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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의 독사과-28화 (28/139)

제 28 화

뭐? 지금 내가 정확히 들은 거야? 벨라는 갑작스러운 사과의 말에 에드윈이 있는 쪽으로 고갤 획 돌렸다. 그러자 에드윈은 다시 한 번 정중한 태도로 입을 열었다.

“제가 섣부른 오해를 했던 것 같습니다. 사실 전, 아키텐 공작부인께서 미망인이 되셨다는 사실은 몰랐습니다.”

“당연히 모르셨을 겁니다. 그리 유쾌한 소문도 아니었으니까요.”

미망인이란 말에 벨라의 눈살이 다시 찌푸려졌다. 정말 눈치라곤, 약에 쓸려고 해도 없는 남자인 모양이었다. 그러자 에드윈이 조금 당황한 표정으로 벨라의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제가 오랫동안 책 속에 파묻혀 있다 보니, 사람을 대하는 방법에 서툽니다. 사실 전, 사람보단 책에 있는 지식과 얘길 나누는 게 더 편하거든요.”

이 남자, 지금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설마 이게 화해의 첫걸음이란 건가? 벨라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에드윈을 보며 말했다.

“책에 있는 지식과 얘길 나눈다고요? 정말 특이한 취미를 가지셨네요, 리치문트 공작님. 하지만 각자의 취미 생활을 비난할 이유는 없죠. 각자 추구하는 삶의 형태가 있으니까요.”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사과드립니다.”

이 남자, 정말 뭐지? 그날 밤과는 달리 정중하게 사과를 하는 에드윈을 보자, 벨라는 마음이 조금 누그러졌다.

“저 역시 무턱대고 화를 내서 죄송합니다. 사실 전, 공작님께서 책과 얘길 나누는데 익숙하다는 사실을 몰랐거든요. 하지만 다음에 뵀을 때도 즐거운 대화를 나누진 못할 것 같습니다. 전 책만 붙잡으며 졸음이 오거든요.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마차가 도착해서.”

때마침 아키텐 공작가의 마차가 멈춰 섰다. 벨라가 서둘러 마차에 타기 위해 계단을 내려갔다. 그러자 에드윈 역시 벨라와 함께 계단을 내려왔다. 에드윈의 마차 역시 도착한 모양이었다.

“제가 해드리겠습니다.”

에드윈이 자신의 마차로 가는 대신, 아키텐 공작가의 마차의 문을 열어주었다. 그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놀란 벨라가 걸음을 멈추곤 그를 돌아보았다.

“……?”

“사과의 의미입니다.”

에드윈의 말에 벨라는 눈을 가늘게 떴다. 그래도 예의를 밥 말아 먹은 건 아닌 모양이었다.

“감사합니다, 리치문트 공작님. 그럼.”

벨라가 드레스 자락을 붙잡곤 마차에 올랐다.

“어엇!”

너무 놀란 탓일까? 아니면 긴장을 해서인 걸까? 벨라는 지금까지 한 번도 하지 않던 실수를 했다. 구두로 드레스 자락을 밟고 휘청거렸던 것이다.

사실 지금까지 벨라는 남자의 관심을 끌기 위해 일부러 드레스를 밟는 레이디들을 보면, 속으로 경멸을 했었다. 하지만 지금 자신이 바로 그런 행동을 한 것이다. 절대 의도된 것은 아니었지만.

“괜찮으십니까?”

마치 정해진 수순처럼 에드윈이 벨라의 팔을 붙잡았다. 제길! 레이디라면 절대 써선 안 되는 욕설을 마음속으로 뱉어내며 벨라는 표정을 가다듬었다. 그러곤 재빨리 그의 품에서 벗어나며, 말했다.

“절대 의도적인 건 아니었으니, 오해는 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

순간 벨라는 자신이 또 실수를 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에드윈이 뭘 말하는지 전혀 모르겠다는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 맞다. 잊고 있었어. 이 사람은 연애에 닳고 닳은 귀족이 아니라, 책하고만 대화를 나누는 사람이란 걸.’

벨라의 차가운 표정에도 불구하고, 에드윈은 정중한 표정으로 차분하게 말했다.

“오해는 하지 않았습니다. 일부러 넘어지려고 하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아, 그렇죠. 붙잡아주셔서, 감사했습니다.”

벨라가 살짝 무릎을 구부려 에드윈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아마, 제 첫인상 때문일 겁니다. 그날 대화가 그리 유쾌하지는 않았으니까요.”

에드윈이 살짝 흘러내린 안경을 손끝으로 밀어 올리는 게 보였다. 습관적인 행동일 테지만, 그 모습이 무척이나 지적으로 보였다. 그 순간 벨라는 처음으로 선입견을 버린 시선으로 에드윈 리치문트를 바라보았다.

‘뭐야? 생각보다 괜찮은 얼굴이잖아. 그리고 몸매 역시 책만 파는 공부벌레라곤 믿기지 않을 정도로 근육질이야. 운동이라도 하는 건가?’

잠깐, 지금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벨라는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을 재빨리 지워냈다. 그러곤 서둘러 에드윈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아무리 눈앞에 있는 남자가 잘생긴 훈남 귀족이라고 해도, 미망인인 자신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었다.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벨라가 마차에 오르자, 에드윈은 문을 닫지 않은 상태로 벨라가 안전하게 마차에 앉을 때까지 기다렸다.

‘뭐야? 책으로 사람을 대하는 방법을 배웠다고 하더니, 꽤 친절하잖아?’

벨라가 에드윈의 배려에 다시 한 번 고갤 숙여 인사를 건넸다. 그러자 에드윈이 한 발짝 뒤로 물러서더니, 마차의 문을 닫았다.

“조심히 모시도록 하게.”

에드윈이 마부에게 당부하는 소리가 들렸고, 마차가 출발했다. 벨라는 흔들리는 마차 안에서 조금 전 에드윈의 행동을 떠올리며, 그에 대한 최종적인 결론을 내렸다.

“뭐, 고지식하고 서툰 행동만 뺀다면 뭐 그럭저럭 봐줄 만큼 훈훈한 외모야. 몸도 의외로 좋고. 그럼, 이번 사교 시즌에 괜찮은 신랑감 후보가 한 명이 추가된 건가? 정말 이번 사교 시즌은 그 어느 때보다 경쟁이 치열하겠어.”

**

“전하, 주말에 사냥을 가신다는 말씀이십니까?”

에드윈은 세이란의 책상 위에 사교계의 소식은 물론 다양한 분야의 정보가 실린 로열페이퍼를 올려놓으며 말했다.

“아이크가 준 모양이군. 맞아, 오랜만에 몸도 풀 겸 사냥을 갈 생각이다.”

세이란은 에드윈이 책상 위에 올려놓은 신문을 펼쳐, 안에 있는 내용을 확인했다.

“혼자 가실 생각이라면, 도움은 안 되겠지만 함께 가겠습니다.”

에드윈의 말에 신문을 보던 세이란이 고갤 들었다. 그러곤 의외라는 얼굴로 그를 보았다.

“경은 학교 다닐 때부터 동물을 죽이는 행위엔 질색했던 것 같은데, 바뀐 건가? 특히 피를 보면 기절을 했던 것 같은데 말이야.”

세이란의 지적에 에드윈의 얼굴이 눈에 띄게 굳어졌다. 아직까지 그 일을 세이란이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기도 했지만, 피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 현기증이 일었다. 그 모습에 세이란은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을 했다.

“무리할 필요 없다, 리치문트 공작. 그 단어만 들어도 얼굴이 창백해지면서 사냥터에 따라오겠다니. 내가 걱정이 되는 것이면, 그럴 필요 없다. 레녹스 공작과 함께 갈 생각이거든.”

“그럼 레녹스 공작은 괜찮아진 겁니까?”

“뭐, 그렇지. 하지만 레녹스 공작은 사냥은 하지 않을 거야. 대신 레녹스 공작가의 꼬맹이가 내 상대가 될 예정이거든.”

레녹스 공작가에 꼬맹이가 있었던가? 아, 그러고 보니 생각이 났다. 7년 전에 레녹스 공작가에 사내아이가 태어났고, 그 일이 있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레녹스 공작 부처가 마차 사고로 사망했다. 그로 인해 키안은 어린 나이에 레녹스 공작 작위를 물려받아야 했었다.

“그러고 보니, 레녹스 공작에게 어린 동생이 있었군요. 많이 컸겠네요. 올해로 일곱 살이 되는 겁니까?”

“크기는 뭘? 아직 한참이나 남았다. 사타구니에 털이 나려면 말이다.”

세이란이 키안의 동생이 아직 일곱 살밖에 되지 않는 게 불만인 모양이었다.

순간, 풋 하고 웃음이 새어 나오려 했다. 그러고 보니 키안이 방학 때만 되면, 어린 동생을 돌보기 위해 레녹스 저택으로 돌아갔던 게 생각이 났다.

그때마다 세이란은 똥 씹은 얼굴로 키안의 뒷모습을 바라보곤 했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키안을 동생에게 빼앗겨 화가 났던 모양이었다.

“아이들은 금방 큰다고 하지 않습니까. 조금만 기다려 보십시오.”

“다 거짓말이야. 7년이나 지났는데, 카이우스는 여전히 키안의 1순위거든. 가끔 침대로 뛰어들어 같이 자기도 하는 모양이야. 쳇, 레녹스 공작은 너무 물러 터졌다니까. 동생의 못된 버릇을 단단히 고쳐 줘야 하는데, 다 들어주다니 말이야.”

신문의 내용을 살피며, 세이란은 지금까지 마음에 묻어놓았던 불만을 토로했다. 그러는 동안 세이란의 표정이 평소와 달라졌다는 사실을 스스로 인식하지 못한 듯했다. 에드윈은 조금 놀랐다. 세이란은 키안과 키안의 동생에 대한 얘길 할 때면 표정이 변했다.

‘뭐라고 말해야 할까? 사랑하는 사람을 빼앗겨 질투하는 것처럼 보인 달까?’

에드윈은 자신이 생각해 놓고도 너무 어이가 없었다. 세이란이 키안에게 질투를 느끼다니.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전하께선 레녹스 공작과 동생인 카이우스와 보내는 시간이 즐거우신 모양입니다.”

에드윈의 지적에 세이란이 고갤 들었다. 그 순간 입가에 서렸던 미소는 물론 감정을 드러내 보이던 눈빛 역시 평소의 것으로 되돌아왔다.

“내가 말이냐?”

“네, 그런 느낌을 받았습니다.”

에드윈은 조금 전 키안과 카이우스의 이야기를 할 때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기로 했다. 에드윈에겐 처음으로 본 세이란의 인간적인 표정이 마음에 들어, 그 표정이 자신의 말로 인해 사라지는 걸 원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말도 안 돼. 레녹스 공작은 몰라도, 카이우스는 아니다. 뭐, 아이치곤 굉장히 똑똑하긴 하지. 그 녀석은 악마다. 천사의 얼굴을 한, 악마.”

빈말이라도 칭찬에 인색한 세이란이 카이우스의 칭찬을 했다. 그건 그의 마음 밑바닥엔 카이우스에 대한 애정이 깔려 있다는 의미였다.

“그런데 전하, 아까부터 무얼 그렇게 보시는지 여쭤도 되겠습니까?”

에드윈은 로열페이퍼에서 눈을 떼지 않는 세이란을 보며, 호기심을 드러냈다. 평소엔 사교계의 소식지인 로열페이퍼엔 관심도 없으신 분이었다.

그런데 시종장인 아이크를 시켜, 로열페이퍼를 가져오게 하다니. 분명 그에 합당한 이유가 있을 것 같았다.

“소문을 찾고 있다.”

“소문이라니, 무슨 소문을 말씀하시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세이란이 들고 있던 로열페이퍼를 에드윈에게 건넸다. 한 번 그 소문이 뭔지 찾아보라는 뜻인 것 같았다. 로열페이퍼를 받아 든 에드윈은 기사의 내용을 살피기 시작했다. 그러다 로열페이퍼의 하단에 조그맣게 난 기사를 발견했다.

‘이 기사는 뭐지?’

에드윈이 안경을 손끝으로 밀어 올리며 기사의 내용에 집중했다. 며칠 전 병으로 누워 있는 레녹스 공작가에 아키텐 공작가의 미망인이 병문안을 간 이야기가 쓰여 있었다. 기사를 쓴 사람의 의도는 분명했다. 두 사람이 뭔가 비밀스러운 관계인 것처럼 말하고 있었다.

생각해 보니, 키안과 아키텐 공작부인의 친분에 관한 소문은 예전부터 있었다. 두 사람이 애인 사이라는 황당한 소문 같은 게.

“혹시 이 기사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레녹스 공작과 아키텐 공작인이 애인이라는 소문 말입니다.”

에드윈의 지적에 세이란이 고갤 가로저었다.

“뭐, 그런 소문이 있긴 했지. 하지만 내가 원하는 소문은 데칸 후작과 에버콘 공작가와의 스캔들을 말하는 것이다.”

데칸 후작이라면 유스타나 제국에서 루시타니아 상단과 맞먹을 정도로 큰 대상인이었다. 10년 전 유스타나 제국을 떠났던 데칸 후작이 2년 전 다시 유스타나로 돌아왔다. 그 후 데칸 후작은 엄청난 부를 이용해 유스타나 제국에서 두 번째로 큰 상단을 만들었다.

그런데 그런 부를 가진 데칸 후작이 최근 들어서 제임스 에버콘 공작과 어울리고 있었다. 세이란은 그 이유가 바로, 샤론 에버콘 공작부인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에버콘 공작부인께선 미망인이 되신 지 얼마 되지 않으셨습니다.”

“한 달 뒤면, 3년이지. 하지만 이건 어때? 고모님이신 에버콘 공작부인께는 결혼하기 전부터 연인이 있었다고 한다면 말이다.”

세이란의 말에 에드윈의 눈이 놀람으로 커졌다.

“혹시 그 연인이란 분이…….”

“그래서 확인 중이다. 무슨 의도가 있는 건지 말이다.”

세이란의 말에 에드윈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사실 에드윈 역시 데칸 후작과 에버콘 공작기 갑자기 뜻을 함께한 이유가 궁금했었다. 그런데 그런 사연이 숨겨져 있었다니.

무엇보다 데칸 후작은 귀족회의의 일원이었고, 모든 의결에 대한 결정권을 갖고 있었다.

그들이 다른 의도를 품었다면, 문제는 커질 수 있었다.

“루시타니아 상단에게 연락을 할까요?”

“지금은 아니다, 리치문트 공작. 우리 쪽에서 먼저 움직인다면, 그들은 꼬리를 잘라낸 후 깊은 어둠 속으로 숨어버릴 테니까.”

절대 그들이 도망치도록 놔두지 않을 것이다. 아주 천천히, 그리고 교묘하게 덫을 놓을 생각이었다. 순간 세이란의 눈빛이 서늘하게 변했다.

**

“하앙- 좀 더. 하아, 앤톤.”

무겁게 내려앉은 침실의 휘장을 뚫고 욕망에 젖은 여인의 신음 소리가 밖으로 새어 나왔다. 짙은 욕망에 몸서리를 치는 여인의 모습에 앤톤 데칸 역시 기쁨에 몸을 떨었다.

“샤론, 말해봐. 네가 원하는 게 뭔지.”

베개에 얼굴을 묻은 채 거친 신음을 삼키던, 샤론 에버콘이 고갤 들었다. 그러곤 요염한 눈빛으로 앤톤 데칸을 쏘아보며, 잔뜩 쉰 목소리로 재촉했다.

“말은 그만하고 제발, 움직여요. 미치기 일보 직전이니까.”

샤론 에버콘의 앙탈에 앤톤 데칸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지금도 의문이야. 이런 몸을 갖고 28년 동안 성불구자인 에버콘 공작과 함께 살다니 말이야.”

“그 입 다물어요. 아무리 당신이라도 내 남편을 욕보이는 건 절대 용납할 수 없으니까.”

샤론의 말에 앤톤 데칸의 눈빛이 서늘해졌다. 질투가 났다. 자신을 버리고, 에버콘 공작과 결혼한 샤론을 오랜 시간 동안 원망했다.

하지만 결국 앤톤 데칸은 샤론을 다시 찾을 수밖에 없었다. 28년이 흐른 후에도 앤톤 데칸에겐 샤론만큼 사랑하는 여인을 만날 수 없었다.

“질투는 하지 말아요. 내가 유일하게 사랑한 남잔, 당신뿐이었으니까.”

“그럼 당신 남편은 어떤 의미였던 거지?”

“그거야, 내 아들의 아버지죠. 구스타프 가문과 에버콘 공작가의 혈통을 잇는 내 아들의 아버지.”

샤론의 대답에 앤톤 데칸은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샤론의 욕심은 훨씬 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생각은 그만해요, 앤톤. 28년 동안 당신을 기다리느라, 말라 죽는 줄 알았거든요.”

샤론이 나른한 미소를 지으며 앤톤 데칸에게 손을 뻗었다. 샤론의 손끝이 이미 그녀의 다리 사이에 뿌리를 내리고 있던 앤톤의 남성을 천천히 쓸어내렸다. 앤톤의 남성은 자신이 흘린 애액으로 젖어 끈적끈적했다. 이 느낌을 얼마나 애타게 기다렸는지 몰랐다.

“하아, 앤톤. 하흣-”

샤론은 만족감에 몸을 떨었다. 그러곤 자신이 처음으로 앤톤에게 다릴 벌리며 그를 유혹했던 때를 떠올렸다. 그때의 자신은 너무 서툴렀고 감정적이었다. 앤톤의 잘생긴 얼굴과 남성다운 몸에 흠뻑 빠져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하지만 에버콘 공작이 청혼을 해왔을 때, 비로소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러곤 자신의 마음속에 들끓고 있는 욕망이 육체적인 쾌락이 아니라, 권력욕이란 사실 역시 알게 되었다.

그리고 사랑이 아니라, 권력을 택해 결혼했다. 하지만 결혼 생활 동안 한 번도 앤톤 데칸을 잊은 적이 없었다. 그리고 2년 전 그가 유스타나 제국으로 돌아왔을 때 자존심을 버리고 그녀가 먼저 그에게 연락을 했었다.

지금 다시 생각해도 너무 잘한 선택이었다. 앤톤 데칸을 다시 만나지 않았다면, 온몸이 녹아내릴 것 같은 지독한 쾌락은 다신 맛보지 못했을 테니까.

“하아- 앤톤, 당신의 여기에서 시큼한 맛이 나는군요.”

샤론이 앤톤의 남성이 묻어 있는 자신의 애액을 손끝으로 묻힌 후 천천히 혀로 핥았다. 샤론의 붉은 혀가 새하얀 손가락을 핥는 그 모습은 창녀처럼 보였다. 하지만 샤론은 가장 고귀한 피가 흐르는 황실의 여인이었다. 앤톤은 그 지독한 괴리감에 온몸이 뜨거워졌다. 앤톤이 샤론의 입술에 키스했다.

“샤론, 넌 지독한 악녀야. 남자를 조종하고 삼키는 욕심 많은 여자지.”

황제의 독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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