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지의 장(3)
3.
자세한 이야기는 장소를 옮겨서 나누자.
새하얀 여인이 그런 요청을 건넸다.
결국 빅터 일행은 마중 나온 자들의 인도에 뒤따랐다.
수상한 행색의 무리.
특히나 이들에게 지시를 내리는 여자의 외모는 등골이 오싹할 정도야.
그녀는 평범한 외모를 가진 다른 사람들과는 차원이 다른 이질감을 자아내고 있었다.
어찌나 충격적인지.
아랑과 리리 리는 그 얼굴을 보자마자 귀신이라고 질겁했으며.
미인에게 약한 로이드마저도 절로 얼굴이 굳을 정도였다.
‘묘하군. 우리 사냥꾼들도 딱히 멀쩡한 행색은 아닐 터인데···.’
세간에서 마녀 사냥꾼들은 흔히 낮도깨비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그 이유는 당연하게도 새하얗게 변해버린 머리칼과 탁하게 빛나는 눈동자 때문.
보통 사람들은 비범한 외모라고 생각할지는 모르나.
사실 그것은 붕괴된 육체의 흔적.
눈을 이식받을 때의 고통 탓에 탈색된 머리칼은 어디까지나 회색발.
단지 탈색되었을 뿐인 새치에 불과했다.
그래도 밤이 아닌 낮에 대면하면 최소한 사람처럼 보이긴 해.
로이드처럼 가볍고 살가운 성격이라면 문제될 것도 없어.
심각할 정도의 거부감을 자아낼 정도는 아닌 수준이었다.
그러나···.
‘이 여자는 피부에 자연스러운 색소가 없는 것인가?’
윤기가 없어.
석고를 펴 바른 것 마냥 메마른 인상.
더욱이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눈동자가 거부감을 자아내.
그것은 회색이 섞인 머리칼을 가진 사냥꾼들 이상으로 불길한 생김새였다.
이대로 순순히 따라도 괜찮은 것인가?
“야야, 이거··· 우리가 말리는 거 아니냐?”
로이드가 슬쩍 빅터에게 물었지만, 빅터는 담담히 고개를 저었다.
“괜찮을 거다.”
왜냐하면, 상대는 약자였기에.
안내하는 내내 그들이 보내오는 감정의 파동은 음울하고 초연하기만 해.
모두가 약간의 악의조차 가지고 있지 않았다.
오히려 두려움.
반대로 겁을 집어먹었어.
최대한 방문자인 자신들의 비위를 맞추려는 듯 조심스러운 태도였다.
‘뭐가 그토록 두려운 거지?’
모자를 눌러쓰면서.
빅터는 암안을 발동시켰다.
상대의 숨은 속셈을 읽으려 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 안에 얽힌 마음이란···.
“윽.”
현기증.
그것은 엄청난 정보를 한 번에 받아들였을 때 일어나는 반동이었다.
이것은 슬픔인가?
혹은 탄식?
매우 깊게 스며든 처절함이 느껴져.
동시에 일탈에 가까운 달관도 함께 전해진다.
‘역시 뭔가를 꾸미거나 사악한 낌새는 없어. 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무력감이 머무른다.
그것은 하얀 여인 외에도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공통된 특징.
빅터는 이 감정을 안다.
과거에 비슷한 느낌을 경험해본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치 목줄에 구속된 채 마당에 방치된 유기견이 느끼는 절망감.
흡사 남만에서 온 곡예단이 기르던 우리에 갇힌 표범이 품고 있던 무력감.
완전히 일치하진 않을지언정, 그에 한 없이 가까운 것이었다.
자칫 그 허탈함에 영향을 받을라.
빅터는 급히 의식을 감정의 접촉에서 끊어냈다.
“빅터 사부, 갑자기 왜 그러세요?”
리리 리가 은근히 분위기에 민감한 것은 그도 익히 아는 사실이야.
한때 마녀였던 육체가 동요하는 마기의 기척을 본능적으로 느낀 모양이었다.
“괜찮다. 잠깐 멀미가 온 거 같구나.”
“네? 사부도 멀미를 해요?”
“가끔.”
“앗, 빅터 사부는 무적인 줄 알았는데”
사회성이 부족한 탓에 아직 공감까진 할 수 없는가?
자칫 괜한 걱정을 시키면 꼬치꼬치 캐묻기 시작할 테니, 빅터는 애써 표정을 다시 무뚝뚝하게 고쳐야만 했다.
“그보다 모두, 이제 짐부터 챙겨라.”
도착이 머지않아.
빅터가 간식을 먹다 남긴 리리 리의 흔적을 치우는 사이.
어느덧 마차의 바퀴는 마을의 입구에 당도해 있었다.
“이봐, 후배. 저건 또 뭐냐?”
로이드는 창밖으로 뭔가를 가리키더니, 불안이 섞인 호기심을 내비치며 물었다.
그것은 빅터의 키의 다섯 배나 더 크큰 기둥.
여러 개의 통나무로 이어 붙인 것인가?
어떤 처치를 했는지 전체가 새하얀 염료로 칠해진 기묘한 구조물이야.
지면에는 사다리꼴로 기울어진 지지대가 두 개.
꼭대기 맨 위에는 나무를 깎아 만든 섬세한 모양의 새 장식이 배치되어 있었다.
“이건 ‘솟대’로군. 나도 오랜 만에 본다.”
“솟··· 뭐라고? 그게 뭔데?”
“동방의 오랜 전통이지. 저건 인간과 하늘을 이어주는 매개물이야. 창공의 사자인 새들과 소통하기 위해 만든다고 하더군.”
“소통이라?”
짐승의 말을 알아드는 소녀와 관계라도 있는 것인가?
그 질문에 빅터는 살짝 숙연히 고개를 숙였다.
“조장鳥葬이라고 들어봤나?”
“대충 새를 이용한 의식 같은 건가?”
“···그래. 시신을 까마귀나 독수리에게 맡기는 장례법이지.”
“허?”
“죽은 자의 혼을 하늘로 보내는 신성한 처리다. 바람과 구름을 숭배하는 부족이 흔히 사용하는 방식이야.”
그렇기에 새 또한 숭배의 대상이 되어.
신앙심이 깊은 특정 민족은 아예 새고기는 물론, 달걀조차 먹지 않는다고 했다.
로이드는 그 설명을 다 들은 직후, 발아래에 나뒹구는 죽은 꿩의 시체를 꺼림칙한 시선으로 흘겨봤다.
“이거 가지고 따로 시비 걸리진 않겠지? 천벌이라던가?”
“우리는 마와 싸우는 전사다. 뭘, 고작 그깟 걸 두려워하나?”
“아니··· 그게, 나는 유독 저런 거에 약하다고. 막 으스스 하단 말이야.”
“저런 거?”
“그··· 생소한 문화권의 재단 같은?”
아스트랄의 전말을 알았을 땐 용맹하게 송곳니까지 들이대더니.
하필 로이드는 이국의 종교에는 묘한 두려움을 가진 듯 했다.
설마하니, 예전에 겪은 일 탓인가?
빅터는 혀를 차더니.
“걱정할 것 없다. 동방 사람들은 죽음에 대한 시선이 조금 유별날 뿐이야.”
“그, 그런 거냐?”
“우리가 흔히 보는 서양의 미신과 크게 다르지 않다. 나도 못마땅하지만, 문화 자체를 부정할 순 없지. 저들이 보기엔, 시체를 태우지도 않고 매장하는 우리의 오랜 전통이 훨씬 더 미개해보일 거다.”
“종교란 게 참 신기한 거구만.”
“불신자인 우리 눈엔 다 그렇게 보이지.”
결국 숭배하는 존재를 기리는 구조물이 배치되어 있다는 건···.
마을을 수호하는 주술적 의미가 더욱 컸으리라.
어느 쪽이든 본격적인 마을의 입구인 모양이야.
안으로 들어서자, 확 트인 광장에 북적거리는 인파가 눈에 들어왔다.
“···오, 이건 생각보다 사람들은 평범한데?”
성인 남자들이 짐을 나르고,
아낙들이 강가에서 물을 길러 오며.
아이들이 활기차게 노는 광경.
로이드의 감상처럼, 행인들의 모습은 그리 특별할 것도 없어.
복식이 항구 도시의 것보다 투박한 것만 제외한다면, 누가 보나 지극히 평범한 마을이었다.
“달리 뭘 기대했지?”
“전에 함께 싸웠던 바위산 마을 기억하냐?”
그것은 로이드와 처음으로 합을 맞췄던 임무.
거대한 거미 중합체와 맞붙었던 처절한 싸움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그걸 어떻게 잊겠나?”
“실은··· 그때 본 불경한 장식이랑, 아까 그 통나무 기둥이 겹쳐보였걸랑?”
“···.”
“아, 그래도 저 창백한 여자 같은 사람들이 여럿 일까봐 살짝 기대하긴 했지.”
“무례한 소리 하지 마라. 어디든 사람이 사는 곳은 비슷한 법이다.”
“네 탓이야, 임마. 아까 네가 ‘주술사Shaman들이 사는 마을’이라고 통역해서 쫄게 만들었잖아?”
“흠.”
무당촌巫堂村이란 생소한 단어에 대해 말해주려니.
아무래도 번역한 의미가 온전하게 전달되진 않은 모양이었다.
무리도 아니야.
무당의 개념을 서방인인 로이드에게 설명하기엔 어려움이 있었기에···.
‘신, 혹은 정령을 받아들여 저 너머 세계와 소통하는 영매Mediumship. 즉 샤먼Shaman···.’
달리 표현하기 어렵다.
단적인 예를 든다면, 이것은 사냥꾼들이 눈에 불을 켜고 말살하려는 마녀들과 구분이 어렵기에.
특히, 창밖에서 일렁이는 새하얀 여자의 모습은 기이하기 짝이 없어.
아무리 봐도 평범한 인간으론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째서일까?
그들은 마녀의 정의로 그다지 차이가 나지 않는 존재와 마주하면서도···.
왜 로이드는 당장 무기를 집어들지 않는가?
어째서 빅터조차 행동에 조심성을 보이는가?
그 이유는 간단했다.
그들이 마녀와 다른 뭔가를 구분하는 방법론의 차이 때문이었다.
‘저 여자는 분명 마기를 발산하고 있지 않다.’
즉, 그녀는 피해자.
단지 이 땅을 좀먹는 검은 기운에 휘말린 불운한 희생자에 불과해.
저 소스라치게 흰 모습 또한 그 마기의 영향일 가능성이 높았다.
단지, 인간에겐 허락되지 않는 어떤 힘을 타고났다는 것만이 유일한 예외사항일 뿐···.
‘미래를 읽는다. 그게 정말 가능한가?’
스스로를 무당이라 자처한 저 백면白面의 여인은, 그 예지능력을 굳이 신탁神託이라고 표현했다.
그것은 초자연적인 존재가 점지해주는 예언.
전승되는 신화와 결부시키자면, 인간은 절대로 벗어날 수 없는 굴레에 대한 이야기였다.
이는 앞으로 벌어질 일이 애초에 결정되어 있다는 말과 다르지 않아.
다시 말해, 운명···.
‘엿같은 농담이군.’
빅터는 인정하지 않는다.
종교적인 것에 거북한 그의 자존심이.
더욱이 긴 시간동안 영적인 존재들과 싸워온 마녀사냥꾼으로서의 본능이 근본적인 거부감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물론 신기한 일이긴 하지. 저 여자는 이미 우리가 어떤 길로, 언제 방문할 지조차 파악하고 있었으니까.’
그 사실은 참과 거짓을 판별하는 빅터의 정신감응능력으로도 확인된다.
무당은 정말로 알고 있었다.
일주일 전.
빅터가 임무를 전해듣기도 며칠이나 앞선 시기부터.
‘하지만 뭔가가 있다.’
빅터의 이성은 이해할 수 없는 현상에 대해 ‘모른다’라는 선택지를 허가하지 않았다.
미지와의 직면이 탐구욕을 자극해.
이어서 의심을 관장하는 뇌의 어느 부위가 활성화되었다.
이 시점에서 빅터는 자신이 로이드와 대동해 이 장소를 방문한 이유를 다시금 자각했다.
‘대스승 베누다의 지령은, 애초부터 이 땅에 암약하고 있는 뭔가의 정체를 밝히라는 것이었으니.’
굳센 각오와 함께.
빅터는 아직 멈추지도 않은 마차의 문을 걷어차고 지상으로 내려왔다.
“야, 후배. 뜬금없이 무슨···.”
로이드가 불러 세워도 묵묵부답.
일말의 망설임도 없는 한 걸음.
모자 아래로 번뜩이는 암안이 마을로 인도한 여인을 주시했다.
“이제 속셈을 말해주실까?”
“괜찮을까요? 여긴 아직 길 한복판인데···.”
“쓸데없는 배려다.”
마차에 너무 오래 타고 있는 것도 좀이 쑤셔.
하나, 그것과 별개로 빅터는 당장의 의문을 해소하고 싶었다.
그것은···.
“설명해라. 마을로 들어오면서 마기의 농도가 더욱 높아졌다. 안력을 조절하지 않으면 코앞도 보이지 않을 정도야. 목이 타는 것만 같은 이 이질감을··· 여기 사는 사람들도 그걸 모르진 않을 터.”
“마기? ···아아, 탁기濁氣말이군요. 우리는 그런 이름으로 부른답니다.”
“그딴 건 아무래도 좋아.”
빅터는 조금 전부터 광장을 돌아다니는 행인들의 움직임을 관찰했다.
이렇게까지 짙은 마기에 노출되었는데도 멀쩡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기에.
오래도록, 지속적인 접촉이 있었다면 더욱 더···.
하지만 어째서인지···.
빅터의 예상과는 달리, 마을의 풍경은 너무도 평온하기만 했다.
설마하니 마기가 스며든 공기를 들이 마시는 것이 일상이 된 것인가?
그래서 아무런 문제조차 느끼지 못한단 말인가?
“어떻게 이런 곳에서 살아갈 수 있지?”
빅터는 눈을 부릅떴다.
순백의 무당이 보인 순간의 빈틈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그러나, 그 위협적인 기세에도 불구하고···.
“···그건 저희에게 달리 선택지가 없기 때문입니다.”
“뭐라?”
여인은 숨길 생각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있는 그대로의 모든 걸 설명할 셈이었다.
빅터는 당장 그 사정을 들을 수 있었으리라.
···하필 갑자기 끼어 든 또 다른 방해꾼만 없었더라면.
“희나 언니!”
군중을 밀치며 누군가가 달려온다.
그 우렁찬 목소리가 주변의 다른 사람들 귀에까지 들렸는지.
일제히 모든 이목이 한 점에 집중되었다.
바로 빅터와 무당 여인이 선 자리로···.
‘이건···.’
순식간에 여러 감정이 몰려와.
그것은 대부분이 마을 사람들이 새하얀 여인에게 가지는 감상이었다.
‘또 한 번 예상이 틀렸군. 보나마나 무리에서 배척받는 존재일거라 생각했는데···.’
놀랍게도 그들이 무녀에게 보이는 마음의 빛깔은 선망.
존경심.
그리고 깊은 감사였다.
하나같이 신성한 존재를 보는 눈···.
“선녀님께 감사를···.”
“보살이시여.”
“아아, 여전히 은혜로운 존안이야.”
숭배 받고 있는가?
그들은 무당이 보든 말든 목례까지 할 지경이었다.
이어서 마침 이 소동을 벌인 주모자가 가까이에 접근했어.
열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소녀가 뛰어들더니.
벽옥의 피부를 가진 무당의 품속에 그대로 안겼다.
“희나 언니, 오늘도 언니 말대로 이뤄졌어! 정확히 다섯 마리야! 하나는 새끼여서 다시 돌려보내줬어!”
“초아구나. ···그래, 그 외에 별일은 없었고?”
“응. 언제나처럼!”
아이의 천진난만한 미소에 화답하는 여인.
그 모습은 지극히 온화해.
조각상 같은 하얀 얼굴조차 문제가 되지 않을 정도의 자연스러움이 있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이래선 닦달할 수도 없어.
빅터는 굳은 얼굴을 유지한 채 벙 찌고 말았다.
“···이거 참, 우리가 얼토당토않은 곳에 와버린 것 같은데?”
허탈감에 빠진 그의 어깨를 툭 건드리는 로이드.
두 사람은 뒤늦게 리리 리와 아랑이 합류하기 전까지, 한동안 무당의 인간적인 면모를 지켜봐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