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8화 (88/145)

88화

주인은 반가운 기색으로 케이든, 디아나와 한 번씩 악수를 나누고 쾌활하게 웃었다.

“이야, 정말 오랜만입니다. 그간 잘 지내셨습니까? 리엇 님께서도 최근에는 자주 찾아오지 않으셔서 영 소식을 들을 수가 없었거든요.”

리엇은 1황자 엘리엇을 칭하는 말이었다. 케이든이 어깨를 으쓱했다.

“이미 가게를 찾은 손님들을 통해 다 전해 들은 후 아닌가? 그대의 가게가 정보 길드와 주점 다음으로 소문이 빠르다는 말이 있던데?”

“에이, 예의상 여쭤보는 거죠. 직접 자랑할 기회를 드리는 겁니다.”

주인의 능청에 케이든과 디아나가 나란히 웃음을 터트렸다.

그 외에도 소소한 안부를 나누던 와중 주인이 아, 하며 손바닥을 맞부딪쳤다.

“그러고 보니, 두 분. 축제를 즐기러 나오셨다 하셨죠?”

“그렇네만.”

“그렇다면 제가 곧 소소한 경기 하나를 열 예정인데, 참석해 보시지 않겠습니까?”

주인이 양팔을 활짝 벌리며 미소했다.

어차피 마땅한 계획 없이 나왔던 것인지라 케이든과 디아나도 대수롭지 않게 승낙했다. 구기 종목이라면 결혼식 첫날 밤에 질리도록 해 본 탓에 어느 정도 자신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황망하게 눈을 깜박였다. 두 사람이 발을 디디고 있는 곳은 간이 무대였다.

주인이 마도구에 입을 가까이 가져다 대고 열띤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지금부터! 연인 배 오래 버티기 대회를 시작하겠습니다!”

“와아아!”

사람들이 열광하며 소리를 질렀다. 케이든은 양옆에 줄지어 늘어서 있는 연인들을 힐긋 돌아보고는 한숨처럼 중얼거렸다.

“생각해 보니 저자, 굳이 구기가 아니더라도 몸을 쓰는 활동이면 뭐든 좋아하는 사람이었어…….”

“…….”

하지만 깨달음은 언제나 늦었다. 케이든과 디아나는 이미 무대 위로 끌려온 상태였다. 그들은 침울하게 발끝을 내려다보고 서 있었다.

그사이 주인이 말을 이었다.

“규칙은 간단합니다! 제가 신호를 드리면, 두 사람 중 한 명이 다른 한 명을 안아 올리고 끝까지 버티면 됩니다! 안아 올리는 방식은 자유롭게! 단, 확실하게 ‘들어 올리는’ 방식만 인정합니다! 그럼…… 시작!”

커다란 함성이 울려 퍼짐과 동시에 대회가 시작되었다.

케이든은 한숨을 삼키고는 곧장 팔을 뻗어 디아나의 무릎 뒤와 등을 받쳐 안았다.

“꺅!”

디아나는 발이 땅에서 들리자 작게 비명을 지르며 그의 목을 끌어안았다. 케이든은 그 모습에 놀라 입을 열었다.

“왜 그래? 혹시 아팠어? 내려놓을까?”

“아, 아니요. 그런 건 아닌데, 그냥…… 떨어질까 봐…….”

디아나가 말끝을 흐리며 겁먹은 눈으로 무대를 힐끔거렸다. 그에 케이든의 이마에 힘줄이 빠직 돋아났다.

“걱정하지 마. 내가 설마하니 그대 하나를 들지 못하고 놓칠까 봐.”

“그렇지만 오늘 낮에 쓰러지셨었잖아요…….”

“멀쩡해졌다니까. 세상에, 이 말을 대체 몇 번째 하는 거람.”

“회복의 판단은 의사가 하는 거예요. 황궁의께서는 분명 충분한 휴식을 취해야 한다고 하셨잖, 으악.”

디아나는 말을 잇다가 몸이 스르륵 흘러내리는 느낌에 기겁하며 케이든의 목을 바싹 끌어안았다.

그러자 케이든은 조금 전까지 자신이 나약하지 않다고 항의하던 것조차 잊고 기분이 좋아졌다. 그가 한 손으로 여유롭게 디아나의 등을 토닥였다.

“디아나, 이렇게 꽉 끌어안았다가는 내가 숨을 못 쉴 것 같은데.”

“손! 손 떼지 말아요!”

디아나는 케이든의 손이 제 등에서 떨어질 때마다 필사적으로 그의 품을 파고들었다.

확실히 낮의 사건으로 인해 케이든은 평소보다 체력이 고갈된 상태이긴 했다.

하지만 고작 체력이 고갈되었다는 이유만으로 디아나를 안지 못 한다기엔 그녀가 너무 가벼웠다. 디아나는 제 몸이 지나치리만큼 가볍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는 듯했다.

케이든은 그 모습이 황당하면서도 그녀가 제 품을 파고들 때마다 입꼬리가 올라가는 걸 막을 수 없었다. 매사에 차분하고 초연해 보이던 디아나가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것이 신기했다.

그가 픽 웃음을 흘리며 디아나를 단단히 마주 안았다. 그때, 디아나의 주변으로 희미하게 마력이 일렁였다.

‘……음?’

케이든이 한쪽 눈썹을 치켜세웠다. 디아나의 등에 대고 있는 손으로 그녀의 불안한 떨림이 전해졌다.

‘그러고 보니…….’

케이든은 의아해하다가 문득 한 가지 의문을 떠올렸다.

‘디아나는 대체 어느 정도의 마력을 타고난 거지?’

생각해 보니 그는 디아나와 정령, 혹은 마력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어 본 적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디아나는 케이든을 만나기 전까지는 가문에서 천시받던 처지였고, 사람들은 있는 줄도 모르게 살아가는 사생아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거기에 디아나 스스로 정령과 계약했다며 알리거나, 관련한 능력을 보인 적도 없었으니 기실 당연한 일이었다.

케이든은 새삼 그 또한 디아나에 대해 아는 것이 많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디아나의 표정, 습관 등에 익숙해진 것과 별개로 그녀를 만나기 전의 과거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어 본 적은 없었으니까.

케이든은 디아나가 떨지 않도록 그녀를 조금 더 안정적으로 고쳐 안으며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디아나. 그대는 어떤 정령과도 계약하지 않은 거야?”

“……네?”

디아나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되물었다. 그 반응에 케이든이 되레 놀라 눈을 깜박였다.

“뭘 그렇게 놀라? 그냥 생각해 보니 그대가 정령사라는 얘기를 달리 듣지는 못했던 것 같아서.”

“아.”

케이든이 무언가 눈치챈 줄로만 알고 있던 디아나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한순간 심장이 발끝까지 떨어지는 듯한 기분이었다.

‘다행이다. 단순한 궁금증이었구나.’

디아나는 서둘러 표정을 갈무리했다. 그녀가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그렇죠. 저는 타고난 마력량이 많은 편이 아니라서…….”

“그래? 이상하네. 조금 전에 그대의 마력이 어렴풋이나마 느껴졌는데, 하급 정령 한 개체와도 계약하지 못할 만큼은 아닌 것 같았거든.”

그러나 케이든은 끈질겼다. 디아나는 자꾸만 커져 가는 초조함을 억누르며 억지로 웃었다.

“그럼 제가 마력을 다루는 데도 소질이 없었나 보죠.”

“…….”

케이든은 디아나에게서 묘한 기색을 감지하고는 고운 선을 그리며 휘어진 입술을 빤히 응시했다.

‘……눈을 보고 싶은데.’

케이든은 이제 디아나가 짓는 웃음을 어느 정도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기쁠 때 짓는 웃음, 난처할 때 짓는 웃음, 그리고 거짓을 감추기 위한 웃음 등. 저도 모르는 새 시선으로 그녀를 좇다 보니 자연히 알게 된 사실이었다.

그러나 가면으로 인해 눈이 잘 보이지 않아 확신할 수가 없었다. 케이든은 미련 가득한 눈길로 디아나의 입술을 빤히 응시했다.

“―그만!”

그때 삐익, 하는 호루라기 소리가 울려 퍼졌다.

케이든이 퍼뜩 정신을 차리는 것과 동시에 주인의 짓궂은 목소리가 귓가를 파고들었다.

“이야, 남자분 시선이 아주 뜨겁다 못해 활활 타오를 지경이네요. 두 분께서 빨리 단둘이 되길 원하시는 듯해서 공동 우승으로 정리하고, 경기를 이만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끝까지 남은 두 팀에게 박수 부탁드립니다!”

주인의 목소리에 사람들이 박수갈채를 보내며 야유인지 환호일지 모를 소리를 냈다.

케이든이 지나친 부끄러움으로 잠시 멈춰 있는 틈을 타서 디아나가 서둘러 그의 팔에서 내려왔다.

그는 그녀의 손에 이끌려 무대를 내려갈 즈음에야 정신을 되찾았다.

‘하여간 못 말린다니까.’

케이든이 못마땅한 눈으로 주인 쪽을 노려보자, 그와 눈이 마주친 주인이 천연덕스럽게 윙크를 날렸다.

케이든은 소름이 돋아난 팔을 쓱쓱 문지르며 고개를 내저었다.

‘그나저나 대화가 끊겼네.’

케이든은 대회 관계자로부터 상품을 받아 챙기는 디아나를 바라보다가 곧 고개를 내저어 상념을 털어 냈다.

지금은 확실치 않은 생각에 매달리기보다는 그녀와의 시간을 오롯이 즐기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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