시하야.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아아.”
벌써 3살인데 아직도 ‘아아.’라고 하는 시하가 조금 걱정이었다.
아빠라는 말도 엄마라는 말도 해야 할 텐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시하는 리모콘을 들고 열심히 버튼을 누르는 중이다.
꾸욱. 꾸욱.
그런 시하의 머리를 쓰다듬는 순간.
한 통의 전화가 왔다.
“이장혁 씨 아드님 되십니까?”
이 모든 게 잘 풀리는 하루에 이유가 있었나 보다.
너무 잘 풀리니 조심하라고.
긴장하라고.
방심하지 말라고.
이 일련의 행운이 하나의 큰 불행을 위해 존재했다.
***
장례식장에 두 명의 사진이 올려져 있었다.
하나는 아버지인 이장혁.
하나는 어머니인 김혜련.
돌아가신 이유는 너무나도 큰 불행이 겹쳤던 탓이다.
그 누구의 잘못을 탓할 수 없는 사고였다.
경찰이 나에게 블랙박스의 영상을 보여주었다.
트럭이 고속도로에 있던 판스프링을 밟았고, 그것이 튀어나와 앞 유리를 부수며 아버지의 심장에 박혔다.
즉사였다.
액셀을 계속 밟고 있던 아버지의 차는 결국 추돌사고로 이어졌고, 어머니는 그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지?’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아니, 나올 수 없었다.
이제 남은 가족이라고는 나와 시하뿐이었다.
어린 시하에게 형의 슬픈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나는 친척의 품에 안겨 있는 시하를 보았다.
내 어린 동생은 알까?
이제 아빠도 엄마도 볼 수 없다는 사실을.
죽음이라는 개념을 알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였다.
저렇게 새근새근 자는 모습을 보니.
오히려 그게 더 마음이 아팠다.
핑 도는 눈물을 참으려고 허벅지를 꼬집었다.
다른 생각을 해야 했다.
찾아오는 조문객들을 맞이해야 했다.
인사를 하고, 악수를 하고, 내 어깨를 두드려주고, 품에 안아준다.
“아이고. 어떻게 이렇게 가냐.”
“힘내세요.”
“힘내요. 형.”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장혁이는 좋은 친구였다.”
각자 하는 말은 달랐지만 전부 뜻은 같았다.
나를 위로해 주려고 꺼낸 말이었다.
그러지 말았으면 했다.
눈물이 나올 것 같으니까.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
누군가의 어머니와 아버지가 죽는다.
이건 자연의 섭리다.
다만 나는 일찍 부모를 여의었을 뿐이다.
누구에게 하는지 모를 말을 속으로 건네며 나는 조문객에게 인사를 계속했다.
“불쌍해서 어째?”
“둘이 어떻게 해요? 누가 맡으려고 해요?”
“시혁이가 성인이지?”
“어유. 이제 대학생인데 저 어린 동생을 어떻게 키워요.”
친척들의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안 들리게 조용히 얘기하는 것 같지만 나에게 다 들린다.
“피도 안 이어졌는데 시혁이가 키워야 하나?”
말의 수위가 점점 높아진다.
“어휴. 그런 말 하지 말아요.”
나는 자리를 더 지킬 수 없어서 잠시 나왔다.
“아, 내가 틀린 말 했나?”
“쉿. 쉿. 시혁이 나와요.”
장례식장 밖에 있는 흡연 구역으로 걸음을 옮겼다.
담배를 끊은 지 오래되었지만, 오늘은 피우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잠시 숨을 돌리고 싶었다.
하지만 거기에도 내 자리는 없었다.
“보험금 있대?”
“뭐가?”
“사망 보험금 말이야.”
“있으면 뭐?”
“우리 집에서 둘 정도 돌봐줄 수 있는데. 아직 애들이 어려서 정이 많잖아.”
“이이가 정말.”
두 사람이 누군지 알았다.
고모와 고모부.
허탈했다.
이렇게 몰상식한 사람들이었나?
심지어 고모와 고모부를 만나고 돌아가신 아버지에게 할 말인가 싶었다.
“요즘 힘드니까 잠깐 빌려 달라고 하면 애들도…….”
“으음. 잠깐 빌려서 돌려놓으면 되지 않아?”
“그러니까 시혁이에게 잘 말해봐.”
가슴이 차가워지는 걸 느꼈다.
이런 사람들도 친척이라고.
여기는 친척이 아니라 적진인 것 같다.
부모가 보호해준 울타리가 너무나 크고 단단하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된 것 같았다.
손발이 달달 떨리는 마음으로 눈을 감았다.
‘피곤하다.’
뒤로 발길을 돌리자 대학교 교직원과 마주쳤다.
“형…….”
강인대학교 취업센터 교직원.
문도환.
그가 내 팔을 잡고 인적이 드문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어떻게 알았는지 여기는 내가 있을 자리가 있었다.
“괜찮냐?”
“…….”
“아니. 미안하다. 내가 말을 잘못했다. 괜찮지 않겠지. 미안하다.”
“알아요. 그런 뜻으로 말하지 않았다는 거.”
“후우. 짐승 같은 사람들 많지?”
“모르겠어요.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대체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다.
대학을 졸업하려면 아직 2년은 더 다녀야 했고 취업을 하려면 얼마나 걸릴지 몰랐다.
아니, 당장 생업에 뛰어들어야 했다.
“좀 울었냐?”
“아니요.”
나를 지켜주던 울타리가 부서졌다.
그 순간 나는 동생을 지키는 울타리가 되어야 했다.
아까 고모부의 말을 들었던 그 순간부터 결심했다.
잘못하다가 잡아먹히겠구나.
내 동생을 내가 지켜야겠구나.
그러니 울면 안 된다.
운다고 현실이 달라지지 않는다.
지금은 매정하더라도 정신을 곧게 세우고 현실을 살아가야 했다.
내 그런 모습을 잘 알고 있는지 문도환은 한숨을 쉬었다.
“이제 어떻게 할 거야?”
“일단 자퇴하고 일을 해야겠어요.”
“그냥 대학 다녀.”
“형. 대학등록금만 380만 원이에요. 두 학기에 800만 원이나 들어간다고요.”
“알아. 하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 대학 나오고 취업을 하는 게 더 좋을 수 있어.”
“그럼 시하는 누가 돌봐요?”
문도환의 말문이 턱 하고 막혔다.
“후우. 젠장! 뭐 이렇냐!”
“최대한 집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을 거예요. 조금 힘들어도 둘이 먹고살 수 있을 만큼요.”
“너…. 시하에게 모든 인생을 바칠 거야?”
“그래 봤자 20년이에요.”
“야, 임마. 20년이면 뭐 새로운 도전도 못 해. 네 나이가 43살이 된다고.”
“알아요.”
하지만 이 어린 동생을 누구에게 맡길 수 있을까?
내가 지켜야 한다.
이제 시하에게 남은 사람은 자신밖에 없다.
“형.”
“시혁아. 다시 생각해 보자. 형이 취업은 못 꽂아줘도 알아는 봐줄게. 최대한 대학교를 이용하자. 찾아보면 방법 많아.”
“그러면 회사 다녀야 하잖아요.”
“그래. 다녀야지. 시하는 어린이집에 맡기면…….”
“안 돼요.”
“아니, 왜?”
나는 고개를 저었다.
“형. 저 엄마 없이 자랐어요.”
“그래. 알지.”
“그거 알아요?”
“응?”
“엄마 없이 자란 저를 보고 사람들이 하는 말이 있더라고요. 애가 사랑을 덜 받고 자랐다고.”
“누가 그래. 누가?”
“다 그러더라고요. 애 얼굴에 그늘이 보인다. 행복한 가정에서 못 자랐다.”
“야, 임마.”
“그래서 그래요. 시하가 그런 그늘 없었으면 싶어요. 누구에게 그런 소리 안 들었으면 한다고요. 사랑 넘치게 받고, 자라게 하고 싶어요.”
“그…….”
“시하는 나보다 더해요. 아빠도 없고 엄마도 이제 없어요. 그런데 나까지 없어져 봐요. 얼마나 외롭겠어요? 애 얼굴에 그늘 안 생기겠어요?”
“어렵다. 어려워.”
“하나도 안 어려워요. 내가 엄마, 아빠 다 하죠 뭐. 뭐? 친척? 그놈들 다 친척 아니에요. 시하 지켜줄 사람 저밖에 없어요.”
“그럼 너는? 너는 누가 지켜주는데?”
“저 성인이잖아요. 아무도 안 지켜줘도 돼요. 이제 현실에 내던져질 때가 됐어요.”
“어휴.”
이 답답한 현실에 나 대신 문도환이 가슴을 두들겼다.
“형. 시하. 아아밖에 못 한다? 애가 언어발달이 느려요. 심지어 잘 울지도 않고요. ‘아빠’, ‘엄마’ 소리를 하나 못 해봤다고요.”
“알아. 너도 그게 걱정된다고 말했잖아.”
“나도 어린이집 왜 생각 못 했겠어요. 그런데 말도 못 하는 애가 어린이집에 잘 다닐까요? 저는 지금 어떻게 해야 해요? 그냥 대학교 다녀요? 등록금은? 애 육아비는?”
“야, 그건…….”
“나 진짜 시하 번듯하게 성인까지 만들고 싶어요. 그러면 지 알아서 앞가림하겠지. 나도 그때는 시하 신경 안 쓸 거예요.”
형에게 말하다 보니 혼란스러웠던 머리가 정리되는 느낌이다.
그래, 저 귀여운 시하를 반듯하게 키우자.
누군가는 말할지도 모른다.
네 인생을 그렇게 희생시킬 필요가 있냐고.
피도 안 이어진 동생에게, 같이 산 지도 얼마 되지 않은 동생에게 그런 시간을 투자할 거냐고.
‘피가 뭐가 중요해?’
중요한 것은 시하는 내 동생이고 나는 시하의 형이다.
관계에서 그 이상이 중요할까?
피라는 것. 유전자라는 것.
그저 염기의 배열이 아니던가.
“난. 그래요.”
문도환이 뭔가 더 말하려고 할 때였다.
“으아아앙!”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여기에 있는 아이라고는 시하밖에 없는데?
문도환과 눈이 마주쳤다.
나는 놀라서 황급히 장례식장으로 들어갔다.
시하가 이렇게 우는 적은 처음이었다.
대체 무슨 일일까?
안에서 시하를 안고 있는 친척이 당황해서 달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나를 발견하자 말을 더듬었다.
“아, 아니, 눈을 뜨자마자 애가 울어서.”
시하가 나를 본다.
훌쩍이는 울음을 멈추려고 했다.
혹시 시하는 엄마와 아빠를 못 본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 아닐까?
내가 오니 울음을 멈추는 것에 안심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런 상념들이 머리를 스쳐 가면서 나는 시하를 받아서 등을 토닥였다.
“그래. 시하야. 형아 왔어.”
“형아. 형아. 으아앙!”
“…!!”
나는 놀라 숨을 멈췄다.
처음으로 한 말에 나는 눈가가 뜨거워졌다.
아무도 못 뚫은 마음의 빗장을.
시하는 아무렇지 않게 풀고 들어왔다.
“그래. 형아야. 형아.”
“형아. 엉아. 으아앙.”
“흑. 그래. 그래.”
눈물이 나왔다.
시하의 입에서 나온 첫말이 엄마도, 아빠도 아닌 것에 너무나 슬퍼서.
앞으로 부르지 못하겠다는 사실이 너무나 안타까워서.
결국, 참아왔던 울음보가 터져 나왔다.
“형아. 형아.”
넌 알까?
네가 형아라고 부른 순간부터 그 단어에 속박되었다는 걸.
“형아. 형아.”
“그래. 형아야. 형아. 흐윽.”
누가 누구를 지킨다는 건지.
자기도 울면서 다독이는 시하의 손길이 너무 따뜻했다.
내가 너를 지킬게.
나는 그런 감정을 담아 조금 세게…….
조금은 조심스럽게…….
시하를 안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