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헥센야크트-75화 (75/186)

유성의 장(6)

7.

하늘과 별, 그리고 우주를 보라.

그것은 잊을 수 없는 악몽의 주문이었다.

기억 속에서 클라리스가 속삭인다.

허물어지는 마을을 내려다보며 그 공허한 시선이 저절로 떠올랐다.

“어떻게··· 그걸?”

내 물음에 외계의 손님은 앙리의 육신을 빌어 고개를 들었다.

“먼 옛날, 이 가르침을 너희 종족에게 전한 것이 바로 우리였기에.”

대답이 되질 못한다.

이 녀석의 말에는 생략된 것이 지나치게 많아, 이딴 식으로 들어봐야 이해를 할 수가 없다.

좀 더 자세히 말해, 그렇게 나는 고함을 지르고 말았을 것이다.

직후 대스승이 중재에 나서지 않았다면···.

“워, 진정해라. 그녀와 우리 사이에는 몇 마디로 메꿀 수 없는 지식의 벽이 있으니까. ···그래도 공주, 가능하면 이 무식한 애송이가 알아 들을 수 있게 말해주겠나?”

“노력해보겠다.”

“그럼 부탁하지. 겨우 그대가 원하는 조건을 갖추었으니, 지금껏 숨겨왔던 이야기를 전부 털어놔 다오.”

“안타깝게도 그럴 시간은 없다.”

“뭣이?”

“지금 이 순간부터, 나와 소통을 하는 개체는 이 사내에 대해서만 한정하도록 하겠다.”

“빅터 랑만 대화 하시겠다? 매정하군. 그 동안 돌봐준 나는 이제 안중에도 없단 건가?” “···친구여, 너에겐 감사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시간이 없다.”

그리고 잠시 동안의 침묵.

하지만 그것은 대스승 베누다의 시시한 농담 때문이 아니었다.

이 신비한 세계의 방문자에게도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던 것일까?

그로부터 십 수초 후에, 스스로를 표류자라 밝힌 존재는 다시 말을 이었다.

“···보다시피, 나는 이 개체의 연산기관을 통해 얻어낸 언어로 말할 수밖에 없다. 너희의 발성기관으론 나의 뜻을 모두 전하지 못하겠지만··· 부디 들어주길 바란다.”

나에게 질문을 허락하지 않는다.

일방적으로 설명 할 셈이었다.

그리고 거기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내 목숨은 머잖아 종말을 고한다.”

“뭐라고?”

대스승 베누다가 크게 놀랐지만, 유성의 주인은 담담한 어조로 그 사연을 설명했다.

“내 몸은 부상당했다. 거기다 이 별의 유독한 대기에 노출 당했지. 추락할 때 생명을 유지시키는 장치가 파손되었어, 이 별의 기술력으로는 수리가 불가능하다. 그러니··· 지금부터는 중요한 정보만을 최우선으로 너희에게 전하겠다.”

지금껏 이런 반응은 처음이었는지, 지켜보던 대스승 베누다까지 놀랄 정도였다.

“미안하다. 내 사정에 너희까지 휘말리게 만든 것에 대해서 사과하지. 허나 지금은 내 말에 귀를 기울여주길.”

각오가 담긴 한 마디를 증명하듯, 천장에 매달린 육체의 피부에 조금씩 기포가 일어나고 있었다.

공기를 차단하고 있던 막 같은 것도 이젠 보이지 않았다.

죽음을 각오한 자의 숙연한 기운이 풍겨온다.

상대는 그만큼 간절한 감정을 뿜어내고 있었다.

“우선··· 내가 죽으면 이 배를 보호하는 파동이 사라진다. 그러면 너희가 이 장소에 머무는 게 위험해지겠지. 바깥에는 그것의 권속들이 호시탐탐 기회만을 노리고 있을 테니까.”

“그···것?”

“그대들이 아스트랄이라 부르는 다른 차원의 침략자이다.”

또 다시 예기치 못한 이름이다.

차원?

침략자라고?

이 별과 동 떨어진 곳에서 방문한 이가, 어째서 그 존재를 알고 있는 것일까?

곧 그 이유는 드러났다.

표류자는 일순간 자신의 고통마저 넘어설 정도의 분노를 목소리에 담았다.

“애초에 이 우주에서 놈들이 맨 먼저 노린 것은 우리들이었다. 놈들에게 대해선 충분한 시간을 들여 설명해주고 싶지만··· 안타깝게도 너희는 들어도 그 원리조차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이것만은 알아다오. 우리는 세계를 침식하려는 적에 맞서 싸웠고, 너희 종이 출현하기도 이전··· 태고적 시절부터 오래도록 대치해왔다는 걸.”

“태고···?”

“너희의 시간관념으로는 약 3억 7천 만 년 전이라 할 수 있다.”

“잠깐··· 그건 교단에서 말하는 천지창조보다 훨씬 아득한 과거 아닌가? 그보다 모르는 개념이 너무 많아. 내 굳은 머리론 도통 무슨 말인지 알 수가···.”

대스승 베누다는 이 자리에 내가 아니라 대스승 크레이그나 알베르트가 있었어야 했다며 미간을 찌푸렸다.

하지만 상대는 우리의 사정을 기다리지 않았다.

“그대를 납득시킬 증거와 논리는 충분하지만, 설명할 시간이 부족하다.”

“···알겠다. 계속 말해다오.”

“거두절미하고 결과만 이야기하겠다. 그 긴 싸움 끝에··· 우리는 패배했다.”

우리는 말문을 잃었다.

마기를 원천 차단하는 기술, 하늘을 넘어 별의 바다마저 건널 수 있는 힘을 지닌 존재들이··· 도대체 어떻게 하면 질 수 있는가하고.

“오만했던 탓이었다. 당시의 우리는 유일무이한 고등한 지적생물체, 우주의 지배자를 자처했지. 놈들은 그 맹점을 노렸다. 오랜 시간에 거쳐서 우리의 정신체를 좀 먹어갔지. 모든 개체가 서로를 이해하며 더불어 살아가던 통일된 사고에··· 마계의 광기가 스며들었다. 멀리 떨어져있거나 가까스로 접속에서 끊어진 개체를 제외하곤, 모두가 미쳐버리고 말았지.”

“···제물로 바쳐진 건가?”

“너희의 단어를 빌린다면··· 그것이 정확한 표현이다.”

혼란이 가중됐다.

숨이 막히고 식은땀이 난다.

‘벽’ 안으로 들어온 직후부터, 나는 평범한 인간의 인생이 송두리째 흔들릴 지도 모르는 광경은 연달아 목격했어.

사람이 받아들일 수 있는 지식에 한계가 있다고 한다면, 나는 지금 그것을 느끼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고작 서막에 불과했다.

이어서 표류자가 들려주는 진실이란, 더욱 더 기이하고 무시무시한 것이었으니.

“그 후로 전장에서 이탈한 소수의 동족들은 에테르의 바다를 떠돌며 은하의 경계를 모조리 뒤졌다. 희망을 찾기 위해···.”

길었어, 아득할 정도로 긴 세월이었다··· 라고.

이어서 고독과 허무감이 엄습한다.

영겁의 시간동안 고립된 자만이 알 수 있는 막막한 감정이 그대로 전해져왔다.

“하지만 겨우 발견했지. 우리의 유지를 이어서 놈들과 싸울 수 있는 지성체를.”

“그게 바로 우리라고?”

“엄밀히는 3만 년 전의··· 겨우 문명의 첫 발을 내디딘 너희 종족의 선조였다.”

그때, 표류자는 촉수 하나를 뻗어 허공을 그었다.

그러자 아무 것도 없던 코앞에 빛나는 무언가가 생겨났다.

“이것은 내 동족이 보내온 자료이다.”

그림?

아니, 움직인다.

현실의 모습을 그대로 투영한 듯 완벽한 화면이 물 흐르듯 지나가고 있었다.

거기엔 무수한 작은 인간들이 보인다.

피혁을 몸에 아무렇게나 걸친, 다소 투박한 생김새의 사람들이었다.

“우리는 그대들과 접촉했다. 한 시라도 빨리, 놈들과 대항할 수 있는 무력을 갖출 수 있게 하기 위해서. 다행히 그대들은 우리를 섬겼지. 경외하며 신앙까지 가지기도 했을 정도로.”

“너희는··· 신이었나?”

그리고 이건 마법··· 아니, 기적인가?

하지만 내가 의문을 떠올림과 동시에, 상대는 격하다 싶을 정도로 반응했다.

마치 내 머릿속을 들여다본 것만 같이···.

“절대로 아니다. 그 생각을 고치도록.”

불편한 기색이 다분해 보여, 그것은 의도적인 부정이었다.

“의심하라. 아무리 신기해 보인다 해도 이것은 단지 편의에 따라 만들어낸 허상에 불과할 지니. 어차피 머지않은 미래, 너희 종족은 곧 이를 깨달게 된다. 머리가 여문 선지자가 말할 것이다. ‘충분히 발달한 과학 기술은 마법과 구별할 수 없다’라고. 그러니 부디··· 제발 이성을 버리지 말아다오.”

간절한 부탁이었다.

미지와 무지에 휘둘려 생각하길 포기하지 말라는 단호한 의사였다.

이는 클라리스가 나에게 건넸던 가르침과 다르지 않았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상대가 무엇을 보여주더라도, 그것을 받아들이겠다고 강하게 마음먹었다.

그러자 그림 속의 풍경은 시시각각으로 교체되기 시작했다.

시대가 흐른다.

복장이 달라진다.

인종이 변한다.

건축물의 완성도가 높아지는 과정이 그대로 드러났다.

인간은 성장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곁에는 그들이 있었다.

하늘을 가득 매운 유성의 배가···.

“···이처럼 한 때나마 우리는 공존했다. 우리가 지혜를 전하면, 너희는 그걸 받아들이며 순식간에 문명을 발달시켰지. 그러나···.”

시대의 흐름을 그대로 비추더니, 이윽고 붉은 빛깔의 어떤 참혹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대들은 너무나 호전적인 종족이었다.”

전쟁이다.

그것은 피와 불꽃이었다.

움직이는 그림 속에는··· 타들어가는 홍련의 화마와 흩뿌려진 혈흔들로 가득했다.

“자연에 위협을 받지 않을 만큼의 힘을 얻은 시점부터 너희들은 같은 종을 노리기 시작했다. 한도 없이, 계속해서 서로를 약탈했지.”

그리고 그것은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다.

오히려 심해졌을 지도 모른다.

그것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눈앞의 광경은 무기의 발전에 따라 더 많은 희생자를 묘사하고 있었다.

“왜··· 살육을 막지 않았지?”

차라리 그랬으면 좋지 않을까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들의 초월적인 힘이라면, 인간을 바른 길로 인도할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고.

하지만 표류자에겐 이유가 있었다.

이만한 폭력성과 비극을 낳았음에도, 그들은 우리를 경멸하지 않았던 것이다.

오히려 가엾게만 여기고 있었다.

“절대적 존재의 억지력은 너희 종의 자립을 해치고 만다. 이만큼이나 개입해놓고 무슨 소리인가 싶겠지만··· 분쟁은 지적 생물체가 반드시 거칠 수밖에 없는 과정이다. ···또한 모든 개체에게 공감하는 힘이 있는 우리와는 달리, 너희는 상대의 마음을 간파하는 정신이 충분히 성숙하지 못했다. 그래서 몇몇 동족은 너희에게 실망하고, 기대를 버렸지. 모두가 이 별을 떠났을 것이다. 원래대로라면···.”

“하지만 관여했던 거군?”

“···그랬다. 어떤 동족이 몇 가지 수를 냈다. 그 중 하나는 너희 중 일부에게 우리의 힘을 일부 넘겨주는 것이었지. 바로··· 타인과 감정을 공유하는 능력을.”

설마···.

“그 실험은 섬에 고립된 한 민족을 대상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

“그것이 바로 그대의 먼 혈족이다. 그릇의 자격을 갖춘 이여.”

나의 사고는 멋대로 떠올리고 싶지 않은 것을 끄집어낸다.

싫어도 짐작이 가는 것이 있었다.

섬의 민족.

라비나, 그리고 나의 어머니가···.

‘그랬던 건가? 이 저주스런 힘의 뿌리는··· 바로 이들로 하여금 비롯된 것이었나?’

전말은 알겠다.

그러나 납득하지 못하겠다.

표류자가 고작 내 태생의 비밀 따윌 알려주기 위해 목숨을 걸었을 거란 생각은 들지 않아.

뭔가 더 깊은 사정이 있을 게 틀림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별에서 온 방문자는 이어서 가장 중요한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마지막으로··· 나는 우리 종족을 대표해 너희에게 두 가지 잘못을 사죄해야만 한다. 이 별에 살고 있는 모든 생물에게 용서를 구해야 해.”

가공할 죄의식이 느껴졌다.

일말의 거짓도 없는 순수한 참회였다.

심지어 앙리의 육체는 눈물까지 흘리기 시작했다.

그리곤 눈앞의 뭔가를 거머쥐려는 듯 필사적으로 손을 뻗었다.

“너희를 그것들에게 노출시킨 건 전적으로 우리의 탓이다. 모성이··· 나의 종족이 패배했기에, 이 별까지 놈들의 마수가···.”

말투는 무뚝뚝했지만, 그 안에 담긴 마음은 분함과 애통함이었다.

그런데 이 시점에서 대스승 베누다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대충 알겠군. 아스트랄이 우리가 사는 별에 눈독을 들인 게 당신네들의 잘못이라는 건가?”

심상찮은 일임을 직감했는지, 그는 요점을 파고드는 질문을 이었다.

“그럼 또 하나의 죄란 무엇을 말하는 거지?”

“그건···.”

그때였다.

사방이 흔들린 것은.

유성의 내부에까지 전해질 정도의 강한 충격이었다.

“문제가 생겼다.”

“뭐라고? 공주님, 이건 당신이 한 게 아닌가?”

“···이 배의 동력이 떨어지기 시작한 탓에 더 이상 외부를 차단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래서 놈들의 권속이 세력권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대스승 베누다와 나는 거의 동시에, 같은 질문을 건넸다.

동력이란 무얼 말하는 거지?

그러자 표류자는 잠시 고개를 위로 향하더니.

“···나와 접촉한 이 개체와의 연결을 끊도록 하겠다.”

“뭐?”

“이대로라면 그녀의 뇌는 돌이키질 못할 정도로 녹아버리고 말테니.”

과장이 아닌지, 앙리의 코과 귓가에서는 검붉은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천장에 매달린 표류자의 본체는 그녀의 뒤통수에서 촉수의 신경다발을 뽑아들려 했다.

그런데···.

“대스승시여! 아직··· 저는 아직 괜찮습니다.”

“앙리···!”

그녀는 자신의 머릿속과 연결된 것을 고정했다.

“할 수 있습니다. 아니, 하게 해주십시오. 이 분과 연결된 저조차도 이 뒤의 이야기를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는 알아야만 합니다. 이것은 아주 중요한···.”

“···네가 고집을 다 부리다니. 좋다. 그렇다면 부탁하마. 조금만 더 견뎌다오.”

“맡겨 주십시··· 아흑!”

다시금 경련, 허나 이번엔 얼굴의 모든 구멍에서 출혈이 일어났다.

결코 적은 양이 아니다.

누가 봐도 위험한 상태다.

하지만 대스승 베누다는 내 어깨를 잡고 막아섰다.

그는 입술 사이가 찢어질 정도로 이를 악물고 있었다.

“···이 개체의 용기에 나는 경의를 표한다. 그렇기에 못 다한 말을 서둘러 마치겠다.”

“그래, 어서 지껄여보아라.”

“인류에게 지은 또 하나의 죄. 그것은··· 우리가 너희를 손쉽게 다루기 위해 거짓을 전했단 사실이다.”

뿌득.

또 수수께끼 따먹기냐?

이 급박한 순간까지 꾸며낸 소릴 하는건가?

나는 고함치려 했다.

하지만 여기서 나보다 앞서 폭발한 것은 대스승 베누다 쪽이었다.

“어려운 소리는 그만해라!”

인정하긴 싫지만, 역시나 그는 나와 같은 다혈질이었다.

“알아듣게 설명하란 말이다!”

“···우리는 신을 자처했다. 존재하지 않는 절대적 존재의 이름을 빌렸다. 너희들의 신앙을 이용해 미래로 나아가는 길을 막고 말았다.”

“대체 뭐라는 거냐?!”

“하늘을 보라. 별을 보라. 우주를 보라. 지혜는 저 너머에서···.”

“앙리, 정신 차려라! 앙리!”

“미안해. 미안하다. 궁지에 몰린 우리가 돌이킬 수 없는 과오를 저지르고 말았다.”

그 뒤는 사과뿐이었다.

이윽고 앙리의 몸이 요동치기 시작해, 대스승 베누다가 달려들어 억지로 그녀와 이어진 선들을 집어 뜯었다.

허나, 연결이 끊어지는 마지막 순간까지··· 표류자는 경악스런 이야기를 멈추지 않았다.

“놈들에게 너희를 바친 것은 다름 아닌 우리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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