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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의 정석-58화 (58/184)

환생의 정석 58화

사미온의 지하감옥에는 살면서 한 번도 맡아보지 못했던 특유의 냄새가 있었다.

지하의 꿉꿉한 냄새와 더불어 느껴지던 오묘한 냄새.

‘저자다.’

커다란 덩치에 대머리.

험상궂은 인상에 네모난 턱.

그리고 오른쪽 볼에 남은 화상 자국.

‘어째서 그 냄새가 나는 거지?’

물론 단순히 우연일 수도 있다.

단순 우연으로 치부하기에는,

‘거동이 지나치게 수상한데.’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모습이 극도로 불안해 보였다.

눈동자에는 짙은 공포가 자리 잡고 있었다.

‘확인해 볼 필요가 있겠어.’

빈첸이 자리에서 일어서서 남자에게 다가갔다.

“저 혹시…….”

남자에게 가까이 다가가 보니 느껴졌다.

남자는 극도로 불안해하고 있었다.

동공이 흔들렸다.

“으읍- 으으윽-”

남자는 머리를 감싸 쥐고 괴로워했다.

“으윽- 으으윽-!”

남자는 두피를 쥐어뜯었다.

“으아아악-!”

식당 내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이쪽을 쳐다보았다.

겉으로 보기에 빈첸이 민간인을 괴롭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때, 빈첸이 홍련을 뽑았다.

‘두고 볼 수 없다.’

남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마나의 흐름이 보였다.

이 시대의 무인들은 느끼지 못하는 마나의 흐름.

심상이론을 배제하고 만들어낸 마나.

‘그 흐름이 왜.’

사미온의 방식과 이토록 유사하단 말인가.

빈첸 역시 사미온이었고, 사미온 직계를 넘어서기 위하여 사미온을 깊이 연구했었다.

그리고 이번 카곤과 결투를 치르면서 현대의 사미온도 경험했다.

‘사미온의 마나 구동방식과 일치해.’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저 남자의 심장으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기운은 분명히 사미온의 마나였다.

현대무인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마나의 흐름.

이 흐름은 ‘적황미력’을 발생시키는 흐름이었다.

‘눈에 보이지 않아. 그렇지만 분명히 적황미력이다.’

아마도 저 남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적황미력’을 다루는 것 같았다.

그리고 저 적황미력에는 가공할 만한 파괴력이 담겨 있었다.

저것은 강대한 마나폭발을 일으켜 이곳을 집어삼킬 것이 분명했다.

“으어, 으어어어어!”

남자는 자신이 어떻게 될 것인지 이미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공포에 절어 온몸을 바르르 떨었다.

바닥에 쓰러진 채 몸을 끌어안았다.

“으어어어어!”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빈첸은 저 괴성을 ‘도망쳐’라고 들었다.

그러나 이곳의 사람들은 남자의 경고를 알아듣지 못했다.

빈첸이 크게 외쳤다.

“이곳에서 멀어지십시오!”

그러나 빈첸의 말을 듣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오히려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이쪽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대다수였다.

레이븐이 소리치며 창대로 땅을 내리쳤다.

“멀어지라잖아, 이 멍청한 놈들아!”

그의 포효는 사자후였다.

레이븐의 기세에 눌린 사람들이 눈치 보며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빈첸! 나만 믿어. 내가 서포트할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돕기로 했다.

덕분에 빈첸을 방해할 만한 요소는 없어졌다.

빈첸은 외부에 대한 신경을 끈 채, 마력흐름에 집중할 수 있었다.

‘적황미력이 중첩되고 있어.’

다만,

이 남자가 본래 가진 마나. 혹은 스스로 다룰 수 있는 마나보다 훨씬 더 많은 양이 중첩되고 있다.

‘심장이 버티지 못하고 터질 거다.’

보아하니 레이븐은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전혀 모르는 눈치다.

살왕이라 불렸다던 세르쿤조차도 이 상황을 읽어내지 못한 것 같았다.

빈첸이 말했다.

“커다란 폭발이 있을 겁니다.”

세르쿤은 고개를 갸웃했다.

‘폭발?’

그러나 빈첸이 장난을 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의 임무는 레이븐을 보호하는 것이고,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하기로 했다.

‘무슨 폭발이 일어난다는 거지?’

그때, 세르쿤은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다.

쓰러져서 몸을 뒤틀고 있는 남자에게서 무언가 이질적인 기운이 느껴졌다.

‘이제야 마나의……흐름이 느껴진다?’

인지하지 못할 때는 느껴지지 않다가, 인지하고 난 이후에야 느껴지는 것들이 있다.

지금도 그러했다.

‘있다.’

정확히 읽어낼 수는 없었다.

그러나 분명히,

‘강대한 흐름. 무엇인가가 중첩되고 있다.’

그 기운이 중첩되고 중첩되다가,

‘이내 터질 것이다.’

놀랍게도 빈첸이 먼저 그것을 읽어낸 것이다.

일단 상황을 인지하자, 상황판단과 대처 준비는 누구보다 빨리 끝낼 수 있었다.

‘막기에는 늦었어.’

폭발은 일어날 것이다.

이곳의 많은 자들이 폭발에 휘말릴 것이다.

‘피해라도 최소화해야 해.’

찰나의 시간 동안 그는 많은 것을 계산했다.

빈첸까지 보호해 줄 수는 없었다.

미안하지만, 레이븐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 것에 초점을 맞춰야 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빈첸이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무엇인가를 베어내는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허공을 베고 있는 모습은, 어찌 보면 우스꽝스럽기도 했다.

‘그리고…… 베었다.’

쓰러진 남자를 향해 홍련을 휘둘렀다.

분명 그러했다.

‘그러나 베이지 않았다.’

그의 상식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 * *

빈첸은 정신을 집중했다.

네디아에게 배운 그의 검은, 사미온을 넘어서기 위한 검이었다.

사미온을 극복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검.

‘베어낼 수 있다.’

빈첸의 ‘이능검격’은 이적과 이능을 베어내는 검이다.

그는 다시 한번 머릿속으로 되뇌었다.

‘베어낼 수 있어.’

마나 폭발 역시 하나의 이능이다.

‘무엇을 베는가.’

베어낼 이능에 집중했다.

시야가 점차 어두워지며 좁아졌다.

빈첸의 시야에 오로지 마나 덩어리 하나만 남게 되었다.

베어야 할 본질이 바로 저것이었다.

남자의 몸이 하나의 덩어리로 보였다.

‘마나의 흐름을 베어낸다.’

마나 폭발이라는 것은, 결국 마나의 팽창이다.

압축된 마나가 일시에 주위로 퍼져 나간다.

수천만 가닥의 마나가 한 번에 폭발을 일으킨다.

‘가닥 가닥을 잘라내어.’

저것이 한 번에 터지면 수많은 인명피해가 날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부터 조금씩 잘라내어 폭발력을 약화시켜야 한다.

찌릿,

하고 온몸이 경고를 보내왔다.

근육이 바들바들 떨렸다.

폭발을 베어내는 것은 위험하다.

두려움이 아예 없다면 그건 거짓말이었다.

그에게는 다시 주어진 이번 삶이 중요했고, 이곳에서 죽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그러나 나는 해야 할 일을 해야 한다.’

그에게는 데이븐의 기억이 있고.

네디아의 검술이 있으며.

아슬란이 남겨주었으되 멀린에게 배운 아덴카의 검식이 있다.

빈첸은 화려하지 않은 모양새로 검을 휘둘렀다.

‘적황미력은 내부의 마나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므로.’

적황미력은 오러와도 같은 힘을 낸다.

수준 낮은 무인이 더 강력한 힘을 내줄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것은 자연에 존재하는 마나를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외부의 마나와 내부의 마나선을 먼저 베어내어 공명을 차단한다.’

여러 번 검을 휘둘렀다.

화려하지 않았으나, 빈첸의 움직임은 깔끔했다.

6개월간 빈첸을 가르친 멀린도 빈첸의 검을 이렇게 평가하였다.

[마치 수십만 번 같은 동작을 반복하여 몸에 익힌 것 같구나.]

몸에 익은 동작.

영혼에 각인된 검로.

후웅-

후웅-

빈첸의 검이 허공을 갈랐다.

남들 눈에는 허공을 베는 것으로 보였다.

절제된 검술 시범을 보이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이미 폭발은 시작되었다.

그것이 빈첸에게는 보였다.

순간,

눈앞이 밝아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지금.’

흑색 검로가 보였다.

빈첸은 망설이지 않고 남자의 목을 베었다.

‘이능검격.’

그의 검.

이능검격이 이능을 베었다.

‘폭발’ 역시 하나의 이능이므로.

그것도 사미온의 마나 흐름으로 구성된 이능이므로.

빈첸은 그 폭발을 베어낼 수 있었다.

폭발을 베어낸 이능검격은, 살상력이 소멸되었다.

남자의 목에는 생채기 하나 나지 않았다.

‘됐……나?’

아주 작은 폭발음이 일었다.

퍽!

작은 화약이 터진 것만 같았다.

‘온몸이 부서질 것 같군.’

빈첸은 검을 거두었다.

어쨌든 폭발은 막아냈다.

사람들은 어찌 된 영문인지 모르고 이쪽을 계속 바라보며 수군거렸다.

저희들이 생과 사의 기로를 넘나들었다는 것을 전혀 몰랐다.

“뒤를 부탁한다, 레이븐.”

빈첸은 레이븐 앞에서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레이븐은 얼떨결에 빈첸을 안아 부축했다.

레이븐은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집사.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

“저도 정확히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짚이는 것은 있습니다.”

세르쿤은 은사(銀絲)를 풀어 윌슨과 쓰러진 남자의 발목을 감았다.

“일단 위로 가시지요.”

그의 모습이 사라졌고, 레이븐은 빈첸을 업은 채 계단을 올랐다.

* * *

세르쿤은 자신이 본 것을 인정하기 어려웠다.

‘분명히 폭발은 있었다.’

그냥 내버려 두었으면 정말 큰 인명피해가 일어날 수도 있었다.

단순히 이 대머리 남자를 죽이는 것으로 해결될 문제는 아니었다.

이미 ‘마나 중첩’은 시작되었고, 폭발은 예정되어 있었으니까.

‘예정되어 있던 폭발을 없앤 거야.’

특성인가?

처음에 든 생각은 빈첸에게 특별한 특성이 존재한다는 생각이었다.

이 시대의 특성은 수만 가지가 넘었고, 폭발을 제거하는 특성도 존재할 수도 있으니까.

‘그러나 빈첸 공자에게는 특성이 거의 없다 알려져 있는데.’

직접 눈으로 본 그는 확신했다.

‘본신의 검술만으로 베어낸 거야. 특성의 도움 없이.’

그건 무척이나 위험한 일이었다.

폭발을 제거하려다가 오히려 그 폭발에 휘말려들 수도 있다.

여럿 살리려다가 폭발 속에 휘말려 시체조차 남지 않을 수도 있다.

상승의 무인이어야 가능한 정도의 검술이었다.

‘빈첸 공자의 실력으로 불가능한 일인데.’

심상이론을 수련한 그의 눈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빈첸은 해냈다.

‘도대체 무슨 특성을 익힌 거지?’

이 남자를 베었으나 이 남자는 다치지 않았다.

‘……마는.’

코에 손을 대보았다.

이미 숨을 쉬고 있지 않았다.

‘죽은 건가.’

아니.

‘이미 죽어 있었다.’

세르쿤은 수많은 사람을 죽여 보았다.

죽음의 기운에 누구보다 익숙했다.

이 남자에게서 느껴지는 죽음의 기운은 굉장히 오래된 것이었다.

문이 열렸다.

빈첸을 업은 레이븐이었다.

“집사!”

문을 연 레이븐은 그 자리에 우뚝 멈춰 섰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눈에 보이는 그대로입니다.”

정신을 잃은 것처럼 보였던 대머리 남자의 몸이 발목부터 사라지고 있었다.

“재가 되고 있는 것처럼 보여.”

“제 눈에도 그렇게 보입니다.”

“빈첸이 화검(火劍)을 익혔어?”

재가 되어 사라졌다.

불에 타 없어지는 종이처럼.

발끝부터 점차 없어지더니 결국 완전히 사라졌다.

레이븐은 일단 정신을 잃은 빈첸을 침대에 눕혔다.

레이븐의 눈빛이 진지해졌다.

“집사는 알지? 방금 빈첸이 뭘 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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