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스타 검사가 되련다 (3)
나는 먼저 상자에서 짝퉁 명품 시계와 가방을 하나씩 들어 카메라 앞에 내보
였다.
“성해지청 백동준 검사입니다. 방금 이곳 성해 세관 창고에서 압수한 물품입
니다. 교묘하게 만들어진 짝퉁이죠. 이 외에도 이곳 성해 세관을 통한 밀수
정황이 파악되어 적극적으로 수사에 나서고 있습니다.”
그때, 아직 학생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앳된 얼굴의 여기자가 펜을 꼭 쥔
채 손을 들었다.
“KDS 울산방송국에서 나온 주신영기자입니다. 방금 압수하신 물건이라고 하셨
는데요, 검사님께서는 어떻게 미리 저희 기자들에게 이곳 세관으로 나와달라
고 말씀해 주실 수 있었나요?”
다소 도발적인 질문이었지만, 내 심기를 건들지는 않았다. 왜냐면, 주신영 기
자가 펜과 함께 들고 있는 저 수첩에는 내가 미리 던져준 질문이 적혀 있으니까.
당연히 질문만 미리 준비하지는 않았다. 답변 역시 내 이미지를 능력 있는 검
사로 만들 수 있도록 잘 짜 두었다.
“제가 수사하고 있는 또 다른 사건의 용의자가 성해 세관 공무원과의 결탁을
통해 오랫동안 밀수를 벌여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어제 그 용
의자로부터 범죄 일체에 대한 자백을 받아냈고, 여기 세관 창고에 밀수 물품
이 있다는 걸 미리 알아 기자님들을 모실 수 있었습니다.”
주신영 기자는 자기가 잘한 게 맞냐고 묻는 듯한 눈빛을 보내왔고, 나는 고개
를 끄덕이며 작은 웃음을 지어 그녀를 안심시켰다.
그다음 상황은 내 계획대로 착착 맞아떨어졌다. 나머지 두 기자가 놀란 눈으
로 서로를 바라보다가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죄송하지만, 검사님 성함 한 번만 더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사건을 넘어 나한테 관심을 보인다는 확실한 신호였다. 기자들이 보인 이 관
심은 곧 대중에게로 전달돼 폭발적으로 증폭되겠지.
“백동준입니다.”
“백동준 검사님 감사합니다. 한빛일보 최덕수 기자입니다. 이번 사건 외에도
밀수 정황이 파악되셨다고 하셨는데, 그 규모는 어느 정도로 보십니까?”
이건 미리 알려준 질문은 아니었지만, 역시 잘 답변하면 내 능력을 두드러져
보이게 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나는 우승식과 조성래의 마음에 침투해 읽어낸 정보들과 내가 미래에서 갖고
온 지식을 종합하여 대답했다.
“현재까지 최소 23회의 밀수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고요, 그 액수는 밀수 물품
의 시중 판매가를 기준으로 10억 원 상당으로 추정됩니다. 또한, 그 뒤에는
지역 유지와 세관 공무원 사이의 담합이 있었다는 것까지 파악되었습니다.”
“검사님 말씀을 들어보면 꽤 오랜 기간에 걸쳐 범죄가 진행된 것 같은데, 그
동안 파악되지 않았던 이유는 뭘까요?”
그거야 최대한 사실대로 대답하자면, 우승식이랑 조성래가 약도 치고 인사도
큼지막하게 하면서 수사 자체를 막았으니까.
물론 지금은 사실에 충실하기보다 거짓말만 안 하면서 내 이미지를 최대한 극
적으로 포장할 수 있는 대답을 해야 할 때이다.
“앞서 말씀드렸듯 제가 이곳 성해에 부임한 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이제
이 지역에서 벌어졌던 고질적인 병폐의 머리를 잡았으니 완전히 박멸하고 다
시는 재발하지 않도록 철저한 조치를 취하려고 합니다.”
“검사님, 굉장히 젊어 보이시는데 혹시 직급은 어떻게 되시나요?”
“초임 평검사입니다.”
경험이 적다는 게 보통은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지만, 이런 성과와 함께
강조되면 될성부른 나무의 튼실한 떡잎으로 보이기 마련이다.
두 기자의 눈이 놀라다 못해 토끼마냥 동그랗게 변한 게 그걸 아주 잘 방증하
고 있지 않은가?
그 뒤로 밀수에 관한 이야기가 조금 더 오간 뒤, 주신영 기자가 나랑 미리 입
을 맞춘 두 번째 질문을 던졌다.
“검사님 뵐 기회가 많지는 않아서 한 가지만 더 여쭙고 싶습니다.”
“네. 편하게 질문하세요.”
“저희가 인근 학교에서 벌어진 학교폭력에 대해서도 취재하고 있는데요, 그
정도가 상식을 뛰어넘는다는 이야기만 들리고 그 학교 학생이든 선생님이든
모두 제대로 된 응답을 안 해 주셔서요. 혹시 검찰청 차원에서 파악된 내용은
있나요?”
“아직 수사 중인 사안이지만, 들으신 대로 그 내용은 다른 학생들에게도 경각
심을 주는 차원에서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네요.”
그러고 나서 나는 우지현이 저지른 일을 실명만 밝히지 않은 채 낱낱이 고했
고, 이번에는 두 기자가 동시에 입이 떡 벌어졌다.
동급생한테 성매매를 강요하고 그 수익을 갈취하려고 했던 여고생이라니, 이
건 정말 누가 들어도 분노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규모는 작았어도 내용은 견실했던 기자회견을 마친 그날 저녁, 주신영 기자가
아주 들뜬 목소리로 나한테 전화를 걸어왔다.
- 검사님, 엄청 좋은 소식이에요.
“뭔데요?”
- 오늘 해 주신 기자회견이요, 저희 KDS 울산 방송국이 아니라 전국 방송에서
보도하게 됐어요. 그것도 8시 메인 뉴스에요.
오호, 데뷔 무대가 공중파 방송의 저녁 시간 뉴스라. 꽤 마음에 드는 결과였다.
“잘됐네요. 그럼 조금 이따 나오는 뉴스에 제 얼굴 비추는 건가요?”
- 아, 오늘은 뉴스 편성이 다 끝나서 내일 나갈 거예요. 그리고 정말 감사드
려요. 검사님 덕분에 저도 좋은 취재 해 왔다고 국장님한테 칭찬 많이 받았어요.
승진하거나 보너스를 받은 것도 아닌 모양인데 칭찬을 이렇게 좋아하다니. 외
모만큼이나 마음도 아직은 어린 게 티가 났달까?
“제가 불렀는데 안 오신 기자님들도 얼마나 많은데요. 성실하게 일하셨으니까
칭찬받으시는 게 당연하죠. 회견장에서 제가 드린 질문해 주셔서 저도 감사드
려요. 밀수랑 학교폭력 중에 어떤 게 메인 뉴스로 나가는 거예요?”
- 둘 다요! 혹시 추가 인터뷰 요청 드릴 수도 있는데 괜찮으실까요?
“물론이죠.”
오케이. 내 계획대로 스타 검사의 반열에 오를 일이 정말 얼마 남지 않았구나.
* * *
그날로부터 한 달이 흘렀다. 그 사이 우승식과 우지현 부녀는 나란히 구속수
감된 채 기소되어 법정에서 선고가 떨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조성래는 내가 말했던 대로 즉각 직위해제 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관세청
징계위원회에서 해임 처분되었다.
당연히 형사 절차도 이루어지고 있고, 우승식과 마찬가지로 감옥에서 얼마나
있게 될지 궁금해 하며 판사님 입만 바라보고 있는 중이다.
곧 판결이 나오면 우승식이고 조성래고 그동안 밀수로 벌어들인 돈은 모두 추
징금으로 뱉어낼 처지인 건 두말 할 필요가 없다.
흔히 법에 관해서 오해하는 게, 범죄 수익 왕창 땡기고 교도소에서 몇 년 있
다가 남은 인생 떵떵거리고 살면 개이득이라는 건데, 이거 아니다.
형사 처벌과는 별개로 범죄로 얻은 수익은 모조리 추징금으로 나라에 바쳐야
하니, 그런 생각 하지 말자.
변화는 내 삶에도 찾아왔다. 내가 경험했던 미래 그대로 밀수와 학교폭력은
전국의 여론을 휩쓰는 이슈가 되었다.
그 직전에 내 기자회견이 대문짝만하게 공중파 메인 뉴스의 두 꼭지를 장식하
였기에 나는 그 두 이슈를 법적으로 엄단하는 대표 검사가 되어 있다.
며칠 전에 성해까지 내려온 어떤 기자가 인터뷰하면서 그러더라. 요즘 사람들
이 ‘검사’ 하면 떠오르는 얼굴이 내가 됐다고.
그리고 지금 나는 출근 전 그 인터뷰가 실린 기사를 읽고 있다. 밀수와 학교
폭력 이야기가 쭉 지나가자 기자가 다른 질문을 던졌다.
- 성해 출신으로서 자랐던 곳으로 돌아가 지역의 거악을 척결하는 검사님, 정
말 멋있습니다.
- 그 정도는 아닌데, 감사합니다.
- 충분히 멋있으신데요. 그런데 요즘 성해가 다른 문제로 시끄럽잖아요? 지역
을 먹여 살리는 줄 알았던 성해 조선소에서 산업재해로 다친 직원들이 한 둘
이 아니라고 파업이 일어났다면서요? 검찰에서는 어떻게 대응하고 계신가요?
사실, 이건 내가 일부러 꼭 인터뷰 내용에 넣는 건 물론, 편집 없이 보도해
달라고 부탁했던 질문이다.
내 아버지를 사지로 몰고 갔던 우승식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는 승식 실업을
아예 성해 조선소에서 몰아낼 작정이었으니까.
승식 실업은 HL 중공업의 사내 하청 업체로, 일이라고는 성해 조선소 한 곳에
서만 수주하고 있다.
그러니 내가 승식 실업을 성해 조선소에서 날려버리면 회사는 그대로 파산하
고 우승식은 감옥에서 나왔을 때 거지꼴을 못 면하게 된다.
인터뷰 기사에서 내 답변이 이어졌다.
- 노동쟁의에 검찰이 직접 개입하지는 않는데요, 고소 고발이 몇 건 들어와서
저희 성해지청에서 수사 중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다만, 수사 중인 사안에
대해서는 같은 검찰청에 있어도 알기가 어려워서 제가 뭐라고 답변 드릴 수는
없네요. 오히려 제가 묻고 싶은 게 있는데요.
- 네.
- 언론에서는 왜 이 파업이 보도가 안 될까요? 저도 저희 지역의 일이라 기사
나왔나 틈틈이 찾아보는데 아무 보도가 없더라고요?
이게 내가 이 인터뷰에 응하면서 성해 조선소 파업 사건을 꼭 다뤄달라고 했
던 이유다. 스타 검사의 권력으로 이 사건을 수면에 띄우려는 것이다.
- 그러게요. 저도 검사님이랑 마찬가지로 그 사건 담당 기자는 아니라서 보도
가 안 나가는 이유를 잘은 모르겠지만, 저희 언론에서도 관심을 가져야 할 사
안이 아닐까 합니다.
그 이유, 너무 뻔하지 않은가? 내 아버지를 죽이고도 여전히 HL 중공업의 대
표이사로 떵떵거리고 있는 허민회가 막고 있는 거다.
이 인터뷰 기사가 포털 메인에 걸렸으니 보면서 배알이 꽤 뒤틀리고 있겠지.
물론 이제 한 걸음을 뗐을 뿐이다.
나는 이번 파업 사건을 끝까지 물고 늘어져서 우승식은 물론 허민회한테도 심
대한 데미지를 입힐 생각이니까.
기사를 다 읽고 검찰청에 출근했는데, 송민지 사무관이 부랴부랴 나한테 달려
왔다.
“검사님, 지금 빨리 올라가 보셔야 할 것 같은데요?”
“네? 어디로요?”
“검사장님이 찾으신대요.”
검사장이라. 성해지청 내에서 가장 높은 사람이다. 그러니 평검사인 나랑은
평소에 딱히 직접 말 섞을 일이 없는 양반이기도 하다.
보통은 사건 관련해서 부장검사랑 주로 이야기하고, 조금 높이 올라가 봤자
부장과 지청장 사이에 있는 차장검사 정도이니까.
(일반 회사와는 다르게, 검찰청에서는 차장이 부장보다 높다. 검사의 직급을
아주 큼지막하게 나눠 보면 ‘평검사-부장검사-차장검사-검사장’ 순이다.)
그런 검사장이 아침 댓바람부터 나를 찾는다니 지금 송민지 사무관이 이렇게
당황해하는 것도 충분히 이해는 되는데, 대충 무슨 이야기 하려고 부르는 건
지 알겠다.
어떤 검사에게 무슨 사건을 맡길지 정할 권한을 갖고 있는 검사장이 먼저 그
얘기 꺼내 주면 나야 땡큐지.
* * *
잠시 후, 지청장실에 들어가 소파에 앉자 곽한성 검사장이 나를 삐뚜름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으이고, 아주 우리 지청을 박살을 내놨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