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성의 장(7)
8.
뉘우침은 인간의 덕목이다.
그것은 고향에서 신의 말씀을 전하던 올가 할멈의 말버릇이었다.
원죄原罪.
우리는 전부 날 때부터 혼이 더럽혀져 있다.
먼 조상이 저지른 잘못을 타고나, 후손으로서 마땅히 평생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고.
‘당연하게도, 나는 그 관념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질책과 회초리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되 물어야만 했지.
그저 태어나서 살아갈 뿐인데, 어째서 저지른 적도 없는 죄를 받아들여야 하느냐고.
알지도 못하는 선조의 과오를 왜 우리가 물려받아야 하지?
만일 그래야만 한다면, 이는 얼마나 잔혹한 처사인가?
감히 자비의 하느님을 입에 올린 채, 어째서 부조리의 극치를 인간에게 강요한단 말인가?
‘하지만 신앙을 가진 이들은 집요했어.’
나는 아직도 그들의 기묘한 의식을 기억한다.
수도에서 온 성직자가 손등을 보이면면, 신도는 무릎을 꿇은 채 거기 입을 맞추는 것이다.
그리곤 죄를 사해달라며 빌기 시작한다.
어린 마음에서 나는 그 행위가 일종의 장난이 아닐까 의심하기도 했지만···.
어디까지나 신을 믿는 자들은 진지했다.
그들은 필사적이었고, 진심을 다해 있지도 않은 잘못을 쥐어짜내기 위해 발악하고 있었던 것이다.
가관이었다.
최소한 정상적으로 보이진 않았다.
한 수 더 떠서, 성의를 다해 사죄하는 신도들에게 주교는 기막힌 행동을 취했다.
그는 아주 자애로운 표정을 지어보이며 고개 숙인 이의 머리를 쓰다듬기까지 하더군.
그러면 사람들은 감동한다.
어찌나 황홀경에 빠졌던지, 누군가는 또 오열하기도 했을 정도였다.
그것은 순수한 감사인가?
아니면 내세에 유황불에 빠질 운명에서 벗어났음을 안도한 것인가?
불행히도 신학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다.
불신자인 나로서는 무엇이 진실인지 아직도 잘 모른다.
하지만 확실한 건···.
어디까지나 비는 쪽의 역할이 항상 인간의 역할이란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 그 신성의 원칙이 뒤집어지고 말았다.
자처했다곤 하나, 한 때 인간에게 신으로 불리었을 존재가···.
미물이라 여겼을 우리 앞에서 일말의 거짓도 없는 고해성사를 하고 있었으니까.
“···본래 그대들의 기술 수준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의 개입이 없었다면, 지금쯤 인류는 종교의 시대를 넘어 외우주 너머를 탐내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너무 일찍 모습을 드러내고 말았다.”
마치 꿈과 같은 이야기.
몽상가의 헛소리만큼이나 황당한 잡설이다.
이 자리에 있는 어느 누구도 그게 어째서 용서를 빌어야 할 정도의 잘못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상대의 감정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있는, 나만을 제외하고는···.
“그건 무지한 고대인들을 속였단 의미인가?”
“그렇다. 막 문명을 쌓아올린 너희에게, 빛과 함께 하늘에서 나타난 우리들은··· 그야말로 구체적인 신앙의 상징이 되기에 충분했으니.”
표류자가 빌린 육체의 손끝이 떨린다.
움직이는 그림은 이제 하늘을 향해 절을 하는 행렬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이제야 좀 알겠군.
이렇게 해서 숭배의 대상이 정해지고 말았던 것인가?
“···너희가 아스트랄이라 부르는 차원의 침략자들은··· 지적 생물체의 약한 마음을 비집고 들어온다. 그리고 원시적 신앙은 경외를 기반으로 하지. 미지에 대한 두려움이··· 아스트랄을 불러들이고 말았다. 결과적으로 우리로 인해 너희가···.”
하지만 몰락한 신의 말로는 비참하기 짝이 없었다.
비록 인간과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의 시간을 살아갈 수 있던 그들조차···.
결국 수명의 한계가 존재하는 한낱 생물에 불과했기에.
그렇기에 최후의 순간을 앞둔 자는 자존심을 내려놓았다.
표류자가 진정으로 바라는 길은, 이미 미련이나 고집 따위가 아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평온과는 거리가 멀어, 천국이란 보상을 위해 고개를 숙이는 인간의 사죄와도 사뭇 달랐다.
‘아니, 이건 달관이 아니다. 어째서냐? 머지않아 눈을 감는 다는 걸 알면서··· 왜 너는 나에게서 희망을 보고 있는 거지?’
정신감응은 일방적이다.
어중간한 이 능력으론 표류자의 감정을 전부를 읽을 순 없다.
특히 내가 경험해본 적이 없는 마음에 대해서 온전하게 공감하기 힘들다.
그러나 나는 미약하게나마 이것을 안다.
그건··· 내가 아버지로서 아델에게 품었던 어떤 기대였다.
그 아이가 태어났을 때, 나는 앞으로의 인생을 전부 자식을 위해 쓸 것이라 다짐했지.
그리고 지금··· 표류자는 그 감정과 아주 닮은 파동을 보내오고 있었다.
“쿨럭!”
갑자기 앙리가 고개를 숙임과 동시에 각혈을 이었다.
핏물에 덩어리가 섞인 게 보여, 이제는 정말 위험한 상황이었다.
1분 1초가 아슬아슬하군.
전해져오는 고통의 강도도 점점 올라간다.
진짜 최후가 다가오고 있었다.
표류자는 그제 서야 가장 중요한 볼일은 내뱉었다.
“···이제 와서 용서받을 생각을 없다. 그러나 그릇의 자격을 갖춘 자여. 부탁이다. 받아 다오. 나의 유지, 우리의 유산을···.”
“유산 이라고?”
“나는 지쳤다. 너무도 오랫동안 고독하게 싸웠고, 홀로 방황했다. 하지만 결코 포기하진 않을 것이다. 지금 비로소, 그대가 내 앞에 당도하였으니.”
나는 아직 이들을, 별 너머의 존재가 저지른 죄의 전말을 알지 못한다.
솔직히 말하자면···.
가슴 한편에 두려움이 머무는 한편, 인류의 역사와 외계의 기술에 대해 너무나 강렬한 흥미가 끓어오른다.
더 알고 싶었다.
여유만 허락된다면 표류자에게 더 많은 이야기를 듣길 바랐다.
이런 내 마음을 알았는지, 나보다 앞선 정신감응 능력을 가진 상대가 위로의 말을 건넸다.
“···나도 아쉬운 마음이다. 좀 더 일찍 만났다면 좋았을 것을. 그랬다면 그대들과 함께···.”
안다.
이것은 나만의 이기적인 욕심일 뿐이라는 걸.
고집피울 시간이 없다.
앙리의 목숨도, 표류자의 남은 생명도 결코 외면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외계의 전사는 이미 죽음을 각오하며 내게로 손을 내밀고 있었기에.
나는 그것을 부여잡았다.
그러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표류자는 앙리의 얼굴로 미소를 지어보였다.
“···고맙다.”
언어는 가끔 무력하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우리는 영겁의 시간과 머나먼 공간을 넘어서 교감할 수 있었다.
상대는 나에게 마음을 통해 어떤 정보를 전달해왔다.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그릇의 의미를.
나에게 전하려는 별 너머의 유산에 대해서.
그것은 오직 나만이 건네받을 수 있는···.
섬에서 건너온 민족에게만 허락된 무엇인가였다.
“앙리여!”
표류자가 연결을 끊자마자 여인의 몸은 실이 풀린 인형처럼 머리부터 바닥에 떨어졌다.
대스승 베누다와 두 제자가 서둘러 쓰러진 앙리를 부축하는 사이···.
죽어가는 외계의 방문자는 말라붙기 시작한 촉수 몇 다발을 내게로 건넸다.
“더 이상 끌 필요 없다. 어서··· 해라!”
그리고 마지막 순간까지, 표류자는 나에게 용서를 빌었다.
“···컥!”
무슨 일이 벌어질 줄은 이미 알았다.
익히 경험도 있었다.
한 번은 오른쪽 눈깔에 몽마의 벌레를 이식받았었지.
단, 이번엔 반대쪽이다.
그리고 파고 드는 구멍이 좀 더 많다.
양쪽 귀.
왼편 안구.
코.
그리고 입 속까지···.
그 곳들을 통해 표류자의 신경다발이 나의 몸속으로 흘러들어오기 시작했다.
9.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눈을 뜨자, 레이가 바로 앞에서 뭔가를 말하고 있었다.
그녀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군.
모습은 보이지만, 귓가에는 그 어떤 울림도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소리는 분명 들려오고 있었다.
<현시점으로 이 배의 관리자 권한은 그대에게 완전히 귀속되었다.>
뭐지?
머릿속으로 직접 전해져오는 이 기묘한 감각은?
나는 그것에 답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도무지 방법을 몰라 입만 뻐끔거릴 뿐이었다.
<대꾸할 필요는 없다. 이것은 사념死念이다. 육체를 잃은 내가 막바지에 보낸 넋두리에 불과하지. 죽음을 기리는 너희 종족의 관념을 빌리자면··· 이것은 유언이라 할 수 있겠다.>
역시 표류자인가?
조금 전보다 감정적이지만, 역시나 앙리의 목소리를 닮았다.
어쩌면 그녀와 이어져있을 때 뽑아낸 정보를 통해 흉내라도 내본 것일까?
<인자의 전송은 무사히 완료했다. 영장류의 두뇌 구조와 용량의 문제로, 모든 기억과 정보를 보내진 못했지만··· 필요한 것은 충분히 남겼다고 판단한다. 잠시 후, 나의 의식은 너라는 개체의 자아를 유지시키기 위해 곧 사라질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이것은 빙 둘러서 말하는 이별인사였다.
나는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천장의 점막에서 떨어진 표류자의 모습을 확인했다.
좀 전까지 끈기가 있던 피부가 뒤틀려있어, 오히려 몸체에 균열이 가 있었다.
당연하지만, 생명의 기운은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마지막까지 쌀쌀맞은 녀석이었군.”
감각이 안정된 모양인지, 다시금 주변의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대스승 베누다는 섭섭한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그래도 몇 주나 함께 했는데, 작별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다니.”
한 달간 함께 머물며 정이라도 들었던 것일까?
그는 시신에서 고개를 돌려버렸다.
<···그에게 몇 마디를 전해주겠나?>
얼마든지.
<이 별에 불시착하기 전까지, 나는 그대들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시간을 헤매었다. 그런 나에게, 그는 억지를 부리며 무리하게 소통하려 했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무례하고 끔찍한 인간이었지. 특히, 나는 그의 체취가 이별의 유독한 악취보다도 견디기 힘들었다.>
나는 부탁대로 그 전언을 대스승 베누다에게 그대로 전했다.
가히 악담이라 할 수 있는 부분까지 듣자, 그는 헛웃음을 지었다.
“놀랍구만. 그녀는 애송이··· 네 녀석의 안에 남은 거로군. 그런데 볼수록 기가 막힌 짓거리다. 죽은 뒤에 농담도 할 수 있다니. 대체 어떻게 되먹은 녀석인지···.”
“···덧붙여 그녀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동시에 이상할 정도로 정이 넘쳤다고. 그건 표류자인 자신이 오래도록 잊고 있었던 감정이었다, 라고 말입니다.”
“흠.”
“마지막까지 들으시겠습니까?”
“읊어봐라.”
“신세를 졌다.”
그리고···.
푸른 별의 친구여, 안녕히.
“···쳇, 안하는 것만 못하군. 낯이 뜨거워서 말문이 다 막힌다.”
솔직하게 털어놓지 않는다.
그는 최대한 무게를 잡았지만, 그 본성은 나이 값을 못하는 늙은이였다.
애써 고개를 돌린 대스승 베누다는, 대변자 역할을 훌륭히 수행한 자신의 제자의 상태를 살폈다.
···다행히 앙리는 아직 살아있군.
굉장히 지친 모양이지만, 적어도 대스승의 부름에 답할 정도는 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녀가 안정을 누릴 수 있을 만큼 상황이 좋지는 못했다.
<그대, 그릇이 된 자여. 서둘러라.>
쿠과앙!
바깥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지하 깊숙한 곳에 있는 우리들조차 느낄 수 있을 정도의 충격이 전해져온다.
<나의 죽음으로 방어 시스템이 작동을 멈췄다. 지면에 걸쳐진 배의 균형도 머지않아 기울어지겠지.>
재차 유성의 내부가 흔들리자, 표류자의 의식이 나를 재촉하기 시작했다.
<움직여라. 당장 나의 유해에게로 향하라.>
이제 와서 뭘 망설이겠는가?
까짓 거 해주지.
그래서 내가 뭘 하면 되지?
<손을, 내 육신이 에테르로 환원되기 전에 어서!>
나는 당장 그 지시를 따랐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손바닥이 시신에게 닿음과 동시에, 그것은 푸른빛을 발했다.
<기원하라. 너의 정신을 담아 결정체를 만드는 거다.>
계속해서 표류자의 사념이 내게 지시한다.
그 요구가 무엇을 요구하는 지는, 대충이나마 알 수 있었다.
나는 가슴의 균열에서 ‘이븐 가지의 분말’을 끌어냈다.
그럴수록 빛의 강도는 강해져, 마치 가루를 모조리 빨아들일 기세로 발광했다.
레이가 경악했지만, 나는 행동을 멈추지 않았다.
<내 의지는 그대 안에서, 그리고 나의 몸을 이루던 원소들은 그대의 손아귀에 남을 지니.>
나는 비로소 ‘유성의 파편’이 어떻게 해서 만들어지는 지 알 수 있었다.
일종의 정련精鍊.
가장 깊숙한 곳에서부터 끓어오르는 감정이··· 현실과 비현실을 이어주는 가루와 뒤섞여 어떤 형상을 갖추기 시작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표류자의 몸은 내가 쥐기 가장 적합한 모습으로 변했다.
마치 생물의 일부를 닮은 기괴한 모양새의 납작한 반월 칼날···.
이윽고 모든 부위가 푸르스름한 빛깔을 머금은 금속질의 무기가 탄생했다.
두 말할 필요도 없어, 그것은 평소에도 내가 애용하던 양손 도끼였다.
<···투박하다. 하지만 올곧구나. 그게 네가 가진 마음의 형태인가?>
부정할 수가 없다.
이 흉포한 날붙이야말로, 내 가슴 속에 내제된 응어리 그 자체라는 사실을.
복수를 맹세한 그 순간부터 뇌리에 박힌 정체성을···.
<다음은 이탈을 준비하라. 이 배를 안전한 곳까지 옮길 테니.>
그런 게 가능한가?
아깐 동력이 떨어졌다고 들은 것 같은데?
<긴급 상황에 대비해 비축한 힘이 남아있다. 이 별을 비추는 항성에게서 조금이나마 빌렸지.>
그거 좋은 소식이군.
<앞으로 한 번뿐이라면, 너희를 지상까지 안내하기엔 충분···할 것···이다.>
목소리가 흐려진다.
표류자가 남긴 사념도 이제 머지않아 사라질 것 같았다.
이어서 표류자의 의식은 무리한 요구를 전했다.
<충격에 대비···하도록.>
직후, 바닥으로부터 가공할 진동이 올라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