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헥센야크트-113화 (113/186)

돌입의 장(1)

1.

지옥변.

마굴의 입구는 빅터나 로이드의 상상보다 훨씬 흉포한 뭔가를 담고 있었다.

“진심이냐, 빅터? 여길 통해서 들어가겠다고?”

“왜 그러지? 겁이라도 먹었나?”

“야, 씨··· 저걸 보고도 겁을 안 내는 게 더 이상하지.”

새벽의 동이 트자마자 빅터 일행은 당장 문제의 장소를 찾았다.

호수.

마기가 흘러나오는 원점.

그러나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무당이 알려주었던 중심부의 압도적인 경관이었다.

묘하게 애초부터 사람의 접근을 막기 위해서 조성된 것만 같아.

과연 신선의 땅이란 이름이 붙여진 이유가 있었다.

“마을 사람들 낚시터 라길래 조금 더 큰 연못 비슷한 건줄 알았더니, 세상에 뭐 이런 게 다 있어? 임마, 넌 아무렇지도 않냐?”

“나도 충분히 놀라고 있다.”

“그럼 얼굴에 좀 그런 기색을 띄우라고!”

절벽 위에서는 로이드의 목소리가 메아리쳤다.

아래는 무시무시한 규모의 폭포가 쩌억 입을 벌린 채 하늘을 올려보고 있었다.

“젠장, 어쩌다가 일이 이렇게···.”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은 자연의 이치인 게 당연하지만.

당장 빅터와 로이드 앞에 펼쳐지는 물의 양은 마치 바다의 일부를 연상케 할 정도로 어마어마했다.

산맥의 경사를 따라 한곳으로 강이 집결해.

반지름이 마을의 크기와 맞먹을 정도의 구멍 속으로 대량의 물줄기가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오랜 옛날, 무엇인가가 학자들이 지구의 끝자락을 상상할 수 있게끔 영감을 주었다고 한다면···.

틀림없이 이와 흡사한 자연의 놀라운 작품이 한몫을 했으리라.

“그런데 꼬맹이들은?”

“리리 리에겐 마을의 경계를, 아랑한텐 사격 훈련을 좀 더 당부해놓았다.”

“하하, 결국 성가시다고 떼어놓고 온 거구만?”

“아이들이 동행하기엔 이번 일은 너무 위험해.”

“나는 괜찮고?”

“정 염려되면 나 혼자 가겠다.”

“후··· 이젠 자존심까지 건드시겠다?”

“너의 강단은 믿고 있다, 로이드.”

“속이 뻔히 보인다, 이 자식아!”

“이렇게 말해두면 분해서라도 따라오겠지.”

“오냐, 사람 한 번 잘 봤다! 이 마술사 로이가 후배 혼자 사지로 보낼 정도로 매정한 놈이 아니란 걸!”

“그럼 앞장 서주실까?”

빅터 자식, 쓸데없이 사람 다루는 방법만 늘었군.

그렇게 연신 투덜거리지만, 로이드는 빅터를 혼자 내버려둘 생각이 없었다.

“그나저나, 네 덕분에 관광 한 번 제대로 한다. 내가 몸소 동방의 신비를 경험하게 될 날이 올 줄이야···.”

물론 그에게도 호기심은 있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두려움이 더 커.

마기의 중추에, 끝 모를 구덩이 속으로 뛰어 들어야 한다면 더욱 더···.

“그 희나라는 여자가 말하기로, 이곳은 명계冥界의 입구라고 하더군.”

“그것도 동양 사람들이 품고 있는 민간 신앙 같은 거냐?”

“관심 없나?”

“아니, 엄청 궁금하지. 그런데 날 겁주려고 하는 이야기라면···.”

빅터는 고개를 저었다.

그가 설명한 것은 단순한 유례나 전설의 일부뿐.

“새에게 파 먹힌 시신의 유해는 이 아래로 뿌리는 게 전통이라던가? 그러면 무저갱의 강을 타고, 염마閻魔에게 사자의 혼이 전달된다고 한다.”

“염마?”

“죽어서 귀가 된 사람을 심판하는 일종의 신적 존재를 말한다?”

“이번엔 심판이냐? 저승에서 무슨 저울 들고 재판이라도 하는 건가?”

“이승에서 악을 행한 만큼 내세에선 벌을 받는다. 대충 그런 개념이 있더군.”

“어디서 많이 들어본 소린데? 그거, 너나 내 고향에서 주교들이 항상 떠들어대던 이야기 아니냐?”

“···사뭇 다르지만, 파고 들어가면 크게 변한 것도 없다.”

“의외네. 동방에 유일신 사상은 없는 줄 알았는데 말이야.”

“그것도 지방마다 다르다.”

“혹시 천국의 존재도 믿는 거야?”

“이쪽은 극락이란 이름으로 통하지.”

“역시 어디든 사람 사는 곳은 비슷한가 보군.”

“그럴지도. 하지만 동양의 민족은 우리보다 더욱 도덕적 관념에 민감하지. 그들의 마음가짐엔 항상 권선징악勸善懲惡이 깔려있어. 벌을 겁내고 구원을 바라는 모양이다.”

“하하, 그놈의 구원 말이지···.”

어쩌다 나온 잡담.

로이드는 별 것 아니라는 듯 말했지만, 빅터는 그의 속내에서 특정 종교에 대한 강한 혐오를 느꼈다.

무신론자인 마녀 사냥꾼이 교단에 반감을 가지는 것은 어느 정도 당연하나···.

그것은 어떤 의미에선 빅터가 가진 불신보다 더욱 깊고 날선 증오.

문화의 상대성을 무시하고 내리까는 것과는 사뭇 달라.

특히 ‘구원’이라고 읊조릴 때 감정의 증폭이 극에 달했다.

마치 인간의 초자연적 존재에 바라는 모든 보상을 부정하는 것만 같은···.

“로이드, 동방의 토속신앙이 그렇게까지 마음에 안 드나?”

“아차차, 내 정신 좀 봐. 무심코 옛날 생각을 하고 말았군. ···야, 빅터. 방금 나한테서 뭘 읽었는 진 모르지만, 전부 잊어버려.”

“노력해보마.”

“켁, 진짜 엿봤던 거냐?”

“내 본의가 아니다. 어제 본 더러운 벌레들의 둥지로 직행하는데, 편리안 감지 능력을 꺼둘 수도 없지 않나?”

역시 입담으론 당해낼 순 없는가?

어느새 로이드는 익살꾼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 있었다.

“크으··· 잠깐 동방에 머물더니, 내 듬직한 후배에게 묘한 관음증이 생기고 말았구나.”

“걱정마라. 네가 말하고 싶지 않은 걸 애써 물을 생각은 없으니.”

“그렇지. 내 슬픈 과거를 알면 다친다고, 친구.”

그러면서 빅터의 어깨를 주먹으로 가볍게 친다.

“언젠가 때가 되면··· 아니다. 이것도 실언이야. 못들은 걸로 해주라.”

이따금씩, 로이드는 자신의 어두운 면을 숨기고자 할 때마다 시덥잖은 헛소리로 흐지부지 넘기려했다.

당당하게 말하지 못하는 것은 어떤 죄의식 때문···.

떨쳐내지 못한 과거의 조각이 로이드를 옭죄고 있어.

똬리를 튼 뱀 마냥, 그는 스스로가 품고 있는 비밀을 애써 숨기고 싶어 했다.

그 실없는 미소의 가면 아래에 무엇이 숨어있는 것인가?

하나, 빅터는 로이드가 무의식을 추스를 시간 동안 암안의 작용을 멈추었다.

그가 감추려한다면, 틀림없이 이유가 있을 것이기에.

잠시 후, 어색해진 분위기를 되돌릴 셈으로 로이드는 기지개를 폈다.

“자, 그럼 슬슬 들어가 보실까? 이대로 머뭇거리고 있다간 평생 기회를 놓칠 거 같거든.”

“음.”

“그런 의미에서 첫 걸음은 너한테 양보할게.”

빅터는 피식 웃더니.

“지릴 거 같으면 언제든 말해라.”

“뭐, 임마?”

팟.

큰 몸집의 사냥꾼이 허공을 향해 뛰었다.

‘대스승 베누다에게 보법을 수련 받던 때가 떠오르는군.’

요령이 없는 빅터였지만, 수련의 성과는 있었다.

그는 부츠를 신은 발아래에 모든 신경을 집중했다.

물보라.

그와 함께 빅터의 다리가 측면의 바위를 찬다.

몇 번인가 충돌한 만큼 아찔한 상황이 연출되었으나, 그 움직임에 망설임은 없어.

그야말로 절묘한 타이밍으로 중력이 이끄는 힘을 감속하고 있었다.

초인적인 각력이 만들어내는 지그재그의 낙하.

이는 상상을 초월하는 허리의 힘과 절묘한 무게 배분이 필요한 기술이었다.

“휘유··· 동방의 체술이란 게 참 굉장한데? 그럼 나도 질 수야 없지.”

반면, 로이드의 재주 또한 남달랐다.

빅터가 폭포 아래에 넓게 돌출된 자리에 착지한 사이···.

로이드는 별다른 조치 없이 그대로 몸을 날렸다.

그 무모한 뜀발질에 놀란 빅터가 고개를 들자, 로이드가 읊조린 기술의 이름이 들려왔다.

그 낯 뜨거운 명칭은 로이드식 괴뢰술, 제 8형.

“어스름 거미줄!”

파앗!

순간, 로이드가 뻗은 은사가 검게 물들었다.

열 개의 번쩍이는 줄기가 뭉쳐졌어.

그것은 이미 밧줄처럼 두껍게 변해있었다.

길이는 신축자제.

심지어 물이 끝없이 흘러내리는 돌벽에도 아무 거리낌 없이 들러붙는다.

로이드가 이미 그림자를 머금게 만들어 자유롭게 조종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과연, 거미줄이라는 이름이 붙을 만도 해.

로이드는 빅터가 내려온 구덩이보다 더욱 깊은 곳에서 그물 같은 영역을 구축했다.

“어떠냐, 후배? 이쪽이 훨씬 편해 보이지 않아?”

대부분의 충격을 흡수했는가?

로이드는 자신이 짠 매듭 위에 살포시 착지하며 여유롭게 말했다.

확실히 나쁘지 않은 기술.

이만큼 섬세한 가루의 조절이 가능한 재능은 빅터로선 꿈도 꿀 수 없어.

가히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였다.

하지만···.

“너무 요란하다. 가루를 너무 낭비하는 것 아닌가?”

“하, 이 정도는 나한테 껌이지.”

무리하기는.

벌써부터 그물의 형태가 일그러지기 시작했어.

로이드는 서둘러 아래의 돌부리에 손을 뻗었다.

“···아, 물론 오래 유지시키는 건 아직 좀 힘들어서 말이야.”

“갈 갈이 멀다. 그 장난질은 바닥에 도착했을 쯤에나 쓰도록.”

“어쭈? 벌써부터 나한테 명령 질이냐? 아무튼 조금 컸다고 벌써부터 기어오르···.”

“미안하지만, 너랑 농담 따먹기 할 여유는 없다.”

“억?!”

그때였다.

빅터가 로이드의 손목을 부여잡은 것은.

그는 그대로 로이드를 등에 짊어지더니, 곧장 아래를 향해 다시 몸을 날렸다.

“야아아아! 뭘 저지르려면 미리 언질부터 하라고오오오!”

그러나 빅터에게도 이유는 있었다.

바람의 흐름이 바뀌었어.

뭔가가 급속도로 다가오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뻥뚫린 하늘의 출구가 급격히 어두워졌다.

바위 사이 틈을 통해, 커다란 날개를 가진 적의 무리가 날아오르고 있었기에.

“아차, 여기가 놈들의 둥지라고 했었지?”

“···생각보다 더 빠르군. 이대로는 따라잡힌다.”

“아니, 난 네가 무슨 대책이라도 있는 줄 알았는데?!”

“물론 있다.”

“엉?”

“이때를 위해 네 동행을 부탁했건 거다.”

슬쩍, 빅터는 로이드의 얼굴을 보았다.

그 의도를 알아챈 것인가?

로이드는 뒤늦게 히죽 웃으면서 양손을 펼쳤다.

“교활한 자식.”

“너만 하겠나?”

“위대한 빅터께서 이 몸을 의지해준다니, 기대에 보답해드려야겠지?”

로이드는 빅터의 등을 발판 삼아 뒤로 돌았다.

“잠깐 실례.”

이어서 유려한 손놀림이 교차한다.

로이드는 일전에 소년소녀들이 탄 말을 짖이겨 버렸던 비장의 기술을 사용했다.

“은안개!

여담이지만 이것은 제 1형.

로이드가 처음으로 개발한 괴뢰술.

이번에는 힘 조절 따위 없어.

그는 전력을 다해 휘둘렀다.

강렬한 기세.

마치 태양이 뜬 것만 같이 하늘이 백광으로 번뜩였다.

“···크윽!”

문드러진다.

허공에 체액과 깃털이 튀어 오른다.

가루처럼 퍼진 은사의 폭풍이 그들을 노리고 덮쳐오던 벌레의 선두를 덮쳐버렸다.

산산조각 난 몸뚱이들이 폭포수에 튕겨나가는 모습을 보며, 로이드는 의기양양하게 소리쳤다.

“하! 봤냐? 어제 네가 잡은 놈들보다 내가 훨씬···!”

하나, 문제가 발생했다.

그의 말처럼 은안개에 찢겨나간 적의 숫자는 열 마리가 넘었어.

그렇지만 그 뒤로 그 배는 되는 날벌레 무리가 추격해오고 있었다.

거기다···.

“쳇···.”

로이드의 손가락이 너덜너덜해졌다.

부러진 것은 아니나, 반지를 낀 손가락의 피부가 뒤집어진 상태.

상상 이상으로 적의 몸이 튼튼했기에 부하가 걸린 모양이었다.

“한 번 더 쓸 수 있겠나?”

“뭐냐, 빅터? 설마 날 걱정하는 거냐?”

“너무 무리하지 마라.”

오기.

로이드는 이를 악물었다.

“그야 몇 번이고 가능한 게 당연하잖아, 짜샤!”

파직, 파지직!

위를 향해 뻗은 어깨를 타고 가공할 압력이 퍼진다.

하완과 상완을 거쳐서 배분되는 섬세한 손끝이 또 한 번 섬광을 뿜었다.

두 번째 은안개.

놀랍게도 첫 번째의 것보다 훨씬 맹렬한 위력이었다.

효과가 있었던 것인가?

하늘의 적은 눈에 띌 정도로 줄어들었다.

“멋지군. 흡사 마술, 아니 마법 같았다.”

“···하, 땀내 나는 사내놈이 칭찬해봐야 아무 것도 안 나오거든?”

아무렇지도 않은 척 농을 꺼내나.

로이드의 양손은 너덜너덜한 채로, 거의 뼈가 다 비춰 보일 정도.

회복되기 전까진 이 이상 같은 수법을 쓰기는 힘들어 보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제 공습이 멈췄다는 것···.

“동족이 죽어서 겁먹은 건가? 눈치가 제법 있는 날벌레들인데?”

“조금만 참아라. 바닥까지 내려가면 바로 응급처치를···.”

“···잠깐! 빅터, 저길 봐라!”

아니?

로이드의 외침과 동시에 빅터도 숨을 참았다.

소용돌이.

하지만 물이 아니야.

맨 밑바닥으로 추정되던 자리에 시커먼 뭔가가 자리 잡고 있었다.

‘이것은···. 자연의 이치조차 통하지 않는 것인가?’

나락의 입구?

혹은 심연의 자락인가?

무저갱의 얼굴은 온갖 조화를 부리며 빅터와 로이드의 상식에 어긋난 현상을 보여주었다.

그 자리에는 폭포로 떨어지는 물조차도 닿지 못해.

오히려 역류.

거꾸로 솟아오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피와 살만큼은 탐욕스럽게 빨아들이고 있다.’

그 증거로 로이드가 찢어 죽인 고기파편들이 사라지고 있어.

유기체를 구분해가며 삼키는 것이 들림 없었다.

그렇다면 보나마나 이대로 두 사람이 접근했을 때 벌어질 일은···.

“···꽉 잡아라, 로이드!”

“뭘 할 셈인데?”

“이대로 뭉갠다!”

“뭣?!”

정체를 모르는 현상.

하지만 고농도의 마기 덩어리라는 사실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빅터는 당장 자신의 도끼를 집어 들었다.

머뭇거리지 않아, 지면에 닿기 전에 유성의 파편이 가진 힘을 해방한다.

바로 모든 마의 기운을 지우는 초월의 능력을···.

“흡!”

그 순간, 로이드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착각이었을까?

빅터가 도끼를 휘두른 찰나.

날의 부분이 세로로 크게 벌어져, 마치 불길한 짐승의 아가리처럼 변해었던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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