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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화 (77/145)

77화

“케이든, 준비는…….”

먼저 준비를 끝마치고 그의 방을 찾았던 디아나가 멈칫했다. 그녀의 시선이 케이든에게 크라바트를 매어 주려는 듯한 동작을 취하고 있는 하녀에게 고정되었다.

“아, 왔어?”

케이든은 이렇듯 한껏 꾸미는 모습을 디아나의 앞에 내보이는 것이 어쩐지 부끄러웠다.

그가 어색함에 앞머리를 만지작거리자 무슈 드롱이 무슨 짓이냐며 그의 손을 붙잡았다.

디아나는 잠시간 케이든을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의 손을 바라보다가 싱긋 웃었다.

좋은 마음에서 나온 웃음은 아니었다. 외려 울컥해서 튀어나온 웃음이었다.

그녀가 크라바트를 든 하녀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내가 할게.”

“……네? 아, 네! 여기 있습니다.”

하녀는 뒤늦게 무언가를 깨달았는지 디아나에게 크라바트를 건네고는 후다닥 물러섰다.

‘다들 떨어지세요! 당장!’

그녀가 눈을 부릅뜨고 주변 사람들에게 눈짓을 퍼부었다. 그러자 주변 사람들도 한발 늦게 디아나의 미소를 보고는 허둥지둥 물러났다.

‘아.’

디아나는 그 모습을 보고서야 퍼뜩 정신을 차렸다. 그녀가 난감한 미소를 띤 채 제 손에 들린 크라바트를 내려다보았다.

‘방금 나 좀…… 무섭게 굴었나?’

치장을 위해서라고는 하지만, 이렇게 여러 사람이 케이든에게 손을 대고 있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좋지 않아 순간적으로 불편한 티를 내 버렸다.

이 행동이 사용인들의 눈에 어떻게 보였을지를 생각하니 조금, 아니 많이 수치스러웠다.

한편, 케이든의 입꼬리가 슬그머니 올라갔다. 그가 수치심을 견디는 디아나의 앞으로 성큼 다가서며 고개를 숙였다.

“자.”

언뜻 보기에는 다정한 행동이었다. 그보다 키가 작은 디아나를 배려해 몸을 숙여 준 것이니까.

실제로 그 모습을 본 무슈 드롱과 사용인들이 어머, 하며 입을 가렸다.

그러나 케이든은 몸을 낮춰 주는 척 그녀의 귓가에 웃음기 어린 속삭임을 흘렸다.

“디아나. 설마 질투했어?”

“아니에요.”

디아나는 케이든의 말이 끝나자마자 부정을 내뱉었다가, 곧장 후회했다.

‘대답이 너무 빨랐어.’

이러면 어떻게 봐도 질투한 것 같잖아. 그녀는 속으로 자신을 매몰차게 질책했다.

그에 반해 케이든의 입술에 어린 미소는 짙어졌다.

그는 누가 봐도 기분이 좋은 얼굴로 그녀의 얼굴을 양손으로 감싸고 쪽쪽 소리가 나게 입맞춤을 퍼부었다.

디아나는 제 얼굴 곳곳에 입술을 내리찍는 그의 행동에 속이 간지러워졌다.

그녀가 애써 고개를 돌리며 그를 밀어내려 했다.

“그런 거 아니라니까요.”

“알아. 그런데 사람들이 보고 있어, 그대.”

케이든의 말에 디아나가 움찔 움직임을 멈췄다. 사용인들의 앞에서 그를 피하는 모습을 보였다가는 그들의 사이에 대한 의심을 살 수도 있었다.

결국 디아나는 어쩔 수 없다는 생각으로 몸에 힘을 뺐다. 그러나 그런 생각과 별개로 자꾸만 숨이 가빠졌다.

디아나의 얼굴에 빠짐없이 입을 맞추던 케이든이 이내 자연스럽게 그녀의 입술을 파고들었다. 그 일련의 행동이 얼마나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던지 정신을 차려 보니 디아나는 이미 그의 품에 파묻히듯 안겨 있었다.

“흣…….”

디아나는 케이든의 팔을 그러쥔 채 옅은 신음을 흘렸다. 지난번, 춤 연습을 하다가 충동적으로 입술을 맞댔을 때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그때는 그야말로 본능에 이성이 잠식당해 정신이 없었다면, 지금은 정신이 너무 멀쩡한 탓에 두 배로 간지러웠다. 느긋하고, 여유로운 움직임이 외려 조바심을 불러일으켰다.

‘숨 막혀.’

키스하던 중 슬쩍 눈을 떠 보니 곧장 검은색 눈과 시선이 맞닿았다. 디아나는 내내 눈을 뜨고 있던 것 같은 케이든의 모습에 놀라 눈을 몇 번 깜박였다.

그러자 케이든이 보란 듯 느긋하게 눈을 접어 웃었다.

눈을 뜬 채로 입을 맞추며 짓는 웃음이 지독히 선정적이었다. 디아나의 귓가가 확 달아올랐다.

“이, 이 정도면 충분한 것 같아요.”

결국 디아나는 숨이 차는 탓에 케이든을 밀어내며 소곤거렸다.

사람들의 눈치를 살피기 위해 주위를 곁눈질한 그녀가 이상함을 눈치채고 미간을 찌푸렸다.

“……음?”

디아나는 케이든에게 허리를 붙들린 채 고개만 돌려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대체 언제 물러간 것인지, 방 안에는 마담 드롱과 사용인들의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자리를 비운 지 한참은 되어 보였다.

디아나는 뒤늦게 속았음을 깨닫고 항의하려 고개를 돌렸다.

“케이든, 이게 무슨…….”

쪽.

그러나 케이든이 그녀의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추어 말을 막았다. 디아나는 다시 항의하려 했다.

“이게…….”

쪽.

“그…….”

쪽.

디아나는 말을 하려 할 때마다 제 입을 입술로 막는 케이든을 노려보았다. 그가 산뜻하게 미소 지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다들 언제 사라졌대. 전혀 몰랐네.”

너무 뻔뻔하니 외려 항의할 의지가 사라졌다. 한숨을 푹 내쉬고 고개를 젓던 디아나가 무언가를 발견하고 놀라 눈을 크게 떴다.

“잠시만요, 입술에…….”

“응?”

케이든이 어리둥절하게 고개를 갸웃했다. 디아나는 그의 입술에 묻어난 분홍빛 연지를 보고는 당황했다.

“그, 연지가 묻어서요.”

“아. 여기?”

케이든이 제 입술을 엄지로 슥 문질렀다. 연지가 그의 손가락을 따라 죽 번졌다.

디아나는 그 바람에 누가 보아도 ‘방금 막 키스한 사람’ 같은 케이든을 보고 기겁했다.

안 그래도 머리와 옷이 잔뜩 흐트러져 있었는데 입가에 연지까지 번지니 바깥에 내보여서는 안 될 것 같은 모습이 되었다.

“그냥 제가 닦아 드릴게요.”

디아나는 황급히 화장대 위의 손수건을 집어 그의 입술을 박박 소리가 날 정도로 열심히 닦았다. 그가 웃음을 터트리며 그녀의 손길을 피했다.

“왜 그래. 그렇게 별로였어?”

“그게 아니니까 문제…… 아, 아니에요. 이제 다 닦였어요.”

케이든의 웃음을 기점으로 뱃속이 조여드는 듯하던 분위기가 옅어졌다. 디아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손수건을 구겨 버렸다.

그때 밖에서 희미한 음악 소리와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들려왔다.

창밖을 힐긋 일별한 케이든이 디아나의 허리를 놓아주었다.

“그대는 이제 가 봐야 하지?”

“그런 것 같아요. 전하께서는…….”

“여기서 두 시간 정도 더 대기하다가 황제 폐하의 준비가 끝나면 함께 나가야 해. 혼자 있지 말고, 형님 내외와 함께 있어.”

“네.”

디아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케이든이 황제와 함께 수도를 한 바퀴 돌 동안, 다른 황족들과 함께 단상 앞에 앉아 그들을 기다려야 했다.

케이든이 디아나의 머리카락을 정돈해 준 후 그녀의 머리를 토닥였다.

“좋아. 이따가 봐.”

“네. 조심히 다녀오세요.”

“그래야지. 약속도 못 지키는 한심한 사람이 되면 안 되니까.”

“알겠어요.”

케이든은 단둘이 건국제에 나가기로 했던 약속을 은근한 어조로 상기시켰다. 그에 디아나가 작게 웃음을 터트리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방을 나섰다.

“……하.”

그리하여 홀로 남겨진 케이든이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가 고개를 숙이며 한 손으로 제 입술을 만지작거렸다. 뒤늦게 볼이 달아올랐다.

“아, 죽겠네…….”

그가 양손에 고개를 파묻으며 앓는 소리를 흘렸다. 디아나와 키스할 때 자꾸만 손이 허리 위로 올라가려는 통에 여러모로 곤란했다.

디아나와 닿으면 닿을수록 나날이 인내심의 한계를 갱신하는 느낌이었다.

‘그래도 잘 참았다.’

케이든은 파렴치한이 되지 않은 자신을 속으로 칭찬하며 열기를 가라앉히려 애썼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머릿속으로 식순을 되짚으며 호흡을 고르니 얼마 지나지 않아 마음이 차분해졌다.

똑똑.

그때 노크 소리가 들렸다. 케이든은 잠시 사라졌던 마담 드롱이 돌아온 것일까 하여 별 경계심 없이 말했다.

“들어와.”

그러나 다음 순간. 케이든은 문을 열고 나타난 인영에 반사적으로 표정을 굳혔다.

“……누님?”

방 안으로 들어온 것은 눈물범벅이 된 얼굴의 2황녀 카를롯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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