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계의 장(5)
5.
세 명의 대스승은 각자 압도적인 감정의 소용돌이를 만들어냈다.
대스승 크레이그가 그의 화승총과 단검을 꺼내들자 바람의 질이 거칠어졌다.
대스승 알베르트의 도검이 칼집에서 나옴과 동시에 기류氣流가 갈라진다.
대스승 베누다는 한 걸음을 내딛는 것만으로 대지를 울리게 만들었다.
이들은 존재만으로도 위험해, 당연히 하늘의 적도 절대 좌시하지 않았다.
파앗!
오래도록 충전할 여유조차 없이, 창공의 눈을 광선을 연사했다.
그러나 세 명의 대스승에게 그것은 발악에 불과했다.
위력이 약해진 섬광 따위는 그들이 펼친 그림자 장막에 여지없이 흩뿌려졌다.
“심록, 마음이 조급해졌나?”
“망할 계집, 네놈들이 합류하고 나니 이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나 보군.”
“새삼 그리운 광경이군요. 예전의 격전지가 떠오릅니다.”
대스승들의 행보에 거침은 없다.
과거에 한 번 패배한 적을 앞두고서도 전혀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다.
아니, 어쩌면···.
그들은 과거의 싸움에서 진 것을 인정하지 못하고 있는 것인가?
대스승 알베르트가 입에 올린 것처럼, 지금 세 사람은 치욕스런 30년 전을 떠올리고 있었다.
허나 거기 담긴 감정은 역시나 공포와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한에 가까웠다.
그렇기에, 지금 그들은 복수의 황홀경에 취해 있었다.
특히 대스승 크레이그는 사냥에서 이따금씩 보여주는 광인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기대 하거라, 심록의 마녀야. 오늘은 저번처럼 도망칠 수 없을 터이니.”
그랬다.
삼인의 대스승이 겪은 과거의 패배란···.
단지 수많은 희생을 치루었음에도 끝내 적의 숨통을 빼앗지 못한 데에 있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은 것이 잘못이었을 뿐.
모자란 것은 적의였다.
사악을 끊어놓겠다는 결의보다 부상자를 걱정하는 마음이 더 컸던 탓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물론, 당시에도··· 그들은 확신한다.
자신들이 결코 무력에서 밀리진 않았다고.
그것을 증명하듯, 대스승 크레이그가 가볍게 농을 던졌다.
“베누다, 알베르트. 이렇게 전원이 모인 것도 모처럼이니, 오랜만에 내기라도 할 텐가?”
전장에서 이 무슨 배짱이란 말인가?
이어서 그는 자신의 수집품을 자랑하기 시작했다.
“나는 이 연회에 어울리는 비장의 포도주를 걸지. 반세기 전 가라앉은 상선에서 구한 보물이야. 무려 50년이나 바다 속에 묵혀져 있던 명품일세.”
그에 두 사람은 가볍게 받아친다.
마치 산책이라도 하는 것 마냥···.
창공의 눈이 발사하는 광선을 모조리 막아내며, 더 이상 신경조차 쓰지 않으면서.
“그거 좋지요. 저는 칼리스트로 시대의 골동품을 내놓겠습니다. 졸부들이 매입을 앞 다투던 것이 하나 있거든요. 대략 금화 백 냥의 가치는 있을 겁니다.”
“세속적이지만 나쁘지 않군. 자네의 수집품이니 믿을 만하겠지.”
“그래서 조건은 무엇으로?”
“흥, 알베르트. 네놈은 여전히 늙어서도 여흥을 모르는군. 달리 뭐가 있겠나? 저 흉물스런 요새를 떨어뜨리는 것 밖에 없지.”
“대스승 베누다, 당신은 무엇을 거실 겁니까?”
“나는 네 녀석들처럼 시시한 건 내놓지 않을 거다. 일각 고래의 외뿔 정도는 되야 이 승리를 기념할 수 있을 테니.”
“큭큭큭, 대단한 자신감이군.”
“당연하지. 덧붙여 내 오른팔도 함께 걸겠다.”
“나중에 불평하시기 없깁니다, 대스승 베누다.”
인간도 나이를 먹으면 요물이 되는가?
세 노인은 악의가 일치한 듯 불온한 감정이 섞인 웃음을 흘겼다.
그들의 어깨가 들썩일 때마다 희멀건 안광이 뿜어져 나와, 찬란한 태양이 비치는 와중임에도 사방에서 스산한 기운이 흘러나왔다.
“그럼··· 30년 전의 설욕을 갚아보실까?”
대스승 크레이그를 그림자를 둘렀다.
그의 양 어깨를 타고 까마귀의 날개를 닮은 케이프가 기다랗게 흘러내렸다.
그것은 분명 레이 사저가 보였던 휴케바인Huckebein···.
하지만 보다 강한 감정이 서렸는지, 레이의 것보다 선명하고 날이 선 형태였다.
“역시 대스승 크레이그, 볼 때마다 놀랍습니다. 그림자를 다루는 기술만큼은 모든 동지들 중에서도 독보적이라 할 수 있겠군요.”
“알베르트. 자넨 그 상태로 싸울 텐가?”
“외람된 말씀이지만, 저는 불안정한 그림자보다 제 기술을 더 신뢰합니다.”
뚜둑.
그러면서 대스승 알베르트는 왼손의 관절을 뽑아냈다.
“보십시오. 괜히 가루를 소모해서 근원의 형상을 바꾸는 것보다는, 처음부터 이형을 유지하는 편이 더 많은 효율을 낼 수 있으니까요.”
어떻게 된 구조인지 채찍처럼 길게 늘어지는군.
심지어 중지와 검지를 중심으로 손바닥이 반으로 갈라져, 부채처럼 넓게 펴지는 기이한 모습까지 보여준다.
역시나 그도 가면 삼인방이 내장하고 있는 장치를 자신의 몸에 그대로 시술했던 것인가?
아니, 그의 본성을 고려한다면 이쪽은 아예 한 걸음 더 나아가··· 사지가 전부 그런 식일 지도 몰랐다.
이어서 그는 이븐 가지의 분말을 그 안으로 흘려 넣었다.
대략적인 겉모습에는 큰 변화가 없다.
하지만 그의 왼팔만큼은 달라, 한눈에도 흉흉한 모습이 되어 있었다.
오른손에 쥔 화려한 기병도가 추레하게 느껴질 정도로···
그것은 검은 연기로 이뤄진 방패이면서 찢고 발기기에 적합한 짐승의 발톱처럼 보이기도 했다.
“흥, 역하고 조잡한 기술이다. 네놈에게 대스승 자리를 물려준 선대가 보면 까무러치겠군.”
대스승 베누다는 노골적으로 그 모습을 비난했다.
대스승 알베르트는 그마저도 익숙한 지, 쓴 웃음을 지어보일 뿐이었다.
“이 또한 제 연구가 도달한 하나의 해답이라 생각해주시면 안되겠습니까?”
“웃기는 소리. 거울이나 보고 그딴 변명을 하시지. 그게 사람의 꼬락서니냐? 결국 어디까지나 편법일 뿐이다. 단련으로 강해지는 게 아닌, 개조로 몸속을 뒤집는 게 어딜 봐서 이치란 말이냐?”
“그렇다면 몸소 보여주시겠습니까? 잘나신 체體의 유파가 내놓은 결론을?”
“오냐. 그 탁해진 눈깔을 씻고 똑똑히 보도록 해라.”
순간, 대스승 베누다의 발아래에 그늘이 진다.
그것은 점점 덩치를 불려, 어느새 거목이 드리운 것처럼 지면에 흔적을 남겼다.
허나 이 기술의 진면목은 더욱 황당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림자가 형상을 갖추기 시작했으니까.
이윽고 대스승 베누다의 실루엣을 그대로 투사한 검은 아지랑이가 몸을 일으켰다.
그 크기는··· 층을 겹겹이 쌓아올린 대성당의 첨탑보다도 거대하다.
‘이건··· 대스승 베누다의 가루뿐이 아니다. 설마 마녀의 결계를 이루는 마기까지도 빨아들인 것인가?’
일전에 들어본 적이 있다.
그림자를 다루는 기술 중에는 오직 마녀의 영역에서만 쓸 수 있는 비전도 있다고···.
그렇다면 이것이야말로 바로 그 응용의 정점이리라.
“땅거미Schatten라. 30년 전보다 더 큰 녀석을 뽑아냈군.”
“너무 무리하지 마시지요, 대스승 베누다. 자칫 수명이 줄어듭니다.”
“건방진 소리. 난 충분히 오래 살았다. 이 세상에 남은 유일한 미련은··· 저 망할 계집들이 내가 모르는 곳에서 아직 활보하고 다닌다는 것뿐!”
익숙한 이들의 말장난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것을 악몽 속의 광경처럼 느끼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 모두가 상궤를 넘어선 지 오래 되었기에.
이 시점에서 나는 세 명의 대스승과 마물의 구분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이들 또한 복수에 미쳐버린 짐승에 불과했으니.
“이, 이럴 수가··· 우, 우린 지금 지옥에 와 있는 건가?”
“무엇이···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거지?”
“우, 우아아악!”
저 멀리서 비명 소리가 들려온다.
대스승 크레이그가 지금껏 인솔해온 용병단의 절규였다.
심지어 몇몇은 발광까지 하고 있었다.
전장의 피와 죽음에 익숙한 그들에게조차도 이 상황은 견디기 어려웠던 것인가?
···아니, 이들의 정신은 이미 오래 전에 망가져 있었다.
죽고 싶지 않았기에 대스승 크레이그의 지시를 따라 마지못해 싸우고 있었을 뿐.
“괴물들··· 이놈이고 저놈이고 전부 마귀들이다!”
“우린 처음부터 놈들의 덫에 걸려든 거 였나!?”
“니코 대장! 이탈합시다! 이젠 돈 따위 아무래도 좋다고요! 누가 봐도 이건 우리가 개입할 전장이 아니잖습니까?”
그럴 테지.
그들이 보기에, 우리의 싸움은 인외마경으로 밖에 보이지 않으리라.
광기 그 자체···.
지옥의 연회란 달리 먼 세계의 이야기가 아니다.
하지만 나에게 있어서, 이 모든 것은 너무나도 처절하게만 느껴졌다.
그들이 뿜어내는 감정의 파동은···.
오랜 세월 농축된 슬픔의 결정체였기에.
비록 광기의 짐승들일지언정, 나에겐 세 명의 대스승이 너무도 안쓰럽게 느껴졌다.
저절로 떠오르고 마는 것이다.
저만한 힘을 손에 넣기 위해, 저들이 지금껏 얼마나 많은 것을 희생해왔을 지가···.
‘나도 저들과 나란히 설 수 있다면···!’
감탄이 드는가하면 분한 마음이 턱까지 올라온다.
나는 어째서 이토록 무력한가?
이 얼마나 한심한가?
고작 반나절 동안 가루를 조금 사용한 것만으로, 이렇게 빌빌 거리다니···.
그러나 내가 초조함을 품든 말든 간에, 인지를 초월한 싸움을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쿠우우우웅!
대스승 베누다가 만들어낸 그림자의 거인이 뛰어 들었다.
부유한 창공의 눈에게로 주먹을 뻗자, 그것만으로 수 십 겹의 표면이 벗겨져 지면으로 낙하했다.
하지만 상호간의 충격이 컸는지, 처박아 넣은 그림자의 오른팔도 붕괴되어 터져버렸다.
파앗!
하지만 그 뒤를 쫓아 후속 주자가 다음 일격을 날린다.
거인의 어깨를 타고 대스승 알베르트가 돌입한 것이다.
신축자재로 늘어나는 그의 왼팔이 중합체의 벌어진 균열 속에 파고든다.
인정사정없이 속을 휘젓는 끔찍한 소리와 함께 하늘에 새빨간 피보라가 일었다.
뿐만 아니라 대스승 크레이그도 맹공을 멈추지 않았다.
앞서 레이가 보여주었던 것처럼, 하늘을 나는 흉조로 변한 대스승 크레이그가 빈틈을 노렸다.
그는 적의 훤히 드러난 적의 진홍색 내장에 유성의 파편을 박아 넣고, 순식간에 외피를 집어 뜯은 다음···.
그 안에다 그림자를 덧씌운 대량의 검은 연기를 흘려보낸다.
대스승 크레이그의 사고를 읽고 나서야, 나는 그것의 정체를 파악해냈다.
‘세상에, 이븐 가지의 분말은 화약에 조차 영향을 미치는가?’
그것은 덩어리 채로 그가 들고 다니던 흑색화약이었다.
이어서 그가 오른손으로 화승총의 방아쇠를 당기자, 하늘이 번쩍일 정도의 폭발이 일어났다.
최후의 발악으로 창공의 눈이 섬광을 발했지만···.
반대로 그것이 자멸을 가속화시켰다.
대스승들이 노린 대로··· 열을 분출하는 눈동자의 포신은 이미 제 기능을 하지 못할 정도로 손상되어 있었기에.
콰과아아아앙!
자멸이었다.
한계까지 달아오른 중합체의 몸통이 육편과 함께 터져나가기 시작했다.
그것은 여지없이 추락해, 지상에 남은 사역마들을 덮쳐 버렸다.
이윽고 땅 위에는 으깨진 토마토 같은 흔적만이 남았다.
심록의 마녀가 자랑하는 공중 요새의 격침이었다.
그러나···.
“···당했군.”
“대스승 베누다, 이것은···.”
대스승 크레이그와 대스승 알베르트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에 대한 답으로 대스승 베누다 또한 분노를 숨기지 못한다.
“그래, 비어있다. 이 안엔 심록이 없어!”
그들의 시선은 북쪽 하늘을 향했다.
그곳에는 아직 결계가 남아있어, 농한 안개 속에 또 다른 뭔가가 암약하고 있었다.
‘빌어···먹을!’
나는 경악했다.
뿌옇게 흘러가는 연무 사이에서 형상을 가진 무수한 절망이 모습을 드러냈기에.
또 다른 창공의 눈이었다.
대스승들이 쓰러뜨린 놈에 비하면 자그마한 크기에 불과하지만···.
문제는 그 수였다.
열 댓 개의··· 어쩌면 그보다 많은 수가 이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말도 안돼.
이것은 신기루인가?
그렇겠지.
낮게 깔린 구름이 만들어낸 허상인 것이 틀림없다.
그래야만 한다.
그게 아니라면, 만에 하나 이것이 현실이라고 한다면···.
‘우리에게 승산은 없다.’
지금까지 본진을 숨기고 있었나?
아니, 그럴 리가 없다.
적의 계약을 우리가 눈치 채지 못한 것뿐이다.
···다시금 주변을 둘러보니, 일대를 가득 매우고 있던 마계의 숲이 자취를 감춘 상태였다.
물량 공세는 단순한 눈속임···.
심록은 상상 이상의 전략가였다.
그녀는 그 사이에 레기오네스 급 중합체의 몸뚱이를 전부 창공의 눈으로 변환한 것이다.
“고오오오!”
놈들의 완충된 눈깔이 빛을 발한다.
일순간, 하늘이 울부짖었다.
수많은 섬광의 줄기가 뻗어 나왔다.
이윽고 대스승 베누다의 거인이 찢겨 졌고···.
일직선 방향에 있던 산맥과 능선을 날려버렸다.
이어서 거인에게 막혀져 위력이 경감된 섬광의 포격이 내가 선 자리까지 뻗어 나온다.
몸을 움츠리기도 전에 코앞에서 작열하는 바람이 불어왔다.
피하기에는··· 이미 늦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