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연의 장(6)
6.
대스승과 레이는 마기의 흔적을 찾아 사방을 수색했다.
그들과 달리,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나는 두 사람을 놓치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할 수밖에 없었다.
끝없이 발을 움직이고, 육체를 한계까지 몰아붙였다.
그 과정에서 뒤늦은 의문이 들었다.
마녀란 무엇인가?
나는 어째서 그들을 찾아내 죽이려 하는가?
대스승은 말했다.
그것들은 물리법칙을 부정하는 존재를 섬기는 마의 권속이라고.
인류의 배신자···.
저편에 사는 자들에게 세상을 팔아넘기려 하는 변절자들이라고도 했다.
허나 그 이상은 이야기해주지 않았다.
알아야 할 때가 아니라며 가르쳐주지 않았다.
자세한 사정은 모른다.
그들 중 하나인 클라리스와 10년 가까이 지낸 나조차도 그 이유를 짐작조차 못하고 있으니까.
당장 내가 아는 사실은 단 하나뿐이다.
어떤 연유에서든 클라리스는 나를 배신했다는 것이다.
고향을 멸망시키고 가족들을 내 눈앞에서 짓이겼다.
‘제물. 차원 너머에 사는 어떤 거대한 존재에게 인간을 먹이로 바치는 의식···.’
내가 단지 살아난 것은 우연인가?
대스승은 아니라고 했다.
그것은 내가 끝내 미치지 못했기 때문에, 모든 걸 내다버리기엔 너무나 이성적이었을 뿐이라 설명했지.
부조리에 분노하는 것은 인간에게 그것을 판단할 능력이 있기 때문이라고?
증오를 가지는 것 또한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상실감에 비례해 사람의 다정함을 반증하는 것이라고?
정말로 그런가?
이제와선 확인할 길이 없다.
과거의 선택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어떤 희생이라도 치루고 싶었다.
내 하찮은 목숨을 바쳐 아내와 딸을 살릴 수 있다면··· 어떤 짓이든 할 각오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때, 나는 망설이고 말았어.’
대스승이 어린 마녀를 죽이려 했을 때, 나는 스스로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분명 클라리스는 마녀다.
그리고 나는 클라리스를 증오한다.
그렇다면 다른 마녀까지도 미워해야 하는가?
내 딸을 떠올리게끔 만드는 외모의 아이마저 죽여 가면서까지?
‘멍청한 놈··· 대스승은 은인이다. 그들 덕분에 나는 복수할 힘을 기를 기회를 얻은 것이다. 그런데 어째서···.’
대스승은 내가 강하다고 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마녀가 사악한 존재이며 인지를 초월하는 무엇인가라는 건 충분히 이해했다.
내버려두면 나와 같이 비참한 희생자가 늘어난단 것도 충분히 잘 알았다.
그러나··· 아무래도 나는 직접적으로 원한이 없는 상대에게까지 분노를 불태울 수 있는 인간이 아닌 모양이었다.
미워하고 싶어도, 피부에 와닿지 않으면 진심으로 그럴 수가 없다.
오히려 대스승이나 레이 쪽이 신기할 정도다.
그들은 생판 처음 본 아이를 베어 죽일 수 있다.
비록 그것이 흉측한 본성을 숨긴 마물이라 할지라도, 단지 마녀란 이유만으로도 살의를 품는다.
심지어 대스승은 그 행위에 희열을 느낀다고 했다.
아니, 내가 보기에 그들은 오직 그걸 위해서만 살아가는 듯 보였다.
어떤 의미에선 두려움마저 느껴져, 내가 이 광기에 휘말릴까 자연스레 거부감이 생긴다.
알 수가 없다.
나는 망설이고, 또 주저한다.
스스로를 돌이켜보아도 답답하기 그지 없다.
레이가 나를 가리켜 답답하기만 한 덩치라 부르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런데 나의 이런 일면을··· 대스승은 왜 ‘자질’이라고 부르는 것일까?
어째서 내가 더 강해질 것이라고 격려하는 거지?
나는 그때만 해도 알지 못했다.
대스승이 나에게 품은 진짜 기대··· 그리고 나 자신이 가진 진짜 힘에 대해서.
허나, 그 수수께끼는 금방 풀렸다.
그것은 나의 상상 이상으로 슬프면서도 가혹한 길이었다.
7.
어둠이 내린 숲은 결계가 없어도 여전히 공포의 세계였다.
의지할 수 있는 광원은 오직 달빛 뿐···.
차가운 밤공기가, 저 멀리서 들려오는 짐승들의 오싹한 울음소리가 몸과 마음에 한기를 품게 만들었다.
나와 동행하는 저 두 사람은 정말로 사람인가?
이런 환경에서도 거침없이 마의 흔적은 쫓아가고 있다.
마치 사냥개, 혹은 그보다 위험한 맹수가 먹잇감을 찾듯이 말이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회색 털을 가진 늑대들이 인간으로 둔갑하여 나를 홀린 것이 아닐까 하고···.
‘같잖은 소리, 몸이 지쳐서 정신까지 나가버렸나?’
내 우스운 망상이 들킨 것인가?
갑자기 대스승은 다리를 멈추더니.
“···이해할 수 없군. 여기까지 와서 포기라도 했나?”
“낌새가 이상합니다, 대스승.”
“허나 살기도 없다.”
“함정일 가능성은?”
“내 경험상으로 미뤄볼 때··· 그럴 가능성은 드물 것 같구나.”
두 사람은 내가 모르는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나만이 볼 수 없는 뭔가를 주시하며 살피는 듯 보였다.
“무슨 일이 벌어지는 겁니까?”
“그래, 자네도 아는 게 좋겠지. 또 돌발행동을 하면 곤란하니까 말이야.”
이 와중에도 대스승은 농담처럼 웃어보였다.
거기다 이때를 노리고 레이도 한 마디 거들었다.
“쓸데없는 짓만 하지 마라. 네 뒤처리 때문에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니까.”
그간 나한테 잔소리를 하고 싶어서 참고 있었던 모양이군.
긴장을 풀 상황처럼은 보이지 않는데 ···.
대스승도 그걸 알았는지 레이를 만류한다.
“조용히 하거라. 그보다 긴장을 놓지 말도록. ···봐라, 저쪽에서 먼저 접촉해올 셈이다. 이 이상 달아나봐야 의미가 없단 걸 깨달은 모양이군.”
우거진 나무들 사이로 그림자가 일렁인다.
그것은 천천히 어떤 형상을 갖추더니, 이윽고 사람의 실루엣으로 변했다.
어둠 속에서 누군가가 걸어 나온다.
그것은 젊은 외모의 여성이었다.
“···사냥꾼들이여, 청할 것이 있습니다.”
청아한 목소리와 함께 엷은 빛깔의 금발이 찰랑인다.
다소곳한 태도, 두 눈을 부드럽게 감은 얼굴···.
그녀는 검은 원피스를 입고 있어, 치맛자락이 땅바닥에 질질 끌릴 정도라 다리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생김새든, 복장이든 어느 것 하나 이 장소와는 어울리지 않는 여자였다.
분명 미인이었지만, 비현실적인 아름다움 탓에 오히려 꺼림칙함이 느껴졌다.
“잠시만이라도 좋으니, 제 이야기를 들어주시겠습니까?”
상대는 고개를 숙이며 예의를 보인다.
정황상 마녀임이 틀림없을 터인데, 신기하게도 그 움직임에서 적의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대스승은 그 제안에 피식 웃었다.
“유언 정도라면 들어주도록 하지. 네 년의 숨통을 끊기 전에 말이야.”
타협의 여지는 없다.
그는 어떤 낯선 자라도, 그게 마녀라면 얼마든지 망설이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여자는 잠깐 침묵하더니, 곧 무거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저를 쫓는 것은 헛수고입니다. 제 본체는 이 숲에 없으니까. 저는 사역마의 몸을 빌려 잠시 이 자리에 나타난 것에 불과합니다.”
“호? 그건 또 재미있는 재주로군. 하지만 그런다고 우리가 널 죽이지 못할 것 같은가? 그렇게 말하면 번거롭고 귀찮아서 포기할 거라 생각했나?”
“아뇨, 댁들이라면 가능하겠지요. 충분히 며칠 내에 저의 소재지를 찾아내서··· 기어이 이 목을 치겠죠. 하지만 당장 그것만은 참아주시길. 저는 꼭 살아남아야 할 이유가 있으니까요.”
상대는 어떻게든 대스승을 설득하려했다.
“그렇기에 여러분과의 대화를 원합니다. 그에 맞는 대가를 충분히 드리겠습니다.”
“우리와 거래를 하자는 말인가?”
“예.”
“건방진 년 같으니, 거물인 척 흉내를 내고 있군.”
“설마요, 학살자 크레이그. 가장 오래도록 마녀를 사냥해온 5인의 대스승 중 한명···. 당신의 악명은 우리들 사이에서 유명합니다. 저따위가 대항해봐야 결과는 뻔하겠죠.”
“마녀들에게 그런 소문통 따위가 있었나? 허나 그런 인기는 필요 없다만?”
“분신을 통해 이렇게 당신과 대면 중이지만, 사실 지금도 손끝이 떨려올 만큼 두렵습니다.”
“큭큭, 말은 잘하는군.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지?”
“가까운 곳에 있는 다른 마녀의 은신처를 알려드리겠습니다. 그러니···.”
“그 대신 네 년은 눈 감아 달라?”
대스승의 비꼼에 마녀는 시선을 피했다.
“그렇게 해서라도 목숨을 부지할 수 있다면···.”
“그렇다면 네 진심을 확인해보지. 이 숲에 나타난 목적과 그 어린 마녀가 달아난 이유를 말해보거라.”
“그 아이는···.”
잠깐 망설이는 기색이 보였지만, 결국 입을 연다.
그만큼 필사적인 상황인 모양이었다.
“그 아이는 마가렛이라는 이름이었습니다. 마기가 부족해져서 정신이 망가진 나머지 그만··· 제 영역에 들어오고 말았습니다. 너무 어린 나이에 마녀가 되고 말았기에 자아가 덜 여문 탓이었죠.”
“그런데?”
“하필 저에게서 제물을 훔쳤습니다. 그 때문에 제가 섬기는 분께서 아주 노하셨어요. 그 화를 풀려면 도둑을 쫓아 대가를 치르게 해야만 했습니다.”
“그렇다면 안됐군. 그 꼬마는 우리가 먼저 처리했다.”
“···알고 있습니다. 결계가 사라진 순간 직감했죠. 결국 제가 헛걸음을 했단 것을.”
대스승은 유쾌하게 웃었다.
그는 마녀의 치부를 비웃듯 실소를 감추지 못했다.
“보거라, 빅터. 이것이 마녀다. 저 년들은 각기 다른 존재를 섬기지. 그렇기에 서로를 미워하고 시기한다. 훔치고 빼앗고, 심지어 죽이기도 하지. 정말로 추한 자들이지 않느냐?”
그러나 악담을 들으면서도 마녀는 여의치 않는 듯 했다.
“어떤 욕을 하셔도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저에겐 반드시 이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믿지 못하시겠지만, 저에게도 지켜야 할 존재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이라면 이 목숨은 얼마든지···.”
마녀는 고개를 숙이면서까지 대스승에게 간청했다.
나는 저 얼굴을 안다.
저 표정은 과거에 클라리스가 아델을 구해줬을 때 지어보인 그 숭고한 표정과 닮아있었다.
대체 무엇을 위해?
마녀는 모두 죽여야만 하는 사악한 존재가 아니었단 말인가?
“마녀, 마녀는···.”
“빅터.”
나는 대스승이 말리기도 전에 고개를 들이밀었다.
그리고 대스승이 말리기도 전에 떠오른 것을 그대로 뱉어냈다.
“너희는 대체 뭐지? 인간이냐? 대화가 가능하다면 너희에게도 마음이란 게 있을 터인데! 대체 왜···.”
“애송이, 대스승이 말씀 중이다! 끼어 들지 마!”
“물러나라, 빅터. 설명은 나중이다.”
그때, 금발의 마녀는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뭔가가 떠오른 듯, 눈을 게슴츠레 뜨더니···.
“빅···터?”
그것은 내 이름이었다.
이어서 마녀는 내가 예상하지 못한 소리를 입에 올렸다.
“아, 당신이 그로군요. 자색의 마녀가 말했던···.”
“···뭐?”
그것은 분명 대스승이 클라리스를 가리키던 이름···.
순간 눈앞이 새빨갛게 변했다.
“결국 마녀 사냥꾼이 되고 말았나요? 정말이지, 이 얼마나 가여운 운명의···.”
가루의 효과가 아직 남은 것인가?
감정이 끓어오른다.
나는 그만 생각을 할 틈도 없이 튀어나갈 뻔 했다.
가까스로 참을 수 있었던 것은, 대스승이 강하게 내 팔을 부여잡았기 때문이었다.
“말해! 당장 클라리스에 대해···!”
“그래요. 말하지 않아도 그럴 생각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여자는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이어서 사악한 본성이 엿보이는 얼굴로, 시기 가득한 목소리를 흘렸다.
“바로 제가 밀고하려는 자가 바로··· 그 자색의 마녀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