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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의 독사과-87화 (87/139)

제 87 화

키안의 눈꺼풀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그와 동시에 나른한 숨소리와 함께 뜨거운 입술이 자신의 입술을 삼켰다.

“흐읏-”

말캉하고 촉촉한 입술이 야릇하게 비벼졌다. 입술이 닿았다 떨어지길 반복했다. 그럴수록 두 사람의 입술은 안타까운 듯 다시 겹쳐지며, 더욱 깊숙이 서로의 숨결을 삼켰다.

순식간에 키스가 농밀해졌다. 젖은 입술이 얽히며 질척한 소리가 났다. 농밀하게 혀를 얽으며 키스를 하던 세이란이 거친 숨을 내쉬며, 입술을 뗐다. 그러곤 키안의 입술 위에서 낮게 속삭였다.

“키안, 약속해. 다신 아무도 널 만지게 하지 않겠다고.”

그의 속삭임에 키안이 눈을 떴다. 처음엔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깨닫지 못했다. 하지만 다음 순간, 얼굴이 붉어졌다. 그의 짙은 녹색 눈동자 속에 담긴 감정은 질투였던 것이다.

“혹시 냇가에서의 일을 두고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건 별 뜻 없는 행동이었습니다.”

그 역시 알고 있었다. 레이디들이 키안의 허벅지를 밀가루 반죽 주무르듯 만진 건 별 뜻 없는 호기심이었다는 걸.

하지만 베로니카가 갖고 있는 호기심은 좀 더 오래되고, 더 깊은 감정이었다.

3년 전 베로니카가 키안을 보며 얼굴을 붉히는 걸 본 적이 있었다. 그 순간 그녀가 키안에게 관심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일부러 그녀가 참석하는 모든 파티에 참석했다.

베로니카의 시선을 키안에게서 떼어내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결과는 실패였다. 자신이 잘못 생각했던 것이다. 그 사실을 알게 된 후, 세이란은 방법을 바꿨다. 다시는 사교계의 파티에 참석하지 않은 것이다. 그건 키안도 마찬가지였다.

지금도 키안은 그 사실을 절대 알 리 없었다. 그것 역시 질투였으니까.

“알아. 하지만 그게 누가 되었든 널 만지는 건 싫다.”

“저 말입니까? 레이디 베로니카가 아니라?”

세이란은 눈살을 찌푸렸다. 키안이 그가 베로니카에게 마음이 있다고 오해하고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 사실 바로 잡지 않은 이유는 키안을 자신의 곁에 묶어놓기 위해서였다. 그렇지만 이쯤 되니, 자꾸만 짜증이 났다. 어떤 의미에서든 키안이 자신 외에 다른 사람에게 신경을 쓰는 건 싫었다.

“내가 신경 쓰는 건, 오롯이 너다. 키안 레녹스, 바로 너. 그러니 너도 나만 보면 돼.”

정말 둔하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그런 점이 세이란을 자꾸 흔들었다. 혼자 질투를 했다가 미친놈처럼 화를 내고. 또 이렇게 미친 듯이 입술을 겹치고 싶어 죽을 것 같았다.

놀라 커진 하늘빛 눈동자를 보며, 세이란이 입술을 겹쳐 왔다. 혀로 매끄러운 입술을 쓸고, 이로 잘근잘근 입술 안쪽을 씹었다. 키안이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도록, 혀로 훑어 내리며 나른하게 입술 안쪽을 빨아 당겼다.

“흣-”

나른한 숨을 내쉬며, 키안의 턱이 들리며 바르르 떨렸다. 그 순간 세이란이 혀를 깊숙이 밀어 넣고는 혀를 단단히 휘감았다. 야릇하게 두 개의 혀가 얽혔다. 키스가 점점 농밀해졌다.

“흐음-”

지금 여기서 서로를 안을 수 없다는 건, 두 사람 다 알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두 사람이 키스는 더욱 야릇하고 타는 듯 뜨거웠다. 마치 서로의 입술을 탐하는 행위가 몸을 나누는 것처럼 짙은 열기를 품고 달라붙었다.

“하아, 흣-”

나른한 감각에 키안이 본능적으로 허릴 비틀었다. 그러자 단단해진 그의 남성이 자신의 납작한 아랫배에 문질러졌다. 마치 커다랗고 뜨거운 쇳덩어리가 찌르는 느낌이었다. 농밀하게 키스를 하던 그가 갑자기 입술을 뗐다.

“하아- 하아!”

거친 숨을 내쉬며, 몸을 일으킨 그가 질끈 눈을 감았다. 위험했다. 지금 멈추지 않으면 이곳에서 키안을 가져 버릴 것 같았다.

세이란은 거친 숨을 내쉬며, 열기를 가라앉히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호수로 가서 차가운 물에 몸을 식혀야 할 것 같았다.

“어딜 가시려는 겁니까?”

자리에서 일어서는 그를 키안이 붙잡았다. 그러자 그가 자신의 손을 억지로 떼어내며, 잔뜩 쉰 목소리로 말했다.

“여기서 기다려. 차가운 물에 몸을 식히고 와야겠다. 그렇지 않으면, 싫다는 널 가져 버릴 것 같아서.”

키안 역시 아랫배가 욱신거렸다. 다리 안쪽의 여린 속살은 이미 내벽을 타고 흘러내린 애액으로 인해 촉촉이 젖어 있었다. 당장에라도 그의 남성을 삼키고 싶다는 듯 음란하게 움찔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보다 세이란은 더 힘든 것 같았다. 생각해 보니 사내들은 안의 것을 밖으로 분출하지 않으면, 열기가 가라앉지 않는다고 들었던 것 같았다.

“제가 해드리겠습니다. 지금 상태에서 호수로 들어갔다간, 감기에 걸릴 수도 있으니까요.”

키안의 제안에 세이란이 눈살을 찌푸렸다. 대체 지금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알고나 있는 것인지 의문스러웠기 때문이었다.

“너, 네가 지금 무슨 말을 했는지 알고나 있는 것이냐?”

세이란의 물음에 키안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러곤 세이란이 자신이 성적으로 무지하다고 무시하는 것 같자, 기사들이 했던 말들을 떠올리며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저도 알 건 다 아는 나이입니다. 제가 지금껏 기사들의 음담패설을 들어온 게 몇 년째인데요.”

순간 세이란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지금까지 그자들은 키안 앞에서 대체 어떤 말들을 지껄여 댄 거야? 다음번에 걸리기만 하면, 본때를 보여줘야겠군. 키안 앞에서 입도 벙끗 못하도록.’

키안이 대담하게도 손을 뻗어 세이란의 벨트를 풀려 했다.

“너 뭐하는 거야? 자, 잠깐. 기다려.”

당황한 쪽은 오히려 세이란이었다. 키안이 자신의 벨트를 풀고 바지를 벗기려 하자, 이상하게 긴장이 됐다.

아니, 상상이 돼 미쳐 버릴 것 같았다. 그의 바지를 벗기고 키안이 입술과 혀로 자신의 남성을 물고 핥을 생각을 하자 심장이 무섭게 뛰었다.

“하아, 정말 미치겠군.”

그런 상황이 된다면, 이성의 끈이 끊겨 더는 참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제가 서툴러서 싫으신 겁니까?”

“너 지금 내 상태가 어떤지 알고나 하는 말이야? 절대 아니야.”

“그럼 왜 그러시는 겁니까? 괴로우실 텐데, 제가 도와드리면 편해질 겁니다. 그런데 왜 거부하시는 겁니까?”

키안의 물음에 세이란이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그러곤 키안에게 고갤 숙인 후 욕망이 담긴 진득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못 참을 것 같아서.”

순간 키안의 눈동자가 놀란 듯 흔들렸다. 그 순간 그의 뜨거운 숨결이 귓불에 닿았다.

“못 참고 널 가질 것 같아 두렵다. 내 욕심껏 널 밀어뜨리고, 저항하는 널 가져 버릴 것 같아서. 그래서 가는 거야. 네가 서툴러서가 아니라.”

세이란이 키안을 놓아주었다. 그러곤 마음이 바뀌기 전에 서둘러 동굴 밖으로 나갔다.

잠시 후 그가 호수로 뛰어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생각해 보니, 호수의 물은 그렇게 차갑지 않은 것 같았다.

“감기는 걸리지 않겠어.”

키안은 드레스 자락에 얼굴을 묻었다. 그가 귓가에 속삭인 말이 자꾸 떠올라, 몸이 달아올랐다. 키안 역시 더운 숨을 삼키며, 아랫배에 이는 뜨거운 열기를 가라앉히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 했다. 허리가 자꾸만 비틀리고, 나른한 신음이 새어 나오는 걸 참기 위해 입술을 깨물어야 했다. 이미 남녀 간의 짙은 정사의 쾌락을 아는 키안의 허리가 위험스럽게 비틀렸다.

그렇게 두 사람에게 견디기 힘든,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

얼굴까지 검은 외투의 후드를 깊숙이 눌러 쓴 여인이 말을 달려, 어두운 숲을 가로질렀다. 승마에 익숙한 그녀의 몸놀림은 흡사 우아한 고양잇과 맹수를 연상시켰다.

빽빽한 나무로 들어찬 숲을 가로지르던 여인이 재빨리 말고삐를 당겼다.

그러곤 잽싸게 말에서 내린 여인은 커다란 나무 아래 무릎을 꿇었다. 그러자 나무 뒤에 서 있던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사내 역시 검은 외투에 후드를 깊이 눌러쓴 상태였다. 하지만 여인은 이미 사내를 알고 있는 듯 반가움을 드러냈다.

“여기서 뵙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여인의 떨리는 목소리엔 반가움이 담겨 있었다.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직접 유스타나까지 오게 될 줄은 몰랐거든요. 유스타나의 생활은 어떠셨습니까?”

사내가 눌러 쓰고 있던 후드를 벗자, 테란국의 기사인 이고르가 모습을 드러냈다.

“평범했습니다, 지루할 만큼요.”

여인의 입가에 떠오른 냉소를 보며, 이고르가 말했다.

“평안하셨다는 말처럼 들리는군요.”

이고르의 말처럼 유스타나에서의 생활은 평화로웠다. 아니, 모든 것이 정해진 운명대로 되었다면 아무 일 없이 유스타나에서 생을 끝마쳤을 터였다. 하지만… 모든 게 달라졌다.

“공주님께선 어떠십니까?”

여인의 물음에 이고르가 서늘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알고 계시는 그대로입니다. 유스타나에 떠도는 소문에서 더하고 뺄 것도 없습니다. 그나저나 공주님께서 부탁한 일은 어디까지 진행 중인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이고르는 초조함을 드러내며, 일의 진행 상항을 물어왔다. 그러자 여인이 걱정할 것 없다는 듯 말했다.

“문제없을 겁니다. 곧 연락을 드릴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여기.”

여인이 품속에서 편지 봉투를 꺼내 이고르에게 전했다. 봉투의 앞면엔 검은색 인장이 찍혀 있었다.

“이건 저에게 전달된 마지막 편지입니다. 공주님께 전해주십시오. 기다리고 계실 겁니다.”

이고르가 여인에게서 봉투를 받은 후 재빨리 품속으로 밀어 넣었다.

“자릴 오래 비울 수가 없습니다. 바로 돌아가야 합니다.”

지금쯤 만찬이 끝났을 시각이었다. 서둘러 돌아가야 했다.

“그럼 다음 약속 장소는 따로 연락드리겠습니다, 이고르 님.”

“보는 눈이 많습니다.”

이고르의 말에 여인의 입가에 처음으로 미소 비슷한 게 걸렸다.

“별궁으로 사람이 갈 겁니다.”

“별궁엔 다양한 사람이 드나듭니다. 구별할 방법은 있는 겁니까?”

이고르의 질문에 여인이 걱정 말라는 듯 말했다.

“그분이 별궁에 들어선 순간 알게 될 겁니다. 그러니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 말과 함께 여인이 타고 왔던 말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그러곤 이고르에게 고갤 숙여 보인 후, 말을 타고 재빨리 숲을 빠져나갔다.

이고르는 여인의 모습이 어둠 속으로 사라지자, 그 역시 말에 올랐다. 그러곤 유스타나 제국의 막사가 있는 쪽으로 재빨리 말을 달리기 시작했다.

황제의 독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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