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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의 정석-130화 (130/184)

환생의 정석 130화

빈첸이 대답했다.

“좋은 소식 먼저.”

“더없이 완벽하게 복원이 되었어. 두 개 다.”

“나쁜 소식은?”

“그런데 반지가 제 기능을 낼 수 있도록 하려면 특수한 광물과 재료들이 필요하대.”

“구할 수 있는 것들인가?”

밀리는 눈치를 살폈다.

내용을 전달하러 온 그녀 입장에서도 무척 불편한 이야기였다.

“구할 수 있어. 아니, 있었어.”

“있었다? 과거형이군.”

“복원 타이밍에 맞춰서 사용해 버렸거든. 작업 장소는 디르미델 영감탱이의 공방이었고, 거기에는 재료광물들이 충분히 있었어. 그런데…….”

밀리는 또 눈치를 살폈다.

그녀의 말투가 싹 바뀌었다.

“사전고지를 못해서 진짜 너무 죄송합니다, 고객님. 급한 대로 광물들을 소진하여 복원을 완료시키기는 했습니다만……. 재료비가 엄청나게 많이 들었거든요.”

“얼마나?”

“그게…….”

밀리는 후- 한숨을 쉬었다.

수많은 진상들을 만나왔던 밀리다.

처음에는 멀쩡한 사람도, 돈 문제가 걸리면 진상으로 돌변하는 건 한순간이었다.

그녀가 본 빈첸이 그렇게 변할 것 같지는 않았으나 그래도 두렵기는 했다.

밀리가 종이를 하나 내밀었다.

“디르미델 영감탱이가 작성한 재료 원가 청구서인데요, 고객님.”

청구서를 살펴보았다.

약 9억에 달하는 금액이 적혀져 있었다.

“9억 루덴?”

“네, 맞습니다, 고객님. 상황이 급박하여 미리 고지하지 못한 점은 진심으로 사과드리겠습니다, 고객님.”

빈첸은 ‘상황’에 대해서는 인지했다.

아마도 ‘이능검격’과 비슷한 본질을 지니리라 짐작했다.

모든 것에는 때가 있고 길이 있다.

그 때와 길을 맞추기 위해, 한센은 ‘일단 복원부터 완료해!’라고 주문했을 것이고, 디르미델은 그에 맞추어 자신의 공방에 있는 재료들을 사용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것들이 하필이면 무척이나 고가였다는 것이 문제였을 뿐.

“네가 내게 굽신거릴 필요는 없어.”

밀리는 죄가 없다.

그냥 상황을 전달하는 잡부일 뿐이다.

“디르미델 야장의 공방으로 안내를 좀 부탁해.”

밀리는 떨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앞서서 걸었다.

그러면서도 빈첸이 신기했다.

9억이라는 숫자를 보고도 저렇게 덤덤할 수 있다니.

‘나는 가슴이 벌렁거리던데.’

그 숫자를 보는 순간 하늘이 캄캄해지고 눈 앞이 노래졌다.

이 숫자는, 착한 사람도 진상으로 만드는 마법의 숫자였으니까.

보통의 사람들이 이런 경우를 만나면 일단 밀리 자신에게 따지고 들었다.

그런데 빈첸은 달랐다.

‘나한테 안 따지네.’

밀리가 보는 빈첸은 분명 어른다운 구석이 있었다.

‘멋있다.’

뒤를 힐끗 바라보았다.

빈첸에게서는 딱히 분노한 기색을 찾아볼 수 없었다.

밀리는 그러한 빈첸에게서 신기함을 느끼며 계속 걸었다.

“도착했어. 저 앞이 디르미델 야장의 공방이야.”

꽤 낡은 공방이 보였다.

그러나 안쪽에서 느껴지는 화기(火氣)가 제법 매서웠다.

작업들이 한창인 것 같았다.

“나는 이 이상은 못 들어가.”

“안내 고마워.”

빈첸은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그는 본능적으로 느꼈다.

이 불의 기운이 자신에게 그리 우호적이지 않다는 것을.

어딘지 모르게 인위적인 느낌이 들었다.

-와, 거의 뭐, 화재 현장 같은데요.

빈첸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 뜨거운 불길도 빈첸에게는 해를 가하지 못했다.

빈첸은 불길 속을 그저 걸었다.

율리안도 딱히 잔소리하지는 않았다.

-아벨탄 폭포에서의 수련이 진짜 엄청나긴 했네요. 이 정도 화기가 아무렇지도 않게 느껴지는 걸 보면.

들숨을 통해 불의 기운을 들이마시고.

심장과 마력회로를 통해 기운을 제 것으로 중화한다.

날숨을 통해 기운을 내뱉어 신체의 정상상태를 유지한다.

‘어떠냐, 내가 말했던 옛 방식이.’

-효과는 엄청나다는 건 인정해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죠.

살아남을 수 있다면 말이에요.

율리안은 그 말은 삼켰다.

현대인들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을 방법이지만 빈첸은 스스로 증명해냈다.

율리안도 이제 빈첸의 방식을 존중했다.

빈첸이 입을 열었다.

“디르미델 야장님, 민망하긴 한가 봅니다. 불을 이렇게 피워놓으신 걸 보면.”

“……불을 뚫고 들어온 거냐?”

“예.”

“너 혹시 불과 관련된 신의 가호가 있어? 아니면 그런 가호나 특성을 담은 상급 마정석이나?”

“없습니다.”

“근데 어떻게 이렇게 뚫고 들어와? 너 이제 겨우 열넷 아니냐? 심상도 없잖아?”

“지금 그게 중요한 건 아닐 텐데요.”

“크흠.”

뜨거운 불길 속에서 디르미델은 딴청을 피우며 턱을 매만졌다.

“상황은 이해합니다. 사전고지 없이 진행할 수밖에 없었던 급박한 상황이었겠죠.”

“오, 이해해 주는 거냐?”

“이해는 하지만, 절차는 잘못되었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는 겁니다.”

“끄응.”

통상적으로 모든 작업이 그렇다.

작업에는 견적이 존재하고, 의뢰자는 견적을 미리 받을 권리가 있다.

이번 복원작업은 제대로 된 견적조차 받지 못했다.

작업자가 제멋대로 높은 비용을 들여 작업을 한 뒤, 의뢰자에게 과다한 비용을 청구하게 된 셈이다.

“9억 루덴이라고 했습니까?”

“그, 그래. 본래는 더 많이 나와야 하는데 이쪽의 잘못도 좀 있고 하니까…….”

“과도한 비용청구는 아니리라 믿습니다.”

그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하늘을 우러러 내 평생 그런 짓은 해본 적이 없다! 그리고 그 청구서는 한센 녀석도 검토한 거야. 나는 진짜 딱 재료값만 청구한 거야. 내 노동 보수는 치지도 않았어. 아니, 못했어.”

빈첸이 고개를 끄덕였다.

‘재료 원가 청구서’에 문제가 있었다면 한센이 짚어냈을 것이다.

그는 돈보다 귀중한 것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니까.

“여기 있습니다.”

빈첸이 품 안에서 수표를 하나 꺼냈다.

케르빌가의 직인이 찍혀 있는 수표였다.

“10억 루덴입니다.”

“……응?”

디르미델은 떨리는 손으로 수표를 받아들었다.

“……진짜네?”

그는 한참 동안이나 두 눈을 끔뻑거리다가 정신을 차렸다.

“훔친 건 아니지?”

“케르빌가가 보증하는 수표를 훔쳐요? 누가 그런 위험한 짓을 한단 말입니까?”

“위조한 것도 아니지?”

“케르빌가의 수표를 위조할 수 있습니까?”

“아니, 너무 현실감이 없어서 그래. 근데 나 거스름돈 없는데.”

그에게는 현금 1억 루덴이 없었다.

그는 명장으로써 많은 돈을 벌기는 했으나, 대부분의 돈을 이미 써버렸다.

한센과 비슷한 이유였다.

한센은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을 위해서, 디르미델은 동물들을 위해 돈을 다 썼다.

유기된 동물들, 다친 동물들, 멸종 위기의 동물들을 구호하느라 그 역시 돈이 넉넉치 않았다.

“나머지 1억은 명장의 시간을 지불한 것입니다.”

“……응?”

“노동보수를 드리겠다는 뜻입니다.”

“……1억이나? 너 그렇게 부자야?”

디르미델은 또다시 약간의 혼돈 상태에 빠져들었다.

빈첸이 씨익 웃었다.

“제가 존경하는 야장과 함께 작업하여 주셨으니, 저 또한 그에 걸맞은 예의를 보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

디르미델의 몸이 움찔 떨렸다.

간만에 느껴보는 기이한 기분이 들었다.

빈첸이 한센을 진심으로 존경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러워 뒤지겠네.”

“예?”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디르미델의 표정이 조금 나빠졌다.

그가 힘주어 말했다.

“나중에 내 도움이 필요한 일이 있다면 찾아 오거라. 오늘 큰 빚을 졌으니, 무슨 일이 있어도 도와주마. 자. 여기, 반지는 가져가고. 내게도 좋은 경험이었다. 고맙다.”

빈첸은 완전히 복원된 두 개의 반지를 받아들었다.

디르미델에게 허리를 숙여 보이고 몸을 돌렸다.

다시금 불길을 뚫고 밖으로 나갔다.

디르미델은 흠칫 놀랐다.

“억?”

황급히 마나를 일으켜 수표를 보호했다.

까딱 잘못했으면 수표가 불타 없어질 뻔했다.

“뭐야?”

그로서도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럼 빈첸이 이 수표를 계속 보호했다는 거네?”

자신이야 불을 다루는 대장장이이니 그럴 수 있다 치더라도, 빈첸은 그렇지 않았다.

불과 관련된 가호나 특성도 없다고 했다.

단련된 무인이 자신의 몸을 지키는 것 정도는 어렵지 않다.

그러나 자신의 몸이 아니라 또다른 사물을 지키는 건 다른 문제다.

심지어 신체와 접촉된 상태에서 무언가를 보호하는 것과, 신체와 이격된 상태에서 무언가를 보호하는 건 또 다른 문제였다.

“이걸 다 해냈네.”

디르미델은 빈첸이 사라진 방향을 한참이나 멍하니 바라보았다.

일반적인 무인이라면 이런 건 불가능하다.

가능하려면, 최소 7성 이상은 되어야 한다.

아니,

7성이라고 해도 이렇게 자연스레 할 수는 없다.

“내가 도대체 뭘 본 거야? 저놈, 도대체 정체가 뭐야?”

몸에 전율이 일었다.

* * *

-아주 잘했어요. 좋은 선택이에요.

어차피 9억 루덴은 지불해야 한다.

절차가 잘못되기는 했으나, 어쨌든 반지의 소유권을 갖기 위해서는 지불해야할 돈이었다.

지불하지 않으려면 심판의 탑을 통해 중재를 받아야 하는데 그 과정이 지나치게 길고 복잡했다.

그래서 빈첸은 빠른 길을 선택했다.

뿐만 아니라 합당한 비용까지도 지불했다.

-저런 영감탱이는 돈으로 살 수 없거든요.

돈으로 살 수 없는 자의 입에서 ‘다음에 꼭 도와주겠다’라는 약속이 튀어나왔다.

디르미델에게 작업을 의뢰하기 위해 계약금만 1억 루덴을 걸겠다는 자도 부지기수다.

-우와, 1억이면 진짜 싸게 먹혔다.

빈첸은 방으로 돌아와 반지를 살펴보았다.

그때 즈음,

밀리와 한센이 빈첸의 방을 찾아왔다.

“내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상황을 깨끗하게 정리했더구나. 도대체 뭘 했길래 디르미델 그 늙은인가 광신도인 양 네 이름을 찬양하고 있는 것이냐?”

“찬양이요?”

빈첸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로써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잘 모르겠습니다. 마침 돈이 있었고 합당한 대가를 지불했을 뿐입니다.”

한센은 후우-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건 내가 책임져야 할 돈이었다.”

“제 반지의 복원비용이니 제가 부담하는 것이 맞겠지요.”

“자. 이거 받아라.”

“뭡니까?”

“차용증. 내가 지금 가난해서 돈이 없거든. 그래도 벌이가 꽤 쏠쏠하다. 네게 빚을 졌으니 갚아주겠다. 시간은 조금 걸리겠지만 말이다.”

빈첸은 잠시 생각하다가 차용증을 받아들었다.

한센이 빈첸에게 9억 루덴을 갚겠다는 내용이었다.

이것은 한센의 뜻이었고, 빈첸은 그 의지를 존중하기로 했다.

빈첸이 빙그레 웃었다.

“그래도 친구의 노동가치는 인정해 주시는 모양이군요.”

빈첸이 지불한 것은 10억 루덴이었다.

한센이 대신 갚아주겠다고 한 것은 9억 루덴이었고.

1억 루덴의 차액이 생긴다.

“흥, 친구는 개뿔, 그런 노망난 미치광이와 누가 친구란 말이냐? 다만, 업계 평균 보수라는 것이 있으니 그에 따라 대충 계산해 줬을 뿐이다.”

“알겠습니다. 친구가 아닌 것으로 하겠습니다.”

“진짜라니까?”

“예. 알겠습니다.”

“진짜다. 그 영감탱이와 내가 친구라는 소문이 돌기라도 하면 네게 아주 매섭게 따질 것이다. 알겠냐?”

“예.”

“진짜다. 꼭 약속해라. 나 걔랑 친구 아니다.”

“알겠습니다.”

시간이 조금 흘렀다.

한센은 빈첸에게 반지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중앙의 푸른 보석. 그것이 마나를 받아들이는 매개체인 듯하다. 용왕의 힘을 이어받은 네 마나를 불어넣으면 활성화될 것이다. 원리까지는 알 수 없으나 아마도 새로운 수련장소로 이동하게 될 것이다. 옛 용아인 전사들 중에서도 특별한 전사들을 키워낼 때 사용한 수련방식이라고 하더군. 다만, 이것은 용왕이 남긴 것이므로 더욱 특별할 테지.”

그런데 용왕이 남긴 반지에는 굉장히 특이한 점이 하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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