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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의 정석-167화 (167/184)

환생의 정석 167화

마법사단장 알베르토는 눈을 비볐다.

‘빈첸 공자인가?’

이상한 일이었다.

느껴지는 기백은 분명히 빈첸의 것이었으나, 빈첸 이상의 무언가가 느껴졌다.

‘설령 빈첸 공자가 맞다고 하더라도…….’

그렇다면 이 말도 안 되는 기세는 어찌 설명할 수 있단 말인가.

홀로 빈첸에게 훈계하겠다며 떠났던 헬리오스는 어떻게 되었단 말인가.

“너희들이 억압하고 있는 자들이 아덴카의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느냐?”

거무죽죽했던 윌슨의 눈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그는 빈첸의 변화를 알아차릴 만큼의 눈썰미는 없었으나, 그에게 있어서 빈첸은 빛이고 희망이었다.

“너네 다 뒤졌으.”

윌슨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팔짱을 꼈다.

그는 믿었다.

우리 공자님께서 마법사단쯤은 혼자서도 박살 내버릴 것이라는 것을.

세리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공자님, 무사하셨군요!’

그때,

마법사단의 마법사 하나가 윌슨의 등에 손바닥을 댔다.

“멈춰라!”

그의 손바닥에는 마나로 이루어진 구가 생성되어 있었다.

그것은 강력한 파괴술식을 머금은 것으로, 윌슨의 육체쯤은 아무렇지도 않게 찢어발길 수 있는 힘을 지닌 마법이었다.

빈첸이 그 자리에 멈춰섰다.

“다시 한번 말한다. 네가 핍박하는 자는 나의 사람이다.”

“헬리오스 경은 어떻게 된 것이냐!”

“그는 죽었다.”

“거짓말!”

빈첸은 알베르토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저들을 풀어준다면, 너희의 목숨까지 앗아갈 생각은 없다.”

“…….”

알베르토는 침을 삼켰다.

저 말은 본래 헛소리여야 한다.

겨우 열여섯 살의 어린 무인 하나가 6마탑의 정예 마법사단을 앞에 두고 할 소리는 아니었다.

‘그런데 왜…….’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다리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가 지닌 마나가 본능적인 경고를 보내왔다.

눈 앞의 저 소년은, 여태까지의 소년과 달랐다.

소년 뒤로 거대한 무언가가 보였다.

결국 그는 마법사단장으로서 명령했다.

“케인. 놓아줘.”

“사단장님!”

“얼른.”

“죄송합니다.”

케인.

그는 마법사단의 부사단장이었다.

22살의 그는 어린 시절부터 천재라고 불렸다.

단 한 번도 천재가 아닌 적이 없었고, 단 한 번도 경쟁에서 패배한 적이 없는 엘리트였다.

6마탑이 낳은 역사적인 천재 바르넬리의 천재성과도 비견될 수준이었다.

“놈이 잘나면 얼마나 잘났기에 이런 치욕을 감당한단 말입니까!”

“얼른 시종을 놓아주라니까!”

“싫습니다!”

케인은 자존심이 상했다.

소년의 말 한 마디에 굽신대는 사단장도 꼴 보기 싫었다.

“그러니까 사단장님이 결국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겁니다.”

젊은 날의 패기는 모두 사라졌다.

케인이 보는 알베르토는 그저 겁 많고 늙은 사자일 뿐이었다.

“어이, 빈첸!”

“…….”

“거기 멈춰 있어라. 그렇지 않으면 이놈은 죽을 거다.”

빈첸이 어깨를 으쓱했다.

“멈춰 있었는데.”

케인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는 알베르토만큼 빈첸의 강함을 체감하지는 못했다.

경험도 경험이거니와, 그의 패기가 그의 본능적인 두려움을 무시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본능은 정확했다.

빈첸은 그 자리에 가만히 있었건만, 케인이 보는 빈첸은 계속해서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지나치게 강대한 존재감 때문에 착시를 느낀 것이었다.

“계, 계속 멈춰 있으란 뜻이다!”

“…….”

“다시 묻겠다, 빈첸. 마탑주님은 어떻게 되었나?”

“마탑주는 죽었다. 그는 이미 죽음을 각오한 상태였었다.”

“헛소리는 그만하고!”

“마탑주는 마탑주의 영역을 펼쳐 나와 싸우려 들었다. 마탑주는 그곳에서 희생되었고, 악몽의 실체에 근접한 자가 끼어들었다.”

마리아는 황급히 메모지와 펜을 꺼내 들었다.

빈첸이 말하는 모든 것들을 기록해야 했다.

‘이상해.’

듣고 있는데 듣지 못하는 느낌이었다.

마치 꿈을 꾸고 있는 것처럼 몽롱했다.

누군가가 기억에 간섭하여 의식을 조종하는 것만 같은 묘한 기분이었다.

‘이겨내야 해.’

마약에 취한 것 같기도 했다.

손을 움직이기 싫었다.

‘기록해야 해.’

손을 움직였다.

힘겹게, 힘겹게 글을 써 내려갔다.

그러던 중 그녀는 누군가와 눈이 마주쳤다.

귀엽게 생긴 소년이었다.

그 소년을 보자마자 갑자기 의식이 또렷해졌다.

‘어?’

잘은 모르겠지만 힘이 전해진 것 같았다.

기자로서의 사명감.

진실을 세상에 알리고 싶다는 욕심.

그것들이 곧 기자 마리아가 가진 기자로서의 격이었다.

그녀는 빠르게 글을 써 내려갔다.

[마탑주는 빈첸과의 결투에서 패해 사망하였다.]

[그러나 마탑주의 희생은 예정되어 있던 것이었다.]

[마탑주가 희생된 배경에는 악몽이 있었고.]

[악몽의 실체에 가까운 자는 사미온의 카곤이었다.]

손이 바들바들 떨려왔다.

자꾸만 머리가 기억을 지우려는 것만 같았다.

[그곳에서 아덴카의 가주 칸이 사망하였다.]

[빈첸은 가주의 유지를 받들어 새로운 태양으로 떠올랐다.]

[카곤은 그곳에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나, 확실하지는 않다.]

거기까지 작성한 마리아는 혼절하고 말았다.

“기자님!”

세리가 얼른 마리아를 부축했다.

그 사이, 마리아가 손에 들고 있던 메모장을 놓쳤다.

세리는 그것을 발견하지 못했지만 세리의 정령이 그것을 주웠다.

“폭폭. 주웠다.”

“고마워, 폭폭.”

빈첸이 말을 이었다.

“……하여 마법사단에 속한 모든 자들은 백기를 들고 투항해라.”

알베르토는 순순히 항복하려고 했다.

그가 느끼는 빈첸은 태산이었다.

감히 항거할 수 없는.

그러나 젊은 케인은 생각이 달랐다.

그가 아주 작게 말했다.

“마탑주님, 저한테 맡겨 주십시오.”

“케인. 제발 쓸데없는 짓은 그만둬라.”

“닥쳐, 이 겁 많은 늙다리야.”

케인의 생각은 간결했다.

‘이놈은 빈첸이 크게 아끼는 놈이다.’

순식간에 마력을 끌어올렸다.

최대한 잔인하게 윌슨을 죽일 생각이었다.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의 죽음 앞에서 아무렇지도 않을 사람은 없다.

‘분명히 틈이 생겨.’

그는 결투에서 단 한 번도 패한 적이 없는, 전투에 특화된 전투마법사였다.

전투는 단순히 무력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다.

일정 수준 이상이 되면, 무력보다는 정신력이 더 중요하다.

‘듀얼 캐스팅을 준비한다.’

오른손에는 시종을 죽일 마법을.

왼손에는 빈첸을 죽일 마법을.

오른손이 먼저였다.

‘네놈은 여기서 죽어줘야겠다.’

마력을 방출했다.

‘응?’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커다란 어둠이 다가오는 것만 같았다.

‘뭐지?’

마력이 뿜어지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마나가 움직이지 않았다.

‘마나가…… 얼었어?’

어두웠다.

‘왜 아무것도 안 보이지?’

이윽고 고통이 밀려들었다.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종류의 고통이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뜨거운 고통만이 밀려들었다.

몇 초의 시간이 흐르자 오히려 편해졌다.

‘편해졌다.’

그런데 세상은 여전히 어두웠다.

목소리가 들려왔다.

알베르토의 목소리였다.

“투항하겠다.”

이 멍청한 늙은이가!

내가 다 이겨놓았는데 왜!

외치고 싶었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

‘왜 말이 안 나오는 것이냐!’

뒤이어,

공포감이 밀려들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이 어둠 가운데 느껴지는 것은 명백한 두려움이었다.

그리고 나서야 깨달았다.

‘나는 죽었구나.’

마지막 순간.

그는 깨달았다.

죽음이 먼저 다가왔고, 공포가 뒤이어 찾아왔다.

공포가 찾아오기도 전에 그는 사망한 것이었다.

아주 짧은 몇 초.

그의 의식만이 남아 부랑했다.

그는 더 이상 살아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알베르토는 힐끗 눈을 돌려 케인을 바라보았다.

케인은 돌처럼 제자리에 굳어 있었다.

외상은 없었으나 이미 죽은 상태였다.

빈첸이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뭘 어떻게 한 겁……니까?”

“경고는 두 번이면 족해.”

알베르토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그의 견문으로는 빈첸의 움직임을 단 한 조각도 읽어내지 못했다.

‘새로운 시대가 열렸구나.’

헬리오스의 죽음.

그리고 알베르토의 항복으로 인하여 6마탑은 아덴카에 굴복했다.

* * *

율리안은 헥헥거렸다.

한 걸음을 옮기기도 힘들었고 다리가 후들거렸으나 포기하지 않았다.

“본가까지 제가 모실 거예요.”

“그래.”

마리아가 말했다.

“칸 경의 부고 소식을 알릴까요?”

“일단 본가까지는 모시고 싶습니다.”

“알겠어요.”

마리아는 잠자코 따라 걸었다.

사실 당장에라도 바람소리의 본사로 돌아가 그녀가 보고 겪었던 일들을 널리 퍼뜨리고 싶었지만 지금은 참았다.

최소한 본가까지는 함께 걷기로 했다.

그것이 아덴카의 전대 가주이자, 빈첸의 아버지였던 칸을 향한 마지막 예의였다.

“음?”

마리아는 순간 깜짝 놀랐다.

아덴카 본가에 도달하기 전.

그녀는 요상한 감각에 사로잡혔다.

“이 뾰족뾰족하고 두려운 기세는 뭐예요?”

“아덴카의 무인들이 내뿜는 무인들의 기세입니다. 두려워할 필요는 없어요.”

무인이 아닌 마리아조차 느낄 수 있을 만큼 강렬한 기세들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 숫자는 최소 수백을 넘어섰다.

빈첸 일행은 아덴카의 본가로 향하는 대로에 들어섰다.

‘아…….’

마리아는 입을 쩍 벌리고 말았다.

대로 양옆으로 검은색 제복을 갖춰 입은 아덴카의 무인들이 일렬로 주욱- 늘어서 있었다.

그들은 엄숙하게 칸의 시신을 맞이했다.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그 흔한 새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빈첸 일행은 그들 사이를 걸었다.

율리안의 이마에서 땀이 삐질삐질 흘러나왔다.

‘못 걷겠어.’

그렇지만 걸었다.

아버지를 보내는 마지막 길은 스스로 해내고 싶었다.

뚜벅뚜벅.

빈첸 일행이 걷는 소리만이 적막한 거리를 가득 메웠다.

한참을 걸었다.

아덴카 본가의 정문 앞에 검은색 옷을 입은 한 여인이 보였다.

그녀는 빈첸 일행을 향해 천천히 걸어왔다.

빈첸도 그녀를 향해 걸었다.

빈첸은 저만치 멀리서 걸어오고 있는 여인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어머니.’

그 여인의 이름은 베르사.

아덴카의 안주인이자, 아덴카의 여왕인 그녀의 눈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철혈의 여인도 남편의 죽음 앞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한 걸음, 한 걸음.

두 사람의 거리가 좁아졌다.

베르사의 눈에 칸의 시신이 담겼다.

베르사는 눈물을 꾹 참고서 빈첸의 앞까지 걸었다.

그녀의 손에는 칸의 서신이 들려 있었다.

그녀는 음성에 마나를 담아 이곳에 모인 모든 무인들에게 전달했다.

“아덴카의 무인들은 새로운 주인을 맞이하라.”

칸을 추모하는 것보다, 아덴카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선포하는 것이 먼저인 듯했다.

빈첸이 베르사의 손을 잡았다.

“슬퍼하셔도 됩니다, 어머니.”

그 말에, 베르사의 눈에서 눈물 한 방울이 똑 떨어졌다.

그렇지만 초인적인 인내심을 발휘하여 감정을 다스렸다.

그녀는 손에 들고 있던 두루마리를 펼쳤다.

이것은 칸이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남겼던 서신이었다.

칸이 남긴 서신은 짤막했다.

“내가 죽어서 돌아온다면 아덴카는 새로운 주인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베르사는 담담한 태도로 빈첸을 바라보았다.

문득, 그녀는 이상함을 느꼈다.

“무얼 하는 것이냐?”

“아버지께서 남기신 유산입니다. 아버지께서는 이를 일컬어 영역을 전개한다 표현하셨습니다.”

격으로 펼쳐낸 새로운 세계.

외부의 세계와 분절된 소우주.

빈첸이 만들어낸 이 작은 세계는 빈첸과 베르사.

그리고 율리안과 칸의 시신만이 존재하는 세상이었다.

“이제 보는 눈은 없습니다.”

그 말이 끝나자마자 베르사는 시신을 끌어안고 엉엉 울었다.

아주 오랜 시간,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울었다.

철혈의 여인은 남편의 죽음 앞에서 어린애가 되고 말았다.

그렇게 한참의 시간이 흘렀다.

베르사가 몸을 일으켰다.

“빈첸.”

철혈의 여인.

베르사가 입을 열었다.

“한 번만 나를 안아다오. 무너질 것 같구나.”

빈첸이 베르사를 차분히 안아주었다.

그녀가 무너지지 않도록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눈치 보던 율리안이 뒤에서 꼼지락대다가 몰래 베르사를 안았다.

‘에라 모르겠다!’

또 한참의 시간이 흘렀다.

몰래 안는다고 안았지만 베르사가 모를 리 없었다.

“그런데 너는 누구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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