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위의 장(3)
3.
황태자가 빅터를 맞이한 장소는 요정料亭이었다.
단 둘이 자리를 채우기엔 규모가 넓은 객실···.
심지어 공연을 위한 연회석까지 있어.
상대가 꽤나 사치를 부린 모양이었다.
“어서오게나, 빅터. 이제야 겨우 자네와 느긋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겠군.”
술잔을 든 사내가 그를 반긴다.
시나국의 황태자 진융은 이미 건너편 탁상에 자리를 잡은 상태였다.
“여전하시군요, 전하.”
“건강해 보인다는 뜻으로 말하는 건 아닌 듯한데, 무슨 의미인가?”
“변함없이 고약한 취미십니다.”
하필 또 머무는 곳이 기방에 가까운 가게.
그를 호위하는 이들의 고생길이 훤해보여.
여기서 살을 조금만 붙인다면 철이 들라는 식의 비판과 다르지 않았으리라.
“흥, 내가 여색을 지나치게 밝히는 것도 전부 선대를 닮은 탓이지.”
그렇게 말하며 진융은 술잔을 기울였다.
“그 더러운 술버릇까지 물려받으신 겁니까?”
빅터는 나무라는 투를 숨기지 않았다.
그 적나라한 비꼼에, 진융은 미간을 실룩였다.
그리고 특유의 깜빡이지 않는 눈동자로 빅터의 얼굴을 주시한다.
“과연, 자네도 한결 같군. 감히 내 앞에서 건방지게 주둥이를 놀릴 수 있는 걸 보아, 언제나처럼 목숨이 아깝지 않은 모양이야.”
“저는 전하의 신하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하하! 유쾌한 지고!”
쨍그랑!
하지만 술잔이 날아온다.
그것은 빅터의 옆머리를 스치고 벽에 부딪혀 깨져버렸다.
“···정말로 죽고 싶나, 빅터? 이 몸의 기분을 거스르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것도 아닐 터.”
“···.”
“상단이 이 땅에서 쫓겨나길 바라나? 아니면 너와 함께 있던 두 아이와 놈팡이 하나까지 잡아들였으면 좋겠나?”
이것은 협박인가?
일국의 정점에 선 자가 가볍게 꺼낼 말은 결코 아니야.
평범한 자라면 그 한 마디만으로도 졸도할 수 있을 정도의 무시무시한 선언이었다.
주변에는 살기로 가득해.
언제라도 창칼과 화살이 날아올 것만 같이 무거운 공기가 감돌았다.
‘기척을 숨길 정도의 실력자가 열 둘. ···아니, 열 셋인가?’
그 외에도 건물 밖에는 더 많은 자들이 둘러싸고 있어.
어쩌면 소대 단위의 병력이 숨어져 있을 지도 몰랐다.
제아무리 신분을 숨긴 채 방문했다곤 하나, 왕족이 호위도 없는 독방에 홀로 있을 리 없었기에.
하지만···.
“시시한 장난은 그쯤하시고 본론부터 말씀하시죠, 전하.”
이 어찌 불경한 태도.
빅터는 그 자체만으로도 위험한 발언을 입에 올렸다.
“아니면, 모처럼 훈련된 우수한 병사들 목숨을··· 쓸데없는 일로 그냥 내다버리고 싶으신 겁니까?”
빅터는 일어나지도, 무기에 손을 올리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인근에 대기 중인 병사들이 긴장하기에 충분했다.
강자의 기백.
다수에게도 겁을 먹지 않는 호방함.
이 자신감은 결코 허세가 아니야.
그만 진융은 어깨를 들썩이고 말았다.
“···푸하!”
폭소.
지금까지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반전되어, 황태자는 체통조차 잊고 그대로 자지러졌다.
“이거, 하나도 안 통하는구만! 이보시게, 눈썹 하나 까딱이지 않는 건 너무 하지 않나? 하하, 아하하!”
“···.”
“후우··· 역시 자네가 아니면 안 된단 말이야. 나를 두려워하지 않고 맞먹을 수 있는 자이기에, 나는 그 누구보다도 자넬 신뢰하지.”
“너무 짓궂은 장난은 참아 주시길.”
“그래도 한 번 쯤은 자네가 놀라는 꼴을 보고 싶었는데.”
오히려 진융의 목소리에는 안도감이 스며있어.
지금까지의 위협은 다소 일종의 시험.
진융은 처음부터 빅터나 그의 일행에게 해코지를 할 생각 따윈 추호도 없었다.
“저를 부른 건 경호원들의 훈련을 위해서였습니까?”
사실 빅터는 이 방에 들어선 순간부터 황태자의 의도를 알고 있었다.
“그래서 감상은 어떤가?”
“허술하군요. 제가 아니었다면 자칫 큰일이 났을 수도 있습니다.”
한숨을 쉬며 이마를 짚는 빅터.
그는 여러 가지로 불만이 많았다.
“왜 스스로 위험을 자처하시는지···. 건물을 둘러싸는 것만이 능사가 아닙니다. 이 요정의 구조상, 가까운 건물에서 방화가 일어나는 것만으로도 옴짝달싹할 수 없게 되고 말 겁니다.”
“화공이라! 그걸 생각 못했군. 하나, 너무 과한 걱정이 아닌가?”
“정말 독한 살수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그래, 그래. 달리 중요한 점을 더 짚는다면?”
“···거기, 오른쪽 모서리 천장에 숨어있는 녀석.”
“으음?”
“그 각도에서 화포를 노린다면 전하가 맞는다. 좀 더 생각을 하고 조준하도록.”
쿠당!
빅터의 지적에 발끈했는지, 위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들었느냐, 시안? 자, 모습을 드러내라!”
척.
빅터의 시선이 향한 쪽의 판자가 열리더니.
검은 도복을 입은 누군가가 아래로 착지했다.
작은 체형, 오른쪽 무릎을 꿇은 다소곳한 자세.
하지만 치켜 뜬 두 눈은 분한 듯이 울분을 머금고 있었다.
“시안, 어떻게 생각하나?”
“면목이 없습니다, 전하.”
“아니다. 우리 모두는 실패를 통해서 성장의 계기도 얻는 법이지.”
“···은총에 감사드립니다, 전하.”
아직 스무 살도 채 되지 않은 동방의 여자아이.
나이는 리리 리보다 조금 많을까?
한 손에는 포신이 긴 조총을 들고 있다는 것만을 제외한다면 평범한 이목구비를 가진 소녀였다.
하지만 소녀를 보자마자, 빅터의 인상이 슬쩍 일그러졌다.
“설마, 이 아이는···.”
“우리나라에서 육성한 첫 성공작일세. 어떤가? 자네들 사냥꾼만큼은 아니어도 꽤나 쓸 만하지 않은가?”
“···.”
“여봐라.”
진융이 신호를 내리자, 나머지 천장과 인접한 방에서 인원들이 몰려들었다.
빅터가 파악한 것처럼 그 인원은 전원 합쳐 열셋.
나이나 성별은 제각각 달랐지만, 모두가 하나같이 같은 복장.
심지어 같은 눈빛을 지니고 있었다.
“요마멸살대, 나는 그런 이름으로 부르고 있지.”
빅터는 황태자의 마음을 읽어냈다.
그 안에는, 마물과 싸우기 위해 만들어진 특수 병대에 대한 정보가 담겨있었다.
···전국을 뒤져 마에 대항할 수 있는 특수한 인재를 수소문한다.
사상을 통해 용맹을 주입하고.
애국과 신념을 교육하며.
끝내는 무술까지 훈련시킨다.
그리하면 완성되어.
불과 2년 사이, 이들과 같은 전사가 탄생하고 만 것이다.
“훌륭하지 않은가? 다들 나이는 어리지만 재빠르고 영민하다네. 특히 시안은 날 때부터 그늘 속을 볼 수 있는 재능의 소유자였지.”
아니나 다를까, 빅터에게 날카로운 눈빛을 보내는 여자아이의 눈동자에는···.
정안에 가까운 어떤 요사스런 빛깔이 일렁이고 있었다.
“보이나? 우리가 독자적으로 재현해낸 정안일세. 효력은 자네의 것보다 못하지만, 최소한 보고 느낄 수는 있지.”
“어떻게···,”
“흠, 쉽진 않았다. 대스승 베누다라는 작자는 적나라의 협력 요청을 들어보지도 않고 거절하지. 또 정보는 부족해, 너희 사냥꾼은 지나치리만큼 폐쇄적이더군. 덕분에 신선이니, 도사니 하는 사이비들을 걸러내는 게 가장 큰 걸림돌이었어. 하지만 찾아보니 있더군. 드물게 재능을 타고난 아이들이.”
빅터는 무거운 신음을 흘렸다.
황태자의 생각이 너무도 터무니없는 것이었기에.
“자네가 이들의 대장이 되어주길 바라네.”
“전하, 지금 무슨 소릴···.”
“1기단인 이 아이들을 이끌고, 미래를 예지한다는 그 마녀의 토벌에 나서주게나.”
그것은 진융이 과거에 빅터와 처음 만났을 때 건넸던 제안과 거의 다르지 않았다.
적나라의 장수가 되어라.
황태자는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빅터가 내놓을 대답은 오직 하나뿐이었다.
“···거절하겠습니다.”
“그러지 말고 잘 생각해보게. 사냥꾼들은 인력난에 시달린다고 들었다. 언제까지 돈에 미친 용병들에게 의지할 텐가? 기왕이면 공식적으로 우리 정부에게 지원을 받는 편이 좋지 않나?”
“아직 어린 아이들 아닙니까?”
“그건 자네의 두 제자도 마찬가지지.”
“리리 리와 아랑은 다릅니다. 그 녀석들은···.”
가능하면 빅터도 두 아이와 동행하고 싶지 않았다.
가능하다면 미래가 없는 피투성이 길에서 벗어나게 해주고 싶어.
그러나 어둠의 피해자들은···.
한 번 마의 세계를 경험한 이상, 평범한 생활로 돌아가지 못하는 슬픈 운명이었기에.
“아, 그거라면 걱정 말게.”
이거라면 빅터도 반론하지 못하리라 생각한 듯.
황태자는 기쁘게 미소 지었다.
하나, 그가 내뱉은 말은 결코 웃으면서 할 이야기가 아니었다.
“이 아이들 전원이 마물, 요괴, 귀녀에게 원한을 가지고 있으니까.”
“···.”
“꽤나 선별했다네. 국비가 많이 들었지.”
빅터는 안다.
황태자는 자신을 동등한 친구로서 대하고 있다는 걸.
하지만 동시에 거기 숨겨진 속셈 또한 함께 간파하고 있었다.
“그토록 음지의 세계가 탐나십니까?”
그 한 마디에, 황태자는 입가를 기분 좋게 열었다.
빅터 앞에서 거짓말은 통하지 않아, 진융은 자신의 야욕을 그대로 그러냈다.
“물론이네. 그 힘을 잘만 다룬다면 훗날 나의 것이 될 이 적나라··· 부국강병의 원천이 될 지니!”
“그건 사람이 다룰 수 없습니다.”
“그런가? 하지만 지금 네 눈앞엔 그 광기를 잘 다스릴 수 있는 사냥꾼이 보이는데.”
“···.”
마기.
그것은 사람에게 허락되지 않은 미지의 것.
하지만 신앙에서 벗어난 불경한 것을 거북해하는 서양과 판이하게, 동방의 영적 세계는 사뭇 다른 것이었다.
“주술을 병기화라도 시킬 셈입니까?”
“뭘 놀라나, 빅터? 우리는 예로부터 음양술, 풍수지리, 사주에 의한 팔자에 의지해온 민족이다. 딱히 요술을 군사에 쓴다 해도 이상할 건 없지.”
“전부 다 미신일 뿐. 앞으로도 우리 인간에게 그런 것은 필요 없습니다.”
“안다. 자네는 그때도 같은 말을 했었으니까. 그, 뭐라고 했었지? 아주 고리타분한 선인들이 후대에 남긴 전언 같은 말이었는데?”
“···섭리와 이치입니다.”
“그래, 바로 그거! 세상의 모든 일은 일어날 법하기에 일어난다!”
“···.”
“빅터, 자네가 뭘 염려하는 지 아네. 하지만 이건 마와 싸우는 사냥꾼 입장에서도 나쁜 이야기는 아닐 터. 그대들을 지원하고 싶은 것도 내 진심이기도 하지.”
거짓은 없다.
그렇기에 황태자는 황제를 설득하여 오래도록 이어진 쇄국의 자물쇠를 푼 것이었다.
“고대의 제국과 얽힌 요녀의 전설이 증명하듯. 사냥꾼. 혹은 항마사라 불리는 자네들은 틀림없이 우리에게 반드시 필요한 귀인일세. 또한, 대륙 구석구석에 숨은 요녀의 잔당들은 모조리 사라져야만 한다. 그것들은 질서를 어지럽히고, 소중한 백성들을 혼란에 빠뜨리는 대역 죄인이니.”
“그렇다면 그냥 내버려두십시오. 우리는 할 일을 할 뿐입니다.”
“사냥꾼은 어떤 국가에도 귀속되지 않는다··· 였던가?”
“예.”
“그래서 나는 꾀를 냈지. 그대들이 협력하지 않는다면, 나는 그 지식을 훔칠 뿐일세.”
특이 형질.
신통력.
어둠과 싸우기 위한 조건들까지 전부.
마녀 사냥꾼들에게만 이어지는 금단의 지혜를 취하기 위해, 진융은 모든 수단을 동원할 생각이었다.
“자네가 원하든 말든, 나는 이 아이들을 따라가도록 명령할 것이다. 이렇게 말해두지. 목숨을 다해서 사냥꾼을 도와라, 라고.”
그러자 일제히 아이들이 일어난다.
그들은 동시에 황태자의 명을 받들겠노라며 단합했다.
“그만두십시오! 이딴 억지로··· 뭣도 모르는 아이들에게 마물과 싸우는 경험을 시키겠단 말씀입니까?”
“다소 희생이 발생하겠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 가혹한 싸움에서 희생자가 생기는 건 당연하지 않은가?”
거짓말.
황태자는 빅터의 인간 됨됨이를 믿고 있었다.
“하지만 걱정은 없네. 자네의 성격상, 그걸 마냥 내버려두진 않을 테니.”
“···.”
“좋을 대로 써주시게나. 이제 자네의 시종이나 마찬가지니. 죽이든, 살리든 마음대로.”
방심할 수 없는 사내.
진융은 이전에 보았을 때보다 더욱 교활해졌어.
빈틈을 여지없이 파고들어왔다.
그는 빅터가 끝내 아이들을 내치지 못할 거란 걸 이미 파악하고 있었다.
“빅터, 이제와 이렇게 말해봤자 못 믿겠지만. 일단은 나도 미안하게는 생각하고 있네.”
친구라 부르면서도 승패와 실득을 계산해야 하는가?
왕이 될 자의 그릇이란, 마주하는 모든 이의 약점을 노려야하는 수라의 자질을 말하는 것이기도 했기에.
그리고 그게 진심이라는 사실 또한, 빅터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시안, 그 화포를 잠깐 줘보거라.”
“네? 전하, 무엇을···?!”
“괜찮다. 어서 이리다오.”
“조, 존명!”
진융은 갑자기 소녀에게서 총을 건네받더니.
“빅터, 보시게. 이건 자네의 나라에서 들여온 물건이지. 엽총Rifle이라고 하던가?”
“예.”
“훌륭한 무기다. 강력하고, 세련되기까지 해. 창과는 비교도 안 되지. 이것은 다루는 법만 알면, 농부조차 전장의 장군을 죽일 수 있는 힘이 된다.”
“그야, 납탄 앞에선 누구도 장사가 없으니.”
“후후, 그렇지. ···하지만 그거 아나? 사실 우리 동방은 이미 수 백 년 전에 이러한 화포와 화약을 다루는 기술에 도달했다는 것을?”
“그렇습니까?”
“고서의 기록이 말해주지. 한 때, 이 대륙은 서방보다 훨씬 앞선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는 걸. 아니, 그 이상으로 발전하고 있었어. 그 당시엔 바다 건너의 코쟁이들은 전부 미개한 수준에 불과할 정도의···. 아, 자네 기분을 상하게 하려던 건 아니야. 내 말의 요지는 달리 있지. 그건···.”
이어서 황태자는 설명했다.
“나는 이따금씩 상상하네. 만약 요녀 사건으로 인해 정복왕과 제국이 무너지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하고.”
“···.”
“빅터. 나도 괴력난신이 증오스럽다. 우리 먼 선대에게 수치스런 역사를 선사하고, 머지않았던 대륙의 통일을 지연시킨 마녀의 소행을 용서할 수가 없어. ···더욱이 미신과 저주가 팽배해진 탓에 이 시대는 발전을 멈추었다. 여전히 민중은 귀신을 두려워하지. 앞으로 나아갈 합리적인 용기가 아닌, 공포로 인한 망설임에 지배받고 있어. 환장할 노릇이지. 덕분에 서방에게 기술조차 추월당하고.”
이어서 황태자는 자조했다.
“이것이 정말 한때 눈부신 과학을 자랑하던 국가의 현재인가? 수백 년 째 제자리에 머문 채인 이 땅이 정말 지배할 가치가 있단 말인가? 가당찮은 소리! 나는 절대 그것을 인정할 수가 없네.”
이 시점에서 빅터는 진융이 신분을 속이며 전국을 방랑한 이유를 깨달았다.
그는 눈에 새기려 했다.
자신이 다스릴 땅의 진짜 모습을.
제왕학으로 배운 이론뿐만이 아닌, 그 이상의 것을 보기 위해서.
“국력을 키운다. 흔들리지 않는 제국을 만드는 것이야말로 가장 우선이다. 어둠 속의 요괴들에게 백성들이 더 이상 겁먹지 않게 하려면 강력한 질서가 확립되어야만 할 테니. ···그걸 위해서라면 나는 무엇이든 하리라. 서방의 선진화된 기술을 들여오고, 모방할 것이다. 흉내쟁이라 모멸 받더라도, 그 모든 걸 빼앗아 더욱 발전시킬 걸세. 무기는 물론, 자네들 항마사들 까지도 말이야.”
“···.”
“그러니 빅터여, 서방에서 온 색목인 사냥꾼아. 황자 진융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너희 사냥꾼들은 이 대륙에 존재하는 모든 마를 퇴치하라. 더는 이 땅의 백성들이 밤을 두려워하지 않도록!”
한 순간이지만, 진융의 얼굴에 웃음기가 사라졌다.
단순히 무게만을 잡는 것이 아니야.
그것은 겉과 속이 완벽히 일치한 의지의 발현.
그야말로 왕의 품격이었다.
“···후, 하지만 이렇게 말해선 곤란하지. 자네는 아직 나의 신하가 아니니.”
그러면서 황태자는 서글픈 미소를 띠운다.
진심으로 안타까운 듯 보이는 얼굴이었다.
“그래도 친구로서 부탁은 할 수 있겠지?”
“내용에 따라 다를 것입니다.”
“부디 저 아이들을 지켜주시게.”
진융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주변에서 지켜보던 호위들이 반응하기도 전에, 탁자 건너편으로 손을 뻗었다.
바로 빅터의 어깨 위로.
“그리고 강하게 이끌어주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