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헥센야크트-150화 (150/186)

유혹의 장(4)

5.

“시이이이이잃어어어어어어!”

다음날 아침,

오늘도 동이 틈과 동시에, 어김없이 닭장에서 요란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이는 리리 리의 애처로운 비명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으니···.

“나도 갈 테야! 저도 바다 건너 서양에 따라 갈 거라고요!”

“리리 리, 다시 말한다. 너는 이곳에서 대기해라.”

“아, 왜요오오오!?”

거의 발광에 가까운 떼쓰기.

덩치만 큰 아이가 철없이 흙바닥을 구른다.

가뜩이나 번잡한 아침이 한껏 소란스러워지는 순간이었다.

곤란하게 되었어.

촌락의 입구에서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리리 리는 마차의 바퀴 앞에서 들이 누웠다.

이어서 보다 못한 로이드가 나섰다.

“비켜봐라, 빅터. 때론 너무 권위적으로 대해도 역효과가 날 수 있다고.”

그는 자세를 숙여 지면에서 먼지를 일으키는 소녀와 최대한 눈높이를 맞추더니.

“야야, 꼬마 아가씨. 미운 짓은 그 쯤 해둬. 다 큰 처자가 이러면 보기 흉하잖아?”

“그래요! 리리 리는 원래 어린 애다, 뭐!” “아, 예예. ···그래도 좀 이해해주라. 이건 나나 빅터도 충분히 고려해서 내린 결정이니까.”

“싫어어어어! 빅터 사부 미워, 로이드 사부도 좀생이!”

“이거야, 원···.”

평화적 교섭은 결렬.

소녀와의 갈등은 해결되지 않았다.

대체 어찌해서 상황이 이렇게 된 것인가?

그 사연은 불과 10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드물게도, 리리 리는 이른 아침부터 부지런하게 출전 준비를 마친 채 별체 입구에서 대기 중이었어.

마치 함께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 아랑마저 대동해서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앞뒤 가리지 않고 따라나설 기세···.

소녀의 마음은 태어나서 처음 떠나는 경험하는 서국 여행의 기대로 잔뜩 들떠있었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빅터의 매몰찬 대기 명령이었다.

“···리리 리, 다시 설명해주마. 이번 임무는 너무 위험해. 미숙한 네가 감내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러면 잘 됐죠! 아군이 더 필요할 거 아녜요?”

“자칫 무덤으로 향하는 여행이 될 수도 있다. 이번만큼은 잠자코 있거라. 도움이 되는 베테랑이라면 기와 심의 유파에도 얼마든지 많이 있으니···.”

“엉터리야! 빅터 사부도 전에 그랬잖아요? 리리 리는 강하다고! 재능 있고! 의지가 되고 예쁜 제자라고!”

“기분 좋으라고 해준 말을 어디까지 진심으로 받아들일 셈이냐? 설령 그게 사실이라 해도, 지금은 나설 때가 아니다.”

“씨이···.”

“건방진 소리 말고 너의 미숙함을 알아라.”

리리 리에겐 절제가 부족하다.

아랑에겐 힘과 기술이 모자라다.

양쪽 모두 가혹한 여행길에 대동하기엔 무리가 있어.

빅터는 미움을 받는 한이 있어도 두 아이를 떼어놓기로 정했다.

결국 빅터가 내린 조치는, 리리 리와 아랑을 대스승 베누다에게 맡기는 것이었다.

“그럼 부탁드립니다, 대스승. 매를 들어서라도 이 꼬마들을 제대로 된 어른으로 만들어 주십시오.”

“흥, 네놈이 멋대로 주워온 주제에 이제 와서 내게 미룬다라? 뻔뻔하다는 생각이 들진 않느냐?”

“스승을 자처하기엔, 저는 아직 한참 멀었습니다.”

“쯧, 알긴 아는구나. 하나, 그 자세가 마음에 들지 않아. 겸손과 거리가 멀다. 이 경우는 오히려 무책임에 가까울 터.”

대스승 베누다는 심기가 불편한 듯 보였다.

빅터의 억지에 자꾸만 휘말리는 기분이 들어, 제자들이 늘어나는 상황이 마냥 유쾌하지만은 않았기에.

그러나, 처우가 만족스럽지 않은 이는 그뿐만이 아니었으니.

“우는 소리 뚝 그쳐!”

버둥거리는 리리 리에게 누군가 윽박을 질렀다.

한껏 감정이 실린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바로 어제 대스승의 문하로 들어온 소녀···.

바로 시안이었다.

“언제까지 애새끼처럼 굴 거야? 누군 빅터 선생님과 떨어지고 싶어서 이러는 줄 알아?”

“뭐야? 언니가 무슨 상관인데? 언제 봤다고 나한테 막말이야!?”

“시끄러워, 그 입 다물지 못 하겠니? 너도 마와 싸우는 자라면 스스로의 역량을 파악하란 말이야!”

“그래도 리리 리는 항상 빅터 사부 옆에 있었다고! 어릴 때부터 계속!”

“첫 제자라고 우쭐대긴! 얼마나 네가 복 받은 환경인지도 모르고. 선생님이 어리광을 받아주니까 계속···.”

대기 명령을 받은 것은 시안과 요마멸살대 쪽도 마찬가지였다.

황태자의 비호 아래, 전국 각지를 마음 놓고 움직이던 때와는 사정이 달라.

국적이 없는 서방에서 행동이 제한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

다수의 동양인 소년소녀의 입국이란, 아무리 크로이 상단의 입김이 작용하더라도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나도, 아니 우리도 가능하면 빅터 선생님께 직접 지도를 받고 싶었는데···.”

“···크흠, 그랬느냐? 시안인가 뭔가 하는 계집. 과연 적나라 조정의 졸개답구나. 네 본심은 잘 알았다. 기개 한 번 좋지. 잘도 이 대스승의 앞에서 섭섭한 소릴 입에 올리는 구나!”

“앗, 대스승 베누다시여!? 그건 오해입니다! 저는 결코 그런 의도가···!”

“변명은 됐다. 어차피 이 늙은이는 꿩 대신 닭이라는 의미가 아니더냐?”

“아, 아니···.”

“관군의 아이들아. 이후를 기대하도록 해라. 저 덩치를 이만큼 단련시킨 게 누구인지 톡톡히 알려줄 테니.”

빡세게 굴려주지, 라며 사심 섞인 엄포를 놓는 대스승 베누다.

시안은 사색이 되어 자신의 동료들과 빅터의 얼굴을 번갈아보았다.

언제나 의연하기만 하던 소녀가 걱정 가득한 표정을 짓자, 빅터는 사소하게나마 격려를 전했다.

“걱정마라, 시안. 저렇게 말은 해도 대스승은 정도를 아는 분이시니. 물론 힘든 단련이 되겠지만, 가르침을 믿고 수행에 임하면··· 틀림없이 노력만큼의 보람이 나타날 거다.”

“빅터 선생님···.”

“먼 훗날을 기약하마. 진융 전하와 함께 성장한 너와 재회하길 기대하고 있겠다.”

아이에게만큼은 다정한 모습.

자신의 스승이 다른 사람에게 살갑게 굴자, 모든 걸 지켜보고 있던 리리 리가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으, 으으! 아랑! 너도 지켜보지만 말고 뭐라도 말해!”

“리리 누나···.”

“기다렸잖아? 어젯밤부터 서국행 배를 타는 걸 나만큼이나 꿈에 그렸다면서?”

논리가 부족한 리리 리가 애써 도움을 청한다.

이번만큼은 억지가 아니야.

소년도 소녀의 의견에 동조하며 조심스레 말문을 열었다.

“···빅터 사부, 역시 다시 한 번 생각해주시면 안 될까요?”

“아랑. 너까지 철없이 굴 테냐?”

“죄송합니다. 그래도···.”

소년은 주먹을 쥐었다.

그러면서도 정면을 응시하며 자신의 의사를 피력한다.

“저는 아직 빅터 사부와 로이드 사부께 많은 걸 배우고 싶어요.”

어지간해선 빅터의 지시라면 껌뻑 따랐을 아랑이건만,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리리 리를 따라 고집을 부린다.

하나, 언제까지고 아이의 응석을 받아줄 순 없는 노릇이니···.

“아랑, 너에겐 기대가 크다. 앞으로 사격술에 서넛 해만 더 매진해도 실전에서 활약하기에 충분하겠지. 내 뒤를 쫓고 싶다면 기초부터 차근차근 쌓아가는 것이 좋을 거다. 이 곳에서 대스승의 가르침에 따라, 사냥꾼의 마음가짐부터 배우도록 해라.”

현명하게 굴어라.

···빅터는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좋은 환경이 갖추어졌고, 대스승의 허락도 내려온 시점에서 이 이상 무얼 바란단 말인가?

하지만 소년은 고개를 저었다.

소년은 자신의 스승을 실망시키기 싫어, 그렇지만 이대로 버림받는 것만큼은 피하고 싶었다.

“제가 모실 스승은 제가 정해요. 그리고 저는 두 분이 아니면 싫습니다.”

“아랑.”

“싫은 건 싫은 겁니다.”

아무 것도 모르는 꼬마가 허투루 나오는 대로 지껄일 뿐인가?

···아니, 소년의 단호한 목소리에선 흔들리지 않는 각오가 전해져왔다.

엄밀히 말해, 아랑이 배우고 싶은 것은 마녀 사냥꾼의 기술이나 지식 따위가 아니야.

소년의 목표는 빅터가 살아가는 방식 그 자체였기 때문에.

좋은 말로 설득해서 떼어놓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빅터는 조금 누그러진 목소리로 몇 개의 질문을 더 건네었다.

“너는 서양의 말을 모르지 않느냐?”

“배우겠어요. 하루 빨리··· 듣기도, 말하기도 할 수 있도록 할게요!”

“바다 건너에선 동방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심한 차별대우를 받는다.”

“어떻게든 할 게요. 사부처럼 머리를 희게 물들이고 색유리라도 눈에 끼우면···.”

지극히 아이다운 발상.

그 무모한 대답에 빅터는 연거푸 한숨을 쉬었다.

“하아···.”

“푸하하하! 이제 어찌하겠느냐, 빅터여? 이 두 아이의 결심은 완고한 듯 보이는데? 원만히 헤어질 수 있겠느냐?”

뭐가 그토록 좋은지 대스승 베누다는 폭소했다.

빅터가 리리 리와 아랑을 버리고 가지 못한다면, 만에 하나라도 은거지에 남을지 모른단 희망을 걸었기 때문이었다.

“여봐라, 거기 빼빼마른 멀대 코쟁이. 경박해보이는 색목인아.”

“저, 저 말씀이십니까? 대스승 베누다?”

“여기 서방출신 사내가 저 덩치만 큰 놈 말고 달리 또 누가 있느냐?”

대스승 베누다는 로이드에게 손짓을 하더니.

“동방의 말을 유창하게 하는 걸 보니, 네 녀석도 흘러가는 분위기 정도는 파악했겠지. 그러면 나중에 크레이그에게 이렇게 전해라. 일전의 싸움에서 큰 부상을 입어, 빅터가 끝내 귀환하지 못했다고 말이다.”

대놓고 정보를 조작하려는 것인가?

이를 빅터가 가만히 내버려둘 리 없었다.

“이 망할 영감탱이. 노망이 들었나? 멀쩡한 사람을 앞에 두고 대체 뭔 소릴 하는 겁니까?”

“곧 지옥으로 갈 놈이, 고작 사소한 정에 휘둘려서 갈팡질팡하고 있는 꼴이 우스워서 하는 말이다.”

“···.”

“데려가라. 이렇게까지 너를 따르는 꼬마들을 내치는 것도 사람 된 도리가 아니지.”

도리.

그 단어에 반응한 리리 리가 단번에 고개를 치켜들었다.

“맞아요, 사부! 사람의 도리라고요!”

물론 리리 리가 그 깊은 의미를 파악할리는 만무하다.

하지만 이 기세를 놓치면 다음 기회는 없어.

소녀는 본능적으로 빅터의 등에 매달렸다.

“···환장하겠군.”

“뭐 어떠냐, 빅터? 나머진 도착한 다음에 생각해도 괜찮겠지.”

“로이드, 본토의 사정이 심각하다고 말했던 건 네가 아니었나?”

“든든한 보호자는 거기도 있단 말이야. 대스승 크레이그께 부탁하기 부담스럽다면 아이라 아가씨나 레이에게라도 맡겨두라고.”

도리스는 논외다.

로이드는 그녀를 아예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마. 아이들은 집결지에 두면 되지. 이 실랑이는 그때까지 미뤄두자고.”

“옳소! 로이드 사부님 최고!”

“하핫, 이런 걸로 찬사를 듣고 싶진 않은데? 뭐, 그래도···.”

좋은 게 좋은 거겠지.

그렇게 말하며 로이드는 리리 리와 아랑의 어깨를 끌어안았다.

“까짓 거 우리 꼬마들의 식견을 넓혀주면 그만이야. 보여주자고. 우리가 나고 자란 대륙이 어떻게 생겼는지 말이야. 뭐더라, 그런 격언도 있잖아? 기회가 있을 때 민물고기를 바다에 풀어주라고. 어릴 때일수록 많은 걸 경험해야 커서 훌륭한 어른이 된다는 뜻이잖아?”

“적당히 지어내지 마라. 그런 격언 따윈 살면서 들어본 적도 없어. 애초에 강에 사는 물고기를 해수에 풀면 곧장 죽는다.”

“아냐. 내 고향 문토아에선 흔한 속담이지.”

낙관적이다.

로이드의 전매특허인 적당주의였다.

하지만 설득력은 있다.

오전 내내 진전 없이 시간만 끌 수도 없는 노릇이기에···.

할 말을 잃었는지, 빅터는 묵묵히 등을 돌렸다.

그리곤 한참 뒤···.

“···당분간 용돈은 없다. 이건 놀러가는 게 아니니까.”

가까스로 허락이 떨어지자, 리리 리와 아랑은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며 함박미소를 지었다.

“네, 빅터 사부!”

“감사합니다, 빅터 사부!”

“킥킥, 이거 완전 애들 아빠 다 됐구만. 언제는 마녀 사냥이 놀러 다니는 거였냐?”

“닥쳐라, 로이드.”

“예이, 예이.”

마차는 오래 전에 준비되었다.

아랑은 활짝 핀 표정으로 당장 마부석으로 달려갔다.

“쯧, 어서 썩 꺼지 거라. 역시 서방출신 놈들은 정이 없어. 빅터, 네 녀석은 파문이다. 오늘 이후로 내 앞에 얼굴을 보일 생각은 마라.”

“···그간 신세를 많이 졌습니다. 대스승 베누다. 부디 건강하시길.”

“마지막이랍시고 같잖게 동방의 예절을 흉내 내기는··· 허튼 소리는 집어치워라. 내가 너보다 오래 살지도 모르는 일이니.”

“요괴가 되어서라도 오래오래 사십시오. 이 빌어먹을 노친네.”

“이제야 본성이 나오는 구나. 애송이 . 그래야 네놈답지.”

그래도 빅터는 진심을 다한 존경의 목례를 올렸다.

하지만 이로써 작별의 때가 왔다.

시안과 요마멸살대의 배웅을 받으며, 빅터 일행은 이내 산길을 따라 새로운 여행길에 나섰다.

슬슬 마차가 멀어질 쯤.

대스승 베누다는 곁눈질로 자신의 어깨 너머를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이 향한 곳에는 여러 줄기의 대나무가 뭉쳐 있어.

정확히는 그 뒤에 모습을 감춘 누군가의 기척을 살피는 것이었다.

“끝내 얼굴을 내비치지 않아도 되겠느냐. 앙리여?”

“···예, 괜찮습니다, 대스승.”

“그래. 너도 마음을 정리한 모양이구나. 하긴, 간밤에 그만큼 울었으니 후련할 만도 하지.”

“···.”

“후··· 세상에 절반은 사내놈이 아니더냐. 너도 저런 재미없는 남자쯤은 금방 잊을 거다. 정 외롭다면 출가한 제자 놈 중에서 괜찮은 놈을 내가 소개시켜 주겠···.”

하나, 대스승의 위로는 독이 되었다.

왈칵.

앙리는 급격히 쏟아지는 눈물을 막기 위해 양손으로 얼굴을 가려야만 했다.

“···흥, 뭘 예민하게 구느냐? 하여간, 요즘 젊은 것들이란 근성이 없어. 몇 번 시도해서 안 되면 금방 토라지는군. 고작 실연이 대체 뭐란 말이더냐? 내가 어릴 때는··· 우리 부족의 여인들이 마음에 든 놈의 모가지에 밧줄을 내걸고 데릴사위로 삼았다!”

일견 매정하기만한 푸념.

대놓고 들으라는 듯, 대스승 베누다는 자신이 딸처럼 길러온 여 제자를 향해 험한 말을 내뱉었다.

“더는 못 봐주겠구나, 앙리. 너도 파문이다. 이 몸은 근성 없는 제자를 키운 기억이 없으니.”

“대, 대스승시이시여?!”

화들짝 놀라서 앞으로 튀어나온 앙리.

그런 그녀에게, 대스승 베누다는 인자한 미소로 화답했다.

지금까지는 질 나쁜 농담일 뿐이었어.

그는 겨우 진심을 꺼내들었다.

“이제야 너의 어여쁜 얼굴을 보여주는구나. 마음에도 없는 심한 말을 해야지만 겨우 반응하다니··· 함께 한 지 십 수 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다루기 힘든 아가씨야.”

“네? 대체 무슨···.”

“알겠느냐? 너는 언제까지고 이 시골에 박혀있을 인재가 아니다. 네가 가진 수신 능력은 전장에서 비로소 빛을 발하지. 좀 더 넓은 세계로 나가라. 고향으로 돌아가, 너의 진가를 세상에 보여주어라.”

“그러나, 그러면 대스승의 보필은 누가···.”

“내겐 새 제자들이 있잖느냐?”

마치 사람이 바뀐 것만 같은 온화한 얼굴.

한때 악귀라 불리며 마녀들을 때려죽이던 사냥꾼은 이제 온데간데없어.

이 자리에 선 것은 그저 딸아이의 행복을 바라는 한 사람의 아버지뿐이었다.

“노잣돈은 이걸로 충분하겠지.”

처음부터 준비한 것인가?

대스승 베누다는 품에서 자그마한 주머니를 꺼내더니, 앙리가 받아낼 수 있도록 가볍게 던졌다.

그 안에는 여러 개의 금화가···.

서방에서 통용되는 돈이 들어있었다.

“가거라. 가서 빅터의 힘이 되어 주거라. 이건 명령이다. 알겠느냐? 페렌시아의 앙리에타여.”

이 시점에서 앙리는 하염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을 감추는 것조차 잊어버렸다.

“뭘 하고 있느냐? 얼른 발을 움직여라. 이 변덕쟁이 늙은이의 생각이 변하기 전에!”

“네. 알겠습니다, 대스승.”

“그만! 이 이상 지체하지 말아라! 아무런 성과 없이 돌아오는 건 용서하지 않겠다!”

“···존명!”

그것을 마지막으로 여인은 뒤돌아섰다.

그리곤 거리가 벌어진 마차를 뒤쫓기 위해, 자신의 주특기인 보법으로 땅을 박찼다.

바람을 가르는 경쾌한 축지.

이제 앙리의 두 다리는 그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아.

아무 것도 망설일 것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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