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생의 정석 98화
헬라임의 가주 가폰소는 큰 웃음을 터뜨렸다.
“으하하핫! 헤나 아덴카를 이곳으로 초대했다고?”
“그렇습니다.”
“고 맹랑한 꼬마 녀석의 의도가 무엇이겠느냐?”
“제 누이에게 자신의 성장을 자랑하고 싶음이 아닐까요?”
“아니. 그 녀석은 내 신경과 헬라임의 힘을 분산시키고 싶은 것이다.”
“……예?”
가폰소의 전속 집사이자 오른팔.
한쪽 눈에 안대를 하였다 하여 ‘외눈 집사’라고도 불리는 사리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시민 혁명대와 높은 관련이 있어. 최근 로랑과도 만난 모양이더군.”
“그렇지만…….”
“그래, 안다. 헤나 정도로는 내 시선을 분산시키기 어려워. 자네도 알고, 나도 알고 있는 사실이지.”
헤나 아덴카.
그녀가 아덴카의 3공녀인 것은 맞지만 여전히 생도의 신분이다.
겨우 생도 정도로는 헬라임가의 힘을 분산시키기는 어렵다.
“빈첸도 알고 있는 사실이겠지. 다시 말해, 헤나에게 보내는 서신은 그저 미끼에 불과하다. 진짜가 따로 있을 거야.”
“그렇다면 저는 빈첸 생도에 대한 감시를 더 철저히 하도록 하겠습니다. 자신의 누이를 미끼로 던지고, 무엇을 하려는지 낱낱이 보고하고 파악하겠습니다.”
“집사 정도의 인력을 그 꼬마 녀석에게 사용하는 것이 아깝기는 하다만.”
“아닙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사리나는 암암리에 빈첸을 감시했다.
그러나 빈첸은 더 이상의 서신을 보내지 않았고, 매일같이 명상과 일상적인 수련을 반복할 뿐이었다.
며칠 뒤, 그녀는 정보원으로부터 한 가지 사실을 파악할 수 있었다.
‘붉은 요새의 헤르카 요새장이 이곳을 찾아 온다라.’
이건 예상범위 내였다.
‘헤나 아덴카는 1급 대표생도이니…… 헤르카 요새장 입장에서는 충분히 신경 쓰일 일이겠지.’
헤나가 오면 헤르카가 온다.
이 정도는 누구나 예측할 수 있는 일이었으며 가폰소도 크게 개의치 않았다.
“우리의 하이데스 회동을 더욱 빛내주겠구나.”
명망 높고 뛰어난 인물들이 많이 참여하면 할수록 하이데스 회동은 빛날 것이다.
가폰소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혹시 바르곤이라는 자에 대해 아십니까?”
“바르곤, 바르곤, 음, 이름이 익은데.”
“붉은 요새의 부요새장입니다.”
“……아! 그 죽은 바르넬리의 숨겨진 남동생?”
“맞습니다. 그 또한 하이데스 회동에 참석하고 싶다고 합니다.”
“이유는?”
“그가 빈첸 생도의 공식 후원자랍니다. 어떻게 할까요?”
“그가 오지 못할 이유라도 있나?”
“없습니다.”
빈첸을 후원하는 자.
그리고 붉은 요새의 부요새장이 이곳으로 오는 것은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자신이 후원하는 꼬맹이가 망신당하는 걸 보면 속이 꽤 쓰릴 텐데, 괜찮을지 모르겠군.”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헤나에게 보낸 서신은 하나의 작은 물결을 만들었고, 그 물결은 점차 커지기 시작했다.
여기서부터는 예상외의 인물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6마탑의 마탑주도 참석 의사를 밝혔습니다.”
하이데스 회동은 이제 1주일이 채 남지 않았다.
이러한 가운데 갑작스러운 참석의사를 밝히는 건 헬라임가 입장에서도 마냥 환영할 일은 아니었다.
가폰소도 이번에는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마탑주가? 명분은?”
“바르넬리의 유산을 모두 물려받은 바르곤. 그 바르곤이 후원하는 아이가 궁금한 것 같습니다. 본래 마탑 측에서는 바르넬리의 유산을 모두 귀속하려고 했었거든요.”
가폰소는 인상을 살짝 찡그렸다.
“6마탑주. 어지간해서는 오기 싫어할 줄 알았는데. 지하에는 별문제 없겠지?”
“예. 철저하게 대비하고 준비하였으니 괜찮을 것입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한 번 더 점검하도록.”
사리나가 나간 이후, 가폰소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맹랑한 녀석.’
빈첸의 의도대로 시선이 분산되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모든 상황에 통제하에 있었다.
‘오히려 고마운 일이지.’
헬라임은 대륙 남부에서 꽤 힘이 있는 가문이기는 했으나 세계 전체로 보았을 때 손가락에 꼽힐 만한 수준의 강대한 가문은 아니었다.
그러한 가문의 200주년 행사에 마탑주쯤 되는 인물이 와준다면 헬라임 입장에서도 무척 고마운 일이었다.
그때, 빈첸이 만남을 요청했고 가폰소는 수락했다.
“일주일 만에 인사 드립니다, 가폰소 경.”
* * *
가폰소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할아버지라고는 부르지 않는구나.”
“저희가 그 정도로 친밀한 사이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래, 그래. 호칭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지.”
가폰소는 어깨를 으쓱했다.
“헤나 아덴카. 헤르카, 바르곤. 그리고 마탑주까지. 네가 불러들인 변수들이겠지.”
“……알고 계셨습니까?”
“그래. 네가 시민 혁명대와 관련이 있다는 것도 안다. 밀실에서 그 녀석과 대화를 나누었다는 것도.”
“그렇군요.”
빈첸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는 않았다.
그러나 가폰소가 보기에 빈첸은 조금 당황한 것처럼 보였다.
“왜? 내가 그것도 몰랐을까 봐?”
“아닙니다. 알고 계셨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네 고지 점령전 참전을 허락하였다. 왜 그랬겠느냐?”
“제 패배를 확신하셨기 때문이겠지요.”
가폰소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서, 네가 준비한 패는 이제 끝이냐? 내 신경을 분산시키려면 이 정도로는 부족할 텐데.”
“아직 협조 요청 서신을 받지 못하신 듯하군요.”
“뭐?”
얼마 지나지 않아,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그의 오른팔 사리나가 문서 몇 장을 들고 왔다.
그녀가 빠르게 말했다.
“빈첸 생도가 이곳에 온 것은 이례적인 승급시험 때문입니다. 현재 그는 8급 생도이며 이번 시험을 통과할 시 7급 생도로 승급하게 됩니다.”
빈첸은 아직 8급 생도들과 제대로 된 만남도 하지 못한 상태다.
8급 생도들의 인정을 전혀 받지 못한 상태에서 7급 생도가 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고 생각한 헤르카가 협조 요청문서를 만들어 보냈다.
“8급 대표 생도 데미안 아덴카 외 2명. 그리고 7급 대표생도 테라인 마바인 외 2명이 헤르카 요새장과 동행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습니다.”
가폰소는 빈첸이 희미한 미소를 짓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 또한 네 예상에 있었느냐?”
“예. 7급 생도들까지 참관할 줄은 몰랐지만요.”
“그렇구나.”
가폰소는 그 자리에서 문서에 사인하여 생도들의 참관을 허락하였다.
“이걸로 네 준비는 끝이냐?”
“아닙니다.”
“그러면?”
“6마탑주님의 참석으로 인하여 하이데스 회동이 꽤 시끌벅적한 사건이 되었지 않습니까?”
“네 덕분에 그렇게 되었지.”
“그렇다면 참석의사를 밝히고 싶은 유력인사들이 더 있을 것입니다. 이를테면 가이아 신전의 둘란 신관 같은 분이요.”
“마탑주가 오는데 신관이 온단 말이냐?”
그가 다시 한번 웃음을 터뜨렸다.
“세상을 아직 잘 모르는구나. 그 둘은 같은 자리에서 같은 공기를 마시지 않는다. 적어도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그러나 둘란 경은 제 친구거든요.”
“친구이기 이전에 그들은 신전에 속한 자와 마탑에 속한 자다.”
“저는 제 친구가 저를 봐주러 올 것이라 굳게 믿고 있습니다.”
빈첸의 치기 어린 모습에 가폰소는 웃음을 멈추지 못했다.
“그래. 나도 그럴 때가 있었지. 때 묻지 않은 모습이 좋구나.”
그런데 또 얼마 지나지 않아 둘란 신관의 서신이 도착했다.
그쯤 되자 가폰소의 얼굴이 약간 굳었다.
“가이아 신전의 2급 신관 둘란.”
거기까지는 그런대로 괜찮았다.
“그리고 그를 수행하는 신성기사 멀린. 뭐? 멀린이 함께 오겠다고?”
멀린은 전대 아덴카 12검 중 한 명.
대륙 전체를 통틀어서 100명이 채 되지 않는 8성 무인이었다.
헬라임의 역사를 통틀어서 8성을 달성한 무인은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적었고, 현 세대에 이르러서는 단 한 명밖에 없었다.
그게 베르사 헬라임이었다.
빈첸이 물었다.
“그들이 하이데스 회동에 참여하지 못할 이유가 있습니까?”
“없지. 오히려 너무나 반가운 소식이다.”
“그렇군요.”
가폰소는 호탕하게 웃었으나 속마음까지 유쾌한 건 아니었다.
8성 무인은 걸어 다니는 공성병기나 다름없다.
그런 무인을 받아들이는 것은 어느 도시, 어느 가문에서도 꽤 큰 부담이었다.
“마탑에 신전에 8성 무인까지. 헬라임을 빛내주기 위한 잔치가 되겠구나. 8성에 달한 무인까지 우리의 자리를 빛내줄 줄은 몰랐다. 고맙다. 역시 할아버지를 생각하는 건 손자밖에 없구나.”
“8성에 달한 무인이 더 있을 텐데요?”
빈첸이 고개를 갸웃했다.
“베르사 헬라임. 그분도 헬라임이지 않습니까?”
어떤 경우,
결혼과 동시에 남편의 성을 따르는 가문도 존재한다.
그러나 베르사는 여전히 ‘헬라임’의 성을 쓰고 있다.
“그 아이는 아마 오지 않을 게다.”
“제 생각은 다릅니다.”
여지껏 웃기만 했던 가폰소가 빈첸을 노려보았다.
“네가 내 딸에 대해 무엇을 아느냐?”
똑똑.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현 세대, 헬라임에 존재하는 유일한 8성 무인 베르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베르사 헬라임. 가주께 인사드립니다.”
그녀가 차가운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제 아버님보다는, 제 아들이 저를 더 잘 알고 있는 것 같군요.”
“베르사. 데미아르를 위하여 절대로 헬라임의 땅에는 발을 들이지 않겠다 약속하지 않았느냐?”
“제 동생은 죽었습니다. 제가 직접 제 손으로 베었습니다.”
“…….”
가폰소의 몸이 바들바들 떨렸다.
베르사의 등장은 가폰소의 평정심을 크게 흔들었다.
“헬라임을 차지하기 위해, 네 동생을 직접 죽였느냐?”
“헬라임이 그토록 가치 있는 이름이었습니까? 패륜을 저질러서라도 빼앗고 싶을 만큼?”
“베르사!”
“적어도 저에게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미련 없이 헬라임을 떠났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돌아온 거냐!”
“헬라임의 공식적인 행사에, 헬라임의 딸이 없는 것도 모양새가 별로 좋지 않을 것이니까요.”
네가 언제부터 그런 모양새에 신경을 썼단 말이냐.
가폰소는 말하고 싶었지만 입을 다물었다.
빈첸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그래. 네 말이 맞았구나. 나를 흔들려는 계획은 크게 성공한 것 같다. 제법이구나.”
“칭찬 감사합니다.”
빈첸은 베르사에게 물었다.
“어머니를 시중드는 자는 누구입니까?”
“시종장, 레일사다.”
가폰소는 이내 평정심을 되찾고 다시 웃었다.
“그래, 그래. 8성 무인 베르사, 7성 무인 레일사. 둘도 데르소나에 들어왔다. 그 말을 하려는 것이지? 좋구나. 내 신경과 헬라임의 힘이 크게 분산되겠어, 으하하핫!”
“여전히 여유가 넘치시는군요.”
“여유롭지 못할 것이 무엇이냐?”
“시민 혁명대라는 변수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통제 못할 변수가 늘어나는 것이 싫지 않으십니까?”
“통제 못할 변수라니? 금시초문이구나.”
빈첸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렇다면 카곤 공자는 어떻습니까?”
“……뭐?”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인물의 이름이 등장했다.
“카곤?”
“제 이례적인 행사가 무척이나 궁금할 거거든요.”
이미 사건은 커질 대로 커진 상태.
사미온에도 하이데스 회동에 대한 얘기가 전해지고도 남았을 시간이다.
‘내가 보았던 카곤이라면 반드시 온다.’
그리고 빈첸이 알고 있는 사미온이라면,
‘나를 짓밟을 완벽한 계획을 위하여 보다 뛰어난 자가 파견되겠지. 나를 직접 보고 싶을 거야.’
아니나 다를까.
사미온의 카곤도 하이데스 회동에 함께하고 싶다는 의사를 알려왔다.
잠시 밖으로 나갔다가 돌아온 사리나의 팔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카곤 공자와…… 발키아 사미온 경께서 참석 의사를 밝히셨습니다.”
빈첸이 빙그레 웃었다.
“사미온의 가주께서도 참석한다고 하시는군요.”
가폰소의 얼굴이 굳어졌다.
헤나에게 보냈던 서신이 일을 이렇게나 크게 부풀렸다.
헤나부터 시작하여 요새장, 부요새장, 생도, 마탑주 등의 참석도 허가한 상태.
예외적인 인물들의 갑작스러운 참석을 허가했으니, 다른 인물들의 참석을 허가하지 않을 명분이 없었다.
작은 물결이 큰 물결이 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가폰소의 시선이 빈첸을 향했다.
‘그래서 일부러 헤나에게 서신을 보냈구나.’
거물급 인사들을 데려올 명분을 쌓기 위하여.
가폰소가 말했다.
“계략을 꾸미는 솜씨가 제법이구나. 어디, 네가 그린 그림이 여기까지더냐?”
“아닙니다.”
순간 가폰소는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아직입니다, 가폰소 경.”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이 더 커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