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생의 정석 165화
최후 결전기.
그 말에 카곤조차 일순간 긴장했다.
아주 잠깐의 틈이 생성되었고, 칸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동귀어진.
보통은 죽음을 동반하는 최후의 공격을 뜻한다.
적을 죽이고 나도 죽는 최후의 수단.
그러나 그것은 가짜였다.
‘아버지?’
칸 자체가 백광이 되었다.
백익과 한 몸이 된 것처럼, 칸이 빛줄기가 되어 쏘아졌다.
빛줄기가 향하는 곳은 카곤이 아니었다.
‘카곤을 노린 게 아니다?’
빛줄기가 빈첸을 향했다.
빈첸은 그 빛에 감히 항거조차 하지 못했다.
반응하지도 못하는 사이, 백익이 빈첸의 심장을 찔렀다.
‘컥!’
심장이 관통당하는 느낌.
순간적으로 죽음을 경험했다.
‘아니. 아니야.’
이미 심장을 찔려보았던 빈첸이다.
그렇기에 빈첸은 이 느낌이 이전과는 다르다는 것을 눈치챘다.
‘심장을 찔렸으되, 찔린 게 아니다?’
주변은 온통 하얀색이었다.
이곳은 백색의 공간이었다.
아까 카곤이 표현했던 ‘이능영역’이 분명했다.
“이것이 아덴카의 최후 결전기, [전승]이다.”
“동귀어진이라 말씀하신 것은…….”
“틈을 만들기 위한 계략이었다.”
빈첸이 저도 모르게 허허- 웃고 말았다.
“뭐가 웃기지?”
“아버지는 계략 같은 건 사용하지 않으실 줄 알았습니다. 그저 압도적인 강함으로 밀어붙일 거라 생각했거든요.”
보통 사실이기도 했다.
칸의 무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은 그리 많지 않았으니까.
“잘 들어라, 빈첸.”
“경청하겠습니다.”
“나는 이제부터 나의 모든 것을 네게 전수하려 한다.”
칸은 무덤덤하게 말했다.
빈첸은 거기서 칸이 처음 ‘동귀어진’이라 표현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아덴카의 최후 결전기 ‘전승’은 전대 가주가 후대의 가주를 위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전수하는 기술이었다.
그 기술에 필요한 것은 전대 가주의 목숨이었고.
“설마…….”
“아무것도 묻지 말아라.”
칸이 말을 이었다.
“나는 놈을 완벽히 벨 수 없었다. 그놈은 [진짜]가 아니야.”
“…….”
빈첸은 약간 충격받았다.
그가 보았던 카곤은 칸과도 동격일 정도로 강력한 상대였다.
그러한 상대가 ‘진짜’가 아니라니.
“진짜를 베기 위해서는 나를 뛰어넘는 권위가 필요하다.”
칸은 불현듯 은퇴장로 라센느의 말을 떠올렸다.
자신에게 없는 것이, 빈첸에게는 있는 것 같다고.
칸은 그것이 사실처럼 느껴졌다.
정확히 무어라 콕 집어 설명할 수는 없지만, 자신 이상의 무언가를 지닌 것 같았다.
미래를 기대해도 될 정도로.
“그래서 너는 강해져야 한다.”
“아버지를 제물로 삼아 강해지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네게 선택권은 없다.”
빈첸은 눈살을 찌푸렸다.
점점 어지러워지기 시작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빨리 뛰었다.
문득 심장을 내려다보니, 그의 심장에는 백익이 꽂혀 있었다.
‘찔린 것이 맞기는 맞나 보구나.’
칸은 빈첸을 실제로 찔렀다.
이것이 아덴카의 최후 결전기 ‘전승’의 방식이었다.
“눈을 감아라. 그리고 극한의 의지를 발휘해 인내해라.”
칸 또한 과거 같은 과정을 거쳤다.
그의 아버지가 그에게 많은 것을 남겼다.
그러나 이 과정이 마냥 쉬운 것은 아니었다.
‘나 또한 죽을 뻔했으나.’
전승은 커다란 위험을 동반한다.
피시전자가 받아들이지 못하면, 결국 심장이 파괴된다.
“너라면 반드시 견뎌낼 수 있을 것이다.”
아직 빈첸은 어리다.
전승을 받아들일 정도로 성숙하지 못했다.
그의 성취 또한 아직은 부족하다.
“네 격이 나를 넘어서기 때문이다.”
이능영역을 펼치면 상대의 격을 느낄 수 있다.
이능영역은 시전자가 창조한 하나의 세계이며, 그 세계의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다른 사람에게서는 느끼지 못한 격을 느꼈다.
“그러니 버텨라.”
칸은 빈첸의 심장에 꽂힌 백익을 쥐었다.
눈을 감았다.
자신이 그간 익히고 경험한 모든 것들을, 후대 가주에게 넘기는 작업을 시작했다.
* * *
새로이 펼쳐진 소우주.
이곳은 칸이 창조한 세계였다.
그 세계 속에서, 전승작업이 이루어졌다.
눈을 감고 있으나 어지럽다.
속이 메스꺼워 토할 것 같았다.
자신과 자신의 주변을 둘러싼 모든 것이 빠르게 회전하는 것 같았다.
-시간 흐름이 엄청나게 빨라요.
1초.
1초가 평소의 1초가 아니었다.
-형님, 저도 너무 힘들어요.
시간이 너무 빨랐다.
이 세계 속에서 너무 빠르게 회전해서, 빈첸과 분리될 것만 같았다.
“우웨에에에엑!”
율리안은 몇 번이나 헛구역질을 했다.
그러고서 이상함을 눈치챘다.
‘어?’
구역질할 것 같은 기분이 든 게 아니었다.
실제로 구역질을 했다.
‘뭐야?’
율리안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괴로워하고 있는 빈첸과 눈을 감은 칸이 보였다.
자신을 내려다보았다.
‘손?’
손이 있었다.
그에게는 몸이 있었고, 피부가 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진실에 가까워진 거야.’
잡신 율리안의 사명은 진실을 추구하고, 사미온을 넘어서는 것이다.
그 사명의 일부가 완성되었기에 율리안의 신격 또한 상승했다.
‘그리고 전승을 통해 너무 많은 것들이 전해지면서, 형님의 육체에 과부하가 걸렸고.’
결국 율리안이 빈첸의 몸과 분리된 것이었다.
그래야만 빈첸이 버틸 수 있기 때문에.
‘아버지 눈에는 내가 보이지 않는 것 같고.’
아마도 빈첸은 율리안 자신을 느낄 수 있을 거라 판단했지만, 그것도 아직은 미지수였다.
빈첸은 지금도 힘겨운 사투를 벌이고 있었으니까.
‘그래도 전보다 낫다.’
빈첸은 이 ‘소우주’ 속에서 또 다른 소우주를 느끼고 있다.
빈첸의 세계는 지금 새로이 창조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어마어마한 격의 전승과 정보량의 전달이 있다.
‘신체와 성취가 부족하지만, 그것을 존재의 격으로 커버하고 있어.’
율리안은 빈첸이 결국 성공해 낼 거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빈첸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형님이라면…….’
무한히 빠르게 흘러가는 저 시간 속에서 자신을 놓치지 않을 것이다.
신속(神速)에 가까운 저 무한의 공간에서, 결국은 자신을 증명할 것이었다.
‘실시간으로 몸이 성장하고 있어.’
보통의 열여섯보다 더 성장해 있었던 빈첸은 어느덧 거의 완성에 가까운 신체를 지니게 되었다.
지금의 이 몇 초가, 빈첸에게는 몇 년이었다.
빈첸의 어깨가 옆으로 벌어졌고, 키가 더 컸다.
그 바람에 손에 쥐고 있던 ‘새로운 검’이 조금은 작아진 것 같아 보였다.
칸은 ‘전승’에 집중하면서, ‘새로운 검’이 빈첸을 돕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어찌 된 일인지는 알 수 없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한센이 만들어준 이 새로운 검이 빈첸을 돕고 있었다.
‘전승의 부하 중 일부를 대신 받아주고 있어.’
이 작은 우주 속에서 칸은 빈첸의 일부가 되었다.
그렇기에,
빈첸이 느끼는 것들을 자세히 느낄 수 있었다.
빈첸의 존재가 뒤로, 거대한 존재감이 느껴졌다.
‘백룡. 아넬린.’
저 검 속에서 백룡 아넬린이 담긴 의지가 담겨 있었다.
그 의지가 빈첸을 돕고 있었다.
아넬린의 ‘용골’이 칸의 ‘전승’을 받아들이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검에 담긴 용기(龍氣)가 빈첸의 체질을 잠시나마 변화시킨 것 같다.’
이것은 용아인들에게서 느꼈던 것과 비슷했다.
용아인들은 이종족 중 용에 가장 가까운 인간들이다.
다시 말해 빈첸을 몸을 용체(龍體)에 가깝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그리고 이것은 마력과 더불어 내가 전하는 전승의 모든 것들을 자연스레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칸은 알 수 있었다.
이것이 바로 ‘마력체’였다.
빈첸의 보고에 따르면 이 마력체는 용으로부터 전승되었고, 히슬리가에 의하여 발전되었다고 했다.
‘마치, 오늘을 위하여 만들어진 검 같구나.’
백룡 아넬린.
히슬리의 가주 베사툴 히슬리.
이 둘이 남긴 최후의 의지가 빈첸을 돕고 있는 것이었다.
‘내 선조의 친우였던 그대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빈첸의 몸 속에는 신성한 기운이 내재되어 있었다.
마치 신이 머물고간 자리처럼, 커다란 기운이 그를 보호하고 있었다.
‘천과의 힘과 미지의 신성력.’
무인에게 이 정도 신성력이 느껴본 적은 없었다.
칸은 아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성왕 라엔므고와 초대가주 아슬란의 안배인가.’
그것들이 ‘천과’의 형태로 빈첸에게 전해졌다.
라엔므고가 남긴 지팡이와 성배.
아슬란이 붉은 요새를 통해 그것을 찾도록 했다.
아넬린.
베사툴.
라엔므고.
아슬란.
그들이 빈첸과 함께하고 있었다.
‘그게 끝이 아니군.’
그리고 과거 살왕이었던 세르쿤 집사가 남겨준 또 다른 힘이 느껴졌다.
그것은 스스로 마력회로를 보호하고, 더 나아가 빈첸의 신체를 지켰으며, 더 나아가 빈첸의 존재를 단단하게 만들었다.
‘이것이 역용의 본질인가.’
세르쿤이 가르쳐준 이 힘은 지금 빈첸에게 커다란 힘이 되었다.
그의 존재가 무너지지 않도록 떠받들어 주었다.
‘내게는 없는 것들.’
그것들이 빈첸과 함께했다.
빈첸은 아덴카의 최후 결전기 ‘전승’을 받아들이고서도, 생각보다 훨씬 멀쩡했다.
한참의 시간이 흘렀다.
어느덧, 빈첸을 눈을 떴다.
그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아버지.”
태산 같았던 기세를 내뿜던 칸은 이 자리에 없었다.
강건했던 그는 이 짧은 순간 동안 힘 잃은 늙은이가 되었다.
그러나 그의 격 자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몸은 쇠약해졌으나 눈빛은 형형했다.
“시간이 많지 않으니 짧게 말하마.”
“…….”
하고싶은 말이 많았으나 빈첸은 입을 다물었다.
자신의 시간과 아버지의 시간이 달리 흘러감을 깨달았다.
아버지의 시간은 이제 많지 않았다.
“내게도 사명이 있다.”
사미온을 넘어서라.
그리하여 진실과 마주하라.
아덴카의 혈육들이 대대로 간직해 온 사명.
칸은 그 사명을 위하여 ‘전승’을 사용했다.
“그러므로 이는 명예로운 죽음이다.”
“…….”
“앞으로 네가 아덴카의 가주다.”
빈첸은 시간이 없음을 알고 있었다.
짧게 말했다.
“검의 이름을 내려주십시오.”
“칸.”
그의 이름을 검명으로 내려주었다.
그의 대에서 진실을 마주할 수 없으니, 더 나아가 빈첸의 시대에 함께 진실을 마주하겠노라는 뜻이었다.
칸은 가부좌를 틀고 앉은 채 눈을 감았다.
육신을 가지게 된 율리안이 후에에엥! 눈물을 터뜨렸다.
“아버지!”
그 목소리는 칸에게까지 닿지 않았다.
“아버지!!!”
율리안은 실감하지 못했다.
아덴카를 이끌던 제왕이 이렇게 사라질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빈첸이 입을 열었다.
“슬퍼하지 마라.”
빈첸의 눈에는 육신을 갖게 된 율리안이 보였다.
금발머리에 연녹색 눈동자를 가진 앳된 소년이었다.
“이는 아버지의 죽음을 모욕하는 것이니.”
그렇게 말을 하는 빈첸의 눈도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그는 가까스로 눈물을 삼켰다.
빈첸은 아버지의 시신 앞에 섰다.
왼손을 가슴팍에 대었다.
진심을 담아 경례했다.
그 앞에서 묵념했다.
묵념이 끝난 후, 빈첸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평범한 부정(父情)은 느껴보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사명을 간직한 무인의 명예로운 최후가 무엇인지는 배웠습니다.”
빈첸은 검을 바닥에 내려놓은 채 아버지께 두 번의 절을 올렸다.
“아버지의 가르침을 잊지 않겠습니다.”
절을 올린 빈첸이 칸을 바라보았다.
착각일지도 모르겠지만 칸의 입가에 가느다란 미소가 걸려 있었다.
“아덴카의 31대 가주 빈첸 아덴카, 아버지를 잊지 않겠습니다.”
빈첸은 눈을 감고 자신의 세계에 집중했다.
심장 언저리에 9개의 별(九星)이 선명히 빛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