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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화 (65/145)

65화

“…….”

3황자궁으로 돌아온 디아나는 침대에 걸터앉은 채, 침대 한가운데에 놓인 속옷 봉투를 벌레라도 되는 것처럼 노려보았다.

‘저걸 어떻게 치우지.’

케이든과 디아나가 계약 부부라는 것은 뮈젤도, 벨라도바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벨라가 저 속옷을 보게 된다면……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몸에 소름이 돋았다.

벨라를 시킬 수도, 다른 사용인을 시킬 수도 없었다. 잘못해서 내용물을 내보였다가는 그날로 수치사하게 될지도 몰랐다.

그렇다고 정령을 불러서 치우라고 하기엔…… 왠지 몹쓸 짓을 하는 것 같고.

직접 치우기에는 소름이 끼쳐 봉투조차 만지고 싶지 않고.

‘으음.’

강요에 못 이겨 가지고 오긴 했는데, 여러모로 처리하기가 난감했다.

‘역시 나중에 몰래 태워야겠다.’

저 속옷을 한 땀 한 땀 공들여 만들었을 에스딜에게는 미안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디아나는 그리 결심하고 심호흡을 했다. 그녀가 용기를 내어 속옷 봉투 쪽으로 손을 뻗는 순간이었다.

똑똑.

“디아나, 아냐. 들어갈게.”

노크 소리가 들리고 문이 예고 없이 열렸다.

그와 동시에 오늘이 케이든과의 동침 날이며, 그들은 평소에도 별다른 허락 없이 서로의 방에 드나들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디아나는 소리 없이 비명을 지르고는 속옷 봉투를 덥석 집어 들어 침대 아래로 던졌다.

급하게 움직이는 바람에 균형을 잃은 그녀가 엉덩방아를 찧으며 침대 옆에 주저앉았다. 꿍, 하고 제법 큰 소리가 났다.

“……디아나? 거기서 뭐 해?”

케이든은 침대 옆 바닥에 주저앉아 시트를 움켜쥔 채 괴로워하는 디아나를 희한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디아나는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웃음을 지어 보였다.

“오셨어요?”

“왜 그래? 어디 아파?”

“아니요, 전혀요.”

“그런 것치고는 방금 굉장한 소리가 들렸는데.”

“착각이세요.”

케이든이 여러 번 물었으나 디아나는 꿋꿋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의심을 거두지 못한 채 그녀를 살피다가, 그녀의 등 뒤에서 무언가를 발견하고는 굳었다.

“디아나.”

“저 정말 괜찮…….”

“그게 아니라, 움직이지 말아 봐. 그대 침대 아래에 뭐가 있어. 뭔가…… 유령 같은데.”

“……네?”

순간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디아나는 오도 가도 못한 채 제자리에 그대로 굳어 버렸다. 사고가 아예 정지했다.

유령이라니.

디아나는 회귀라는 믿기지 않는 일까지 직접 겪어 본 사람이었다.

그러니 유령이라는, 다소 실체가 모호한 존재 또한 어쩔 수 없이 믿게 되었다.

디아나가 지나친 두려움에 움직임도 사고도 멈춘 사이, 케이든이 맹수를 앞에 둔 듯 신중한 걸음걸이로 그녀의 앞까지 다가왔다.

그가 쉿, 하고 디아나에게 주의를 준 다음 침대 아래로 조심스럽게 손을 뻗었다.

부스럭.

‘……어?’

저 소리는…… 설마…….

순간 ‘유령’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보다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디아나는 얼음이 쩡 소리를 내며 깨어지듯 순식간에 몸을 돌렸다. 그러나 일은 이미 벌어진 후였다.

“그러니까 이게…….”

케이든은 침대 아래에서 꺼낸 게 유령의 허물이 아닌, 디아나가 급하게 던져 넣었던 붉은색의 도발적인 속옷이라는 것을 깨닫고는 우뚝 말을 멈추었다.

이후로는 침묵이었다. 두 사람은 어떤 말을 꺼내 놓아야 할지 몰라 그저 입을 다물고 있었다.

한참이나 이어진 정적을 깬 것은 케이든이었다.

그는 상황을 파악하려는 듯 제 손에 들린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디아나에게로 시선을 옮기며 입을 열었다.

“이거…….”

“제 거 아니에요.”

“그대 침대 밑에서…….”

“저는 모르는 거예요.”

“여기 그대 방…….”

“여기 제 방 아닌데요?”

“뭐라는 거야.”

진짜 귀여워서 어쩌면 좋냐.

당황한 디아나가 아무런 말이나 내뱉는 모습에 케이든이 한 팔로 얼굴을 가리고 웃음을 터트렸다.

그 웃음소리에 디아나의 얼굴이 드물게도 눈에 띌 정도로 달아올랐다.

“……이리 주세요. 분위기에 휩쓸려 강제로 선물받았던 거라 버리려던 참이었으니 오해는 마시고요.”

“새것 같은데. 아깝지 않아?”

“전혀요. 그러니까 이리 주세요.”

디아나는 케이든의 손에서 속옷을 빼앗으려 애썼다. 하지만 그가 팔을 높게 들어 올린 채 이리저리 피하는 통에 쉽지 않았다.

“주시라니까……!”

디아나가 결국 목소리를 높이며 손을 뻗었다. 하지만 힘 조절을 잘 못한 것인지 몸이 기우뚱 기울어졌다.

“아야.”

디아나는 그대로 케이든의 품에 코를 박았다. 그녀가 찡한 코를 양손으로 감싸 쥐며 위를 올려다보자 케이든의 얼굴이 코앞에 있었다.

“……아.”

그와 입술이 닿을락 말락 한 거리에 있다는 것을 자각하자마자 아랫배가 오싹하게 달아오르는 듯했다.

디아나는 급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주춤주춤 몸을 물렸다.

케이든과 거리를 벌리기 위함이었으나, 그는 말없이 그녀를 따라 몸을 일으키며 벌려진 거리를 다시 좁혔다.

“저, 그…… 할 말이 있으시면 거기서…….”

디아나는 뒤로 한 걸음을 더 물리며 소심하게 항의했다. 그러나 직후, 침대에 무릎이 걸리며 몸이 뒤로 휘청 넘어갔다.

풀썩―

디아나는 반사적으로 눈을 질끈 감았다가, 등을 감싸는 푹신한 감각에 눈을 떴다. 그리고 숨을 멈췄다.

“……디아나.”

어느새 케이든이 그녀의 몸 위를 덮치듯 올라타 있었다. 그가 한 손으로 디아나의 머리 옆을 짚은 채로 낮게 웃었다.

“디아나.”

오싹하리만치 낮은 부름에 일순 목덜미를 타고 소름이 오소소 돋아났다.

케이든이 침대를 짚지 않은 손으로 입고 있던 셔츠의 단추를 하나둘 풀어 내렸다.

디아나가 그를 말리기 위해 입술을 달싹였으나 어째서인지 말이 나오지 않았다.

제 위를 온통 차지한 케이든에게서 풍기는 분위기가 숨통을 틀어막았다.

툭―

마지막 단추가 풀어지는 소리가 유독 커다랗게 귓가를 자극했다.

디아나는 제 앞에 온전히 드러난 케이든의 상체를 멍하니 응시했다. 그의 몸에 사로잡혔다고 보아도 무방했다.

케이든의 몸은 그야말로 미학적으로 완벽하다고 해도 손색이 없었다.

그가 숨을 쉴 때마다 장인이 혼신의 힘을 기울여 빚어낸 듯한 근육들이 살아 움직였다. 그 움직임에 시선을 빼앗기는 것은 불가항력이었다.

케이든이 그 시선을 눈치채고 요요히 눈을 휘어 웃었다.

“나랑 이런 게 하고 싶어?”

나른한 속삭임이 귓가를 파고드는 것이 간지러워 디아나는 반사적으로 목을 조금 움츠렸다.

그때 케이든의 손이 디아나가 입은 나이트가운의 끈을 붙잡았다.

‘아.’

디아나가 흠칫하며 숨을 멈췄다. 케이든의 손이 천천히, 아주 느릿하게 가운의 끈을 잡아당겼다. 그녀는 그 광경을 고스란히 눈에 담으며 입술을 떨었다.

‘말려야…… 하는데.’

무언가를 갈구하듯 저를 바라보는 케이든의 얼굴을 보니 차마 그를 말릴 수가 없었다.

결국 디아나는 끈이 고리에 한 뼘 정도 걸쳐지게 되었을 때 눈을 질끈 감아 버렸다.

눈을 감은 채 작게 숨을 몰아쉬고 있는데 가운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뭐지?’

눈을 떠서 확인하고 싶은 마음 반, 케이든의 얼굴을 눈에 담기가 두렵다는 마음 반이었다.

디아나가 눈을 감고 갈등하던 차. 코앞에서 자그마한 웃음소리가 들리더니 이마에 쪽, 하고 나비의 날갯짓 같은 입맞춤이 내려앉았다.

“뭘 그렇게 긴장하고 있어. 안 할 거니까 숨 쉬어.”

“아…….”

디아나는 그 말을 듣고서야 의식적으로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케이든은 가벼운 몸짓으로 디아나에게서 물러서더니 셔츠의 단추를 채우기 시작했다.

그는 어색하게 침대에 걸터앉는 디아나를 보며 짓궂게 웃었다.

“우리 계약서에도 ‘상호의 완벽한 합의가 없는 한 잠자리는 하지 않는다’라고 적혀 있잖아. 서로 마음이 같지 않은데 그런 짓을 하는 건 인간도 아닌 쓰레기지.”

케이든은 어쩐지 자조적인 미소를 띤 채 그리 말했다.

그 말을 듣자 디아나의 어깨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한숨을 내쉬다가 말고 흠칫하며 제 입을 틀어막았다.

‘……잠깐만.’

혹시 방금 나…… 아쉽다고 생각한 건가?

분명 안도의 한숨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찰나 마음 한구석을 아릿하게 하던 감정.

그것은 분명 ‘아쉬움’이었다.

‘내가 점점 이상해지는 것 같아…….’

그것을 깨달은 디아나가 소리 없이 경악했다. 심장이 두려움인지 뭔지 모를 감정으로 빠르게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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