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헥센야크트-85화 (85/186)

심문의 장(2)

2.

이게 패배자의 꼬락서니인가?

이 계집은 그 대군을 잃고서도 뭐가 이리도 당당하지?

위기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보여주는 그대로 유쾌함만이 감돌뿐이다.

“머릿속이 다 맑아지는 기분이로다. 오랜만에 맞이하는 죽음도 썩 나쁘지 않구나. ···자, 그럼 계속해서 놀아보겠느냐?”

생명이란 무엇인가?

목숨은 어째서 중요한가?

그 근본적인 질문에 답을 하기에 인간은 너무나 어리석다.

하지만 최소한··· 나는 지금껏 살아온 직관을 최대한 발휘해, 자신이 납득할 수 있는 한 가지 대안을 내놓을 수 있었다.

생명체에게 있어서 가장 알기 쉬운 목적인 살아가는 것 그 자체···.

목숨이란 누구에게나 단 하나뿐.

그 무엇보다 희소하다.

그렇기에 가치가 있음을 안다.

‘허나 저것들에겐 아니다.’

마녀들이 부리는 사악한 비술은 삶 의 가치를 여지없이 부정해 버리지.

그래, 멀리 갈 것도 없다.

나는 머리가 날아간 소녀가 되살아나는 광경을 본 적이 있으니까.

바로 펜릴의 둥지에서 눈을 이식받기 전에···.

대스승 크레이그가 쏴 죽인 벌레의 마녀가 그랬었지.

새삼 우리가 싸우는 적들이 얼마나 인지를 초월한 요괴들인지를 깨닫는다.

최후에 남은 인간의 존엄성까지 아스트랄에게 바친 마녀들은···.

가장 중요한 그 본질적인 의미조차 잃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아핫, 아하하! 아주 즐겁구나, 사냥꾼들아. 정말 오랜만에 재미있는 유희였느니라!”

단 한 번만 들어도 평생이 불행해질 것만 같은 소리가 들려온다.

주둥이만 남은 것이 내뱉는 끔찍한 조소였다.

독기가 찬 목소리와 함께 절삭당한 뇌와 사라진 머리뼈가 돋아난다.

시뻘건 혈관이 허공에 자리를 잡더니, 순식간에 근육과 피부가 겹쳐졌다.

급속도로 얼굴이 돌아오고 있었다.

“언제 봐도 역겨운 부활이군.”

타앙.

보다 못한 대스승 크레이그가 화승총의 방아쇠를 당겼다.

이번엔 턱 아래, 하악이 화약의 폭발로 분쇄되었다.

그러나 통하지 않는다.

회복의 기세가 잠깐 주춤했을 뿐, 여지없이 잘려나간 머리카락까지 재생되기 시작했다.

불과 수초도 지나지 않아, 창백한 피부의 요부는 자신의 온전한 미모를 우리에게 과시했다.

‘어째서냐? 외견이 이토록 아름다운데, 왜 나는 저 계집에게서 썩어가는 송장보다도 깊은 혐오감을 느끼게 되는 거지?’

조금 전까진 핏물 때문에 보이지 않던 선명한 흑발이 드러났다.

이어서 살짝 여우를 닮은 눈매와 적당한 높이의 콧대.

앵두의 빛깔을 띤 입술까지···.

그 이국적인 풍모는 자연스레 누군가를 떠올리게끔 만들었다.

멀리 갈 것도 없어.

레이다.

심록의 마녀는 놀라울 정도로 그녀의 얼굴과 흡사했다.

그 모습을 보며 진저리를 치는 레이에게, 마녀가 다시금 속삭였다.

“무얼 그렇게 끔찍하게 보느냐? 먼 혈족의 아이야. 날붙이 따위로 상처나 내고. 후훗, 내 고운 얼굴이 그렇게나 부러웠느냐?”

“닥쳐···!”

“섭섭하게 그러지 말거라. 작은 여인아. 너는 나의 먼 후손이 아니냐?”

“웃기지 마라, 이 요물···!”

레이는 그것을 견디지 못했다.

“나는 절대 잊지 못해! 내 민족, 내 가족을 전부 집어삼켰던 네 년과 그 끔찍한 사역마를!”

감정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며 검을 수직으로 새워서 내리 벤다.

하지만 그 칼부림에 불필요한 동작은 없었다.

몇 천, 몇 만 번···.

그녀가 수련을 통해 휘둘렀던 최단속의 동작이 마녀의 몸을 갈랐다.

그러나···.

“이, 이익!”

“···너무 서둘지 말아주련? 아직 진짜 기쁨은 시작도 하지 않았으니.”

손가락이다.

심록은 단 두 개의 손가락만으로 레이의 참격을 낚아챘다.

아니, 그 뿐만이 아니었다.

챙강!

무서울 정도로 상쾌한 소리와 함께 칼날이 쪼개졌다.

“어머나, 검이 딱하기도 하지. 참으로 시덥잖은 주인의 재주로고.”

나는 그것이 단순한 레이의 관리 부실이길 바랐지만···.

곧 그녀가 배 안에서 내내 멀미로 시달리는 와중에도, 틈만 나면 검을 손질하던 모습을 기억해내고 말았다.

자세히 보니, 마녀의 몸은 거품과 같은 투명한 막으로 둘러 쌓여있었다.

그렇다면···!

“어디··· 이것도 한 번 막아내 봐라!”

나는 도끼를 내질렀다.

날을 세워 표류자의 유산을 힘껏 휘둘렀다.

이것은 순수한 유성의 결정체.

모든 마기를 흩뿌리고, 그 어떤 결계라도 찢어발기는 최강의 무구.

당연히 그 위력은 절대적이었다.

힘에만 의지한 어설픈 무기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레이의 검법으로도 베지 못했던 것을 갈라낼 수 있었다.

“···어, 아?”

심록이 만들어낸 얄팍한 보호구가 찢겨졌다.

이어서 마녀의 젖가슴 사이에 붉은 균열이 인다.

여체가 쪼개졌어, 그 틈으로 깔끔히 잘린 절단면이 드러났다.

놀랍게도 피는 튀지 않는다.

도끼날이 지나간 부분이 순식간에 말라붙기 시작해, 석고처럼 허물어지기 시작했기에.

“갸아아아, 아아아악!”

마녀가 고통으로 발광하자 내 입가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몸이, 몸 안이 끓어올라! 뜨거워, 너무 아파아아아! 쪼개지다니, 내 아름다운 육체가아아아아! 네노오오옴! 나에게 무슨 짓을 한 거야아아아!?”

괴로우냐?

당장이라도 죽을 것 같으냐?

그러나 너는 이대로 가선 안 된다.

네 년은 더 많은 비명을 질러야 할 것이다.

심록의 종말따위, 대스승 베누다의 깊은 한이 허락하지 않는다.

심지어 레이가 가진 오갈 데 없는 증오는 아직 1할조차 소모되지 않았기에.

하지만 나는 간과하고 있었다.

그것은 이미 내 하찮은 상상을 아득히 초월할 정도로 더욱 영악하고 교활했다.

“···라고 울어주면 만족하겠느냐?”

하얗게 굳어가던 마녀의 신체가 요변을 멈추었다.

더 이상 울부짖지도 않아, 다시금 헤실 거리는 얼굴로 돌아와 있었다.

“후훗, 그래, 네가 이 더러운 별똥별을 다룬 사내였더냐? 호오, 가까이서 보니 꽤 잘 생긴 남자이지 않나?”

“이게···.”

“과연, 자색에게 주긴 아까운 남자로다.”

“···뭐?”

그만 반사적으로 클라리스에 대해 아냐고 물을 뻔 했다.

하지만 그야 당연한 일이겠지.

이 년과 클라리스는 같은 육망성의 일원이니까···.

그리고 이대로 상대의 유도에 넘어가선 곤란하다.

심록은 우리를 놀려먹을 생각뿐이다.

내게로 전해져오는 감정을 보면 안다.

클라리스에 대한 기억이 거의 남아있지 않아, 나를 떠본 것에 불과했다.

“여색에는 넘어가지 않느냐? 후훗, 기특한 사내다. 사냥꾼이 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젊은 아이가··· 용케도 그 단기간에 나를 여기까지 몰아붙였군.”

“닥쳐라!”

퍼벅!

이번엔 복부를 갈라주었다.

뱃속이 등분되었지만 또 같은 현상이 일어난다.

어째서지?

마의 존재를 파괴하는 표류자의 유산이 왜 제대로 통하지 않는 거냐?

“···왜 놀라지? 내가 그따위 별똥별의 장난감에 까무러칠 줄 알았느냐? 그것이 마기를 빨아들이고 환부를 붕괴 시킨다는 건 우리들도 옛적에 파악하고 있었느니라. 당연히 그 효과를 중화시키는 기술 또한 익히고 있지.”

“뭐라고?”

“그깟 장난질쯤 아프지도, 가렵지도 않단다. 잘 보렴, 이렇게 해도···.”

심지어 마녀는 스스로의 절단부를 손으로 긁어내어 기이한 자해를 시작했다.

손가락의 갈퀴를 따라 내장이 바깥으로 흘러나왔지만, 마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고통은커녕 육체를 단순한 껍데기처럼 다루는 것만 같았다.

“다음은 뭘 할 테냐? 이 몸의 창자와 위속의 내용물이라도 탐닉해보련? 얼마나 끈적하고 미끌거리는 지, 네 크고 우람한 물건으로 직접 실험해볼 테냐?”

노골적으로 가지고 놀 셈이군.

더는 내버려둘 수가 없다.

남은 목숨이 얼마든 간에, 아무리 아픔을 느끼지 못하는 몸뚱이라 해도···.

더는 재생하지 못하게 토막 내고 찢어주지.

레이와 나의 의견은 일치했다.

하지만 우리가 나서기도 전에, 세 명의 대스승이 이미 대처를 시작한 지 오래였다.

“멈춰거라. 레이, 빅터. 더 이상 그 탕녀의 헛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마라.”

“대스승 크레이그의 말씀이 옳다. 그 계집은 예나 지금이나 더러운 입담만큼은 여전했으니.”

“흡!”

콰직!

만류하는 두 사람과는 다르게, 베누다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행동으로 옮기고 있었다.

뭉갠다.

너클을 쥔 주먹으로 무방비한 마녀의 배를 꿰뚫는다.

그것은 단순한 지르기가 아닌, 레이의 파쇄권과 같은 원리의 기술이었다.

퍼어어엉!

마녀의 몸은 여기저기가 부풀어 오르더니, 이내 육편을 튀기며 산산조각 났다.

“또 지껄여보시지, 심록. 너는 어떻게 해도 달아날 수 없다. 너에게 허락되는 건 오직 죽음뿐. 남은 목숨이 다 떨어질 때까지 분쇄시켜 주지.”

“옳지. 말 한 번 잘했네, 베누다. 나도 탄환이 허락하는 한 머리통을 계속 날려줘야겠군.”

“몸뚱이만은 제게 남겨주시지요, 두 분. 죽어서도 마녀의 몸은 연구 가치가 있으니 말입니다.”

“그거야 자네 멋대로 하시게, 알베르트.”

“흥, 그래서 심록의 계집아. 네 그 목숨이 몇 번이나 남았다고?”

“후훗··· 열 네 번이니라.”

사방으로 튀겨진 살덩이가 꿈틀거리며 한 자리로 모인다.

땅바닥의 흙까지 머금은 채 다시금 형상을 갖추기 시작한다.

그것은 밉살스럽게도 가장 먼저 아가리와 입술부터 만들어냈다.

“나는 행복하구나. 이토록 멋진 사내들에게 둘러싸여 최후를 맞을 수 있다니 말이야.”

대스승들의 조롱에 답하기 위해서였다.

“추억이 절로 떠오르는구나. 한 가지 고백해도 되겠느냐? 사실 나는 너희들 늑대와 악연도 싫지만은 않았느니라. 하지만 너희는 추하게 늙고 말았으니, 이 얼마나 꼴이 우스운 지고. 후후···.”

“수다가 많아진 걸보니, 슬슬 위기감을 느끼는가? 심록이여.”

“크레이그, 너는 언제까지 그렇게 살아갈 셈이지? 여전히 딸내미의 발자취만 쫓아 방랑하느냐?”

“감히 네깟 년이 남의 가정사를 입에 올리는가?”

“알베르트, 일전에 내가 뜯어먹은 네 제자들의 살코기는 정말 맛있었는데.”

“그거 다행입니다. 다음엔 자기 자신의 고기라도 뜯어보시지요.”

“그리고 베누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사냥꾼아. 그대는 인생의 황혼기가 한참 전에 지났을 텐데?”

“흥, 네 년을 매장하기 전까진 앉아서 쉬는 것조차 나에겐 사치다. 그 전까진 내 자식들은 결코 눈을 감지 못하리니.”

잠깐의 대화만으로도, 이들은 서로를 증오하는 것이 역력해 보였다.

그럼에도 대스승들은 뒤풀이라도 하듯 농을 던진다.

그에 마녀는 웃었다.

단순한 조롱만이 아니라, 일종의 달관도 함께 섞인 실소였다.

이쯤에서야 나는 깨달았다.

심록은 달아나지 않는다.

아니, 도망칠 여력이 남아있지 않았다.

“알겠느냐, 빅터? 마녀란 것들은 전부 최후의 순간까지 자신을 포장한다. 아무리 궁지에 몰려도 이딴 장난질을 치지. 마법이란 모두 그런 것이다.”

유성의 파편이 박혔음에도 큰 효과가 나오지 않은 까닭도···.

허세가 아니라 단순히 체내의 마기가 거의 소진되었기 때문이었다.

결국엔 쓸데없는 연출.

속임수에 불과했다.

‘···이 계집에 비하면 내가 지금껏 만난 마녀들은···.’

자색의 마녀, 클라리스에 대해선 그간 함께 지내온 내가 안다.

아직도 어떤 사정이 있지 않을까 은연중에 떠올리고 마는 나 자신이 다 원망스러울 정도로.

하지만 그 다음···.

나를 아빠라고 부르기까지 했던 벌레의 마녀, 그 이름은 분명 마가렛이라고 했다.

짐작컨대, 매우 가혹한 괴롭힘을 받은 것이 틀림없겠지.

또한 내게 자신의 과거를 보여주며 죽여 달라고 애원했던 광산의 마녀, 미아.

마지막으로 로이와 공동전선을 펼쳐 쓰러트렸던 그녀···.

나의 어머니와 같은 섬의 민족이자, 동시에 거미의 마녀였던 라비나까지.

모두가 슬픈 운명의 여인들이었다.

가혹한 삶의 부조리함을 견디지 못했기에, 결국 아스트랄에게 속아 넘어간 희생자였다.

가끔, 아주 이따금씩···.

나는 그녀들의 목을 베지 않았으면 하고 생각에 빠진다.

그만큼 동정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내 눈앞에 있는 괴물에게 만큼은 아주 약간의 측은한 마음조차 들지 않았다.

이것에게 보이는 것은 끝을 모를 사악함뿐이다.

심지어 이 와중에도 용병단의 대원들을 더욱 공포에 질리게 만들고자 잔꾀를 부리고 있었다.

가공할 악의다.

그것은 아스트랄의 편린을 살짝 엿보았을 때 느꼈던 것과 아주 흡사할 정도다.

‘···백 년이 넘도록 마魔와 함께한 인간은 모두 이렇게 되고 마는가?’

이어서 늙은 사냥꾼들이 살아있는 소녀의 형상을 한 마물을 짓이기기 시작했다.

몇 번이고 총알이 머리를 날려버린다.

곡검의 끄트머리가 급소를 깊이 찌르고 휘저었다.

거대한 철권이 늑골을 부수고 내장을 파내었다.

그 광경은 지옥 그 자체였다.

이에 휘말리지 않은 것은 나와 레이, 그리고 앙리 뿐이었다.

얼마나 처절한지, 지켜보는 용병단의 대다수가 이미 토악질을 할 정도였다.

특히 니코는 마녀의 정체에 입을 꾹 닫은 채 발광을 참는 눈치였다.

자신이 소리를 지르면, 품에 안긴 채 아비규환을 목도하는 여동생마저 정신을 놓아버릴 지도 몰랐기에.

“···잠깐.”

아홉 번인가?

아니면 열 번째인가?

그 정도의 난도질이 진행된 가운데, 갑자기 심록이 번쩍하고 눈을 떴다.

그리곤 잘려나간 팔로 검을 휘두르려는 알베르트의 어깨를 잡았다.

위해는··· 없다.

아주 조금이지만, 그 움직임에는 묘한 후회가 섞여 있었다.

“나를 죽이는 건 언제든 좋으나, 몇 마디만··· 이 여인의 한풀이를 좀 들어주지 않겠느냐?”

꿈틀거리는 고기의 파편 사이에서 애원이 들려오자, 나는 그 가증스러움에 치를 덜었다.

당연히 대스승 크레이그는 그 간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무슨 헛소리냐? 이제 와서 미련 없이 떠나고 싶다는 둥 지껄일 생각은 아니겠지?”

“···아니, 지금 막 생각이 난 게 있어서 그러느니라. 너희에게 나쁜 이야기는 아니니, 옛정을 봐서라도 들어주지 않겠느냐?”

“우리는 마녀와 거래하지 않는다.”

“그게 크레이그, 네 딸에 대한 이야기라도?”

“···뭣이?”

“최근에 만났단 말이야. 이 대륙에서. 여기와 멀지 않은 산림에서 바로···.”

일순간, 대스승 크레이그의 되물음에 피투성이 얼굴이 일그러졌다.

“네 딸년인 벽람白藍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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