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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화 (123/145)

123화

“이제라도 수색을 시작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공작.”

그 말에 핀들레이 공작이 고개를 돌려 레베카를 바라보았다.

그가 온기 없이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뱀 같은 미소였다.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네?”

이해할 수 없는 물음에 레베카가 미간을 슬쩍 찌푸렸다.

핀들레이 공작은 다시 시선을 정면으로 돌리고는 냉랭한 어조로 말했다.

“저는 하루 정도는 더 기다려 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아무리 처음 맞붙을 때의 힘이 강하다고 해봤자 중급 마물. 대륙을 대표하는 발하나스의 최정예 기사단이 고작 그 정도 마물을 상대하다가 목숨을 잃는다면 그 또한 운명이겠지요.”

그 목소리를 듣고 있자 하니 해가 비치고 있는데도 그늘진 곳에 잠겨 있는 기분이었다. 레베카는 저도 모르게 손을 들어 올려 소름이 돋은 팔을 쓸어내렸다.

핀들레이 공작이 뒤늦게 덧붙였다.

비아냥이 다분한 말이었다.

“뭐, 제4연대 기사들의 실력은 훌륭하니 그럴 일은 없겠지만.”

“…….”

레베카는 주먹을 꾹 말아쥐고 고개를 돌렸다.

핀들레이 공작의 시선이 닿아 있는 곳.

북쪽 숲의 입구를 노려보며 그녀가 이를 악물었다.

‘……나는 어쩌고 싶은 거지.’

정황상 핀들레이 공작이 제4연대에게 무언가 수작을 부렸으리라는 것은 확실했다.

하지만 그런 그의 행동을 감추기 위해서는 케이든을 비롯한 제4연대가 모조리 죽어 나자빠지는 편이 레베카에겐 이득이었다.

만약 루드비히가 핀들레이 공작과 레베카 사이에 생겨난 균열을 알았다면 그 역시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핀들레이 공작을 막을 수 없다면 그의 계략에 적이 모조리 죽어버리길 바라고 돕는 것이 그다음으로 현명한 대처일 것이라고.

그래, 분명 이성적으로 생각하자면 그럴진대.

자꾸만 마음 한구석에서 피어나는 이 반발심은 대체 뭘까.

레베카는 쓸데없는 감정을 버리겠다는 듯 피가 나도록 입술을 짓씹었다.

그러는 사이 노을이 물러가고 땅거미가 지기 시작했다.

핀들레이 공작이 혀를 쯧 차고는 몸을 돌렸다.

“오늘도 돌아오지 않을 것 같군요. 날이 밝으면 수색대를 꾸리도록 하겠습니다. 전하께서도 이만 돌아가십시오.”

“…….”

“1황녀 전하.”

핀들레이 공작은 제 말을 들은 것이 분명함에도 고집스레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 레베카의 옆얼굴을 눈에 담고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그가 차가운 얼굴을 한 채 막사로 돌아가기 위해 몸을 돌리던 차였다.

저벅.

“……!”

레베카와 핀들레이 공작의 어깨가 동시에 흠칫 튀어 올랐다.

공작이 설마 하는 마음에 눈을 부릅뜨고 뒤를 돌아보았다.

어둑한 숲 저편.

작은 발소리가 울려 퍼지는가 싶더니 손톱만 한 불빛이 하나둘 나타났다.

처음에는 한 사람의 것이던 발소리는 이제 땅을 울릴 정도로 여럿이 되었다.

“뭐, 뭐야?”

“설마……!”

그 기척을 느낀 기사들이 하나둘 막사에서 튀어나와 북쪽 숲의 입구를 바라보았다.

누군가는 안도의 한숨을, 누군가는 불편한 호기심을 드러내며 자리를 지켰다.

핀들레이 공작은 손톱이 손바닥에 파고들 정도로 세게 주먹을 그러쥐었다.

‘어떻게……!’

그가 차마 입 밖으로 내지 못한 고함을 삼키는 사이.

케이든을 위시한 제4연대의 기사들이 표정 없는 얼굴로 진영 앞에 자리를 잡고 섰다.

그들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제복은 피에 젖어 원래의 색을 알아볼 수 없을 지경이었고, 군데군데가 엉망으로 찢겨 있었다.

“대체 무슨 일이…….”

기사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침음을 흘렸다.

그러나 그러한 말조차 케이든이 발을 옮겨 레베카와 핀들레이 공작의 앞에 서자 모조리 사라졌다.

진영의 앞마당에 쥐 죽은 듯한 고요가 찾아들었다.

케이든이 어깨에 메고 있던 자루를 핀들레이 공작의 발치에 집어 던졌다.

털썩!

몇몇 기사들은 행여 자루 안에서 마물이 튀어 나와 공작을 공격하는 것이 아닌지 경계하며 검 손잡이에 손을 가져다 댔으나, 정작 공작은 발끝 하나 움찔하지 않았다.

케이든은 그런 공작을 보며 사납게 웃었다.

“보고하지.”

“…….”

“북쪽 숲에서 처음 보는 종류의 변종 마물이 발견되었네. 상처를 내면 끝도 없이 분열하기에 상당히 애를 먹었고, 그러느라 복귀가 늦어졌어. 자루 안에 담긴 건 해당 마물의 사체 일부다.”

“뭐?”

“부, 분열한다고? 무슨 그런…….”

상처를 내면 분열한다는 말을 들은 기사들이 당황해 저들끼리 웅성거렸다.

지금까지 수많은 변종 마물이 나타났었지만, 그들 모두는 기존 마물에 비해 월등히 강한 힘과 괴이한 외모를 가진 정도였으니까.

케이든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는 전대미문의 재앙급 변종 마물이 나타난 것이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핀들레이 공작은 한 치의 흔들림 없이 케이든의 시선을 마주하고 있었다.

오히려…….

‘……웃어?’

케이든은 서서히 치솟는 핀들레이 공작의 입꼬리를 보고는 눈썹을 구겼다.

[전에 사냥 대회가 있던 날과 이번 토벌 전날. 공작과 1황녀가 언쟁을 벌이더군요. 공작이 1황녀에게 치명적일 만한 일을 독단적으로 꾸미고 있고, 그걸 숨기는 듯해요. 그리고 그건 아마…….]

‘변종 마물.’

핀들레이 공작이 변종 마물을 인위적으로 ‘만들어내고 있다.’

그것이 케이든과 디아나가 내린 결론이었다.

그 일이 어떻게 가능한지까지는 아직 알아내지 못했지만.

아무튼, 케이든은 핀들레이 공작 때문에 제4연대의 기사들이 모조리 몰살당할 뻔했던 일을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게다가 이제는 굳이 상대에 대한 적의를 감출 필요가 없는 위치에 올랐다.

케이든과 제4연대의 기사들은 공작을 향해 날 것 그대로의 살기를 드러냈다.

본래라면 죽었어야 할 그들이 살아 돌아왔으니, 아무리 냉혈한인 공작이라도 분명 당황하리라.

그 틈을 파고들어 감추고 있는 것들을 꺼내게 하리라 생각했는데.

공작은 웃었다.

“……공작?”

핀들레이 공작은 표정 없는 자로 유명했다.

그나마 가끔 띠는 미소조차 인간다움이라고는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 그가 기괴할 정도의 환희를 드러내며 웃고 있었다.

레베카는 처음 보는 공작의 모습에 기사들의 앞이라는 것조차 잊고 당황한 음성을 흘렸다.

모두가 숨을 죽이고 공작의 눈치를 보았다.

귀 근처까지 입꼬리를 끌어 올린 공작이 서서히 입을 열었다.

“이렇게…….”

“…….”

“기쁠 데가.”

케이든은 순간적으로 그 목소리에 담긴 광기에 주춤 물러날 뻔하다가 이를 악물고 자리를 지켰다.

핀들레이 공작이 발치의 자루를 넘어 케이든에게 다가왔다.

그가 손을 뻗어 케이든의 어깨를 토닥였다.

“노신은 행여 전하와 제4연대가 안 좋은 일이라도 당한 것은 아닐지 걱정하였는데, 무사하셨군요. 참으로 다행입니다.”

“……꼭 예상하지 못한 일이 일어나리라는 걸 확신한 사람처럼 말하는군, 공작.”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케이든이 빈정거렸으나 공작의 웃음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케이든의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던 그가 별안간 몸을 휙 돌리더니 기사들을 향해 외쳤다.

“부상자들을 의료 막사로 옮기고, 새 옷을 꺼내 와라!”

“아, 알겠습니다!”

그 외침에 뒤늦게 정신을 차린 기사들이 허둥지둥 달려와 제4연대를 진영 안으로 이끌었다.

케이든은 다른 기사들의 부축을 받아 의료 막사로 향하는 파트라슈의 뒤를 어쩔 수 없이 따르다가 공작의 곁에서 걸음을 멈췄다.

케이든이 고개를 비스듬히 돌렸다.

핀들레이 공작 역시 시선을 비껴 그와 눈을 맞췄다.

검은 눈이 섬뜩하게 번득였다.

“다음에도 내 부하들의 목숨으로 장난질을 쳤다가는.”

“…….”

“그 목이 아주 달아날 줄 알아. 경고다, 공작.”

“기왕이면 변종 마물을 해치운 바로 그 검으로 베어주셨으면 좋겠군요.”

“……미친놈 같으니.”

케이든이 질린다는 듯 중얼거리고는 공작을 스쳐 지나갔다.

레베카 역시 그런 그들을 지켜보다가 제 막사로 돌아갔다.

한편, 공작은 그 자리에 남아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언제나 차갑기만 하던 눈에 욕망이 번들거렸다.

‘……있다.’

살아 있다.

실존한다!

“발터.”

나직한 부름에, 공작의 등 뒤로 그의 수하가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차가운 희열이 어린 목소리가 속삭임처럼 울려 퍼졌다.

“3황자 주변으로 감시를 늘려라. 분명 근처에…….”

시린 푸른색 눈이 어둠에 잠긴 숲을 향했다.

꼭 먹잇감을 찾은 늑대와도 같은 눈빛이었다.

“……어둠 속성의 정령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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