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지의 장(4)
4.
한동안 일행은 마을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마차가 더 나아가질 못했어.
마치 진귀한 구경거리가 된 것 마냥 취급을 당해야만 했다.
“귀찮게 해드렸네요.”
“아니.”
“다들 타지의 사람이 익숙하지 않아서 그래요. 특히나 색목인은···.”
마을의 마구간 지기가 나서서 고삐를 건네받고 나서야, 빅터 일행은 겨우 제대로 된 손님 대우를 받을 수 있었다.
십 여분 후···.
무당이 안내한 곳은 민가에서 한참 떨어진 외곽 지역.
수백이나 되는 층계를 올라야만 도달할 수 있는 사당祠堂이었다.
고풍스런 건물.
낡아 보이는 기와에서 시선을 거두며, 빅터는 어린 두 제자에게 말을 건넸다.
“리리 리, 아랑. 너희는 바깥에서 대기하도록.”
“네에? 왜요, 빅터 사부? 아랑은 둘째치더라도 저까지?”
“리리 누나, 나 아직 옆에 있어. 다 들리는데?”
“아잇, 너는 좀 조용히 하고 있으렴! 어디서 어른들 이야기하는데 끼어드니?”
“리리 리. 누누이 말하지만, 너와 아랑은 두 살 밖에 차이 나지 않는다.”
“그래도 보통 연배라면, 저는 이미 시집 갈 나이인걸요? 다 큰 처녀라고요! 앙리 언니가 그랬어요. 사실 저는 남자를 알아도 이상하지 않은··· 읍읍!”
“···장소를 가려가면서 말해라.”
무슨 뜻인지는 알고 지껄이는 것인가?
빅터가 급히 입을 막았지만, 리리 리는 여전히 투덜거렸다.
“오랜 만의 임무인데 애 돌보기라니, 너무해요!”
근래 마차에서만 지냈기에 왈가닥 특유의 성질머리가 발동한 듯했다.
하지만 빅터는 그런 리리 리를 다루는 법을 잘 알고 있었다.
“너는 누나지 않느냐. 동생을 돌볼 책임이 있다.”
“피이, 또 책임 운운하시고···.”
“부탁하마. 나는 너를 의지하고 있단다, 리리 리.”
“으···.”
사부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는 건 소년뿐만이 아니야.
첫 제자를 자부하는 소녀에게도 같은 마음이 있었다.
단순하기에, 순진하기에 더욱 간파하기 쉽다.
그것은 암안의 힘을 빌리지 않아도 알 수 있을 만큼 단순한 것이었다.
“···그리고 아랑.”
“네, 네!”
“혹시라도 몸이 이상해진다면 당장 말해라.”
빅터는 마을에 진입하기 전부터 아랑의 상태를 살폈다.
왜냐하면, 이 땅은 무거운 마기가 감돌고 있어.
제아무리 보이지 않을지라도 영향을 주기 충분했기에.
하나, 아랑의 표정에 불편한 기색은 찾아볼 수 없었다.
예전에 유황의 마녀가 숨은 본거지로 들어갔을 때와는 천지차이.
오히려 쾌적해 보인다.
그리고 거기에는 이유가 있었다.
“괜찮아요, 사부. 저한텐 이게 있으니까요.”
소년은 주머니에서 시뻘겋게 빛나는 어떤 것을 꺼내들었다.
마기를 흡수하는 기이한 돌.
바로 마몬의 적석이었다.
“그래. 절대 그걸 몸에서 떼어놓지 말거라.”
“네, 사부.”
불행인지 다행인지.
아랑은 일전에 회수했던 이 물건이 덕분에 목숨을 부지했다.
주변의 탁한 공기를 빨아들이는 마녀의 창조물Artifact.
제작단계에서부터 의도했는지는 몰라도, 그것이 일종의 보호막처럼 작용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아?”
“혹여 리리 리가 돌발행동을 하지 않게, 네가 잘 조율해다오.”
큰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속삭이는 빅터.
이것은 그의 아버지가 생전에 보여주었던, 드물게 아들에게 의지하는 신호이기도 했다.
강함과는 별개로, 리리 리보다는 아랑 쪽이 훨씬 의젓한 아이였기에.
아랑은 답하지 않았다.
대신 단호히 고개를 끄덕여, 사부의 기대에 응할 생각이었다.
이걸로 아이들 쪽은 한시름 놓았다.
다음은 이 마을에 방문한 진짜 볼일을 해결하는 것뿐.
“야, 후배. 저 하얀 여자가 너한테 손짓하는데?”
그 사이를 못 참고 재촉하는 것일까?
여인의 부름에 따라, 빅터와 로이드는 다시금 계단을 올랐다.
“마을 분위기에 많이 놀라셨죠?”
입구에 들어서자 무당 여인이 쓴웃음과 함께 말을 걸어왔다.
물음이었지만, 그 목소리에는 어쩐지 확신이 담겨있었다.
설마하니, 무당은 이마저도 예지를 통해서 알고 있었던가?
“확실히,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많이 다르더군.”
빅터가 예상하기로.
이곳은 무겁고 암울한 자들이 살고 있을 거라 여겨졌다.
수 백 년 넘게 마기가 머무른 대지를 고향으로 두었다면···.
필시 평생 온갖 무시무시한 꼴을 다 보았을 게 뻔했으므로.
“용케도 살아가는군. 온갖 요사스런 초자연현상을 다 보았을 텐데. 무섭지도 않나?”
빅터가 감상을 솔직히 털어놓자, 무당은 소매로 자신의 입가를 가렸다.
그리곤 수줍게 웃더니.
“후후, 그 정도까진 아니랍니다. 사냥꾼님도 참 짓궂으시군요.”
“실례했군. 하지만 나조차 이만큼 짙은 어둠이 짙게 내리깔린 마을은 처음 본다.”
“어둠이라, 타지에서 온 퇴마객에겐 그렇게 느껴지신 거군요.”
“이건 비유나 과장 같은 게 아니다.”
그도 그럴 것이.
바깥에서 본 지방의 경관은 마녀가 만든 결계와 거의 다르지 않아.
고립된 산골 마을의 공포를 경험해본 빅터에겐 더더욱 묘한 것이었다.
그러나.
“···무슨 말인지 소저도 충분히 알겠습니다. 전부 옳으신 말씀이세요. 이 마을에 사는 사람들 중에서 기이한 일을 겪어본 적 없는 이는 없으니까요. 하지만 그쪽 두 분도 아시다시피···.”
무당은 시선을 내리깔았다.
아주 서글픈 표정과 함께.
“인간이란 적응하는 동물이지요.”
비록 아무리 비현실적인 세계라 해도, 날 때부터 보아온다면 그마저도 자연스러워진다.
좋고 싫고의 문제가 아니야.
그녀에겐 고향이란 그런 의미를 담고 있었다.
“이 안으로 들어오시길. 복도가 낡아서 조심하셔야 할 겁니다. 특히 그쪽··· 마르신 분께선.”
“으억!?”
“···이미 늦었군요.”
로이드가 한 발을 내딛자마자 나무로 만든 판자가 부러졌다.
“저 녀석이 이렇게 될 지 알고 있었나?”
“후후, 부끄럽지만···.”
신탁은 절대적.
결국 무당의 충고는 의미가 없었어.
어쩌면 그 우스운 꼴을 보기 위해 일부러 입에 올린 것인지도 몰랐다.
···잠시 후.
빅터와 로이드의 발이 멈추자, 그 앞에는 확 트인 방이 나왔다.
묘하게 경건한 고요가 감돌아.
안쪽 구석부터 중앙까지 잔뜩 채운 나무 장식이 놓여있었다.
흡사 열고 닫는 문의 축소판.
빅터는 단번에 그것의 용도를 알아차렸다.
“저건··· 위패位牌인가?”
“동방의 장례 문화에 대해서 잘 아시는 군요.”
“수가 많군. 역대 조상들을 모시고 있나?”
“네. 제 직계 선조 분들은 물론, 지나간 시간을 살아오신 모든 어른들의···.”
하지만 무당은 그 제단을 싸늘한 눈길로 바라보더니.
“의미 없이 공간만 차지하는 망령 놀음이죠.”
맨 앞에 놓여 진 목주木柱를 발로 걷어 차버렸다.
“휘유, 화끈한데? 나 저 아가씨가 갑자기 맘에 들기 시작했어.”
“시끄럽다, 로이드. 이게 웃을 일처럼 보이나?”
그러나 불경한 행위.
무당이란 자가 할 법한 짓으론 도무지 보이지 않아.
그녀에겐 깊은 원한이 있는 모양이었다.
“동방의 민족은 선조를 소중하게 기린다던데. 천벌이 두렵지도 않나?”
“후후, 아시면서. 그런 건 사이비似而非랍니다. 사실 제가 겉으로 꾸민 무속조차 미신에 불과한 걸요.”
“독실한 무녀가 아닌 줄 바로 알아봤어야 했는데.”
“하지만 신탁을 받아들이는 이 힘만큼 사실이랍니다.”
“그렇겠지.”
“그보다, 아까 하던 이야기를 계속할까요?”
제단이 잔뜩 널브러진 곳에 자리를 잡더니, 그녀는 빅터와 로이드가 알아서 앉기를 권했다.
“우리가 어떻게 이런 마경에서 살아갈 수 있는가? 당신은 그게 궁금하신 거지요?”
“음.”
“신경 쓰지 마시길. 저희는 익숙하답니다. 아니, 오히려 다른 곳에선 살아갈 수 없는 몸이 되어버렸을 정도죠.”
“실은 아까부터 그걸 묻고 싶었지.”
“네? 어떤···.”
“솔직히 말해주길 바란다. 당신은, 아니 이 마을 사람들은 마기와 융화되었나?”
“···네. 불행인지 다행인지 아주 깊이 파고들어있답니다.”
새하얀 얼굴에 한층 더 슬픈 그림자가 내렸다.
그것은 빠져나올 수 없는 운명에 얽매인 자의 표정이었다.
“역시 직접 보여드리는 게 좋겠죠?”
“음.”
갑자기 무당 여인은 앞섬을 풀어 해치더니.
적나라하게 자신의 젖가슴과 갈비뼈를 모두의 앞에 드러냈다.
“이, 이봐? 저 아가씨, 갑자기 이상한 짓을 하는데?”
“괜찮다.”
“저게 어딜 봐서 괜찮아 보이냐?!”
그 말마따나, 무당의 행동은 기이하기 짝이 없어.
아무렇지도 않게 오른 손으로 자신의 흉곽을 뜯어내 젖히는 것이 아닌가?
로이드가 보기에, 그것은 갑작스런 돌발행동으로만 느껴질 뿐이었다.
“눈을 돌리지 마라. 로이드, 그녀는 필사적이다.”
빅터는 이미 그 행동의 이유를 알고 있었다.
그래서 애써 로이드가 무당이 드러낸 뱃속과 마주하게 만든 것이다.
하나, 그 모습은 그간 못 볼 꼴을 잔뜩 봐온 빅터조차 견디기 힘들어.
잔혹한 현실과 직면하자마자 두 사람 숨을 참았다.
“···보셨겠지요? 제 안은 이렇게 비어있답니다.”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어.
무당 여인의 말을 정확했다.
공허한 내부.
마치 하얀 도자기의 속을 엿보는 것만 같아.
그 몸속에는 근육의 흔적도, 내장의 자취도··· 심지어 혈관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그야말로 백자의 그릇으로 만들어진 여인이었다.
그것은 껍데기.
흘러나오는 건 오직 시커먼 연기의 집합체뿐이었다.
“이런 몸이기에, 저는 이 마을의 세력권 안에서 벗어날 수 없죠.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에요.”
“모두가 당신과 같은 상태라고?”
미묘한 감정의 흐름.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떠나지 못하는 건 맞아요. 여러분이 마기라고 부르는 이 탁한 기운은 이제 우리에게 있어선 살아가는데 필수적인 조건이 되었으니까요. ···하지만 그들 전부가 이런 신체라는 의미는 아니랍니다.”
“개인차가 있나보군.”
“네. 단지··· 혈관 속에 피 대신 검은 안개가 흐를 뿐.”
그제야 여인은 다시 붉은 색동옷을 다시 입었다.
“부디 오해하지 말아주시길. 이 몸은 어디까지나 심한 경우에요. 제가 태어난 집은 호수에서 가장 가까운 곳··· 그러니까 특히 많은 탁기에 노출된 곳이었던 탓일 클 테니까요. 덕분에 태양빛이 만들어내는 모든 조화로운 색을 빼앗겨버리고 말았죠. 새하얀 귀신마냥···.”
“자조하긴 이르다. 마을 사람들 대부분이 당신을 선망의 눈으로 보고 있었으니까.”
“어머나?”
“그중에선 당신을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나 미의 화신으로 여기는 이까지 있었다.”
“말씀만이라도 감사해요.”
“괜히 기분 좋으라고 하는 말이 아니다.”
“그래요.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말씀해주신 거죠? 신탁에 의하면 당신은 사람의 본성을 꿰뚫어보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했었으니.”
“···.”
“그럼 저랑 같네요.”
동질감.
신비한 능력을 가진 자라는 공통점에서 상대는 빅터에게 호감을 보였다.
하지만 빅터는 애써 그것을 외면했다.
“···잡설은 그만하고 본론으로 들어가지.”
어디까지나 매마르고 차가운 태도.
리리 리나 아랑을 대하던 것과는 전혀 다르다.
미래를 본 다는 건 흥미로운 주제였지만, 빅터는 더 이상 시간을 끌고 싶지 않았다.
근래 일이 계속해서 꼬이고 있어.
예정에도 없던 새 제자의 영입.
로이드의 방문은 예외라고 쳐도···.
일국의 황태자가 자신에게 요구하는 억지와 더불어, 기구한 태생을 가진 여인의 한풀이가 마냥 기분 좋게 들리진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로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
여인의 이질적인 몸뚱이는 이미 마기에 절여진 상태야.
그녀의 말처럼 바깥으로 인도하면 순식간에 문드러질 것이 뻔했기에.
“미리 말해두지만, 우리는 당신을 구하기 위해 찾아온 것이 아니다.”
빅터가 그녀의 호의적인 대화를 차단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이야기 도중, 백색의 무당···.
희나라는 여인이 빅터에게 바라던 것이 바로 ‘구원’이었기 때문에.
“···매몰차시군요. 저는 아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피차 서로 시간낭비를 할 필요는 없지 않나?”
“그건 그래요.”
상대는 이미 빅터의 방문을 알고 있었다.
그렇다는 건 목적에 대해서도 인지했을 가능성이 높아.
그리고 잠깐 떠본 결과, 그 예상이 맞았다.
“마를 퇴치하는 사냥꾼들이시여. 그대들이 여길 찾아온 이유는··· 탁기가 흘러나오는 원인의 추적과 섬멸에 있으시지요?”
“그렇다.”
“그렇다면 말씀드리겠습니다. 딱히 어려운 일도 아니지요. 신탁에 의하면, 제가 그 모든 전말을 털어놓는 것도 예정되어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 전에···.”
갑자기 여인의 마음속에 거대한 파도와 희멀건 안개가 차올랐어.
빅터의 정신감응능력으로도 파고들지 못하는 장애물이 심상 세계에 나타났다.
과연, 무당을 자처할 만큼 정신적인 단련이 되어 있는 것이었나?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뭐지?”
“마을에 들어서기 전에 어떤 장식물을 보셨을 걸로 압니다.”
“솟대 말인가?”
끄덕.
여인은 그와 동시에 새의 형상을 떠올렸다.
“바깥 세계에서 오신 여러분은 이 일대를 신수의 땅이라 부르신다죠?”
“그랬지.”
“신수는 존재한답니다.”
곤란한 발언.
거짓의 낌새가 없다.
그렇기에 곤란해.
무당의 속내는 그보다 더 성가신 것이었다.
“···우리가 그걸 사냥해주길 바라는 건가?
빅터는 급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야, 빅터? 갑자기 왜 정색이냐? 저 여자가 방금 뭐랬길래?”
“일어나라, 로이드. 더는 상대할 것 없다.”
“어엉?”
괜한 수고는 사절이야.
하물며 동료들을 위험에 끌어들일 일은 만들고 싶지 않았다.
사역마나 외래종이면 모를까.
특이한 짐승 따윌 쳐 죽이는 일은 자신들의 역할이 아니었기에.
하지만 무당 여인은 그의 움직임에 놀라지 않았다.
당연히도, 상대가 이렇게 나올지 이미 알고 있었기에.
“아뇨. 그건 이미 정해진 일이랍니다.”
무당의 입가가 휘어졌다.
검은색 연지에 미색이 감돌아.
백탁의 눈동자에서도 은근한 기쁨의 빛깔이 번뜩였다.
“당신은 머지않아 그 요조妖鳥들의 목을 베어야만 테니까.”
“···또 그 잘나신 신탁이냐?”
“네. 그리고 그건 앞으로··· 제가 열을 샌 뒤에 나타날 것입니다.”
“뭐라고?”
“지금··· 내려오기 시작했습니다. 하나.”
여인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가리켰다.
“둘.”
초인적인 빅터와 로이드의 두 귀에 어떤 묵직한 파공음이 감지되었다.
뭔가가 빠르게 접근한다.
그 방향은 틀림없는 수직하강이었다.
“야, 야야··· 위에서 뭔가가 내려오는 것 같은데?”
“셋, 넷.”
무당은 계속해서 읊조린다.
“다섯, 여섯.”
“빅터! 왜 저 여자가 자꾸 손가락을 접는 거냐?! 너 무슨 짓 했어?!”
“···일곱.”
“빌어먹을.”
“여덟.”
“로이드, 무기를 집어라.”
설마, 민가에서 멀리 떨어진 이 장소까지 안내··· 아니, 유도한 것도 이것 때문인가?
빅터는 허리춤에 손을 가져갔다.
그리고 도끼의 자루를 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