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검사는 재벌을 사냥한다-9화 (9/51)

9화. 스타 검사가 되련다 (2)

유재형 수사관과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한 남자가 우리에게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조성래라고 합니다. 여기 세관장으로 있습니다. 혹시 오늘 뵙기로 한 백동준

검사님이십니까?”

어제 우승식의 마음에 침투해서 읽었던 그 얄쌍한 얼굴과 다소 왜소해 보이는

체구의 그 남자였다.

“네. 맞습니다. 백동준입니다.”

이어서 악수를 나누는데 조성래의 시선이 내가 아닌 살짝 옆쪽을 향해 있었다.

“같이 오신 분은 혹시...?”

뻘쭘하게 서 있다가 눈빛을 받은 유재형 수사관이 얼른 자기도 손을 내밀었다.

“안녕하세요. 검사님이랑 같은 방에서 근무하는 수사관, 유재형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어째 악수도 하는 둥 마는 둥 하며 조성래의 표정이 안 좋아 보였다.

“저는 저희 지역에 새로 부임하신 검사님이 저희 세관에 오신다길래 따로 인

사 크게 드리려고 했는데요, 수사관님도 같이 받으셔야 하나요?”

자기 일 하러 왔다가 졸지에 불청객 취급을 받게 된 유재형 수사관이 뚱한 얼

굴로 조성래와 나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조금 전 조성래가 했던 저 말, 인사를 하고 있는데 따로 인사를 크게 드리겠

다니, 대충 무슨 말인지 알겠다.

내가 만나자고 한 걸, 앞으로 나한테 잘 보이려면 지금 뒷돈 찔러 주라는 의

미로 받아들인 게 분명했다.

어제 우승식도 나한테 약을 치네 마네 하더니 이 근방 문화가 아예 이렇게 더

럽게 잡혀 있나 보다. 내 유년 시절이 깃든 성해, 대체 어쩜 좋나?

하긴, 회귀하기 전에도 처음에 성해 지청에 있다가 훨씬 큰 지검으로 발령 나

서 보니 좋은 게 좋은 거란 식으로 일처리 하려는 사람이 안 보여서 놀랐지.

유재형 수사관은 조성래의 말을 나만큼 빠릿하게 이해하지 못했는지 계속해서

나에게 애처로운 눈빛만 보내고 있었다.

더불어 조성래마저 나한테 우리끼리만 이야기하자는 듯 진득한 시선을 보내는

바람에 유재형 수사관이 순간적으로 정말 난처해졌다.

유재형 수사관 입장에서는 출동할 곳이 있다고 해서 해서 따라온 것뿐인데 저

런 대접 받게 되니까 괜히 내가 다 미안해지네.

* * *

어차피 조성래가 크게 하겠다는 그 인사 따위 받을 생각도 없었으니 이 상황

부터 확실히 정리해 줘야겠다.

“인사는 방금 악수 나눈 것으로 충분하니 따로 하실 필요 없습니다. 수사관님

도 엄연히 여기에 공무 집행하러 나오신 거예요.”

나와의 만남이 자기가 생각하던 자리가 아니라는 게 확실해지자 조성래가 수

사관과의 손을 거칠게 놓으며 얼굴을 굳혔다.

“검사님께서 수사관님과 같이 수행하실 공무가 있다고 하시면, 혹시 저희 성

해 세관에 수사하실 일이 있으신가요?”

나는 이게 보통 일이 아니라는 걸 강조하려 일부러 로비 한편에 있는 기자들

을 곁눈질해 보이며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여기는 보는 눈도 많은데 조용한 데에 가서 말씀 나누실까요?”

“무슨 일인지 대략적으로라도 말씀해 주시면 저희도 수사에 최대한 협조할 수

있게 준비하겠습니다.”

어쭈? 뭘 준비한답시고 시간을 끌어 보시겠다?

“아뇨. 조성래 세관장님만 뵈면 되겠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 우승식 씨가 찾

아 가기로 한 박스랑 관련 있다는 건 미리 말씀드릴 수 있겠네요.”

그러자 조성래의 얼굴에 불안감이 엄습하며 그의 마음이 열렸다.

[하이씨, 우승식이 전화해도 안 받더니 이게 무슨 봉변이야? 이 검사 다 알고

온 것 같은데 어쩌지?]

그러면서 나름의 임기응변을 발휘해 보겠다는 듯 뒤로 한 발을 뺐다.

“아하하, 그 박스는 지금 저희 보세 창고에 있습니다. 신고 수리까지 끝나서

우승식 씨가 찾아가기만 하면 되는데 제가 잠시만 화장실 다녀와서 계속 말씀

나누겠습니다.”

“화장실에서 우승식 씨랑 통화하시려고요? 소용없을 겁니다. 어젯밤에 구속되

셨거든요.”

침착한 척하려 애쓰던 조성래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자기가 연루된 사건 때문

에 구속됐다고 생각하겠지.

“네?”

일부러 오해하라고 한 말인데 턱을 저렇게 뚝 떨구고 작은 눈까지 세 배는 크

게 뜬 걸 보니 내 전략이 먹혔네. 재밌네. 한 방 더 먹여 볼까나?

“우승식 씨 지금 구치소에 계셔서 핸드폰 못 쓰신다고요. 그건 그렇고, 방금

궁금한 게 하나 생겼는데요.”

“네? 아, 네.”

“성해 세관이 아무리 규모가 작아도 세관장님이 어떤 물건을 언제 누가 가져

가기로 돼 있는지 다 꿰고 있지는 못하시죠? 아까 제가 우승식 씨 이름만 말

씀드렸는데도, 그 박스가 지금 어느 절차 거쳐서 어디에 있는지까지 다 말씀

하시길래 놀랐습니다.”

딸그닥-.

자기가 한 말이 자신의 발목을 콱 잡아채는 느낌이 짜릿했는지 저게 사람 턱

에서 난 게 맞나 싶을 정도로 괴이한 효과음과 함께 조성래의 입이 닫혔다.

그때, 조금 전 높아진 조성래의 목소리 때문이었을까, 저 멀리서 사태를 관망

하고만 있던 기자 무리에서 한 명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실례합니다. 혹시 저희가 오늘 취재하게 될 밀수 사건 관련해서 말씀 나누고

계실까요?”

“무슨 말씀이십니까! 저희 세관에는 그런 거 없으니까 빨리 철수하세요!”

나는 다급하게 기자들을 향해 손을 훠이훠이 내젓는 조성래의 어깨에 손을 얹

었다.

“그러지 마시죠. 제가 모신 분들입니다. 일단 저희끼리 따로 말씀 나누고 기

자분들께 브리핑 드렸으면 하는데 어떠십니까?”

조성래한테 내가 저승사자로 보이긴 하나 보다. 내 한 마디에 그 커다란 팔

움직임이 한 방에 멈추다니.

그러고선 꼭 유재형 수사관마냥 내 귀에 자기 입술을 가까이 댔다.

“네, 네. 그렇게 좀 해 주십시오. 꼭 좀 부탁드립니다. 제가 검사님께는 물건

도 보여드리고 사실도 있는 그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일단 저희 세관 보세

창고로 같이 가 주세요. 수사관님도요.”

푸흡-.

사람 처음 볼 때부터 불청객 취급하고 백안시하더니, 유재형 수사관이 기자들

한테 무슨 말이라도 할까 봐 덜컥 겁이 났나 보다.

“네. 같이 가시죠.”

잠시 후, 세관 건물 뒤편에 마련된 보세 창고로 이동한 우리 앞에 조성래가

자기 상체만 한 박스 두 개를 가져왔다.

뜯어보니 예상대로 겉은 싸구려 옷가지로 덮여 있었지만, 그 안에는 짝퉁 명

품 시계와 가방이 가득 들어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만 보던 조성래가 처음의 당당한 모습은 싹 지운 채 우물쭈물

하며 겨우 한 마디를 짜냈다.

“흐읍. 죄송합니다. 제가 더 꼼꼼하게 확인했어야 했는데 밀수품들이 가득하

네요.”

지금까지 몇 번이고 뒷돈 챙기면서 눈감아 줘 놓고 이제 와서 오리발을 내밀

겠다? 내 앞에서 그렇게는 안 되지.

“조성래 씨가 우승식 씨랑 결탁해서 밀수 수익 나눠 먹으신 거 알고 왔습니

다. 순순히 자백하고 벌 받으십시오.”

마지막 발악이 무위로 돌아가자 조성래는 잠시 멍한 표정으로 창고 벽을 바라

보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검사님 말씀이 맞습니다. 이제 어떻게 하면 될까요?”

뚜걱-.

나는 상자들을 유재형 수사관에게 맡기고 일어서서 조성래에게 한 걸음 다가

갔다.

“이 물건들은 제가 압수하고 세관에 와 계신 기자분들께 브리핑하겠습니다.

우승식 씨와 조성래 씨 두 분 모두 처벌은 피하기 어려우실 거고요, 방금 스

스로 죄 인정해 주셨으니 긴급 체포는 하지 않겠습니다. 댁으로 소환장 보낼

테니 기일 맞춰서 출석하세요.”

“... 네. 제가 염치없지만 한 가지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는데요.”

“말씀하십시오.”

꿀꺽-.

조성래는 잔뜩 긴장한 듯 침까지 거하게 한 번 넘기고 나서야 말을 이었다.

“혹시 조사받는 동안에는 공무원 생활 계속할 수 있게 본청에는 비밀로 해 주

실 수 있겠습니까?”

이것 봐라? 시간을 벌어서 안 걸린 건수들 수습하고 마지막으로 한탕 크게 해

드시겠다?

“아뇨. 지금 검찰청 돌아가는 대로 관세청 본청에 파악된 사실관계 통보할 겁

니다. 직위해제는 당장 이루어질 거고요, 징계 수위는 해당 행정청에서 정하

겠지만, 파면 각오하셔야 할 겁니다.”

“네? 파면이요? 그건 안 됩니다. 검사님. 제발 부탁드립니다.”

파면이라는 말에 조성래가 이렇게 부들부들 떠는 이유가 있다. 해임을 당하더

라도 일을 못 하게 될 뿐이지만, 공무원 징계의 끝판왕인 파면은 이야기가 달

라진다.

수십 년간 퇴직할 날만을 바라보며 금이야 옥이야 쌓아 온 공무원 연금 수령

자격이 박탈되기 때문이다.

“형사 처벌 수위에는 제가 관여할 수 있어도 공무원으로서의 징계는 제 소관

이 아닙니다. 다만, 수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해 주신다면 사건 담당 검사로서

반성하고 계시다는 의견서 정도는 써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15년 검사 경력에 비추어 봤을 때 범죄자의 입에서 검사한테 감사하다는 말이

나왔으면 완전히 자포자기했다는 의미이다.

이때 확실히 못 박아 둬야 할 게 있다.

“어디까지나 이번 건 외에 다른 밀수 범죄도 다 자백하시고 선처를 구하실 때

이야기입니다. 한 건이라도 은닉하셔서 범죄 수익 추징 회피하려고 하시면 의

견서고 형사 처벌이고 얄짤 없습니다.”

“,,,네. 명심하겠습니다.”

그 뒤로 얼마나 포기를 심하게 했는지 조성래의 마음이 활짝 열리며 그간 협

조했던 밀수 사건들의 리스트가 내 귀에 주르륵 쏟아져 들어왔다.

나는 오랜만에 고시 공부하던 시절로 돌아가 집중력을 최대한 발휘해 총 23건

의 사건 발생 일시와 공범 리스트를 암기했다.

조성래가 나중에 정식으로 조사받을 때 이 중에서 한 건이라도 숨기려고 한다

면, 감옥에서 아주 오래 연금도 못 받으면서 지내게 될 것이다.

처음에 부장 검사실에서는 이게 뭔가 싶었는데, 이 마음 침투 능력 쓸수록 점

점 더 마음에 든단 말이지.

* * *

휴우-.

이걸로 조성래는 끝났고, 이제 본격적으로 스타 검사가 될 시간이다. 지금 나

는 보세 창고에서 압수한 박스들을 앞에 놓고 기자들과 카메라 앞에 서 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TV에 흔히 나오는 대형 기자회견과는 달리 지금

은 달랑 지역 방송사와 신문사 네 곳에서만 취재를 나와 있다는 건데.

뭐, 괜찮다. 미래를 경험하고 온 사람으로서 앞으로 기자들이 나를 졸졸 따라

다니게 만들 계획은 이미 세워 두었으니까.

이게 내가 이번 진화여고 학교폭력 사태와 밀수 사건을 이토록 공들여서 수사

한 또 다른 이유이기도 하다.

내 기억에 따르면 조만간 전국은 교내 일진을 타도해야 한다는 여론에 휩싸이

고, 관세청 전체가 밀수를 눈감아 주는 관피아였다는 의혹을 받게 된다.

오늘의 브리핑을 통해 나는 향후 여론을 뒤덮을 이 두 가지 이슈를 가장 먼저

공론화시킨 장본인이 된다.

이후 쏟아져 들어오는 인터뷰 요청을 통해 나는 내가 부각시키고 싶은 사건

을, 원하는 언론사를 통해, 나에게 필요한 논조로 터뜨릴 수 있는 언론 권력

을 행사할 것이다.

찰칵, 찰칵-.

카메라의 플래시가 터지며 그 시작은 미약하지만, 끝은 창대할 나의 첫 기자

회견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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