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2.
#중요한 것 (1)
“서 총관님!”
“양 사부. 무슨 일인가?”
양문곽이 서 총관의 집무실로 찾아왔다.
얼굴이 상기되고 표정도 날카로웠다. 아무래도 성이 난 듯 보였다.
“아무도 우선이의 무사부가 되려고 하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사실입니까?”
“……음. 맞네. 현재 상황이 그렇다네. 다들 바빠서 선뜻 나서는 무사부가 없는 실정이야.”
“어찌! 어찌 그럴 수 있습니까?”
양문곽이 두 눈을 부릅뜬 채 질타하듯 물었다.
“하아-! 양 사부. 그 마음 충분히 이해하네. 나도 너무 안타까워.”
서 총관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의 얼굴에 씁쓸한 표정이 가득했다.
양문곽은 서 총관에게 잘못이 없음을 알기에 화를 살짝 누그러뜨리며 물었다.
“다들 왜 그런답니까?”
“여러 차례 부탁도 하고 설득도 하고 있네만, 다들 난색을 보인다네. 각자 현재 맡은 제자들이 있어서 시간이 부족하다고 하는데, 그렇게 말하니 나는 어찌할 방법이 없고.”
즉, 서 총관은 열심히 이야기해 보고 있으나, 무사부들이 내켜 하지를 않는 모양이었다.
“들려오는 소문대로라면 돈 때문에 그렇다는데…… 정말 그런 겁니까?”
“이유야 많겠지. 각자의 이유가 있을 테고. 다만 내가 들은 건 시간이 부족하다는 말뿐이었어.”
서 총관이 말을 아꼈다.
사실 총관도 무사부들이 돈이 안 되기에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
갑급의 무사부들은 대개 한두 명의 제자들에게 전심을 다해 가르치는데, 진우선을 맡으면 그 대가를 바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진우선은 전광과 비교되었다.
같은 날 갑급이 된 전광은 첫날부터 홍노관 무사부를 모셨다.
반면에, 진우선을 찾은 무사부는 아무도 없었고.
“제길! 이건 너무 부당하잖습니까!”
“허어-. 그렇지. 그건 그래.”
양문곽은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서 총관은 양문곽의 마음이 이해가 가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관주님은요? 언제쯤 돌아오실 예정이십니까?”
“열흘 정도를 예상하고 가셨는데, 길어지는 모양이야. 자네도 알다시피 정무맹 호심당에 잘 추천하고 와야 하는 일이니…….”
이 일을 바로잡아주어야 할 관주는 정무맹 호심당에 가 있었다.
호심당은 강호의 신진고수들이 수련하는 곳.
청운무관을 비롯한 여러 무관에서 뛰어난 제자들을 발탁하여 추천하면, 정무맹 호심당의 소속이 되어 보다 많이 배울 수 있었다.
양문곽도 그렇게 정무맹 호심당에 들어갔고, 정식 제자가 됐었다.
“하아-. 상황이 이렇게나 꼬여 있다니. 어찌해야 하는 걸까요?”
양문곽이 넋두리하듯 말을 흘렸다.
애가 타는 상황이지만 관주의 부재로 즉각 무언가를 해낼 수가 없었다. 그게 너무 답답한 모양이었다.
“서 총관님. 혹시 제가 가르쳐도 됩니까?”
“양 사부. 자네도 잘 알지 않나? 그러면 규칙에 어긋나는 걸.”
“네. 압니다. 알지만…….”
서 총관이 양문곽을 타일렀다.
청운무관의 무사부는 맡은 등급 내에서만 가르쳐야 했다. 그렇기에 을급의 무사부인 양문곽이 갑급의 제자인 진우선을 가르칠 수 없었다.
가르치게 된다면 규율 위반이 되어 더는 청운무관에 있을 수 없게 되며, 보상금도 물어야 했다.
“자네 마음은 이해하네. 하지만 규칙이 그런 걸 어쩌겠나. 조금 더 기다려 보는 게 좋겠어.”
“후우-!”
양문곽이 한숨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돌아가는 실정이 이토록 부당함에도 아무런 방법을 취할 수 없었다. 나오는 건 오직 한숨뿐이었다.
“양 사부. 자네는 좋은 무사부일세. 그러니 자네가 우선이에게 잘 말해주게.”
“일단은 알겠습니다.”
양문곽이 분한 마음을 풀지 못한 채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진우선에게로 발길을 돌렸다.
***
쐐애액-!
공기가 비명을 내질렀다.
검이 공기를 찢어버려서였다.
그 검은 진우선의 검이었다.
검은 몹시 화가 나 있었다.
진우선은 무덤덤해 보이는데, 검만은 분노를 터뜨리고 있었다.
“……다들 네 무사부를 하기 싫어한다더라. 돈이 안 되니까. 앞으로도 많이 없을 거래. 그러게 돈 안 내고 왜 갑급에 왔냐…….”
“……우선아. 내가 미안하구나. 뭐라 할 말이 없어. 네 실력이 좋고 재능을 꽃피우는 것 같아서 갑급으로 추천했는데…… 다들 제 입장만 생각하느라 그런지…….”
전광의 비아냥거리는 말.
양문곽의 미안하다는 말.
두 사람의 말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전광의 이죽거리는 얼굴도, 양문곽의 고개 숙인 모습도 떠올랐다.
‘그래. 청운무관은 원래…… 이랬지.’
잠시 잊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무관에 돈을 많이 내야만 무사부가 매일 지도해준다는 사실을 말이다.
아니, 이미 알고 있었는데 청제자가 되어 갑급에서 잘 배우라는 말을 들으며 잠시 착각했었다.
“으아압!”
쏴악-!
진우선의 기합을 질렀다.
차가운 기합성에서 뜨거운 울분이 느껴졌다.
세차게.
매우 거칠게.
검을 펼쳐냈다.
신중히 수련하던 광영무를, 폭풍이 몰아치듯 펼쳐냈다.
검노야가 그 모습을 보다가 딱한 표정으로 진우선에게 시선을 옮겼다.
지금 보여주는 모습은 광영무라 부를 수 없다는 게, 검노야의 눈빛에서 드러나고 있었다.
그러나 검노야는 진우선을 제지하지 않았다.
그저 바라만 보았다.
그렇게 한참이 지나서야 진우선이 검을 놓았다.
온몸에 힘을 다 빠졌고, 다리는 후들거려 절로 무릎을 붙잡고 서 있었다. 서늘한 날씨 속에서 땀도 뻘뻘 나고 있었다.
그제야 검노야가 진우선에게 다가갔다.
진우선이 얼른 숨을 고르며 검노야에게 꾸벅 고개를 숙였다.
[쏟아내느라 수고가 많구나.]
“……스승님. 죄송합니다. 제가 못난 모습을 보였습니다.”
진우선이 고개를 꾸벅 숙였다.
사실 자신도 느끼고 있었다. 조금 전에 펼친 광영무는 그저 모양만 있을 뿐이란 것을. 속풀이라는 것을.
그건 검노야가 가르친 광영무라 부를 수 없는 무공이었다.
[괜찮다. 우선아.]
검노야는 다그치지 않았다.
오히려 진우선에게 흐르는 땀을 닦아 주었다.
검노야는 환영이었지만, 지금 손을 뻗으니 진우선의 피부에 닿았다.
진우선은 그의 손길이 직접 느껴졌다.
[속이 많이 상했느냐?]
“…….”
대답이 쉬이 나오지 않았다.
한숨 고른 후에야 입이 열렸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진우선이 간신히 말하며 웃었다.
하지만 목소리는 쥐어짜서 낸 듯했다.
표정 역시 미소 짓고는 있으나 웃는 상인지 울상인지 구분하기 어려웠다.
억지로 감정을 추스르는 것이다.
[나도 속상하구나.]
그 말을 하며 검노야가 진우선의 손을 만졌다.
진우선이 멈칫했다.
그리고 손을 빼려고 했다.
보여주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러나 진우선은 검노야에게서 손을 빼내지 못했다.
[많이 아프겠어.]
검노야가 진우선의 손을 보았다.
손은 딱딱하나 손바닥 살갖은 마구 벗겨지고 짓물러지고 터져 있었다. 멍울이 맺힌 곳이 많고, 핏방울이 터진 곳도 있었다.
항상 전력으로 검을 휘둘렀기에 멀쩡한 곳이 없었다.
전심으로 노력했으며, 날마다 수련을 쉬지 않았다는 방증이었다.
“별로 아프지 않아요. 스승님.”
[그러느냐?]
검노야가 미소 지었다.
그 모습이 참으로 푸근하고 따스해 보였다. 진우선의 표정과 극명히 상반되었다.
[우선아. 네 실력은 계속 나아지고 있어. 매우 잘하고 있지. 우리가 만난 지 이제 두 달 정도 되어 가는데, 너는 그동안에 정말 잘해 왔지 않느냐?]
진우선의 머릿속에 검노야와 함께해온 시간이 떠올랐다.
그 속에서 진우선은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스승님을 모시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도 이어지고 있었다.
[비록 너는 혼자라고 보이겠지만, 나와 함께 하고 있지. 그러니 무사부가 있으면 어떻고, 없으면 또 어떨까. 내가 너와 함께 있는데.]
“맞습니다. 그렇지요.”
진우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검노야의 말에 틀린 바가 없었다.
무사부가 있으면 어떻고, 없으면 어떤가. 자신은 하나씩 하나씩 잘 수련하고 있는데.
[나는 네게 무공을 가르치는 것이 즐겁구나. 너는 그렇지 않으냐?]
“저도 정말 즐겁습니다, 스승님.”
진우선이 검노야에게 웃으며 말했다. 이제야 진우선의 얼굴에 제대로 된 미소가 어리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허허허.]
검노야가 웃었다.
이제 되었다는 듯 인자하게 미소 짓고 있었다. 진우선의 마음이 달라진 걸 알아챈 까닭이었다.
‘스승님. 정말 감사합니다.’
이제 청운무관의 무사부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진우선은 그들의 사정에 관한 좋고 싫은 감정들을 훌훌 털어버렸다.
그런 것들에 영향을 받을 필요가 없었다.
이미 자신의 모든 것을 이해해주고 지도해주는 참된 스승님 검노야가 있었다.
그것만이 중요한 사실이었다.
***
다음 날 오후.
매영령은 진우선이 청운무관에 도착하기가 무섭게 곧바로 찾아왔다.
걱정하며 기다린 모양이었다.
“오라버니! 어제 속 많이 상하셨죠? 광이 오라버니는 성격이 괴팍하고, 말도 함부로 막 하는 사람이라…… 안하무인이에요, 완전!”
“아니야.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
“진짜요? 그러고 보니…….”
매영령이 진우선을 살펴보았다.
진우선의 얼굴이나 표정은 전혀 그늘져 있지 않았다. 상태가 생각보다 괜찮아 보였다.
“멀쩡한 거 같네요?”
“응. 신경 안 써. 나한테 별로 중요한 게 아니더라고.”
진우선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매영령이 들으니 진우선의 목소리도 괜찮은 듯싶었다.
“다행이에요!”
매영령이 손뼉을 짝 쳤다.
“맞아요. 오라버니는 혼자서도 정말 잘하는 거 같아요. 게다가 실력도 날마다 쑥쑥 좋아지고!”
“고마워.”
진우선이 슬며시 웃었다.
매영령과 대화하면 자주 웃게 된다. 얼굴이 밝고, 목소리가 영롱하며, 마음이 고와서, 함께 대화를 나눌 때면 근심이나 걱정이 잊히는 것 같았다.
“오라버니!”
매영령이 눈을 초롱초롱 빛냈다.
“항상 우리는 팔운루에만 있었잖아요. 오늘 청풍재에 가 봐요.”
그리고 진우선의 손을 잡아끌었다.
“청풍재?”
“네. 한 번도 안 가보셨죠? 이참에 한 번 가봐요. 총 오라버니도 우선 오라버니에 대해 종종 궁금해 했어요.”
청풍재라면 만총이라는 사람이 있는 일운루였다.
매영령은 이 기회에 기분 전환도 하면서, 진우선과 만총을 만나게 할 생각이었다.
“나를 궁금해 했다고?”
진우선이 끌려가듯 걸음을 옮기며 물었다.
“네. 제가 자주 이야기했거든요. 우선 오라버니도 책 많이 읽었다고. 그랬더니 한 번 만나서 이야기 해보고 싶다고 했어요. 맨날 청운무관에서는 도무지 대화할 사람이 없다고 했거든요.”
“아하!”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무공을 익히는 청운무관에 들어와서 책만 읽고 있는 게 조금 이상했지만, 그런 사람이라면 대화할 상대를 찾는 게 이상한 건 아니었다.
“그런데 지금 가도 될까?”
“돼요, 돼요. 총 오라버니는 청풍재가 집이에요, 완전! 밖으로 나가지를 않거든요.”
매영령은 만총에 대해 모르는 게 없어 보였다.
“그러니 어서 가요! 어서!”
매영령이 재촉하며, 진우선을 데리고 빠르게 문을 나섰다.
잠시 후, 매영령이 진우선을 데리고 청풍재로 들어갔다.
‘여긴…… 참 고즈넉하네!’
진우선의 첫 느낌이었다.
청풍재는 하나의 정원이었다.
높게 둘러쳐진 담장 밑으로 수두룩하게 심어진 나무들이 잘 자라 있었고, 그 앞에는 작은 연못도 있었다.
연못 옆에 정자도 있으며, 고급스러워 보이는 돌로 만들어진 탁자도 곳곳에 몇 개나 놓여 있었다.
누각 주위에도 작은 꽃이나 나무가 많았다.
바닥에는 흙이 깔려 있으니, 숲을 거니는 듯한 착각마저 일어날 정도였다.
‘청풍재라 할 만하구나.’
절로 감탄이 나왔다.
일운루부터 십운루까지 다 비슷하게 생긴 연무장일 줄 알았는데.
청풍재는 연무장이라는 글자가 어울리지 않았다. 그렇게 부르면 미안할 정도였다.
그런 청풍재를 매영령은 마치 자기 집에 온 것처럼 안내했다.
곧 한 사람을 마주했다.
“오라버니!”
“령매. 왔어?”
“네. 왔어요. 근데 이게 뭐예요? 우리가 올 줄 알고 있었어요?”
“응, 그랬지. 낮부터 발을 동동 굴렀잖아.”
“제가 언제요!”
“하하. 일단 앉아. 네가 좋아하는 거로 준비해놨으니까.”
매영령이 익숙하게 자리에 앉아 차향을 맡았다. 표정이 금세 행복해졌다.
“네가 진우선이구나. 만나서 반가워. 나는 만총이야. 이야기 많이 들었어. 책 이야기를 나보다 엄청 재밌게 잘한다고 하더라고. 나는 재미없다고 맨날 구박받는데.”
“제가 언제 구박했어요?”
만총이 진우선에게 자신을 소개하며 눈을 빛냈다. 그는 매영령이 대꾸하거나 말거나 딱히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오히려 진우선에게 관심을 가졌다.
이 만남을 고대한 눈치였다.
“내가 요즘 궁금한 게 있었어. 그래서 너한테 꼭 물어보고 싶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