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헥센야크트-151화 (151/186)

유혹의 장(5)

6.

그로부터 나흘 뒤···.

“빅터 사부, 로이드 사부.”

“으, 으음? 뭐야, 벌써 도착인가?”

“네. 거의 다 온 것 같아요.”

아랑의 부름에 졸고 있던 로이드가 부스스 눈을 뜬다.

그는 창밖의 풍경이 어느새 새파란 해안가로 변했음을 깨달았다.

멀대 사냥꾼은 활짝 웃으며 고개를 들더니···.

“오, 이 그리운 바다내음! 여전하구만! 아주 빌어먹게 끝내줘! 썩을 비린내가 진동하네!”

“저, 로이드 사부··· 그건 좋다는 의미인가요?”

“하하, 그야 당연하지!”

“그치만 하시는 말씀에 욕이 섞여있는데···.”

“이건 감탄사라고. 아직도 날 그렇게 모르냐? 이제 익숙해질 때도 되지 않았어? 척하면 척하고 알아들어야지.”

“···서방 사람들은 말을 돌려하는 게 일상인가 봐요?”

“하하! 지금의 난 말이야. 끔찍한 날 생선요리라도 먹을 수 있을 정도로 기분이 날아갈 것 같다고!”

경망스럽게 고개를 내밀고 소리치는 로이드.

평소였다면 제자들에게 모범을 보이라며 핀잔부터 주었을 빅터였지만, 이상하게도 말릴 기색이 보이지 않는다.

이번만큼은 그도 같은 심정이었기에.

“그쯤해라. 아랑에게 이상한 말투가 옮을라.”

“핫, 정작 너도 실실 쪼개고 있으면서 큰소리치기는?”

“티가 많이 나나?”

“미간의 주름이 펴진 게 딱 보이거든.”

그도 그럴 것이···.

가뜩이나 질릴 만큼 길었던 마차 생활이다.

비록 배 울렁증을 가지고 있다 해도,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이 반갑지 않을 리 없었다.

빅터 일행의 탄 마차는 어느덧 북적한 항만으로 들어섰다.

일전에 방문했을 때보다 선박이 훨씬 많아.

줄지은 고기잡이배와 서방의 교역선이 빼곡해, 그에 비례한 사람들이 항구를 가득 매우고 있었다.

“저기요, 저기요! 빅터 사부! 우리는 어디에 타요? 대륙을 건너야 할 배니까 엄청 큰 거겠죠?”

마차에서 맨 먼저 내린 것은 소녀였다.

이어서 빅터가 리리 리의 뒤를 따랐다.

“사부, 사부! 저거 어때요? 돛이 엄청 크고, 뱃머리에 황금 조각상도 있는데?!”

“저건 여객선이다. 사치스런 귀족 나부랭이들이나 타는 거지. 우리에겐 어울리지 않는다.”

“그럼요?”

“크로이 가의 문장을 찾아라. 그 표식이 있는 배가 우리가 탈 상선이니까.”

“어디, 어디!”

소녀는 거의 뒤로 넘어갈 정도로 고개를 들었다.

그 아슬아슬한 기울기에, 바닷가에서 불어온 바람이 사냥꾼 모자를 날려 보낸다.

“이 녀석, 조심해라.”

다행히 빅터는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그대로 날아가는 모자를 낚아채는 모습이 익숙해 보여.

자주 겪는 일인 모양이었다.

덩치 큰 스승은 ‘너무 넋 놓고 있지 말아라.’라고 한 마디를 더 거들었다.

문제는 리리 리가 제대로 수용하지 않았단 것에 있었지만···.

“아이, 참! 저 어린애 아니라고요! 이쯤은 저도 잡을 수 있었거든요?”

“흠, 퍽이나.”

“씨잉···.”

과보호.

매정하게 내버려두는 듯 보이면서도 빅터는 철두철미하게 리리 리를 챙기고 있었다.

그러나 참견은 성가시다.

어린 소녀는 자신을 돌보는 스승의 손길이 익숙하면서도, 동시에 답답하게 느껴졌다.

리리 리가 이내 떠올린 것은, 자신의 편을 들어줄 또 한 명의 존재였다.

“으아앙, 앙리 언니이이이!”

영악하게도, 소녀는 최대한 불쌍한 얼굴을 지어보였다.

그리곤 지금 막 마차에서 내린 여성 사냥꾼에게 달려가 안겼다.

“빅터 씨, 리리 리에게 뭐라고 하지 말아요. 누구라도 처음 겪는 뱃길에 설레기 마련이잖아요?”

리리 리를 보듬으며 나무라듯 말하는 앙리.

빅터는 기가 막힐 지경이었다.

“내 교육 방식에 너무 참견하는 것 아닌가?”

“어리광을 받아줘야 할 때도 있는 법이에요.”

“그쯤은 나도 잘 알지. 한 때 딸아이를 키운 적도 있으니까.”

“좋은 아버지라 자신있게 말하실 수 있나요?”

“아니, 그건···.”

“그럼 그렇죠.”

날카로운 지적.

반론할 길이 없어, 빅터는 난색을 표했다.

자칫 둘 사이가 어색해질라, 말을 멈춰 세운 로이드가 서둘러 끼어들었다.

“자자, 둘 다 부부싸움은 그쯤 해두시고···.”

“멍청한 자식, 할 말은 가려서 해라.”

“로이드 씨도 참···.”

“예, 예. 둘 다 참 보기 좋습니다. 아주 깨가 쏟아지네. 어울리는 한 쌍이시구만. 이거 홀아비는 서러워서 살겠냐고!”

“로이드···.”

빅터의 미간에 핏줄이 나타나고서야 로이드는 헛소리를 멈추었다.

“어이쿠, 장난이야! 농담이라고! 옆구리가 시려서 좀 우스갯소리 좀 해본 거야! 그러니까 겁나게 노려보지 마. 그럼··· 나는 아랑 꼬마랑 마구간부터 들릴 테니, 너희는 배편이나 좀 찾아달라고!”

그 말을 끝으로 도망치듯 돌아서는 로이드···.

그 모습에 빅터는 한숨을 쉬었고, 앙리는 입가를 손으로 가리며 쿡쿡 웃었다.

“참 짓궂으신 분이세요.”

“그냥 앞뒤 없이 오지랖만 부리는 멍청이다.”

“그래요? 제가 보기엔···.”

“또 뭐지?”

“후후, 아니에요. 여타 사냥꾼들과는 다르게 해맑은 소년 같다고나 할까···.”

“때론 너무 심해서 탈이지.”

“좋은 친구잖아요?”

이처럼···.

며칠 간 동행하는 사이에 소소한 몇 가지 변화가 생겼다.

다정하고 포용력이 강한 앙리 덕분에 리리 리가 필요 이상으로 날뛰지 않게 되었다.

이는 분명 좋은 일.

하지만 로이드가 틈만 나면 둘 사이를 놀리며 실없는 장난을 치기 시작한 것은 부작용이었다.

“그건 그렇고··· 여기도 많이 변했네요.”

“앙리, 마지막으로 여길 방문한 게 언제였나?”

“3년도 더 되었죠.”

“그럼 감회가 새롭겠군.”

“네. 마지막으로 파견 임무를 맡았던 게 기억도 안 날 정도로···.”

소금기가 스며든 산들바람에 모자 사이로 흘러나온 여인의 머리칼이 유유히 흔들려.

앙리의 눈동자에 은근한 감정의 빛깔이 나타난다.

오랜만의 외출에 들뜬 것은 그녀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이었다.

“정기편이 있으면 좋겠네요.”

“어지간하면 괜찮겠지. 5년 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동서간의 교역이 늘었으니까.”

적나라가 동방 대륙에 내려진 쇄국 정책을 풀어준 덕분에, 근래 서방의 상인들도 마음 놓고 드나들기 시작했다.

이는 황태자와 크로이 상단의 모종의 거래가 얽힌 뒷배경도 있었으나···.

“이건 시작에 불과하겠죠.”

“음. 언젠가 전 세계의 뱃길이 하나로 이어질지도 모르지.”

마침, 동양인과 서양인이 뒤섞인 항구의 풍경이 보인다.

다양한 인종이 한데 얽힌 채로 짐을 나르고 있어.

지리를 모른다면 이 장소가 어디인지 가늠하기조차 힘든 모습이었다.

‘동서양을 넘어서, 경계가 허물어진 평화의 이상향인가···.’

분명 세상은 끝없이 변화하고 있다.

어느덧 빅터는 일전에 마르가 이야기해준 인류의 한 가지 가능성을 떠올렸다.

화합과 평화.

상생과 공생.

어쩌면 꿈같은 망상일지도 모른다.

마르는 언젠가 인류가 실패하기에 자기네 종족인 엑조틱이 지구상에 출현할 것이 예정되었다고 털어놓았다.

끝내 약속된 멸망을 피하지 못해.

인간은 마지막까지 서로를 증오했다면서···.

‘아니, 우리는 그렇게까지 어리석지 않다.’

빅터는 믿고 싶었다.

인종이 다른 대스승 베누다를 존경하며, 이질적인 문화에서 살아온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사람은 서로를 사랑하며, 존중하면서 얼마든지 공존할 수 있다는 것을.

동양인이라 해도 빅터는 리리 리를 돌볼 수 있고, 아랑의 용기를 칭찬하는 데 망설임이 없다.

이는 반대의 입장에서도 충분히 적용되리라.

잠깐 동안의 사색.

하지만 빅터는 곧 상념에서 빠져나와, 당장 자신이 해야만 하는 일에 신경 쓰기로 했다.

“···슬슬 움직이지. 로이드 놈이 또 괜한 소릴 꺼내기 전에.”

“어머, 저는 그다지 싫지 않았는데요?”

“앙리···.”

“리리 리도 좋은데!”

“그렇지? 우리 리리 리도 언니를 응원해주련?”

“응!”

“···.”

괜한 골칫거리가 늘어난 기분에 빅터는 고개를 저었다.

덩치 큰 사냥꾼이 먼저 멋쩍은 걸음을 내디딘 것도 무리는 아니야.

자칫 얼빠진 분위기에 휘말릴까, 그는 생각을 다른 곳에 집중하기로 했다.

‘출항이 예정된 상선을 확보해서 가능한 빨리 본토로 돌아간다. 삼 주 내내 배에 갇혀있어야만 하겠지만, 여기서 우물 쭈물거리는 것보단 났겠지.’

딱히 서두를 것도 없으나, 빅터는 어쩐지 모를 조바심이 들었다.

마치 당장 움직이지 않으면 때를 놓칠 것만 같은 예감···.

이것은 예지능력의 발현인가?

아니면 그 스스로도 눈치 채지 못한 어떤 기구한 운명의 인도인가?

어느 쪽이든 확신하기 어렵다.

그러나 빅터는 항상 그렇듯, 망설일 생각 따윈 전혀 없었다.

7.

앙리 염려와는 달리, 의외로 배편은 쉽게 구해졌다.

십 수분 정도 수고를 들인 정도로 금세 크로이의 상단과 접촉에 성공한 것이다.

“운이 좋았네요. 도착과 동시에 바로 배를 탈 수 있다니···.”

“오후에 출항한다는 모양이더군. 지연할 필요가 없어서 우리에겐 잘 되었지.”

다행히 불과 이틀 전에 서양에서 들어온 선박이 두 척이나 있어.

더욱이 한 쪽은 사냥꾼들과 인연이 닿는 배였으니···.

“···와아, 여기서 아는 얼굴을 볼 줄은 몰랐네! 참 질긴 인연이네!”

승무원의 인도를 받아 배에 오르자, 살짝 날이 선 목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얼굴을 들이밀었다.

“음음! 역시 내가 못 알아본 게 아니네! 그 무식하게 큰 몸집, 귀신처럼 험상 굳은 얼굴! 딱 예전 모습 그대로야!”

그래도 속에 담긴 악의는 없어.

단지 예의를 애써 덧씌우지 않은 것뿐인, 있는 그대로의 태도였을 뿐이었다.

“형씨도 여전한가봐? 칭칭 감은 쇠사슬하며 등에 맨 도끼까지···. 또 한 바탕 전쟁이라도 치룰 셈인가 보지?”

시원스런 목소리.

은근히 숨결에서 술 냄새도 풍겨온다.

“야, 빅터. 너 언제부터 해적이랑 아는 사이였냐?”

상대가 너무 격의 없이 나오자, 오히려 놀란 것은 곁에 있던 로이드 쪽이었다.

하나, 조금 떨어진 곳이라도 그 말이 다 들렸는지···.

“누가 해적이야?! 거기 멀대 형씨, 지금 나더러 지껄인 거야? 아앙?”

말투는 영락없이 남자의 것.

하지만 눈앞의 상대는 늘씬한 허리의 소유자로, 얼룩 진 천으로 머리칼을 덮어씌운 젊은 여자였다.

햇볕에 탄 건강한 갈색 피부.

이마를 통해 살짝 드러난 고동색 모발은 특별할 것이 없다.

하지만 오른쪽 뺨과 콧등을 교차하는 심자 흉터는 개성적이야.

왼편 눈을 가린 검은 안대와 커다란 대검이 등 뒤에 추가되면, 결코 잊을 수 없는 인상이 된다.

갑판 위에서, 여자는 이빨이 다 보이는 미소와 함께 빅터 일행을 맞이했다.

“이보셔, 덩치 아저씨. 왜 아무 말도 없어? 설마 잊은 건 아니지? 나 알아보겠어?”

“물론이다.”

빅터는 모자 끝을 살짝 들어 보이며 상대의 이름을 읊었다.

“오랜만이군, 니엘.”

니코의 여동생.

바로 도펠죌트너 용병단 고블린즈의 홍일점이었던 소녀였다.

예상 밖의 만남이 반가웠던지, 빅터는 나름대로 살갑게 말을 이었다.

“그 건방진 꼬마가 몰라보게 많이 컸군.”

“하핫, 그렇지? 이게 얼마만이야?”

“햇수로 5년쯤 되었지.”

“그랬지! 내 한쪽 눈을 잃은 그 무시무시한 싸움으로부터 벌써 그렇게 됐나? 후후, 아무튼 나도 그 사이에 숙녀가 다 되었거든!”

“숙녀라···.”

빅터는 그만 피식하고 웃어버렸다.

스스로 뻔뻔하게 자처하는 태도도 그렇지만, 겉모습만 보아선 그녀가 말하는 대상과 거리가 멀었기에.

틀림없이 니엘은 남장을 포기했다.

거친 상처가 드러난 얼굴이지만 생김새 자체는 선이 고운 미인에 속해.

부풀어 오른 몸매를 숨기지 않고, 아슬아슬하게 가슴골이 다 드러난 셔츠를 입은 것도 과거에 비하면 장족의 발전이다.

그러나 한 발짝 뒤로 물러나서 보면 복장이 너무 과감해.

터질 것 같은 허벅지에 구멍이 난 반바지 하며···.

그 위에 두꺼운 선원용 가죽조끼 하나만 걸친 모습은 적지 않게 파렴치해보였다.

“그 표정은 무슨 의미야, 형씨? 뭐 불만이라도 있어?”

“별로.”

애써 지적할 필요는 없으리라.

정작 니엘은 신경 쓰지 않는 모양이니···.

그렇게 느낀 이는 빅터 뿐만이 아니었던지, 배에 올라타 있던 다른 선원들도 소리 죽여 실소를 뿜어내긴 마찬가지였다.

“흥, 열받게 만들긴···. 예나 지금이나 사냥꾼이란 족속은 기분 나쁘네. 특히 댁은 더 그래.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귀염성 없는 형씨라니까!”

“그거 미안하군.”

“뭐, 사실 사소한 건 아무래도 좋아. 맘에 안 들어도 일단 손님은 손님이니까! 그런 의미에서··· 나의 보금자리, 포르투나Fortuna호에 온 걸 환영해!”

포르투나.

변덕스런 운명을 관장하는 여신의 이름이었다.

배에다 신화에서 따온 명칭을 붙이는 것은 드문 일도 아니지만, 하필이면 잡을 수 없는 행운의 상징에서 따오다니···.

빅터와 로이드는 그 어긋난 작명 감각에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아차차! 내 정신 좀 봐! 거기, 얼른 올라와! 멀대 아저씨는 언제까지 멀뚱히 서 있을래? 거기 어여쁜 언니야도 사양하지 마시고! 동양인 꼬마 둘? 어차피 다들 사냥꾼 일행이지? 어? 말이 안통하나? 뭐, 상관없어! 짐부터 실으라고! 자자, 빠릿하게 움직여!”

인부들이 원통을 나르는 와중에도 니엘은 계속해서 떠들어댔다.

접객 담당인지, 아니면 정말로 배를 지휘하는 입장인지는 알 길이 없으나···.

원채 이런 상황이 익숙한 지, 딱히 주변 선원들은 불만을 나타내진 않았다.

“이거, 원··· 너도 하필이면 참 떠들썩한 배를 잡았구만?”

“음.”

“저 아가씨 덕분에 귀향길이 심심하진 않겠어.”

자기 이상의 수다쟁이랑 마주하자, 로이드는 기대 반 염려 반의 심정으로 어깨를 들썩였다.

“물론 나는 상대하기 싫지만 말이야.”

아니나 다를까, 그녀는 아는 얼굴인 빅터에게 자꾸만 말을 걸어.

그가 배 위에 오르는 내내, 대꾸하는 쪽이 부담스러울 정도로 유쾌함을 전했다.

‘내가 그렇게 반가운가? 몸만 컸지, 머릿속은 여전히 어린애군. 마치 리리 리가 그대로 성장한 꼬락서니다.’

빅터는 니엘의 입을 닫게 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질문부터 던졌다.

“니코는 어떻게 되었나? 그도 이 배에서 지내고 있는 건가?”

“어? 그건 아냐. 오빠랑 떨어져서 지낸 지는 1년도 더 전의 일이니까.”

“뭔가 사연이 있는 모양이군.”

“그야 할 말은 많지. 그래도 우리의 지난 이야기풀이는 조금 미뤄두자! 기왕이면 밤새 선실에서 떠드는 게 어때? 마침 내가 좋은 술을 몰래 빼돌려놨거든? 응? 실은, 나 말이야. 자랑은 아니지만 주량이라면 사냥꾼들한테도 안지거든?”

“괜찮겠나? 지금도 많이 취한 듯 보이는데.”

“문제없어. 딱 기분 좋은 상태니까!”

“음.”

“거기 있는 애들은 제자야? 참 귀엽기도 하지! 아, 설마 그럼 당신도 이제 스승이라고? 캬! 세월 한 번 빠르네!”

그러면서 빅터는 슬쩍 리리 리 쪽을 바라보았다.

그 표정에는 염려가 담겨있어.

이내 빅터가 동방의 언어로 입을 열었다.

“···리리 리, 너는 절대 저런 거 배우지 마라.”

“네? 왜요, 사부?”

“아무튼 안 된다.”

“응, 리리 누나. 나도 빅터 사부 말씀이 맞다고 생각해.”

“뭐니? 아랑, 너까지 대체 무슨 소리야?”

어린 소녀로서는 이해하지 못할 소동이 지나고···.

가까스로 승선이 이루어졌다.

예정된 출항까지는 앞으로 세 시간.

비로소 빅터 일행은 서양으로의 귀환 길에 몸을 실었다.

그러나···.

욱씬.

순간, 뱃머리 방향으로 시선을 옮긴 빅터의 뇌리에 어떤 감각이 스쳐지나갔다.

“빅터 씨? 왜 그러세요.”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의도적으로 억눌러온 예지가 지금 막 발동되었어.

그 짤막한 장면은 파괴된 돛대와 함교···.

그리고 만신창이가 된 배의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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