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헥센야크트-16화 (16/186)

심연의 장(3)

3.

결계.

나에겐 생소한 단어다.

마치 제물이나 의식, 봉인 등과 같은 주술이 떠오른다.

그 불길한 울림에 나는 대스승에게 되물었다.

“그 또한 마법의 일종입니까?”

“물론이네, 빅터. 그리고 마법이란 속임수이다. 본질을 가리기 위한 장난질에 불과하지.”

대스승은 설명을 이어갔다.

“나는 몇 번인가 자네에게 마기魔氣라는 단어를 언급한 적이 있을 게야.”

“예.”

“이 주변의 대기가 바로 그 마기에 오염되어 있다. 아주 적은 양의··· 자세히 찾지 않으면 눈치 챌 수 없을 만큼 미세하게 흩뿌려져있지. 하지만 농도가 낮은 마기라 해도 일정하게 뿜어져 나온다면··· 그것은 공간을 좀먹게 만들어 먹잇감을 가두고, 외부의 출입을 통제한다. 일종의 차단막이면도 동시에 덫이기도 하지. 마녀란 것들은 하나같이 교활하고 영악해서 언제나 허상 속에 숨어 의도를 속인다.”

가끔 대스승의 설명은 너무 어휘가 난해해서 이해하기 어렵다.

마치 음유시인이랍시고 거들먹거리는 광대들이 운율을 담아 말하듯···.

듣고 나서도 꼭 다시 한 번 머리를 굴리게 만드는 것이다.

허나 어쩌면 이거야말로 그의 노림수였는지도 모른다.

대스승의 교육 방식은 언제나 고민하고 의심하며 생각할 여지를 준다.

“떠올려보라, 빅터여. 자네는 이미 한 번 결계를 몸소 체험했을 터이다.”

“제가 말입니까?”

“그대가 마을을 나서 도움을 청하려 했을 때도, 불을 질러 보이지 않는 미궁을 타파하려 했을 때도··· 전부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고 했지 않나?”

“그럼 그것이···.”

이어서 대스승은 설명했다.

인간의 방향 감각에 대해···.

눈을 감고 열 걸음을 직진한 것만으로도 우리는 중심에서 경로를 벗어난다고.

“결계 속에서 보통 사람은 눈을 뜨고서도 길을 잃는다. 무의식중에 같은 곳을 돌고, 스스로의 행보를 조종당하지. 이건 정신력의 문제가 아니다. 그렇게 밖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당할 수밖에 없어.”

그러면서 자신의 옆머리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더니.

“눈이란 바깥으로 나와 있는 뇌와 다르지 않네. 굉장히 무방비하지. 동시에 항상 허상을 보게 만들고, 정확히 세상을 간파하지 못해. 이처럼 우리는 우리가 보는 세상마저도 의심해야 하는 것이야.”

특히 마녀의 결계 속에선 더욱 그렇지, 라고 대스승은 덧붙였다.

그렇다면 벗어날 방법은 없는가?

평범한 인간은 일방적으로 사악한 마술에 휘둘릴 수밖에 없단 말인가?

그 질문에 대스승은 소리 없이 웃어 보였다.

“물론 맞설 수 있는 방법이 있지. 그것도 아주 무궁무진하다. 자철석을 이용해 방위를 찾아내는 도구가 있거나, 화약을 터뜨려 마기를 흐리게 만들어 결계에 들어가기 전부터 대비하지. 또한 애초에 시각에 의지하지 않도록 수행을 쌓은 자라면 가능하다.”

약간이지만 희망이 생겼다.

역시 마녀 사냥꾼을 자처하는 자···.

지혜만 있다면 어떻게든 맞설 수 있는 거로군.

하지만 대스승은 고개를 젓는다.

고작 그것만으론 마녀를 ‘사냥’할 수 없다고.

“빅터여, 앞서 내가 말한 방법들은 어디까지나 일부일 뿐이다. 그것도 전부 약점이 있는 궁여지책에 불과하지. 우린 그런 불확실한 것에 목숨을 맡기지 않네.”

“더 좋은 수단이 있단 말씀입니까?”

여기서 레이가 끼어들었다.

“멍청하긴! 하여간 둔한 사내네. 아직 그런 것도 아직 눈치 채지 못한 거야?”

내가 대스승과 오래도록 대화하는 것이 어지간히 마음에 안든 모양이군.

그래도 녀석은 자기 나름대로 대답을 해주려 했다.

“우리는 돌파한다. 이 눈이 있으니까.”

“눈이라고?”

“레이 엔쯔이여.”

“네, 대스승.”

“네가 답답한 것도 이해하지만, 그는 아무 것도 모른다네. 배움에는 순서가 있는 법. 한 번에 너무 많은 정보를 건네면 온전히 받아들일 수 없지. 너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지 않느냐? 그 치부를 네 사제에게 말해줘도 괜찮겠는가?”

“···.”

“그러니 너무 뭐라 하지 말거라. 선배를 자청한다면 그만한 모범 또한 보여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과제를 주마.”

“네?”

“오늘 밤, 너의 사명은 빅터를 지키는 것이다. 알겠느냐?”

“···알겠습니다.”

대스승에게 몇 마디를 듣자 레이는 나에게 원망어린 시선을 보냈다.

나 때문에 혼이 난 거라 여긴 듯하다.

자기가 입을 잘못 놀렸으면서 책임을 나에게 돌리는 건가?

정말 곤란하군.

이건 뭐 어린애가 하는 질투도 아니고···.

‘하지만 레이가 말하는 눈이란 대체···.’

짐작 가는 것은 있다.

두 사람은 출신이 다른 인종이면서도 이상한 신체적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새치투성이의 회색 머리칼은 그렇다고 치자.

엄청난 고생을 겪은 사람에겐 이따금씩 이런 변화가 생긴다고 듣긴 했다.

밤을 누비며 지옥의 생물들과 싸우는 이들이 겪을 정신적인 고통을 생각하면··· 충분히 그럴 만도 하지.

하지만 눈은 다르다.

대스승과 레이는 모두 오른쪽 눈동자가 혼탁하면서도 새하얀 빛을 띠고 있었다.

백내장?

아니, 조금 다르다.

이는 노화 탓에 시력을 잃은 것이 아닌, 어떤 신비한 광채를 머금고 있는 것 같았다.

흐리기는커녕 보다 확실하게 세상의 본질을 간파하는 것만 같은 시선이 이 두 사람에겐 있었다.

어쩌면 이 두 사람은 그 눈을 통해서, 결계에서 헤매지 않을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르지.

‘하지만 며칠을 함께 보냈어도 아직 시선이 마주칠 때마다 오싹하다.’

대낮에 본 그들의 눈은 마치 눈동자가 없는 듯이 흰자만이 남은 것처럼 보인다.

반대로 해가 지면 달빛을 빨아들이기라도 한 듯이 안광을 번뜩이지.

그것이 꺼림칙하게 느껴져, 나는 이들을 경계하고 두려워했지.

하지만 지금은 안다.

동행하며 이들의 인간적인 면을 엿보았기에 알 수 있다.

‘대스승은 나이에 걸맞는 지혜와 품격을 가지고 있다. 가끔 장황한 소릴 늘어놔서 혼이 빠질 때도 있지만, 그건 그만큼 그가 아는 게 많기 때문일 테지. 나 이상으로 섭리와 이치를 따르는 신념까지 가지고 있고.’

마치 클라리스처럼.

마치 아버지와 같이.

나는 어느새 대스승에게서 내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주었던 두 사람의 장점을 동시에 보고 있었다.

그래서 믿고 싶어진다.

의지하고 따르고자 하는 마음이 점점 강해진다.

정작 대스승 본인은 자신마저 의심하는 자세를 가지라며 가르침을 주었지만···.

아직 그걸 따르기에 나는 너무도 미숙했다.

반면 다른 한 쪽은···.

“흥.”

눈이 마주치는 것조차 싫은 지 고개를 돌려 버리는군.

노골적으로 싫은 티를 낸다.

과연 내가 이 녀석과 친해질 수 있을지 상상이 가질 않는다.

‘마치 예전에 그레이스가 키우던 고양이 같군.’

털이 새카만 짐승이었다.

집 주위를 배회하던 걸 아내가 주워서 기른 녀석이었지.

아내와 딸을 잘 따랐지만, 어째서인지 나에게만은 정을 주지 않았다.

한 번쯤 귀엽다는 생각이 들어서 손을 댔더니, 냅다 발톱으로 할퀼 정도로 나를 싫어하던 놈이었다.

몸집도 작은 게 어찌나 사납던지···.

‘하지만 그 검은 고양이에게도 사정은 있었다.’

듣기론 거리에서 태어나 방황하다, 짓궂은 마을 녀석들에게 이리저리 치인 모양이었다.

언젠가 몰래 집안으로 들어왔다가 덩치가 좀 있던 주인에게 배를 차인 뒤부터는··· 남자만 보면 경기를 일으켰다고.

그랬다.

그 고양이는 유독 나만이 아니라 성인 남자라면 누구에게나 거부감을 보였던 것이다.

어쩌면 레이가 나를 함부로 대하는 것도 단순한 낯가림에 불과할 수도 있다.

대스승의 말처럼 오래도록 둘이서 함께 한만큼 그 유대는 차원이 다르겠지.

나 따위가 그 사이에 끼어봐야 그녀 입장에서는 좋게 보일 이유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좋던 싫던··· 나는 이제 그녀와 동문이다.’

내가 경험이 부족하고 힘이 모자라다는 사실 또한 변하지 않는다.

나는 변해야만 한다.

강해져야 한다.

목적을 위해, 내 모든 것을 걸고···.

그러면 언젠가 최소한의 인정이라도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르지.

“아직 조바심이 드는가, 빅터?”

나는 내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생각하는 걸 그대로 내비치는 모양이다.

대스승은 그런 나를 바라보며 묘하게 어린 아이에게 대하는 마냥 다독였다.

“어쩔 수 없네. 이건 내가 가르쳐준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니니 말일세. 빅터여, 지금은 그저 우리를 따르며 배우게. 강함을 추구하는 것도 좋으나 지금은 모르는 편이 나은 지식도 있다. 알겠는가?”

나는 대답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는 강해질 걸세. 나를 믿게나. 내가 그렇게 만들어 주지.”

대스승의 장담은 이상하리만큼 차분했다.

내게 기대를 거는 건가?

그렇다면 그는 과연 나에게서 어떤 가능성을 보았던 것일까?

아직 대스승은 그에 대한 답을 주진 않았다.

그는 레이가 난도질한 괴물이 나타난 방향을 바라보더니.

“그보다 당장은 상황을 정비할 때다. 레이, 지금 우리는 어떤 상황에 놓여있지?”

이것은 질문이 아니었다.

대스승은 레이를 시험할 생각이다.

그녀가 얼마나 사태를 잘 파악하고 있나 확인하려는 것이었다.

“···우리가 자리를 잡았을 때까지만 해도 주변엔 마기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는 건?”

“마기는 바깥에서 흘러들어왔다···.”

“그것은 즉?”

“이 결계는 움직이고 있습니다.”

훌륭해, 대스승은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잘 보았구나, 레이여. 바로 그것이다. 드물지만 가끔씩 이런 일이 생기지.”

나로서는 잘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나는 가능한 대스승의 말에 집중하려 했다.

하나도 놓치지 않고, 그의 가르침을 지식으로 받아들이고자.

“마녀는 평생을 방랑하지만, 그것들이 결계를 펼치는 건 보통 제물을 찾아냈을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대스승, 이 주변엔 도시도 마을도 없습니다.”

“그래. 지도에도 그렇게 나와 있지. 즉, 제물은 없다고 보는 게 맞지. 하지만 결계는 존재한다. 이 두 가지 사실에서 우리는 어떤 결과를 유추할 수 있을까?”

대스승은 내 쪽을 바라보았다.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나, 빅터?”

하필 알아듣지도 못한 걸 물어온다.

나는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보통이 아니라는 것 밖에는···.”

제길, 나는 아마 좋은 학생은 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대스승은 박수를 쳤다.

이것은 대체로 합격일 때 보이는 모습이었다.

“보통이 아니다! 그렇지. 이 마녀는 평범하지 않네. 명백히 이상하지. 대량의 마기를 급격히 소모하는 결계를 이런 외딴 숲에 두르고··· 자신을 보호할 사역마를 배치한 상태로, 심지어 이동까지 하고 있다. 마기의 흐름을 살펴보려무나. 뭔가 급박해 보이지 않나?”

“아!”

레이는 뭔가를 눈치 챈 듯 했다.

대스승은 또 한 번 질문을 던졌다.

“결계를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 뭐가 있을까?

“도망치고 있는 것이로군요, 대스승?”

도망친다?

무엇으로부터?

강대한 힘과 마법을 가진 마녀가 왜 달아난단 말인가?

두 사람은 서로 눈빛을 교환한 것만으로 모든 전말을 이해한 듯 했다.

하지만 나는 모른다.

직접 확인하지 않으면 알 수 없다.

“대체 무슨 일입니까?”

내 물음에 대스승은 화승총의 총탄을 밀어 넣는 것으로 답했다.

“지금 그걸 알아보러 가는 거지.”

“하지만 대스승, 여기엔 결계가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바보, 대체 지금까지 대스승의 말씀에서 뭘 들은 거지? 나도 아까 말했잖아?”

“뭐?”

“그대로 돌입할 거야. 그리곤 마녀를 추적한다. 우리의 정안精眼에는 마기의 흐름이 보이니까.”

“설명은 나중이다, 레이 엔쯔이. 흔적이 흐려지고 있어. 서두르지.”

“예, 대스승!”

레이가 먼저 숲을 가로지르기 시작했다.

그 뒤를 따라 대스승,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가 땅을 박찼다.

목적지가 정해진 것 마냥, 그들이 향하는 길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정말로 어떤 기운이 움직이는 경로를 쫒고 있는 것 같았다.

앞장서 달려 나가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만감이 교차했다.

이들은 오래 전부터 이런 밤을 몇 번이고 경험해왔단 말인가?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동경심이 끓어오른다.

동시에 무엇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이 분하다.

언젠가 나도 그들의 옆에 서서 싸울 수 있을까?

가슴 언저리가 지끈 거린다.

이 숲에 마녀가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어떤 인간일까?

또 무슨 사정으로 사악한 마도에 빠져들고 말았던 것일까?

머릿속이 복잡하다.

당장은 두 사람의 뒤를 따르는 것조차도 힘에 부친다.

얼마나 달렸다고 벌써부터 다리가 무겁고 숨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전력질주로, 필사적으로 뛰고 있음에도 한참을 뒤처지고 있다.

나는 이를 악물었다.

‘아직···이다.’

지지 않으리라.

매달려서라도 배우리라.

기어서라도 어떻게든 강해지고 말리라.

그리고 기필코 이루고 말 것이다.

내게서 모든 걸 빼앗은 그것에게 복수하기 위해!

‘마녀.’

나에게 그 단어는··· 두 눈을 스스로의 손으로 파헤친 클라리스의 얼굴이 떠오르게끔 한다.

그리고 동시에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증오의 불씨를 타오르게 만들지.

마녀를 죽인다.

마법을 부정하고.

마술을 의심하고.

미신을 지우며.

저주를 비웃는다.

나는 어느새 대스승 크레이그가 말해준 그들의 신념을 속으로 읊조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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