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생의 정석 121화
용아인들은 용왕의 힘에 반응하는 특수한 체질을 지녔다.
정확히 말하자면 포르세딘의 가호로부터 새어 나오는 힘을 마주했을 때에, 용인화(龍人化)가 진행된다.
용피가 그녀의 온몸을 덮었다.
그녀는 파충류처럼 가늘어진 눈으로 홍련을 바라보았다.
검면에서 흐르는 수기(水氣).
저 힘은 용왕 아벨탄을 상징하던 힘이었다.
나이메르는 감탄했다.
“아벨탄은 그 특성을 수류검이라 칭하였습니다. 200년의 시간을 격하여 모습을 드러내었군요.”
빈첸이 만들어낸 것은 수류검 특성이 분명했다.
이는 해일의 신 포르세딘으로부터 발현시킬 수 있는 초기 특성 중 하나였다.
“이거면 용왕의 진전을 이었음을 증명할 수 있겠습니까?”
“제 피부가 그것을 증명하지요. 그러나 다른 용아인들이 저만큼 이 기운에 민감하게 반응할지는 모르겠네요.”
빈첸이 고개를 끄덕였다.
“부족할지도 모르겠다는 뜻이군요. 그렇다면 이것은 어떻습니까?”
빈첸이 홍련을 높이 들었다.
그러나 수기(水氣)가 높이 치솟았다.
그 모습은 마치 작은 해일 같았다.
“나이메르 경의 눈에는 보입니까?”
“……보입니다.”
“이 힘의 이름이 무엇입니까?”
홍련 위로 높이 솟아오른 작은 해일.
“소해일(小海溢)이라고 불러요.”
나이메르의 몸이 가늘게 떨렸다.
그녀는 자신의 눈을 믿을 수 없었다.
쿵! 쿵!
심장이 뛰었다.
푸른색이던 용피(龍皮)의 색이 더욱 짙어지고 단단해졌다.
용피는 무척이나 단단해졌다.
나이메르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손을 들어 올렸다.
“제 피부가 보이시지요?”
“예. 단단한 비늘이 돋아난 것 같습니다.”
‘은총’을 섭취한 헬라임 무인들을 통하여 이러한 현상을 이미 보았었기에 딱히 놀라지는 않았다.
“마나를 익히지 않은 무인의 검날은 제 피부를 뚫지 못할 것입니다. 2고리 이하의 마법은 이러한 용피에 상처를 낼 수 없습니다.”
“…….”
“공자가 만약 ‘대해일’ 특성까지 이뤄낼 수 있다면, 우리는 200년 전의 모습을 회복할 것입니다.”
용아인들은 포르세딘의 가호와 반응한다.
만약 빈첸이 용왕 정도의 성취를 이룬다면, 용아인은 스스로를 용인(龍人)이라 부른다고 했다.
“그것이 200년 전, 우리가 용왕과 함께 찬란한 영광을 누릴 수 있었던 이유입니다.”
“그런 속사정이 있었군요.”
빈첸도 몰랐던 사실이었다.
빈첸은 담담히 고개를 끄덕인 뒤 말을 이었다.
“용아인들은 이 소해일을 읽어낼 수 있습니까?”
사실 빈첸이 일으킨 이 ‘소해일’은 육안에 보이는 힘이 아니었다.
일반적인 눈으로 보면 홍련은 그저 붉은 검에 불과했다.
“용아인이라면 어린아이라도 읽어낼 수 있어요. 빈첸 공자의 검에 서린 기운은 분명 소해일의 권능입니다. 하나 빈첸 공자의 지금 성취로 그것을 이룩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 텐데…….”
용아인의 역사를 통틀어서 가장 뛰어난 무재였던 아벨탄도 16살에 이르러서야 소해일 특성을 발현시켰다.
심지어 그는 태어나면서부터 포르세딘의 가호를 지니고 태어났고, 그와 관련한 수련을 10년 넘게 해왔다.
그에 반해 빈첸은 이제 갓 포르세딘의 가호를 얻었다.
빈첸이 보여주는 모습은 상식을 지나치게 뛰어넘었다.
“역시 예리하시군요.”
빈첸은 품 안에서 마정석을 꺼냈다.
마정석에서는 은은한 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이능을 저장하는 마정석입니다.”
“상당히 값비싼 물건이군요.”
세리가 로랑을 반쯤 협박하여 얻어낸 마정석.
이 마정석은 이능을 저장하는 마정석이다.
마법과 마찬가지로 ‘정령력’ 또한 이능에 포함된다.
“세리가 도와주었습니다. 알아보니 용왕 아벨탄은 뛰어난 검술가이자 정령술사였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빈첸 본인의 힘만으로는 어렵다 생각했다.
세리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세리는 아벨탄 폭포에서 만난 물의 정령과 일시적인 계약을 맺고 그 힘을 마정석에 불어넣었다.
“원리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정령의 힘이 제가 이 특성을 이끌어낼 수 있도록 도와주더군요.”
이윽고 마정석에서 새어 나오던 빛이 사그라들었다.
그에 따라 ‘소해일’ 특성도 사라졌다.
그리고 나이메르의 피부도 원래대로 돌아왔다.
빈첸이 물었다.
“이 정도면, 용아인들을 설득할 수 있는 자격은 갖추었다 할 수 있겠습니까?”
* * *
빈첸의 약속대련 상대로 정해진 자는 칼백이란 이름의 중년 무인이었다.
짧은 머리카락에 날카로운 인상을 지니고 있었다.
오른쪽 뺨에는 기다란 검상이 눈에 띄었다.
그가 말했다.
“어머니께 인사 올립니다.”
그러고서 빈첸에게도 인사했다.
“온전한 명예에 겸손한 경의를.”
간단한 인사를 끝마친 뒤 칼백은 본론을 꺼냈다.
“공자. 저는 공자를 존중합니다. 그러나 공자와의 약속대련은 조금 다른 문제입니다.”
칼백은 전쟁에 적극적으로 찬성하는 무인 중 한 명이었다.
용아인들의 명예는 이미 땅에 떨어졌으며, 후대에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는 칼을 빼 들고 싸워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빈첸이 약속 대련을 요구하는 이유도 이미 알고 있었고, 따라서 빈첸에게 적극적으로 협력할 생각은 없었다.
“저는 공자가 돋보이도록 애써 노력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제가 바라던 바입니다.”
빈첸이 바라는 것은 하나였다.
그저 빈첸의 능력을 있는 그대로 보여줄 수 있으면 되었다.
“굳이 저를 띄워주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저 정직하게 제 검을 받아주십시오.”
자신을 일부러 돋보이게 만들어줄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지나치게 강대한 힘으로 빈첸 자신을 찍어 눌러서도 안 된다.
“저를 명예로이 대해주시기만 하면 됩니다.”
“약속하겠습니다. 빈첸 공자는 용왕의 진전을 이었다는 것을, 용아인들 앞에서 증명할 생각입니까?”
“그렇습니다.”
“저와의 약속대련을 통하여 그것을 온전히 증명하는 것은 그리 쉽지 않을 것입니다.”
“알겠습니다. 각오하도록 하겠습니다.”
다음 날.
용아인들 수백 명이 천년수 앞 광장으로 모였다.
“빈첸 공자와 칼백의 약속대련이라니. 재미있겠는걸.”
“그런데 왜 약속대련을 하는 걸까?”
“글쎄. 공표문에 이유는 적혀 있지 않던데.”
그들은 왜 빈첸이 약속대련을 펼치는지는 알지 못했다.
“상대가 칼백이라니, 무척이나 흥미진진한 일이 벌어지겠어.”
수백 명의 용아인들이 둘러싼 가운데.
빈첸은 칼백과 마주 섰다.
칼백이 말했다.
“어제도 말씀드렸듯, 저는 빈첸 공자를 존중합니다. 그러나 나의 검이 가볍지만 않을 것입니다.”
비록 약속대련이나, 서로의 힘을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은 되어야 했다.
약속대련에서조차 제대로 된 힘을 보이지 못하면 빈첸의 꼴은 무척이나 우스워질 것이 분명했다.
빈첸이 예를 표했다.
“용아인들 중에서도 최강의 전사라 손꼽히는 칼백 경과 함께 검을 맞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제게는 영광입니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보고 말했다.
“또한, 용왕의 진전을 칼백 경 앞에서 선보일 수 있다는 것이 무척 큰 기쁨이기도 합니다.”
용아인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나이메르는 칼백과 빈첸의 약속대련이 있을 거라는 사실은 공표했으나 빈첸이 ‘용왕의 진전을 이었다’라는 내용을 말하지는 않았으니까.
“잘 보아주십시오.”
빈첸이 마나를 일으켰다.
그에 따라 절로 심상이 생성되었다.
물결 모양의 심상.
눈에 보이지 않는 마나가 빈첸의 몸을 감싸고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이것이 제가 익힌, 용왕의 힘입니다.”
빈첸이 홍련으로 칼백을 겨누었다.
서로 검을 채 맞대기도 전.
용아인들이 눈을 크게 떴다.
“저, 저, 저건?”
칼백마저도 눈을 크게 떴다.
‘뭐지?’
그는 검을 들어 올렸다.
다가오는 홍련을 막아냈다.
순간,
그의 볼에 차가운 물이 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쏴아아-!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는 물줄기가 뿜어지는 기분.
칼백이 검이 휘둘렀다.
그 검은 눈앞의 거대한 물줄기를 베었다.
물줄기가 반으로 갈라졌으나, 그것은 아주 잠시였다.
물줄기는 점차 거대해졌고 해일이 되어 칼백을 덮쳤다.
바다가 그 자신을 덮치는 느낌이었다.
“나이메르 경께서는 이 힘을 일컬어 바다의 군세, 해군(海軍)이라 가르쳐주었습니다.”
용아인들의 눈에는 보였다.
정령력이 뛰어난 자들일수록 더욱 거대한 군세를 느꼈다.
이것은 검 한 자루에서 느껴지는 기백이 아니었다.
그 기백이 용림에 퍼져나갔다.
나이메르가 경험했던 것과 동일한 현상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용피(龍皮)?”
용아인들은 스스로의 변화에 집중했다.
포르세딘의 힘에 가장 예민한 나이메르의 몸은 붉게 변해 있었고 눈동자는 금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단단한 수준을 넘어 다시 매끄러워진 피부.
나이메르의 기도는 평소와 많이 달랐다.
200년 전부터 전해지는 기록과 같았다.
[붉어진 용피와 금안. 타오르는 기도는 완전한 용인에 들어서는 초입 단계이다. 용왕 아벨탄에 의하여 해군(海軍) 권능이 펼쳐졌을 때 벌어지는 변화이기도 했다.]
용아인들은 진심으로 놀랐다.
“용인화잖아!”
200년 전,
용아인들은 용왕과 함께 용인화를 완성했었다.
그리고 용아인들은 전성기를 맞이했었다.
그들 모두는 깨달았다.
“용왕 아벨탄의 재림이다.”
“비, 빈첸 공자가 용왕의 힘을 이었다!”
그들은 기록을 직접 마주했다.
그들의 몸이 증거였다.
칼백조차 적잖이 당황했다.
약속대련이기에 검로는 진작에 알고 있었다.
그러나 검로에 담긴 용왕의 기백까지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게다가 용아인들의 용인화라니.
‘진짜 용왕의 힘이다.’
인간족.
겨우 열넷의 소년이 용왕의 힘을 완벽히 증명했다.
빈첸이 검을 거두었다.
해군 특성은 사라졌고, 주변에는 정적이 내려앉았다.
용아인들의 피부도 원래대로 돌아왔다.
“먼저, 제가 좋은 모습을 보일 수 있도록 도와주신 용아인들의 어머니께 감사인사를 드립니다.”
포르세딘의 가호로부터 특성을 제대로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정령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했다.
처음 나이메르에게 ‘소해일’을 보여주었을 때에는 세리의 도움을 받았다.
용아인들 앞에서 ‘해군’을 선보일 때에는 나이메르의 지원을 받았다.
나이메르는 용아인들 중에서도 특출난 정령술사였고, 그녀는 빈첸이 용왕의 힘을 제대로 이끌어낼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빈첸이 한 발자국 앞으로 나섰다.
“칼백 경께서는 어찌 보셨습니까? 제가 용왕의 의지를 이었다고 주장해도 괜찮겠습니까?”
용아인들의 시선이, 빈첸과 직접 검을 맞댄 칼백에게 몰렸다.
칼백은 잠시 고민했다.
그는 빈첸이 왜 용아인들 앞에서 이런 이벤트를 벌이는지 잘 알고 있다.
“저는…….”
빈첸은 전쟁을 막으려고 하고 있다.
칼백은 그것이 싫었다.
상대와 함께 자멸하는 것이 명예로운 일이었다.
그러나 빈첸의 힘을 솔직히 인정했다.
“똑똑히 보았습니다. 용왕 아벨탄의 힘을.”
그와 동시에 용아인들이 함성을 내지르기 시작했다.
와아아아-!
칼백은 검을 갈무리하고서 뒤로 몇 걸음 물러섰다.
“……그러니 할 말을 하십시오.”
경청하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려던 칼백은 다시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갑자기 무엇인가를 결심한 것만 같은 모양새였다.
“그 전에. 제가 빈첸 공자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면 받으시겠습니까?”
“도움이요?”
“예.”
지금이 아니면 공자를 돕지 않을 겁니다.
이는 용아인 전사들 중에서도 극히 일부에게만 전승되어온 내용이니.
그 말은 하지 않았다.
‘내가 빈첸 공자를 돕는 것이 옳은가.’
칼백 스스로도 여전히 고민이 많았다.
그러나 빈첸은 용왕의 능력을 온전히 보여주었다.
자격이라면 차고도 넘쳤다.
빈첸은 침착하게 대답했다.
“감사히 받겠습니다.”
“빈첸 공자는 분명 해군(海軍)을 사용하였습니다. 그 해군의 이능이 반만 완성되었다는 것을 알고 계십니까?”
“……어렴풋이 짐작은 했습니다만 구체적으로는 알지 못합니다.”
익힌 지 겨우 하루 된 능력이다.
용왕의 진전을 이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에만 집중했을 뿐, 스스로도 완벽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해군특성은 활용에 따라 두 가지 종류로 나뉩니다. 방금 빈첸 공자가 보여주었던 ‘해상군세’가 하나입니다.”
그를 통해 수많은 용아인들의 전력을 끌어올렸다.
그것이 바로 해군의 ‘해상군세’였다.
“그리고 다른 하나.”
칼백이 말을 이었다.
“그것은 ‘검은 바다’입니다.”
빈첸과 율리안 또한 그 이름을 기록으로 접했었다.
‘검은 바다’의 또 다른 이름은, 용왕 아벨탄의 ‘대인 결전기’였다.
“그리고 저는 ‘검은 바다’를 유도해 줄 수 있는 용아인이기도 합니다. 묻겠습니다. 공자는 용왕 아벨탄의 대인결전기가 공자에게 전승되는 것을 원합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