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헥센야크트-87화 (87/186)

심문의 장(4)

4.

진명을 언급한 시점부터, 마녀의 남은 목숨은 의미를 잃는다.

그것으로 긴 저주의 일생은 끝을 맞이한다.

우리의 승리는 의심할 것이 없었다.

그러나, 이 자리에는 기묘한 감정들이 교차했다.

홀가분하게 스스로를 불태우는 마녀에게선 달관이···.

그 모습을 지켜보는 레이에게선 납득하지 못할 격노가 피어올랐다.

그녀는 대스승들의 앞이란 것조차 잊은 채, 목청이 찢어져라 울분을 토해냈다.

“지랄하지 마아아아아!”

그 한 마디에는 많은 것들이 담겨있었다.

제멋대로 죽이고, 실컷 날뛰고···.

지금껏 많은 이들의 인생을 엉망으로 만든 주제에.

이제 와서 질렸다고?

그러나, 나는 마녀의 행동에서 위화감을 느꼈다.

그만 모순된 마음의 조각을 찾고만 것이다.

대스승 크레이그는 침묵했다.

이 또한 레이의 성장의 계기로 삼을 생각이었다.

대스승 베누다는 애써 주먹을 쥐며 인내한다.

인정하긴 싫지만 그도 뭔가를 짐작하고 있는 눈치였다.

그렇기에, 마녀가 편하게 세상을 뜨는 것을 막는 역할은 대스승 알베르트에게 주어졌다.

“흥미로워, 공감을 할 줄 모르는 악마 주제에··· 인간의 미덕인 수치는 안단 말인가?”

그는 레이의 채 나서기도 전에 불타는 마녀의 앞으로 다가가 있었다.

도리스의 특기인 그림자 바꿔치기였다.

“심록이여. 마지막 가는 길이니, 모처럼 이 학자에게 한 가지만 더 답해줄 텐가?”

“후후, 또 뭐가 궁금하지?”

“네가 만든 두 마리의 프라이케르 가이스트에 대해서다.”

“···그것들이 왜?”

“이상할 정도로 감정이 발달되어 있더군.”

“머릿속이 아이들이었으니까.”

“아니, 그들은 분명 너에게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

“···.”

“그건 어디까지나, 성장과정에서 충분히 아낌을 받은 어린애에게서만 나오는 자연스러운 반응이었지.”

정곡.

심록은 알베르트의 질문에 죽음으로서 숨기려 했던 최후의 비밀이 탄로나버렸다.

“의외로군. 육망성이나 되는 대마녀가, 고작해야 중합체가 될 재료 따위에 아이들에게 사랑을 품다니.”

“마음대로··· 지껄이렴.”

“발뺌할 셈인가?”

대스승 알베르트가 몰아세운다.

그 순간, 불꽃으로 문드러진 그림자의 얼굴이 살짝 웃었다.

“···억측이다, 아둔한 연구자야. 그건 감정을 남겨두는 편이 더 좋은 성능을 내기 때문에 실험해본 것에 불과했느니라.”

“호오?”

“사역마는 이 몸에게 사모의 감정을 품을수록 더욱 능동적으로 작동되지. 부모의 정이라는 설정을 둔다면, 가끔 기대치 이상의 움직임도 보인단다. 경험을 쌓으면 성장하기도 하지.”

“그래서 그 센티피디아 아가씨가 강했던 거군.”

“그래. 내 걸작이었단다.”

“비위를 맞춰주는 것이 쉽진 않았을 터인데?”

“후후, 그런 그렇지. 정말 번거롭고, 성가신 아이들···이었느니라.”

이 둘은 닮았다.

입 밖으로 내뱉는 소리와 다르게···.

마음속으로는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그가 심록을 절대로 용서치 않는다는 것뿐···.

대스승 알베르트는 그걸 간파하고 애써 마녀의 가슴 속을 후벼 파고 있었던 것이다.

반면, 레이는 마녀의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잘 알았어. 네가 나와 함께 다른 아이들을 거두어들인 이유, 지금 이 자리에서 확실하게 들었다.”

그녀가 십 년 남짓 쌓아왔을 분노의 열기란, 당장 마녀를 태우는 염열보다 뜨거운 것이었다.

나는 끝내 레이에게 지금 심록의 감정을 전하지 않았다.

그것이 자칫 그녀를 지탱해온 증오의 근원이 사라지게 될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되면 레이는 무너진다.

그런 막연한 불안감이 들었다.

그런데 그 순간.

“아아아아아!”

울부짖음이 들렸다.

작은 키, 흉터투성이 얼굴에서 비명이 뿜어져 나왔다.

용병단의 홍일점이자 막내인 소녀가 발광하고 있었다.

“니엘!”

“꺼져, 전부 다 싫어어어어!”

오라비인 니코에게 안긴 채 발버둥치는 니엘은, 지금까지 자신이 겪은 모든 것을 악몽이라고 치부하려 했다.

하지만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은 왼쪽 눈의 상처가 그걸 잊지 못하게 만들었다.

“전부 요괴야, 마녀든 백발놈들이든··· 너희 모두 괴물이라고!”

니코가 말했던 지울 수 없는 부상이란 이걸 말했던 것인가?

그 육체의 고통은 성인이 되지 못한 아이가 견디기엔 너무나 가혹한 것이었다.

허나, 그뿐만이 아니었다.

아무리 어리다 해도 용병단의 일원이다.

부상쯤은 분명 각오했을 것이다.

소녀가 냉정을 잃은 데엔 또 다른 까닭이 있었다.

아니, 오히려 그것이 주된 이유였다.

“너희가 우릴 이 지옥으로 데려오지만 않았어도!”

“그만해라, 니엘! 진정해! 날뛰면 눈이 더 상한다!”

“어째서야, 니코 형?! 왜 말리는 거야?! 가족이··· 우리 동료들이 이딴 곳에서 죽었단 말이야!”

그러면서 소녀는 한 명, 한 명의 이름을 읊조렸다.

처자식이 있던 행크.

이번 일이 끝나면 은퇴할 예정이던 티더,

고향으로 돌아가 화가 될 꿈을 가진 벨트로.

멧돼지 요리가 특기인 마틴.

아버지의 묘비를 만들고 주고 싶었던 톰슨.

머리가 좋아서 장부를 만들던 메튜.

입이 걸었지만 누구보다 정이 깊던 네이트.

다식해서 글자 쓰는 법을 알려준 용변단의 선생인 울드렌.

벙어리였지만 풀피리를 잘 불던 척후병 사샤.

약초에 대한 지식이 남달랐던 치료사 베일···.

모두 이번 싸움에서 전사한 자들이었다.

“여긴 전장이 아니야··· 그래서 모두의 복수도 제대로 못한다고! 그런데 니코 형은 나더러 참으란 거야? 단장이면서 분하지도 않아?”

“···예전부터 수도 없이 말했을 터이다. 이건 우리 선택이다. 용병은 자기 무덤이나 묘비를 가리지 않는다. 돈을 받고 싸우다 죽을 때는 모두 자기 잘못이라고.”

“그래도 인정 못해··· 이런 개 같은 전투는 납득할 수 없어! 그렇지? 다들 나랑 같이 생각하지? 그러면 어서 무기를 들자! 우릴 사지로 안내한 저 도깨비들을··· 동지들의 복수를 갚잔 말이야!”

“니엘!”

짜악!

니코는 결국 자신의 여동생에게 손찌검을 했다.

눈이 뭉개진 부상을 입은 아이에게 가하기에는 가혹한 처벌이었다.

“이제 와서 고용주를 탓하지 마라··· 저 노인이 아니었으면 우리는 더 많이 단원을 잃었을 거다.”

그러나 니엘은 니코의 예상보다 더욱 강단이 있었다.

니엘은 남은 오른쪽 눈에 증오를 담았다.

“···죽어버려. 이 빌어먹을 세상··· 전부 다 뒈져! 눈깔 병신들도, 오빠도, 저기 불타는 괴물 년도 전부 다아아아!”

아뿔싸.

방심했다.

단순한 해프닝에 불과하다고 생각한 용병단의 내부 사정이···.

터무니없는 사태를 만들고 말았다!

‘아스트랄···!’

나는 비명을 지를 뻔 했다.

부조리한 세상을 원망하는 순수한 여자아이라고?

등골이 오싹해졌다.

그것은··· 저 편의 존재를 끌어들여 마녀가 탄생하는 조건가 아닌가?

“···후후, 아이야. 너도 만물이 미운 것이냐?”

땅을 짚지도 않았는데도 마녀의 몸이 부유한다.

이미 흉하게 반신이 타들어가 숯처럼 변한 상태로도 아직 생명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모두의 실책이었다.

태워 죽이는 것 말곤 마땅한 방법이 없었다곤 하나···.

목숨의 잔량이 무효화되었다고 마음을 놓은 것이 잘못이었다.

레이가 마음을 정리하기 전까지 기다린다는 것이··· 마녀에게 희대의 기회를 주고 만 것이다.

나와 레이, 그리고 삼인의 대스승은 뛰어들었다.

우선은 내가 마녀의 반신을 베고, 대스승들이 사지를 끊어냈다.

레이는 서둘러 파쇄권의 호흡과 함께 주먹을 뻗었다.

십 분의 일초도 되지 않는 순간 사이, 우리는 마녀의 몸을 짓이겼다.

하지만 끝내 막지 못했다.

몸뚱이에서 뜯겨나간 머리만큼은···.

“···알겠느냐? 증오란 좋은 거란다. 생산적 분노는 아무리 시시한 인생일지라도 삶을 윤택하게 만들 계기가 되지···.”

하필 니엘의 발 치까지 굴러간 검은 두개골이 부스러지는 와중에도 요사스런 목소릴 냈다.

그런데···.

“하지만 너는 미움의 대상을 잘못 찾은 것 같구나.”

“뭐··· 뭐어?”

“애꿎은 화풀이다. 네가 진정 증오해야할 상대는 애매모호한 세상 따위가 아니란다.”

“그러면, 난 무얼···.”

“이 몸이니라.”

달랐다.

우리의 우려와는 달리, 마녀의 감정은···.

흘러들어오는 또 다른 사념의 파동이 내 예상 이상으로 처절한 것이었기에.

“너는 나만을 미워하면 된다. 그것으로 인해 나는 무엇 하나 빼앗기지 않으리. 동시에 너는 원수를 갚을 수 있게 된다. 너의 불행은 온전히 나로 인한 것이니!”

이것은 탐욕인가?

그렇다면 너무나 황당무계한 기행이었다.

왜냐하면, 심록은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기에.

‘후후후, 주인이시여. 그토록 긴 시간을 함께했는데 나를 버리실 셈입니까? 이제 나는 필요 없단 말씀인가요? 그래요. 끝내 이 세계에 현신하실 생각이군요. ···하지만 못해. 이따위 하찮은 아이에게 내주진 않을 겁니다. 당신은 내 약속을 지키지 않으니까. 나는 아직도 만족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당신이 날 외면하더라도 나는 당신을 놓치지 않겠어. 이 기구한 운명을 누릴 수 있는 자는 나뿐이야. 오직 나만의···.’

···억누르고 있었다.

심록은 자신의 안에서 빠져나가려는 어떤 기운을 필사적으로 제어하려 하고 있었다.

심지어 최후에 남겨진 모든 마기를 동원해서까지···.

그렇게 마녀는 최후의 심판을 기다리고 있었다.

콰직.

이윽고 눈이 뒤집힌 자의 단두대가 내리박혔다.

그을린 마녀의 머리뼈는 산산조각이 났다.

마지막 일격을 내린 것은 니코였다.

“괴물 년! 내 동생에게서 떨어져라!”

그는 세상에 남은 유일한 자신의 혈육을 지키고자, 마녀의 목숨을 끊었다.

허망한 최후였다.

수백 년 이상을 살아오며 악명을 쌓은 자의 마무리라 하기엔 너무도 자비로운 죽음이었다.

해소된 것은 없다.

응어리만이 남았다.

레이는 자리에 주저앉아 마녀의 재가 바람이 날아가는 것을 지켜볼 뿐이었다.

증오는 갈 곳은 잃었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그것이 다행일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심록도 그것을 노렸을지 모르지.

복수자에게 있어서, 감정의 해소란 죽음을 의미한다.

대스승 베누다는 오랜 싸움의 인생으로 그걸 이미 자각하고 있었다.

눈앞의 원수를 갚는다 해도, 그 뒤에는 불멸의 적이 이차원 세계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절망적인 소모전···.

이 전쟁에 기약은 없다.

그렇기에 결코 만족해선 안 된다.

생명이 허락하는 한, 우리는 끝없이 싸워야만 하는 운명인 것이다.

“레이 사저.”

“···알고 있어.”

그래.

그렇게 나와야지.

경험이 부족한 나 따위도 깨닫는 이 당연한 사실을···.

심의 유파를 대표하는 대스승 크레이그의 애제자인 그녀가 모를 리 없었다.

잠깐의 방황만으로 레이는 다시금 마음을 다 잡았다.

어느새 그녀의 분노 또한 순수한 감정의 빛깔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녀는 각오를 품었다.

그것으로 과거의 주박에서 풀려났다.

만에 하나 여한이 남지 않는 결말을 지었다고 해도, 어차피 자신은 평생 사냥꾼으로 살아갔을 거라고.

그 마음에 흔들림은 없다.

정말이지 심지가 강한 여자였다.

하지만 그녀는 알았을까?

니코의 검에 마녀의 두개골이 으스러지는 그 순간···.

자신이 더 이상 심록을 미워하고 있지 않았다는 것을.

레이는 이미 무의식중에 심록의 본심을 깨닫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오래된 기억 속에 자리 잡은··· 자신을 길러준 마녀의 얼굴에서 느껴지던 순수한 애정을···.

물론 이제 와서 진실을 확인할 길은 없다.

마녀가 죽음에 이르는 순간, 고통과 아스트랄에 대한 주박이 뒤섞여 정확한 감정을 읽지 못했기에.

‘하지만 나는 감히 짐작한다.’

비록 그것이 치 떨리는 사악한 존재라는 걸 부정할 순 없지만.

보나마나 불길한 탐욕을 충족하고자 고아나 소외된 자들을 모았을 것이 뻔할 것이지만.

적어도 10년 전, 레이를 보듬어주던 시절만큼은 달랐을 거라 믿고 싶었다.

···프라이케르 가이스트들의 최후가 떠오른다.

외눈박이 꼽추, 그 기기란 놈이 끝까지 우리를 저지하려던 것은 심록에게 은혜를 갚기 위함이었다.

지네여인은 단말마에서 마녀를 ‘엄마’라 부를 정도로 간절한 감정을 품었었지.

심록의 마녀도 어느 순간 눈치 챘을 것이다.

자신이 변했다는 걸.

욕구의 충족만을 바라던 일생의 목적이 어느 순간 흐려졌음을.

그리고 그 대신 평범한 이들이 지극히 당연하게 느끼는 뭔가를 얻었다는 사실을.

최소한··· 나는 그렇게 믿고 싶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