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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의 정석-20화 (20/184)

환생의 정석 20화

야장 한센.

그는 비교적 저렴하고 질이 제법 좋은 병장기를 취급하는 아덴카의 장인 중 한 명이었다.

제론이 그의 공방을 찾았다.

“불량품을 팔면 어떡합니까?”

“뭔 헛소리야? 불량품이라니?”

“보름밖에 안 된 검집이 이렇게 박살 나기 직전이란 말입니다.”

“어디 봐.”

그는 60가량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근육이 우락부락했다.

난쟁이족이어서 키는 작았지만 몸무게는 100㎏이 넘었다.

검집을 살펴보던 한센이 인상을 찡그렸다.

“이게 뭐야?”

“왜요?”

외부충격으로 인해 검집에 금이 간 것이 아니었다.

이건 안쪽에서 깨졌다.

“흔적이 영 이상한데. 검을 좀 꺼내 봐.”

검을 받아든 한센은 한참 동안이나 검을 살펴보았다.

“최근에 격한 대련이라도 했나?”

“아뇨?”

“아니면 명검과 여러 차례 부딪쳤다거나.”

“그런 적도 없고요.”

“이빨이 날카로운 마물과 싸운 적은?”

“이 검으로는 없는데요.”

“근데 왜 이래?”

무인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대장장이의 눈에는 보였다.

“왜요?”

한센은 대장간 안으로 걸어 들어가 작은 망치를 하나 꺼내 들었다.

“줘봐.”

“왜요?”

“아무튼.”

한센은 제론의 검을 받아들고 작업대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있는 톡! 내리쳤다.

“뭐하는 겁니까?”

“보면 알아.”

약간 시간이 흐르자 검신에 쩌적- 쩌적- 금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내 검 전체가 유리창처럼 깨져 버렸다.

“뭐, 뭐하는 겁니까!”

“네 검이 명검은 아닐지 몰라도, 이 정도 충격에 이렇게 되지는 않는단 말이야.”

한센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네 검은 이미 수명이 간당간당한 상태였어.”

“산 지 얼마 안 됐는데요?”

“그러니 이상하지.”

잠시 생각에 잠겼던 한센이 제안했다.

“부서진 검은 내게 넘겨라.”

“엥? 왜요?”

“연구할 필요가 있겠어.”

“그럼 전 뭘 씁니까? 환불해 주기 싫어서 수작 부리는 건 아니죠?”

“이놈이?”

“농담입니다, 농담.”

“흑강철을 섞어 더 좋은 검을 만들어주지.”

“정말입니까?”

“대신 이 검을 쥐고 뭘 했는지 낱낱이 다 말해봐.”

“별 건 안 했고…….”

보름간 특별한 임무는 없었다.

그가 했던 것이라고는 늘 하는 동료들과의 대련뿐이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하나 달라진 점이 있었다.

“아, 최근 지도대련을 좀 하고는 있습니다만.”

“지도대련?”

“예. 빈첸 공자님과 좀 친분이 생겨서요.”

난쟁이족 한센의 귀가 쫑긋쫑긋 움직였다.

“자세히 좀 얘기해 봐.”

* * *

한센은 깜짝 놀랐다.

“빈첸의 검이 ‘홍련’이었다고?”

“네. 가주께서 하사하신 모양이더군요.”

“허. 칸이 홍련을 줬단 말이냐? 거짓말은 아니겠지?”

한센은 칸을 일컬어 그냥 ‘칸’이라 불렀다.

제론은 한센과 칸이 어린 시절부터 호흡을 맞춰온 야장이라는 사실을 떠올렸다.

제론의 태도가 조금 더 공손해졌다.

“제가 거짓말을 왜 하겠습니까?”

“그건 그렇지. 흐음.”

한센은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소싯적에 꽤 아낀 검인데. 그걸 못난이 빈첸한테 줬단 말이야?’

칸이 검을 하사한 것도 이상하고.

그 검이 하필이면 홍련인 건 더욱 이상했다.

한센은 누구보다 홍련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었다.

왜냐하면 홍련을 만든 사람이 그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제론의 검 상태가 제일 이상하지.’

다 이상하지만 이게 제일 이상했다.

홍련은 그가 거의 40년 전에 만든 검이었다.

‘홍련으로 제론의 검을 이렇게 만들었다는 건 말이 안 돼.’

최근 40년간, 제작기술은 눈부시게 발전했다.

40년 전 중상 등급의 검보다 지금의 평범한 검이 더 날카롭고 예리하다.

‘빈첸에게는 아무 특성도 없잖아.’

더군다나 상대는 5성의 무인 아닌가.

상식적으로 이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빈첸을 만나봐야겠다.”

“예?”

“안내해.”

“약속도 안 잡고 다짜고짜 바로요?”

“마음만 먹으면 칸도 그냥 만나는 사람이다, 이 자식아.”

“그건 또 그렇지만…….”

제론은 영 께름칙한 표정을 지었다.

한센이 공방 안 어딘가로 들어가더니 검 한 자루를 들고 나왔다.

“자. 흑강철로 제련한 검. 순도가 20프로 정도 된다.”

“가시죠.”

한센은 곧바로 별채로 향했다.

“근데 갑자기 왜 그러시는 건데요? 저도 공자님께 말씀드릴 명분이 좀 필요해요. 무턱대고 찾아갔다고 저만 혼나면 어떡해요?”

“그 못난이가 사람을 혼내?”

“세상 소식에 도통 어두우시네. 빈첸 공자님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는데, 전혀 못 들으셨어요? 진검회동 우승자를 박살 내고 붉은 악귀까지 토벌했다고요.”

한센은 대장간에만 처박혀 있어서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잘 몰랐다.

“흥, 아덴카 직계들에게는 너무나 당연해서 일상인 소리를 하는구나.”

그래도 일단 핑계는 대주었다.

“홍련이 제작된 뒤로 시간이 많이 흘렀다. 홍련을 손봐주고 싶어서 그래.”

“그 정도 명분이면 공자님께서도 좋아하시겠네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칸의 오랜 친구이자 야장 한센이 홍련을 손봐주고 싶다.

이 정도 명분이면 갑작스레 빈첸을 찾는 충분히 훌륭한 명분이 되어 줄 테니.

* * *

난쟁이족은 뛰어난 야장공들을 많이 배출한 종족이었다.

야장공들 중에서도 특히 뛰어난 자들을 일컬어 ‘야장’이라 불렀는데, 대부분의 야장들은 난쟁이족이었다.

그들은 각종 제련과 제작기술에 능통하였으며 그러한 가호와 특성을 지니고 태어난, 천부적인 대장장이들이었다.

그중에서도 한센은 꽤 특별했다.

불 계통 신들 중 수위를 다투는 상급 신. ‘무면의 불길’이라고도 불리는 ‘헤라’.

제작 계열 신들 중 수위를 다투는 상급 신. ‘억겁의 모루’라고도 불리는 ‘메이거’.

둘의 가호를 동시에 타고난 난쟁이였다.

그는 13살이 되었을 무렵 칸을 처음 만나게 되었다.

당시 칸의 나이는 6살이었다.

칸은 다짜고짜 좋은 검이 필요하니, 훌륭한 야장을 수하로 거두고 싶다고 말했다.

한센은 그런 칸을 당연히 비웃었다.

“네가 날 이기면 그렇게 해주지, 인간 꼬마.”

그렇게 둘의 만남이 시작되었다.

“네까짓 꼬맹이는 한주먹거리도 안 된다, 으하핫!”

난쟁이족 한센은 인간족 칸에게 승리했다.

당시 칸의 팔이 부러졌었다.

“또 도전 해봐라, 애송이!”

그리고 6개월 뒤.

칸이 또다시 한센을 찾아왔다.

한센은 조금 당황했다.

‘인간족 6살인데? 왜 이렇게 빨리 강해져?’

인간족은 타 종족에 비해 타고난 신체가 약한 편이다.

그래서 초반의 성장은 느린 편에 속했다.

‘6개월 전보다 훨씬 강해졌잖아?’

그 날은 무승부였다.

둘은 함께 쓰러졌다.

다시 6개월이 흘렀다.

그때부터는 칸의 우위에 서기 시작했다.

칸은 9살이 되었고 한센은 16살이 되었다.

“젠장. 이젠 상대도 안 되는군.”

한센은 직감했다.

이제는 절대로 칸을 이길 수 없다.

칸이 말했다.

“이제는 약속을 지킬 때가 되었나?”

한센은 난쟁이족 부락을 떠나 칸의 거처로 자리를 옮겼다.

“뭐야? 너 아덴카의 직계였어?”

“그게 문제가 되나?”

“그건 아니지만.”

한센은 허- 웃고 말았다.

저 꼬맹이가 아덴카의 직계일 줄이야.

어쨌든 한센은 16살에 아덴카에 터를 잡게 되었다.

“가장 눈에 띄는 색이 어떤 색이지?”

“붉은색?”

“그렇다면 붉은색 검을 만들어주면 좋겠군.”

“검을 붉은색으로 만들어 달라고? 제정신이야?”

“왜? 안 되나?”

“검은 무난한 게 좋아. 괜히 특색 가득한 검을 들었다가는 명성의 사냥감이 되기 딱 좋다고.”

그 말에 칸이 씨익 웃었다.

“붉은 검을 들면 내게 모조리 달려들겠군.”

“그럼. 그 검을 노리는 자가 못해도 수천은 될 거다. 그리고 그 검을 빼앗겠지. 아덴카의 직계를 꺾었다는 증거가 될 테니.”

“더욱 좋군.”

그것조차 극복하지 못하면 무인이라 할 수 없다고 했다.

“어휴, 그래, 만들어준다.”

17살의 한센은 뛰어난 야장이라 불리기에는 많이 부족했다.

그렇지만 최선을 다해 붉은 검을 만들었다.

그 검을 받아 든 칸은 기뻐하며 말했다.

“힐트(검 손잡이)에 네 이름을 새겨줘.”

훌륭한 무인에게는 늘 뛰어난 병장기가 함께한다.

무인의 명성이 높아지면 야장의 명성도 함께 높아진다.

그래서 야장들은 자신의 이름을 힐트에 새기고 싶어 했다.

반대로 무인들은 야장의 이름을 새기고 싶지 않아 하는 경향이 있었다.

소위 말해 ‘병장기 덕분’이라는 말을 들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아직. 나중에 더 좋은 검을 만들어줄게.”

“이것도 훌륭한 검이라 생각한다.”

이것도 훌륭한 검이다.

그 말은 한센에게 큰 자극이 되었다.

“그러나 네가 원하지 않는다면 네 이름은 나중에 새기지. 대신 이 검의 이름을 지어줘.”

한센은 잠시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홍련은 어때?”

“이 검의 이름은 홍련이다.”

한센은 ‘이름을 새길 수 있는 검’을 만들기 위해 매일을 노력했다.

그렇게 하여 훗날 명검 ‘백익(白翼)’이 탄생하였다.

덧붙이자면 칸 역시 단 한 번도 ‘홍련’을 빼앗긴 적이 없었다.

그리고 시간이 더 흘러, 한센이 말했다.

“칸. 이제 나한테 자유를 주면 좋겠는데.”

“더 이상 병장기를 만들기 싫은가?”

“아니. 그 반대다. 너무 많이 만들고 싶어서 문제지.”

한센은 더 이상 ‘명검’을 만들지 않았다.

중간 등급의 적당히 좋은 검들을 대량 생산하는 것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칸이 물었다.

“돈을 위해서인가?”

그러나 그게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한센은 돈에 욕심이 많은 자가 아니었다.

“저번에 쌍두 오크에게 죽은 소년을 보았어. 실력이 제법 괜찮은 녀석이었거든.”

“실력이 괜찮았다면 쌍두 오크에게 죽지 않았겠지.”

“그 소년에게 질 좋은 검이 있었다면 그는 살았을 거야.”

“그게 실력이 부족했던 것이다.”

“널 이해시키려는 생각은 아냐. 다만 돈이 곧 실력이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뿐이다.”

그래서 한센은 보다 저렴한 가격에 질이 비교적 괜찮은 검들을 대량 양산하는 연구에 몰입했고, 야장들로부터 크게 비난을 받았다.

-장인 정신을 버려버린 배신자.

-명인의 이름이 부끄러운 대장장이.

그러나 한센은 묵묵히 제 갈 길을 갔다.

명예는 잃었지만 그는 괜찮다고 생각했다.

‘오늘도 내가 만든 검으로 누군가가 살았을 테니.’

한센 덕분에 공방들의 수준이 전체적으로 상향평준화되었고, 병장기들의 가격이 하향 조정되었다.

그런 그가 빈첸을 찾았다.

* * *

자정에 가까운 시각.

제론이 누군가를 데려왔다.

문이 열리고 모습을 드러낸 사람은 다부진 체격의 한 남자였다.

빈첸은 그를 보자마자 알 수 있었다.

‘훌륭한 대장장이다.’

이건 수많은 자들을 만나보며 쌓게 된 본능적인 감각이었다.

사람은 그 사람이 살아온 세월과 경험이 신체에 각인된다.

단련된 무인은 그것을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다.

율리안이 그토록 야만적이라 폄훼하는 ‘육감’의 영역이었다.

그가 대뜸 말했다.

“홍련을 좀 보여줘 봐라, 꼬맹이.”

대장장이 특유의 불향과 체격이 눈에 들어왔다.

제론이 민망한 듯 말했다.

“죄송합니다, 공자님. 하도 무턱대고 와야겠다고 호통을 쳐대는 바람에. 공자님의 홍련을 손봐주겠다고 하도 말하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데려왔습니다. 저자는 실력이 뛰어난 야장이니 홍련을 손봐줄 수 있을 것입니다.”

“민망해하는 것을 보니 예의에 어긋나는 건 아는 모양이구나.”

빈첸의 눈이 제론의 허리로 향했다.

그는 단숨에 제론이 새로운 검을 얻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한 번의 기회를 주겠다, 제론.”

잘못을 바로잡을 기회를 한 번 주기로 했다.

제론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사실 그도 안다.

‘홍련을 손 봐준다’라는 것은 그저 명분에 불과했을 뿐이라는 것을.

‘잠시 뭐에 씌었나 보다.’

제론이 차렷 자세를 하고 섰다.

변명은 하지 않기로 했다.

“죄송합니다.”

말뿐인 사과는 의미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그는 검집을 통째로 빈첸 앞에 내려놓았다.

“거두어 주십시오. 잠시 욕심이 눈을 가려 아둔한 짓을 했습니다.”

빈첸은 제론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말했다.

“제론. 나는 그저 네 부탁이라면 들어주었을 거야.”

그 말에 제론이 고개를 푹- 숙였다.

부끄러워서 어딘가로 숨고 싶을 지경이었다.

그런데 그때, 빈첸이 예상치 못했던 말을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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