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헥센야크트-112화 (112/186)

예지의 장(6)

6.

역겨운 잔해들이 하늘에서 비처럼 내린다.

그것은 철퍽 소리를 내며 허물어진 공터 구석구석에 흩뿌려졌다.

‘파마의 날에 베였음에도 육편이 가루로 변하지 않아. 역시 이놈들은 마에 기반을 둔 마물이 아니다.’

결국 그는 정체모를 괴물들을 도륙했을 뿐.

아직 진상을 알 수 없어.

빅터는 긴장을 풀지 않은 얼굴로, 굳게 닫힌 사당의 문을 발로 걷어찼다.

“훌륭하세요!”

안으로 다시 들어서자, 새하얀 무당이 함박웃음으로 마중을 나왔다.

아주 기쁜 얼굴이야.

그들의 승리를 진심으로 축하하는 듯 보였다.

“그 사악한 새들을 처리하시다니! 두 분 모두 제가 상상하던 것 이상의 힘을 가지신 역전의 용사···.”

하나, 그 미소는 목숨을 걸고 대응한 자신들을 비웃는 것만 같아.

오히려 빅터의 심기를 거슬렀다.

“닥쳐라.”

“아흐윽···!”

빅터는 거리를 좁힘과 동시에 무녀의 목을 거머쥐었다.

“빌어먹을 계집. 감히 우릴 시험 했겠다?”

“야, 빅터!?”

“로이드, 넌 나를 믿고 잠자코 있어다오.”

“하지만 너는 전에도···.”

입술을 깨무는 못마땅한 표정.

예전의 클라르테 때를 떠올리며 망설인다.

“나는 냉정하다. 걱정할 것 없어.”

“···정말이지? 너 진짜 제정신인거 맞지?”

“단벌을 잃어버려서 좀 짜증이 나긴 했지만 말이다.”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를 소리에 로이드의 미간이 실룩인다.

그래도 이 이상 간섭하지 않는 것은···.

그가 전우에게 가진 신뢰의 반증이었다.

“사, 사냥꾼이시여. 어째서 절···.”

“질문은 내가 한다. 무슨 꿍꿍이인지 털어 놓기나 해!”

“꿍꿍이··· 라뇨?”

“잘 생각하는 게 좋을 거다. 대답 여하에 따라선, 네 년도 마녀로 판단하고 처분할 테니!”

빅터는 암안을 사용하지 않았다.

사실은 할 수 없는 쪽에 가까워.

크던 적던, 항상 도끼의 힘을 개방한 직후엔 능력을 사용하지 못해.

그런 제약이 걸려 있었던 것이다.

“끝까지 시치미를 뗄 셈인가?”

“···.”

이상하게도, 무당은 입을 놀리지 않아.

고통이 없는가?

아니, 틀림없이 아파하고 있다.

그렇다면 두려움이 마비된 것이 아닐까?

아니, 그마저도 두려움에 떨면서 울음을 터뜨리기 일보 직전이다.

그렇다면 어째서?

“···희나 언니!”

빅터가 비정상적인 무당의 반응을 살피는 사이, 방해꾼이 나타났다.

마을에서 여인에게 안겼던 여자아이.

초아였다.

설상가상으로···.

이번엔 심지어 저 멀리서 리리 리와 아랑마저 달려오고 있었다.

“사부, 빅터 사부!”

“방금 전에 큰 소리가 들렸는데, 무슨 일이··· 앗?!”

소년소녀는 그 자리에서 멈춰 섰다.

스승이 마을까지 안내해준 여자를 교살하려는 모습에 충격을 먹은 모양이었다.

“야, 후배. 그쯤 해둬. 네가 무슨 독한 맘을 먹은 진 모르겠지만. 애들 앞에서 태연히 할 짓이 아니야.”

“음.”

그러나, 더 황당한 일은 지금부터였다.

왜냐하면, 맨 먼저 도착한 마을의 꼬마 계집이···.

“치사해요.”

빅터조차 예상치 못한 말을 입에 올렸기에.

“순서도 지키지 않고, 언니 먼저 해방되려는 거야?”

해방.

뭔가의 억눌림에서 벗어난다고?

빅터는 순간 자신이 동방의 말을 잘못 이해한 것이 아닌가싶었다.

그렇지만 여자애의 표정과 더불어, 담담히 죽음을 받아들이려는 무당의 태도가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대체 뭐지? 너는 우리에게 무엇을 바라는 거냐?”

어이를 상실 했어.

빅터가 손을 풀자, 무당 여인은 그대로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었다.

“켁, 콜록!”

연신 기침하며 숨을 몰아쉬는 모습.

다만 그걸 옆에서 지켜보는 소녀 쪽은 아쉬운 듯했다.

“에이, 뭐야? 안 죽여? 희나 언니 안 죽이는 거야?”

“하아, 학··· 으응, 아직은 때가 아닌 모양이로구나, 초아야. 역시···.”

떠날 때는 모두 함께여야 해.

어째서 이토록 태연한가?

피가 섞인 침을 입술 사이로 흘리며, 무당은 섬뜩한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늘어놨다.

‘이건···.’

작게나마 회복된 암안의 힘이 두 사람의 감정을 읽는다.

거기엔 마을로 들어설 때부터 감돌고 있던 체념이··· 보다 구체적인 형태로 변해있었다.

‘지쳐있다? 십년도 채 살지 못한 꼬맹이가? 숙면을 취하고 싶은 욕구? ···아니, 이것은 그보다 훨씬 강렬한 무언가가 아닌가?’

빅터는 깨닫고 말았다.

허탈감과 무력감.

어린 아이의 머릿속을 가득 지배하고 있던 그 기이한 마음의 파장은 자살자의···.

죽음을 통해서 편해지고 싶어 하는 달관에 한 없이 가까운 것이었다.

7.

“···실례했습니다. 두 분을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해드렸군요.”

무당이 겨우 대화할 수 있는 준비를 마친 것은 해가 저문 뒤였다.

대접을 잊고 있었다며 뒤늦게 식사가 제공되었지만.

빅터와 로이드는 그 음식에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사람들이 조리해온 요리란, 바로 낮에 두 사람이 쓰러뜨렸던 하늘을 나는 괴물의 고기였기에.

“틀림없다, 빅터. 이건 앙심이야. 네가 목을 조른 것에 대한 분풀이라고!”

“···.”

반면, 아랑과 리리 리는 허기가 졌는지 무당 옷을 입은 무리가 내오는 요리를 거침없이 먹고 있었다.

신경독이 있으나, 제대로 조리만 거친다면 크게 해로운 것도 아닌 모양이었다.

“그쪽 분께선 저녁을 드시지 않아도 괜찮으신지?”

무당을 모시는 몸종처럼 보이는 여자가 조심스레 묻자, 빅터를 고개를 저었다.

“···성의를 무시하는 것 같아 미안하지만, 입맛이 없군.”

“부끄럽습니다. 식문화가 변변찮지 못하여···.”

“먹거리 따윈 아무래도 좋아. 그보다 사당의 주인은?”

“마침 홀로 종당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흠.”

“이쪽으로···.”

이마저도 예상한 듯한 움직임.

신탁인가?

예지를 통해 빅터의 행동마저 읽은 것일까?

드륵.

동방 특유의 미닫이문을 열고서, 빅터는 건너편의 상태를 쏘아보았다.

무당 여인이 다소곳이 앉아있어.

그녀는 자신의 목에 생긴 시퍼런 멍을 어루만지는 중이었다.

“오셨군요.”

“이제 긴말은 필요 없겠지. 내가 올 거란 걸 이미 알고 있었을 테니, 이제 설명해라.”

“물론입니다. 사냥꾼이시여.”

미리 생각을 정리해둔 것일까?

청산유수.

무당 여인의 이야기는 거침없이 진행되었다.

수 백 년에 걸쳐 대지에 스며든 탁기.

그것이 사람은 물론 동식물에게까지 영향을 주었다.

그 결과, 공간이 뒤틀리고 꼬여버렸어.

균열에 익숙한 이가 마중을 나가지 않는다면, 외부에선 들어오는 것조차 불가능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보다 심각한 문제가 있었으니.

“이 마을 출신이라면 누구를 막론하고 빠져나갈 수 없어요. 운 좋게 탈출한다고 해도 바깥세상의 공기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질식하고 말죠.”

“고립이라···.”

“나가지 않는 게 아니라 못 나가는 거죠. 잠시 방문하고 나가는 타지인에겐 큰 영향이 없지만, 우리들은 선택조차 못한 답니다. 그러나 진짜 비극은 그게 아니랍니다.”

“죽음 이상의 비극이 있다고?”

“제대로 죽지 못하는 것에 비할까요?”

이어서 무당은 말한다.

그래서 이 마을이 자유롭게 산 너머를 오갈 수 있는 새들에게 기도를 했던 것이라고.

“죽은 이의 몸을 신성한 새들이 쪼아 먹으면, 적어도 다음 생엔 이 땅에서 벗어날 수 있다··· 우리 조상들은 그렇게 믿은 거죠. 어리석게도요.”

그러나 맹점이 있었다.

마기의 세력권을 너무 얕본 탓이었다.

“이 마을은요. 혼조차도 얽매여있답니다.”

“그게 무슨 뜻이지?”

“죽음으로도 해방되지 못해요. 결국 새들조차 보이지 않는 방벽을 뛰어넘지 못한 셈이죠.”

“좀 더 자세히 말해봐라.”

“환생이랍니다. 이 땅에서 태어난 자는, 죽은 자들의 기억을 일부 물려받아요. 유독 쓸모없는··· 조상들의 고통 같은 것만을.”

그렇기에 선대를 원망하는가?

무당이 조상의 위패에다 발길질을 했던 연유는 여기에 있었다.

선뜩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야기.

하나, 거짓으로 말하는 건 아니었다.

순진무구하게 강가 낚시 이야기를 늘어놓던 아이가 유독 죽음에 대해 접근하는 방식이 이상했어.

빅터가 읽어 들인 감정도 단순히 조숙하다고 말한 것이 아니야.

본디 유년기 소녀가 품고 있어야할 것보다 훨씬 짙고 어두운 색깔이었기에.

“아주 오래 전, 이 땅은 여러 이름으로 불렸죠. 신수의 땅은 그 중 하나에 불과해요. 아개적아. 몽유도. 무릉도원, 혹은 도원향···.”

“그렇게 말해도 서양 출신인 나는 잘 모른다.”

요점만 설명하란 닦달에, 무당은 수줍게 웃었다.

“그러네요. 전부 지금으로선 잊혀진 전승에 불과한데··· 어째서 우리는 언제까지고 그 과거에 속박당해야 하는 건지.”

한풀이를 늘어놓지만 그것도 오래가진 않았다.

사소한 이야기들처럼 들리나, 은근히 중요한 의미가 담겨있었기 때문이었다.

무당의 정리는 이러했다.

순황의 마녀가 방문하기 이전부터 이 땅은 신비한 성지.

그러나 그 이후부터 기이하게도 탁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했고···.

처음엔 불과 산지를 둘러싸던 정도에 불과하던 것이, 매년마다 규모를 넓혀가 마을까지 내려오고 말았어.

이윽고 신수라고 불리던 영험한 동물들까지 세대를 거치며 요사스럽게 변했다고 한다.

“짐승과 소통하는 여자아이의 이야기는?”

곰에게 속아 동생을 바친 소녀의 사연은 어찌된 영문인지 묻자.

무당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 이야길 어떻게?”

“십 수 년 전에 이 마을을 방문한 선배 사냥꾼에게서 전해 들었지.”

“···그렇군요. 하지만 와전이 있습니다. 곰에게 속았다는 건 새빨간 거짓말이니까요.”

“뭣이?”

“혹여나 새가 아닌 다른 짐승에게 잡아먹히면 해방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목적에서 아이를 가지고 실험한 거죠. 결과는 물론 실패였지만···.”

그제야 무당은 이능력의 정체를 털어놓았다.

드물게 선조의 기억이 여럿이나 겹친 아이가 태어난다.

대체로 머리가 좋게.

나아가선 신묘한 지혜까지 함께 지닌 채로.

경험이 축적된 만큼, 평범한 이들이 보기엔 비범한 힘을 타고난 것처럼 보이는 것이라고.

“물론 그 경우, 자아와 정신상태가 불안정해서 돌발행동을 자주 하죠. 아기가 걸음마를 할 수 있게 되자마자 한 일이 난간에서 뛰어내리는 거라면··· 믿으실까요?”

“아니, 그런 소리까지 듣고 싶지 않다.”

“불편하신가요? 죄송해요. 저도 한이 꽤 쌓인 터라···.”

빅터는 잠깐이지만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신비한 힘을 가진 자는 물려받은 기억이 많다···.

그 말인즉, 눈앞에 선 무당의 경우도 마찬가지라는 의미였기에.

“신탁이란 그저 있어 보이게 꾸며낸 말에 불과해요.”

“결국 그 힘도··· 마법 같은 게 아니란 뜻인가?”

“···제 예지능력의 원리를 설명 드리긴 힘들 것 같네요. 사실 저조차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거든요. 그래도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건··· 제 몸 속에 흐르는 이 탁기가 마을 사람들과 이어져있다는 사실이에요.”

무당 여인은 그들을 통해 무의식적으로 수많은 흐름을 읽는다.

그녀 스스로도 몰랐겠지만, 그것은 사람의 뇌를 연결한 고도의 복합 연산.

인간의 오감과 인근 수 만평에 걸쳐서 구석구석에 스며든 마기가 전달하는 막대한 정보량.

그 동시 다발적으로 주어지는 것들 중에서 가장 있을 법하고 현실적인 결과 값만을 도출해.

마기의 세력권, 이 마을에서 벌어지는 일에 한해서 매우 적중률이 높은 예언을 끌어내는 것이었다.

신탁이 절대적이란 것도 거짓말.

돌이켜보면, 무당 여인은 항상 사건이 벌어진 다음에서야 그 말을 입에 담았었기에.

“아마 제 신탁은 바깥 세계에선 통하지 않겠죠. 저는 오로지 이곳에서만 예언자로 활동할 수 있답니다.”

“···그걸 굳이 나에게 털어놓은 이유는?”

“지쳤으니까요.”

“그건··· 죽고 싶단 의미인가?”

“정확히는 해방되고 싶은 거죠. 저도, 초아도··· 그리고 다른 마을 사람들도.”

마을의 기원.

그리고 이능력의 유례에 대해선 충분히 들었다.

하지만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어.

그렇다면 무당에게 있어, 사냥꾼의 방문은 어떤 의미를 지닌단 말인가?

“역시 그 괴물들을 끓어 들인 건 너였나?”

“네. 유도했답니다. 저에게 올 줄 알고 있었죠. 신수, 아니 요조들은 탁기를 많이 머금은 인간을 습격하거든요.”

“···.”

“바로 당신들을 노릴 줄은 몰랐지만요.”

빅터는 짐작한다.

날개를 가진 벌레들이 자신들 사냥꾼을 우선적으로 공격한 까닭은, 아마 본능적으로 위협을 느꼈기 때문이 아닐까하고.

증오와 분노, 살기의 가루를 흩뿌리는 낯선 방문자가 토착 생물에게 딱히 반가운 존재는 아니었을 테니.

“그래, 우리가 놈들과 싸울 수 있다는 건 충분히 증명한 셈이로군.”

빅터는 이쯤에서 무당의 노림수를 모두 읽었다.

상대가 전혀 숨기지 않아.

전부 털어놓을 셈이었다.

“이 마을의 중심에는 호수가 있습니다. 그 중심부에는 수문으로 가려진 거대한 동굴이 숨겨져 있죠. 바로 신수들의 둥지이자··· 당신들이 마기라 부르는 것이 흘러나오는 근원지이지요.”

“뻔뻔하시군. 그렇게나 치켜세우더니, 결론만 말하면 우리더러 원흉을 해결해달라는 건가?”

“들어주시는 건가요?”

“그걸로 우리가 얻는 게 뭐지?”

싱긋 웃는 무당의 태도가 고깝잖아.

빅터는 심술을 부렸다.

“착각하지 말도록. 나는 내 사리사욕만을 위해 싸운다. 지극히 개인적인 복수를 위해 사냥꾼이 되었지. 그런 나에게 너의 부탁은 무슨 도움이 되나?”

떠볼 생각이었지만, 무당은 터무니없는 해답을 내놓았다.

“제 예지 능력을 당신에게 드리죠.”

“···.”

“양도하겠습니다. 제 목숨이 다 하는 그 순간, 온전히 넘겨드릴 것을.”

그런게 가능하단 말인가?

무당은 자신의 발언에 확신이 차 있었다.

“그럼 퇴마객이시여. 제 요청을 받아들여주실 건가요?”

“···이미 알고 있지 않나? 그 잘난 예지로.”

무당은 잠시 이마를 짚었다.

멋대로 머릿속에서 어떤 모습이 비춰져.

빅터의 대답에 따라 새 신탁이 내려온 모양이었다.

“···네, 보입니다.”

어느새, 무당은 두 눈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우리 모두가 해방되는 미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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