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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화 (42/145)

42화

아마도 황제에게는 잠시간의 변덕에 불과했겠지만, 레베카는 그로 인해 한층 더 위태로워졌다.

당장 고개만 돌려 보아도, 조금 전 황제의 말로 인해 케이든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달라졌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언제나 잡음 하나 없이 황위를 계승하기 위해 뼈를 깎는 노력을 한 것은 레베카 본인이었다.

그녀는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 없이 자부할 수 있었다.

하지만…….

[빛의 상급 정령사라니! 이게 대체 얼마 만인지……!]

[제법이구나. 다시 봤다.]

케이든은 항상 레베카가 갖지 못했던 것들을 ‘운 좋게’ 빼앗아 갔다.

그렇기에 레베카는 케이든이 죽이고 싶을 정도로 싫었다.

운 좋게 황가의 상징 속성을 강하게 타고난 아이.

요행에 힘입어 제가 쌓아 온 것들을 위협하는 아이.

레베카에게 케이든은 그저 분에 넘치는 운을 타고나 제 앞을 사사건건 가로막는 무능력자에 불과했다.

‘……웃자.’

하지만 사람들 앞에서 그러한 기색을 티 낼 순 없었기에 레베카는 애써 손에서 힘을 풀며 매끄럽게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이곳에 있는 이들은 전부 사람이 아닌 승냥이 떼였다.

언제고 그녀가 나약함을 내보인다면 곧장 등 돌려 물어뜯을 준비가 되어 있는 승냥이 떼.

저런 치들에게 저를 물어뜯을 기회를 줄 수야 없었다.

레베카는 허리를 더욱 반듯이 펴고 턱을 치켜들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그녀의 어머니인 1황비 역시 기분이 저조했는지 해사한 웃음을 띠며 그녀에게 말을 걸어왔다.

“저쪽에 네 외조부가 계시는구나. 함께 인사하러 가련?”

“네, 어머니.”

1황비와 레베카는 단상 앞을 벗어나 핀들레이 공작과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사라졌다.

2황비 역시 제 자식들을 이끌고 그 뒤를 따랐다.

사람들은 그들이 자존심 탓에 자리를 피한 것인지 호기심 어린 눈빛을 했으나, 이내 그 관심은 케이든에게로 돌아갔다.

“저…… 3황자 전하.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이번 모의 전투에서의 활약상은 가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안녕하세요, 부상은 이제 괜찮으신가요?”

“3황자 전하.”

사람들은 레베카 일파가 자리를 비우자마자 하나둘 케이든에게 말을 붙이기 시작했다.

케이든은 눈 깜짝할 새에 인파에 둘러싸였다. 그가 애써 당황을 감추며 웃는 사이, 디아나는 그의 귓가 가까이 고개를 기울이고 작게 속삭였다.

“저는 자리를 피해 있을게요, 이야기 나누세요.”

“왜? 불편해서 그래?”

“조금은…….”

디아나는 케이든의 앞에 바글거리는 사람들을 힐긋 일별하고 어색한 미소를 띠었다.

영락없이 사람들의 관심이 부담스러운 듯한 기색이었다.

케이든은 아쉬움을 감추며 디아나의 손을 놓았다.

“알았어. 혹시 무슨 일 생기지 않게 조심하고, 이따가 내가 찾아갈게.”

“천천히 오셔도 괜찮으니 편하게 말씀 나누세요.”

‘됐다.’

디아나는 ‘천천히’에 힘주어 말하고는 뒷걸음질 쳐 케이든의 곁을 벗어났다.

사람들의 관심이 부담스러운 것도 어느 정도는 사실이었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이번 축하연을 통해 케이든의 존재를 귀족들에게 확실히 각인시키는 것이었으니까.

괜히 그의 곁에 서서 시선을 분산시키는 것보다는, 그가 확실히 돋보일 수 있도록 자리를 비켜 주는 것이 낫겠다는 판단으로부터 나온 행동이었다.

‘잘하시겠지.’

디아나는 조금 긴장한 듯 경직된 미소를 띤 채 사람들의 말을 듣고 있는 케이든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지금에야 이렇듯 갑작스럽게 쏠린 관심을 어색해할지 몰라도, 그는 타고나기를 사교적이고 영리한 사람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레베카만큼이나 능숙하게 사람을 대할 수 있을 것이다.

디아나는 그런 믿음으로 소리 없이 자리를 피했다.

그녀의 예상대로, 케이든은 얼마 지나지 않아 한결 편안한 기색으로 귀족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곤란한 화제는 은근슬쩍 다른 이에게로 넘기고, 제게 도움이 될 만한 정보를 얻어 내는 모습이 제법 능란하게 보였다.

케이든은 제게 관심을 보이던 귀족들이 어느 정도 물러난 후에야 숨을 돌릴 수 있었다.

‘디아나는 어디 있지.’

케이든은 습관처럼 디아나를 찾아 파티장을 둘러보다가 멈칫했다. 그는 미간을 살짝 좁힌 채 고민했다.

‘아니. 마음을 다스리려면 찾아가지 않는 편이 나으려나? 하지만 혼자 두기가…….’

결혼식 피로연 때, 그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루드비히가 디아나에게 접근했던 일을 생각하니 불안했다.

그때 타이밍 좋게 웃는 얼굴의 루드비히가 케이든에게 다가왔다.

그 광경을 본 사람들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그들을 곁눈질하며 숨을 죽였다.

루드비히는 가볍게 예를 갖췄다. 그 자태가 우아하기 그지없었다.

“루드비히 카드몬드가 3황자 전하를 뵙습니다.”

“……무슨 일이지, 카드몬드 후작?”

케이든은 경계심이 역력한 얼굴로 루드비히를 노려보았다.

그도 그럴 것이 레베카의 책사이자, 그녀와 사촌 관계인 루드비히가 나서서 케이든을 찾아올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루드비히는 시종일관 웃는 얼굴이었다. 그 미소 탓에 속내를 읽어 내기가 쉽지 않았다.

루드비히는 그야말로 천사 같은 미소를 띤 채 입을 열었다.

“왜냐니…… 전하께서는 명실상부 이 파티의 주인공이시잖습니까. 파티의 주인공에게 축하 인사를 건네러 오는 것이 이상한가요?”

“뭐?”

“개인전과 방어전 모두 승리하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전하.”

루드비히가 매끄럽게 말을 맺으며 케이든에게 악수를 청하듯 손을 내밀었다.

케이든은 눈을 가늘게 뜬 채 그 손을 바라보다가 힐끔 주위를 살폈다.

사람들은 케이든과 루드비히의 행동 하나하나에 주목하고 있었다.

루드비히는 제가 따르는 주인이 방어전에서 패배했으니 마음이 쓰라릴 법도 한데, 먼저 웃는 얼굴로 케이든에게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그런 상황이었다.

만약 케이든이 축하를 거절한다면, 자칫 사람들이 루드비히를 동정할 여지를 줄 만큼.

‘일부러 머리를 썼군.’

케이든은 말없이 루드비히를 노려보다가 천천히 손을 뻗어 상대의 손을 마주 잡았다.

그가 맞잡은 손에 지그시 힘을 주며 나직이 말했다.

“축하 고맙네.”

“하하, 별말씀을…….”

“그런데 그보다 먼저 해야 할 말이 있지 않나, 후작?”

“…….”

너스레를 떨며 케이든의 말을 받으려던 루드비히가 웃는 얼굴 그대로 멈칫했다.

케이든은 달리 말을 덧붙이지 않았지만, 살벌한 눈빛으로도 충분히 그의 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루드비히 카드몬드는 레베카의 책사이자 측근이다.

그런 그가 디아나를 공격하자는 레베카의 제안을 몰랐을 리가 없었다.

‘알고도 방관한 거겠지.’

케이든의 예상대로, 루드비히는 방어전이 시작되기 직전 레베카로부터 디아나에게서 확인할 것이 있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하지만 말리지 않았다.

그 또한 처음 만났을 때부터 디아나에게서 기묘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흠.’

루드비히는 티 나지 않게 사람들의 주위를 살폈다.

‘인사를 거절당하고 머쓱하게 손을 물리는 모습으로 동정을 사 볼까 했는데.’

루드비히는 자신과 레베카가 디아나를 해치려 했던 일 때문에 케이든이 제 인사를 받아 주지 않을 줄 알았다.

그래서 일부러 사람들의 시선이 쏠린 곳에서 케이든을 찾아가 축하 인사를 건넸다. 케이든은 귀족들에게 막 인정받기 시작하는 중이었다.

호흡 하나, 걸음 하나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시기에, 아무리 정적이라지만 매몰차게 인사를 거절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좋지 않을 터.

루드비히는 케이든이 매몰차게 제 인사를 거절하면 눈물이라도 짜내며 애처로운 모습을 보일 작정이었다.

그것만으로 레베카에 관한 소문을 모두 잠재울 수는 없겠지만, 대중이란 결국 눈에 보이는 것에 약한 족속이었으므로 적어도 이 파티에서 지나치게 케이든에게로 쏠려 있는 ‘흐름’은 끊어 낼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케이든은 예상외로 무던하게 루드비히의 축하 인사를 받아 주었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은근슬쩍 방어전에서의 일을 언급하며 그를 압박하기까지.

‘……쥐새끼인 줄 알았는데, 표범 새끼였나.’

루드비히의 눈이 가늘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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